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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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의 인간관계도 관계인가?

 

영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03년 말(다른 사이트는 모르겠는데 알라딘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각 사이트마다 블로그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블로그 1세대'다. 지금은 워낙에 SNS가 발달이 되어 블로그의 열기가 한물 간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이것의 유용성은 아직도 용이해서 모르긴해도 이것의 진화는 있어도 없어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이 처음 생겼을 때 '뭐에 쓰는 물건인고?' 어리둥절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지금 생각하면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타인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벤치마킹을 하며 내 블로그를 구축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좀 놀라고 당황했던 건, 이 블로그에 놀라운 속도로 적응해가며 탁월한 발군의 실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블로거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추천과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게 또 나에겐 얼마나 열등감을 느끼게 했던지. 이들은 그 출발부터가 나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블로그질 잘한다고 상주는 것도 아닌데, 글 잘 쓴다는 이 근거없는 착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내 블로그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도통 남과 겨루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글 쓰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것이다.  

 

알라딘은 블로그를 블로그라 하지 않고 '서재'라고 명한다. 이것에 특허권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인터넷 서점에도 블로그는 있지만 거긴 '서재'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알라딘만이 '서재'라고 한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블로거를 '서재인'이나 '알라디너'로 고쳐 부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한때는 이게 너무 좋아(물론 지금도 거의 매일 들어오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로그인 상태로 두고 수시로 들어와 보기도 했다. 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도 서재질의 중독성은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건 서재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페이퍼 글과 댓글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다. 과연 눈길 한번 마주친 적이 없고 밥 한번, 차 한잔 나눠 마신 적도 없는데 이런 관계도 인간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물론 그것에 만족 못하고 같은 알라디너란 이름으로 오프라인 번개 모임도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은 온라인에서만 만나게 된다. 그러고도 과연 그게 인간관계냔 말이다. 당시 이것에 대한 의문은 나만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몇만 겹의 순간과 우연이 쌓이면 인연이 되듯이 시간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간관계란 시간과 공을 들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블로그에서의 소통과 관계도 그러하다.  

 

물만두님과의 인연    

   

어쩌면 그리도 눈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으면서 그토록 친하고 다정다감할 수 있을까? 인간은 필요해 의해 기계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관계도 다각도로 변화시키며 나가는가 보다. 서재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확실히 새로운 방식의 관계이긴 하다.

하지만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서재질 10년을 헤아리지만, 난 서재질을 처음 했을 때나 지금이나 낮선이에게 다가가는 걸 잘하지 못한다. 먼저 알아주고, 먼저 다가와주면 나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는 일은 좀체로 없다. 

 

서재의 세계도 다르지 않아 모든 인간관계는 거의 유유상종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해 본다. 물만두님과 내가 어디가 닮은꼴이어서 서로 알고 지냈을까? 이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건데, 물만두님은 나보다 더한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이 먼저 알은 체를 하고 다가와 말을 건네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물만두님과 소통하는 동안 그분은 내내 내겐 명랑소녀 였다. 이분은 때로 나를 구박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했다.   

 

사람이 관심 갖는 것이 비슷하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물만두님과 나는 관심이 같지 않다. 알다시피 물만두님은 오로지 추리 소설만 좋아하지만 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죽했으면 물만두님이 나를 위한 추리도서 목록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이나 변함이 없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녀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책에 대한 편견 또한 깊어지는 법. 이 편견의 벽이 여간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단지 내가 물만두님 서재를 보고 깨달은 건, 책을 읽어도 지조있게 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우물만파니 전문가가 되어서 그처럼 조회수도 많고, 이 분야에서 조언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사 고백하는 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조회수 많고, 댓글 많은 서재는 잘 가지 않는다. 만일 내가 그런 서재에 자주 간다면 그건 순전히 그 서재 주인장이 나를 먼저 알은 체 해 주고 나와의 소통을 변함없이 지속해 주기 때문이다. 그건 물만두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만두님에 대한 기억

 

비슷한 시기에 서재질을 하고 서재인 저마다 특성이 있지만 물만두님이 특별했던 건 자신의 병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보였다는 것일 게다. 솔직히 병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크든 작든 사람들 저마다 병은 한 가지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언뜻 서재를 방문할 때마다 이분이 어딘가 아프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밝혀 놓을 정도면 서재 어디쯤에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걸 밝히기도 했을 텐데 물만두님과 나는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알게된 사이라 그 페이퍼를 찾아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서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어 본적이 있다. 그때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병에 대해 흔쾌히 알려 주셨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 무렵 아예 페이퍼를 따로 올리셨던 것으로 안다. "저기요, 저를 처음부터 알지 않고 중간에 아시는 분을 위해 저를 잘 모르실 것 같아 알려 드리는 건데요..."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누가 아프면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그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아픈 건지, 아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꾸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아픈 자신을 자꾸 상기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무자비한 관심인가. 그렇지만 꼭 그것을 나쁘게만 받아들일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지 물만두님 스스로가 자신의 병을 드러낼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고, 그렇게 함으로 처음 사귀는 것에 대한 어색함을 없게 하셨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준 물만두님이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한 건, 거동이 불편하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을 텐데 알라딘은 그녀에게 새로운 창이 되어주는구나 했다. 또한 너무나 솔직하고, 소탈한 그녀의 글에서 오히려 건강함이 느껴져 더 친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픔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거.

아직 덜 아프다는 증거.

 

2005.12.02 (278p)

그땐 그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간 사람

 

그때는 몰랐다. 물만두님이 어느 정도 아픈지를. 지금도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병에 걸려보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관조하고 그것을 글로 쓰려고 했는지 새삼 뭉클해진다. 하루 하루 서재에 글을 남기고 댓글로 소통할 때는 잘 모른다. 이것을 하나의 책으로 압축해서 읽으니 그녀가 얼마나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는지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지금도 가끔 그녀 생의 마지막 일주일은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사람은 언제 자신이 죽을지를 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 이렇게 서재에 글을 남기곤 하지만 막상 가까운 친구에게는 내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고만 할뿐이지 구체적으로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놀러오라고 초대한 적이 없다. 웬지 모르는 사람은 그 익명성 때문에 민낯이어도 거리낌이 없는데 알만한 사람이 내 서재에 들어와 보면 쑥스러울 것 같고, 혹시라도 모르는 사이 그 친구 흉이라도 본 글을 보게될까봐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건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물만두님도 처음엔 그러지 않았을까? 남들 다 와서 보라는 자신의 글을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죽을 텐데 나의 부고 소식을 알라딘에 알리고 죽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누구에게든 로그인 할 때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대신 알리도록 해야할 텐데 그 특명을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물만두님도 그러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했던 것이다. 그랬을 때 그 비밀번호를 받아적는 가족의 마음은 또 얼마나 무너졌을까. 

 

작년 말, 물만두님의 1주기 때 만돌님(물만두님의 남동생) 출판사에서 누나의 책을 받았지만 차마 펼쳐 볼 자신이 없어 그냥 방에 두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20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당신이 어디에 돈을 얼마를 썼는지를 꼭 수첩에 기록하곤 하셨다. 오랜 세월 그런 수첩이 몇권이 됐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또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상에서 목소리가 안 나와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곤 했는데, 돌아가시고 차마 그것들을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한낱 별것 아닌 수첩도 펼쳐 보기가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데, 누나의 책을 어찌 쉬 펼쳐 볼 수 있을까. 사람의 글은 아직도 이렇게 살아 속삭이는 것 같은데 정작 그 사람은 없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고 자꾸만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서재질을 하면서 내가 내 글에 솔직하기란 게 이리도 어려운가를 여러 번 맞닥뜨리곤 한다. 확실히 글이란 남에게 들려 줄 말이 있고, 나에게 하는 말이 따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물만두님은 일기장을 웬지 따로 두지 않았을 것처럼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썼던 것 같고, 그것이 무려 200자 원고지 4,300장에 달한다고 하니 그 아픈 몸으로 참 줄기차게 쓰셨구나 싶다. 그것을 읽었을 때 누구는 '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안네도 벽장 속에 갇혀 지냈지만 그녀의 꿈과 상상력은 크고 원대해서 오늘 날에도 끊임없이 읽혀지는 고전으로 남았다. 안네의 그 참혹한 현실이나, 고쳐지지 않는 병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 갔던 물만두님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살아갔던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물만두님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물만두님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쏟으셨던 변함없는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오늘의 나의 쓰는 글 하나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누구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물만두님은 몸소 보여주셨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서재에 쓰는 글 중 과연 추릴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겨자씨 한 알     

 

원래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싹을 틔워 자라 나무가 되면 가장 큰 나무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누구는 그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어떤이는 거기서 사색을 하며, 누구는 거기서 놀기도 할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했던 삶이기도 하다. 그것을 이루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많은 학식이나 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 그것이 곧 일가를 이루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또한 물만두님은 보여주셨다. 

 

우리 알라디너는 그날(1주기 때) 물만두님의 이름으로 모였다. 평상시 번개 모임이었다면 안 나갔을지 모른다. 물만두님이었기에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알라디너는 그 어느 때 보다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평소 모르는 것 같아도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거구나. 그때처럼 알라디너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슴이 벅찼다. 물만두님께 고마웠다. 그뿐인가, 알라딘에서는 작년부터 매년 물만두님을 기념해 추리소설 리뷰대회를 열고 있다. 잘된 일이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중에 얼마나 많는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 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쓴 드리면 너무 뻔뻔할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위해 누군가 피를 토하며 썼을 글을 읽지 않고 모른 척 외면한 죄.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나는 오늘 나의 부족함에 아프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 너무 속상한 아침이다.

                                                                2005.08.11(321p) 

                              

이젠 물만두님 책과 그 책을 낸 작가에게 미안해 하거나 사죄할 필요가 없다. 알라딘이 그녀의 이름으로 추리대회를 계속 열고 있는 한 이 짐을 나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세상에서 조금 더 편하게 계셔도 되지 않을까.  

                 

다음은 우리 차례 

 

그날 나는 한 가지 꿈을 꿔었다. 보통 어느 누가 죽었던지간에 1주기는 뜻깊게 크게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냥 조촐하게 가족과 친지끼리만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잊혀지겠지.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질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알라딘에서 개최하는 리뷰 대회도 좋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어 보인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문학을 향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물만두님을 기념하여 그날 하루는 추리문학의 날로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문학 토론도 하고, 추리 작가를 섭외해 강연도 듣고, 영화도 보고, 물만두님도 추억하고. 그렇다면 좀 더 알라디너끼리의 만남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 생각이 터무니 없는 생각일까? 물만두님은 평생 그 작은 어깨로 추리 문학을 읽고 리뷰를 쓰며 그것을 알렸다. 그 작은 일이 큰 일을 이루었는데 겨자씨를 심는 마음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재능기부란 말이 있다. 몇 사람이 되건 자신의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씩만 헌신하면되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우리는 물만두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은 우리의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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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2-0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마주하기 힘들 테지만,
하루하루 흐를수록
작은 수첩과 일기장이 있기 때문에
오래도록 되새기면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요.

stella.K 2012-02-06 14: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버지의 가계부를 계속 가지고 있을 걸
유품 정리할 때 다 버렸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아버지의 흔적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ㅠ

기억의집 2012-02-06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서재 아무도 몰라요. 타인이 제 글을 보는 것은 괜찮은데 참 아는 사람들이 제 주변 사람들이 제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오글거려서 알려주기 그렇더라구요.

일주년 때 가셨군요. 저는 그 때까지도 친정하고 복잡한 일이 있어서..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땐 정말 심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알라딘에 코빼기도 안 비치고 담당자분이 오라고 방명록에 남겨놓은 글도 한참 후에나 읽었어요. 그 때 갔으면 스텔라님 볼 수 있는 거였네요. ㅎㅎ

stella.K 2012-02-06 14:04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기억님이 왜 안 오셨을까 아쉬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또 기회가 되면 만나게 되겠지요.^^

재는재로 2012-02-0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고 싶었는데 못갔죠 데니스는 통화중이라는 영화를 보면 실제 만나지는 않고 통화로만 연결된 인간관계도 존재하죠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결국 회사를 옮기면 끊어지더라구요
점차 연락안하다 결국 연락이 없어지는 친한 친구들도 결국 안만나면 결국.. 만나지 않더라도 같은 관심을 가지고 같은것 본다는것도 하나의 특별한 만남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는
언제 어디서든 서로 소통할수 있다는게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분과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
했지만 그래도 그분은 자신의 발자취를 이공간에 남기므로 많은 사람이 그분을 기억하는

stella.K 2012-02-06 14:0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예전에 친했던 사람들 언제부턴가 멀어지면 다시
남남이 되는데 여기가 더 오래 가는 것 같더라구요.
물만두님을 생전에 이곳에서 알고 지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더라구요.^^

차트랑 2012-02-06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여건으로 저는
물만두님께서 세상을 하직하신 후
언론과 알라딘의 메인을 통해서 알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기껏 조문의 글을 남긴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서야 그분이
그 얼마나 감동적인 일을 하셨는지 알게 된 것입니다.
스텔라님의 글을 읽으니,
물만두님께서 또 그 얼마나 소중한 것을
주고 가셨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stella.K 2012-02-06 14:40   좋아요 0 | URL
물만두님 본인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더 값지고 아름답게 생각되는지도 모르죠.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물만두님은.^^

oren 2012-02-06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어보니 stella님께서는 물만두님과의 인연이 정말 남달랐었군요.

저도 오래전부터(아마도 2003년쯤?) 알라딘을 이용해 왔기 때문에, 물만두님께서 이 곳 알라딘에서 아주 왕성하게 글을 쓰시는 분인 줄은 알았지만, 그토록 불편한 몸으로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삶을 긍정하고 또 수많은 분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신 분인 줄은 몰랐고, 1년여 전에 그분의 알라딘 서재를 통해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는 정말 많이 놀랐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서로 한 번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글이나 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수많은 '즐겨찾는 이웃'분들이나 저자들이나 작가들 역시 일상생활을 통해 마주치는 사람들 못지 않게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구나 하는 느낌도 가졌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나온 뉴스 가운데 기억해 둘 만한 한 가지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가 아니었던가 싶은데, 그 가운데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은 것”과 “옛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것”등은 제게도 뭔가 '반성'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는데, 물만두님을 추억하는 stella님의 글을 통해 다시금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2-02-06 14: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저도 저 두 가지가 가장 후회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창겨야지 하면서도 마음만 그럴 뿐
챙기지도 못하고 있습니다.ㅠ

차트랑 2012-02-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다시 생각해보니, 참... ㅠ.ㅠ

stella.K 2012-02-07 13:5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책읽는나무 2012-02-0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사 이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책에서 님의 닉넴을 볼적마다 반가웠어요.^^
따뜻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책을 읽는 것처럼 리뷰를 읽는데도 왜 눈물이 나는지..^^

stella.K 2012-02-07 14: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제 이름 딱 한 번 불러주셨는데
그 시절 이벤트 했던 게 참 잘했다 싶기도 하고,
계실 때 좀 더 많이 이벤트를 할 걸 그랬다 아쉽더라구요.

에고, 제가 책나무님의 눈물샘을 자극했군요.
미안하단 말대신 눈물로 읽어주셔서 고맙다고 할래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2-02-0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대박이군요.ㅋㅋ
꼼꼼히 다 읽었어요.
더 대박 나시라고... 추천 꾸욱~~~ㅋ

stella.K 2012-02-07 14:00   좋아요 0 | URL
아, 고맙습니다.^^

2012-02-07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7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8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8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2-02-0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글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지면서 짠하게 느껴져요.
저는 서재를 만든지 얼마 안 되어서 사실 물만두님의 존재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 분의 부고 소식을 들은 뒤에야 알게 되었죠. 그 분의 생전 모습과 남기고 간 글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저도 지금이 형성하고 이 온라인 관계가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 그래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이웃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


stella.K 2012-02-08 13:12   좋아요 0 | URL
오프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온라인에서 소통하고 지내는 사람이나
이젠 같은 것 같아. 오프에서도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지내는 것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온라인이 이젠 더 가까운 것도 같아.
시루스와 나도 오프였다면 이렇게 가깝게 얘기할 수 있을까?
알라딘이나 하니까 이렇게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 좀 소중히 여겨달라구.ㅋㅋ

이진 2012-03-12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나는 왜 이 글을 보지 못한 것일까요... 2월달이면 충분히 제가 열활하고 있던 때인데!!
물만두님의 책은 쉬이 열어보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어요. 이모의 글을 읽으니 제 마음도 뭉클뭉클해 지는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stella.K 2012-03-12 18:36   좋아요 0 | URL
추리소설과 그다지 친하진 않는데 그분을 위해
적어도 1년에 한권 정도는 읽어보자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읽고 있는 화차는 고전하고 있다.
별로 재미없어.ㅠ
 

요즘 드라마 대세는 아무래도 '해를 품은 달' 같다. 이것을 줄여서 '해품달'이라지.

그런데 이 드라마 좀 구라가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 잉과응보? 사필귀정? 뭐 그런 건가?

그런데 이 드라마 사랑 하나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도대체 연우가 뭐 길래 사람 하나 죽은 걸 가지고 이토록 잊지 못해 날린가. 물론 그냥 사랑인가? 아무리 가상 드라마라고 해도 왕실의 사랑이다. 그 왕실이란 아우라만 가지고도 봐 줄만도 할 것이다. 또 그뿐인가? 왕족의 사랑이기도 하고, 귀족의 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 외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도대체 연우가 뭐길래 죽은지 8년이 지났는데도 산 사람은 그 아이를 잊지 못해 하는 것인가. 망각은 확실히 인간에게 복이다. 죽은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꼭 사랑해서만도 아니다. 그건 어쩌면 고통이고, 저주인지도 모른다. 슬프다가도 그 슬픔을 잊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나 죽은 사람에게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언제까지 슬퍼할 것이고 그 슬픔에서 나오지 않을 참인가. 더 웃기는 것은, 연우의 아버지도 어느틈엔가 죽었는데 연우의 엄마도 오빠도 아버지는 입에도 올리지 않고 오로지 연우만을 잊지 못해 슬퍼한다. 말이 되는가?

 

 

 

그런데 웃기는 건 그것이 지고지순한 사랑과 연결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자꾸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는 사람을 사랑해 달라고 종용을 하는 것도 같다. 화각함을 가져오라는 훤이나 그걸 붙들고 우는 것이 하나도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그는 몸만 컸을 뿐이지 그의 정신은 연우가 죽은 싯점으로부터 조금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망령을 찾아 헤메도는 양영대군이나, 하다못해 사랑하는 여동생을 잊지 못해 공주자가와의 합방조차 못하는 의빈까지(물론 이 경우 공주가 너무 어려 아직 합방을 못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그것조차도 알고 보면 핑계요 합리화일뿐 속내는 그러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약간의 구라적 신화의 탈까지 뒤짚어 쓴 연우의 아우라가 과연 축복을 주는 존재일까? 저주의 존재일까? 

 

그것은 또 차치하고라도 과연 지고지순한 캐릭터를 우린 선뜻 사랑할 수 있을까? 첫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태우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보고 멋있다고 할 사람은 여자나 남자나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너무 이미 한 사랑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다니는 사람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월이가 된 연우가 양영을 종이 파는 가게에서 만나 옛 사랑은 잊어버리고 새 사랑을 만나라는 것도 그닥 좋은 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자기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귀신 신나락 까먹는다는 말 이런 경우에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확실히 연우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단한 신력의 소유자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더불어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이것에 동의하든 안 하든 가장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드라마는 사랑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쟁이든, 추리로든, 코미디든 사랑이 아닌 것에 더 많은 포석을 깔아두고 사랑은 오히려 감질나도록 조금씩 보여줬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사랑, 사랑하니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질린다. 지금까지 10회. 못해도 3분의 1은 지나온 싯점 같기는 한데 이것을 끝까지 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나에겐 벌써 해품달이 아니라 거품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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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0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는 벌써 안 보기 시작했답니다. 영애 누님의 연기를 보지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안타깝지만 흥미가 떨어져버렸어요. 수요일에 잠깐 일이있어서 못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더라구요. 목요일도 자연스레 안 보게되었구요. 그래도 김수현 연기 참 잘하던데... 쩝

stella.K 2012-02-04 10:35   좋아요 0 | URL
와, 직관력이 나 보다 뛰어난 걸!
수요일에 잠깐 일이있어서 못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ㅎㅎㅎ
어떻게 성균관 보다 못한지 모르겠어.
작가가 좀 떨었나 봐. 좀 더 잘 써야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한 것 같은
직관이 마구마구!ㅋㅋㅋ

아이리시스 2012-02-0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를 품은 달의 키워드는 사랑이 아니라 '합방'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수현이 좋아요. 김수현만 스타가 될 거예요. 그러면서 스물넷에 스타가 된 현빈을 생각했어요. 그때는 현빈이 먼 곳의 남자처럼 보였는데 지금 김수현은 스물 다섯인데도 어리게만 보여요!

그러니까, 제가 나이를 먹은 거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좀 다른 얘기가 터질 때가 된 것 같긴 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stella.K 2012-02-04 11:21   좋아요 0 | URL
글쵸! 합방!ㅋㅋㅋㅋㅋ
이런 얘기 하기 뭐하지만 작가가 지독한 금욕주의자는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등장인물 모두를 금욕주의자로
만들 수 있어요?
난 오히려 중전이 불쌍하던데.
내가 중전이었다면 그따위 상감이 뭐라구! 하며 딴곳으로 마음을
돌렸을지 몰라요.ㅋㅋㅋ

근데 김수현 전 자꾸 입을 보게 되는데 입이 참 육감적이긴 하지만
꼬맨 것 같은 흔적이 보여 완벽한 조각남 같아 보이진 않아요.
저 별걸 다 보죠?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2-03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도 인기 있다던 드라마를 왜 안 보는지 모르겠어요^^;;
뭐 평소에는 드라마를 즐겨 보는 성향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나마 시크릿가든은 잘 챙겨 봤을 뿐이에요.

stella.K 2012-02-04 10:40   좋아요 0 | URL
예전에 드라마 보는 거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것 같은데. 근데 시간이 없어 못 본다구.
어쨌든 이 드라마 안 봐도 돼.
시청자를 빠뜨려야지 구라라고 느끼면 그땐 올킬이다.ㅋㅋ

cyrus 2012-02-04 19:40   좋아요 0 | URL
드라마 시청하는 거 그렇게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취향이 저에게 마음에 들면 끝까지 보고 보는 순간 아니다 싶으면
안 보는 성격이 있어요 ^^;;
그래서 첫 화부터 마지막 편까지 본 드라마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드라마 안 보면 유행에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stella.K 2012-02-05 14:18   좋아요 0 | URL
ㅎㅎ 나하고 비슷하구나.
나도 그래. 근데 어제 '신들의 만찬' 시작했는데
그건 왠지 볼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라.
무엇보다 음식을 소재로 해서 옛날 대장금의 현대판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데 제목이 약간은 그래서 이게 끝까지 좋아질까 의문이긴 해.
시간나면 봐봐.^^

파란놀 2012-02-0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
질질 짜면서 붙들리는 일은 아니라고 느껴요.
사랑 하나로 넉넉하게 이야기를 풀어야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stella.K 2012-02-04 10: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등장인물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옳은 사랑의 방식에 대해 얘기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한가인도, 정일우도, 김수현도 그 누구도
성숙한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나마 좌초한 저주 받은 명작쯤으로 봐주면 다행이려나.
하지만 나중에 보십시오.
이 드라마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고 자기네들끼리 자화자찬하고
난리브루스를 칠테니. 으!

차트랑 2012-02-0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품달에 한표~!!!
채널의 선택권이 안사람에게 있는 연유로 할수없이 보게되었는데...
불만쟁이 스텔라님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한 사람의, 말씀해주신대로 수년 전에 죽은 것으로 되어있는
한 사람의 존재감에 조선의 군주인 왕을 비롯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들이 줄줄이 매달리는 바람에
그 끈이 떨어질까 아슬아슬하답니다.

그나마 극적 대비로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부각시킨 구성으로 왕가 형제의 긴장감,
여주인공이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는 긴장감과
왕비의 투기적 요인들인데
그나마 시청자들에게 미련을 주는 대목인 듯 합니다.

연기자 김영애의 강력한 포스와 묵직한 연기력이
극의 무게감을 주는 듯 하지만
메인들이 무게감이 없다보니
힘의 균형을 더욱 잃어버린 드라마가 되어버렸습니다
엉뚱한데서 무게감을 느끼게한다는 ㅠ.ㅠ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메인들에게 소망하는 힘의 구심점이
약하게 전달되고 때로는 이탈하여
이를 보완할 장치들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김수현이라는 메인만 쳐다보고 드라마를
봐야하는 현실과 마주하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이미...

이럴 때 불만쟁이 스텔라님의 지적은
적시에 터트린 불만으로 사료됩니다.
제작진과 시나리오 작가는 스텔라님의 견해를 좀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stella.K 2012-02-04 11:22   좋아요 0 | URL
제가 어쩌다 차트랑공님으로 부터 불만쟁이로 찍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뭐 이런 저를 그리 나쁘게만 보아주시지 않는
님께 제가 오히려 감사할 다름입니다.ㅋ
근데 이 드라마를 또 언제 그렇게 꼼꼼히 뜯어 보셨습니까?
대단하심다.^^

아, 근데 님은 저의 불만을 좋게 보시지만,
누구는 저의 이런 꼴이 보기 싫은지 즐찾에서 빠져 나갔어요.
어떻게...으앙~

차트랑 2012-02-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만을 품을 달'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요?
달은 불만을 품어도 멋지고,
거품을 품어도 멋지고,
해를 품어도 멋지고
뭘 품어도 멋진 것이라는 점을 잠시 깜박하면
이탈현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요~

애초에 품지를 말던지...
기왕 품엇으면, 잘해보던지...하는
그 뭐, 일관성을 또 깜박하면 그런 결정이 나는 수도...
하지만 나중에 다시 돌아 올 수도 ㅠ.ㅠ

그러니 불품달님, 너무 상심마셔요~

그런데..불품별로 하시까요??

stella.K 2012-02-04 13:18   좋아요 0 | URL
ㅋㅋㅋ 불품달! 불품별!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러다 불량품으로 주저 앉을까봐
노땡큐 하겠습니다.^^

차트랑 2012-02-0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송합니다 스텔라님~ㅠ.ㅠ
 

나가수를 이제 좀 습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생긴 것도 같다.

백지영이 나오고, 김건모가 나오고, 이소라와 임재범이 나왔을 때의 그 생경함, 울렁거림이 이젠 없다. 그저 이 가수는 오늘 노래를 어떻게 부를까? 어떻게 사각의 브라운관안에서 놀고 있나 그냥 구경하는 정도?

 

역시 눈이 보배라고 거미 양 어제 그렇게 섹시하고 관능적으로 하고 나오니 침을 젤젤 흘릴만도 하다. 특히 남성 관객들.ㅋ 그 이미지에 힘입어 1등을 거머쥐었다. 나 개인적으론 노래 보단 비주얼에서 먹어줬다는 느낌인데 참 사람이 객관적이고 정직하기란 게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그때 방금 목욕탕에서 저녁 세수를 마치고 나온 엄마도 어이가 없는지 "거꾸로구만. 어떻게 몰라도 그렇게 모를수가 있냐? 당연히 박완규가 1위지." 한다.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우리 모녀도 누가 보면 모르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난 어제의 박완규의 선곡도 좋았고, 가면 갈수록 그런 그의 시니컬한 태도가 점점 마음에 든다. 누가 뭐래도 난 그냥 나 좋은 노래 부른다는 요자세 말이다. 처음부터 어떤 곡이 청중들에게 먹힐까, 뭐 그것도 가수의 자세라면 자세일수있는데 나는 나 좋아서 부른다는 이 일관된 자세가 나의 성향과도 흡사해 보여 요즘 박완규에 꽂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제는 특별히 떠나간 두 명의 가수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이현우와 빅마마의 이영현이 투입이 됐는데 이영현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난 적어도 김경호가 5위를 하고, 이현우가 6위를, 그렇다면 7위가 바로 이영현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어처구니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다른 두 사람은 또 그렇다고쳐도 이현우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모르긴 해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아마도 나가수 무대에서 또 한 명의 단명하는 가수가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출전의 변에서 자신은 원래 도전이란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때가 오면 그냥 피하고 살아왔다고. 그런데 나가수 무대를 서니 엄청 부담이 된다고 했다. 사실 그는 그렇게도 생겼다. 너무 착하고 자신의 세계에서만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그런 인상이다. 그러다 어제와 같은 상황을 맞고 보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래서 싸움도 해 본 사람이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싸움도 작전인데 아무런 방비도 없이 그 많은 라운드를 헤쳐 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제 선곡은 그의 음색에도 맞고 좋았는데 너무 안정빵을 구하다 보니 그 같은 결과가 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어제 이현우 되게 귀여웠다. 그같은 참담한 결과를 얻고 창피해서 복도를 나갈수나 있냐고 방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에이,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자책할 필요있는가. 나가수 꼴등했다고 인생이 꼴등은 아니지 않는가. 단지 동네를 잘못 들어왔을 뿐이지. 그는 그에게 맞는 동네가 따로 있을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 말고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시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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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0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1-30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혹 좋은 가수가 어리버리하다가
불명예 퇴진을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노래도 일종의 예술 행위인지라
예술인으로서 자신만의 그 무엇을 꼭 사수하고픈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술인의 그 사수하고자 하는 것이
평가단의 그 무엇과 맞지 않으면
불명예 퇴진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뭐....

나가수의 경연장은 마치 평가단이 요구하는 그 무엇을
가수가 충족시키지 못할 때,
맛좀 봐라~ 뭐 이런 식의 평가를 내릴수도 있다는...ㅠ.ㅠ
(제가 너무 과장 했나 봅니다 ㅠ.ㅠ)

그러다보니 가수의 특성과 그만의 매력이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하차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나가수의 순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가 곤란합니다.

좋은 점 하나는 편곡으로 경연을 하는 덕분에
같은 곡의 색다른 느낌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텔라님은 불만쟁이 ㅋ 쿠더덩~
그런 불만쟁이에게 추천 한 방!!!

stella.K 2012-01-31 12:18   좋아요 0 | URL
ㅎㅎ 불만쟁이라니요?
하긴 불만은 저의 힘이긴 합니다.ㅋㅋ

정말 재대로 보신 것 같아요.
가수가 꼭 청평단을 만족시켜야할 의무는 없는데
그게 경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
요즘 좀 나가수를 보는 게 안타까워요.
정말 이 프로 덕분에 우리 가요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가를
새삼 알게되어 저는 그맛에도 이 프로를 보는 거랍니다.^^

cyrus 2012-01-3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주에 오랜만에 나가수 봤어요. 항상 나가수 보고나면 바로 알라딘 음원
다운받곤 했었거든요, 음원서비스 중지되고 난 후부터 나가수 시청이 뜸해졌어요.
저는 어제 방송 보면서 이현우가 나가수 투입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노래하는 이현우의 모습을 봤는데, 괜찮더라고요. 여자들이라면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였을거예요. ^^

stella.K 2012-01-31 12:19   좋아요 0 | URL
진짜 매력적이지. 그 중저음 아무나 낼 수 있는 거 아니잖아.
이런 사람은 좀 명졸까지는 아니어도 2,3라운드까지는 살아있게
해줘야 하는데 청평단 너무 야박하더군.
그나저나 이현우 안타까워서 어찌할꼬...ㅠㅠ

blanca 2012-01-30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완규 노래 넘 좋았는데. 가사 들으면서 완전 이입되어서 마치 환갑을 맞은 느낌이었어요. 거미양은 정말 섹시했죠! 통통 튀는 젊음이 막 느껴졌어요. 김경호는 6위에 지나치게 충격받는 모습이었어요. 좀 완벽주의인 것도 같고요.

stella.K 2012-01-31 12:23   좋아요 0 | URL
박완규 넘 좋죠?
그런데 거미 양의 섹시함이 불만스러운 건 왜일까요?
질툰가?ㅋㅋ
김경호가 완벽주의는 사실인데 다와서 지친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래도 왠지 명졸은 하게되지 않을까 싶은데...
윤도현이 생각 나더라구요. 기량은 윤도현 보다 김경호가 한수위이지
싶은데 말이어요.^^

이진 2012-01-30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요새는 나가수가 조금 뜸해졌어요.
그래도 이영현이 나왔다니 저로서는 반가울일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여가수에 비엠케이, 이영현이 있거든요.
저는 주로 파워풀한 가창력의 가수들을 좋아하지요.
혜진누님도 몸에 비해서 엄청나게 파워풀하지요.

거미는 마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버레스크를 보는 듯 했어요.
친구는 이 노래를 그렇게 부르니까 엄청 웃기다라며 보는 내내 빵빵터졌구요.
적우는 갈수록 인정받는거 같아서 기분은 좋아지더군요.
김경호가 명졸을 못할것 같아는 강한 예감이 들었ㅈ만요..후

stella.K 2012-01-31 12:26   좋아요 0 | URL
ㅎㅎ 뭐 웃길 정도야?
용 쓰는구나 하는 정도?ㅋ
뭐 그만한 노래 실력이면 나쁘지 않은데
1등은 무리였다는 거지.ㅋㅋ
파워풀도 좋긴한데 난 역시 가슴에 와닿지는 않아.
난 남자한테 끌리나? 여자 파워풀은 영...ㅋ

파란놀 2012-01-30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영현은 노래를 잘못 골랐나 싶기도 하더군요. 부르기 앞서까지는 김성면 노래를 골라서 잘 어울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곰곰이 들어 보니, '편곡'을 잘못했더군요. 조금 더 이영현 목소리와 느낌에 걸맞게 편곡했어야 하는데.

저와 옆지기는 어제 적우가 1위 할 만하다 여겼는데, 거미한테 1위를 주는 모습을 보고, 이래서 사람들이 나가수를 덜 보며 시청율이 떨어질 만하구나 싶더군요. 청중평가단 점수를 받아서 거미가 1위를 했겠지만, 거미가 지난번에 '한 번 1위를 했을 때'에도 어제와 비슷한 느낌이었거든요. 노래는 썩 잘 부르지 못했으나 '남자 관객한테 보여주는 퍼포먼스' 때문에 1위를 준다면, "나는 가수다"가 될 수 없어요.

적우-박완규-신효범-김경호 ... 이렇게만 생각하고
다른 가수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았지만 뭐...
사람마다 다 다르게 들을 테니 ^^;;;;

stella.K 2012-01-31 12:29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솔로 독립하고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알았다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가슴에는 안 와닿았어요.
그리고 신효범이나 박완규 같은 완숙미에 비하면 이영현이나 거미는 연륜은 못 속인다 그런 생각 들거든요.
역시 예술은 삶과 뗄레야 떨수 없는 건가봐요.^^

아이리시스 2012-01-3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현우 좋았어요, 스텔라님. 오랜만에 봐서 그런 것 같아요. 원래 이현우 세대 아니고 그의 노래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요. '나가수' 순위가 어느 순간부터 의미가 없어진 듯해서 남이 매기는 순위에 더이상 연연안하려고 하는데요. 떨어지면 좋아하는 가수 못 보게 되니까, 그래도 기존 가수가 탈락해야지, 새로 온 가수가 1경연만에 탈락 안했으면 좋겠어요. 기회조차 뺏는 것 같아서요. 어제 거미가 예쁘다고 생각은 했는데요, 1위는 좀 의외였어요. 저도 박완규가 좋았어요^^ 그 노래 좋아요. 눈물이 나요.

stella.K 2012-01-31 12:34   좋아요 0 | URL
정말요. 임재범이 여러분 불렀을 때 울컥했는데
그 무대가 생각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근데 왜 4위 밖에 안 주는 거냐구요?
그나마 전에 1위를 했으니까 용서해줬지 한 5등이나 6등쯤 줬으면
문제제기하고 나가수 청평단 고발조치했을지도 몰라요.
아닌 폭파시키던가.ㅋㅋㅋ

맞아요. 이렇게 순위가 들쑥날쑥이건 같으면 새로 투입되는 가수들
첫 라운드에서 떨어뜨리는 건 고려해 봐야되요.
뭡니까? 순위 발표나면 자기 방으로 돌아가 울던지 웃던지 하는 이 시츄에이션은. 점점 나가수 웃기게 돌아가더군요.
나가수 초기에 나왔던 사람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흐~

파란놀 2012-01-3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규 같은 가수는
나가수에서 일찍 그만두고
박완규 노래를 잘 부를 곳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궁..

stella.K 2012-01-31 14:56   좋아요 0 | URL
에이, 무슨 섭섭한 말씀을...
나가수나 하니까 자신을 들어낼 수 있는 거죠.
요즘 가수들 TV 나오면 예능 밖에 더 나오나요?
명졸은 하고 내려와야죠.
된장님 박완규 안 좋아하시는구나?ㅠㅋ

파란놀 2012-02-01 08:19   좋아요 0 | URL
아뇨, 걱정스러워서 그래요.
순위 싸움을 하는 틀에 자꾸 젖어들면
박완규 빛깔이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가장 어린이처럼 노래 부르는 사람이
나가수에서는 박완규이니까요..

stella.K 2012-02-01 11:21   좋아요 0 | URL
아, 이런...된장님의 그런 깊은 뜻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맞아요. 그런 게 있죠.
개성을 인정해주고 키워주는 장이 되어야 하는데
나가수는 너무 대중을 의식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들은 결코 만만이 읽히지는 않는다. 그는 전기작가로 더 많이 잘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 오래 전 그의 <체스>란 단편을 읽고 매료되었다. 그후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올 때마다 관심있게 들쳐보게 된다. 하지만 그의 사유의 깊이가 워낙 대단해 좋아는 하지만 선뜻 읽기에는 또 웬지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체스>를 읽었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던터라 이번에 새롭게 그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 반가웠다.  

 

내가 <체스>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탁월한 심리 묘사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과연 <체스>에서 느끼는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아 나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약간은 지루하고,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어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쓴 작품이라 작가의 염세적 사고가 그대로 녹아 있어 실제 주인공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번역자가 옮긴이의 글에서도 썼지만 '신데렐라'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어두운 이면이 없다. 부잣집 딸이었지만 계모에 의해 신분이 강등이 되었으면서도 밝음을 잃지 않고, 늘 꿋꿋하고 왕자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늘 밤 12시만 되면 가난한 재투성이로 변한 신데렐라의 속내는 드러나지 않는다. 솔직히 (적어도)오늘 날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의 세상에서 매일 가난와 부를 왔다갔다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자기 정체성이 많이 흔들려야 오히려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감춘 채 고난을 인내하면 백마탄 왕자를 만난다는(원뜻은 그런 뜻은 아닐 것이다. 고난을 인내하면 좋은 날을 맞이 한다는 것의 은유가 되겠지) 허무맹랑하기까지한 이 이야기는 오늘 이 시대에는 참 먹히기가 힘든 이야기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더구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이 시대엔 오히려 일부러 적극적으로 결혼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백마탄 왕자가 나타나 준다는 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안다. 더구나 왕의 피가 흐르는 귀하신 몸께서 한낱 재를 뒤짚어 쓴 여자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신데렐라의 원래 신분이 귀족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를 대변해 줄 수 없다. 

 

그런데도 신데렐라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이야기이도 해 신분상승의 욕망을 부채질 하기도 한다. 바로 내가 본 이 작품은 이 점을 파고 들어가 인간의 내밀한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을 보면서 나라나 시대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상상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상상해 보라.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그렇고, 진짜 부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중산층이거나 그 이하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그들 중엔 또 가깝든 멀든 부자 친인척은 꼭 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그들이 2주간 부자들이 사는 세계를 보여 주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2주간 동안 크루즈 여행을 하며 온갖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면 그 기회를 마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크리스티네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물론 처음부터 나에게도 행운이...?! 처음엔 얼떨떨할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좋아하지는 않겠지. 우리네 현실이라는 게 구차하기 이를 때가 없어 잠깐 어디를 다녀오는 것도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갈등하고, 준비를 많이해야 하는 것인가. 더구나 여행을 자주 안 해 본 사람일수록 그리고 생전 경험해 보지도 못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면 더 많이 복잡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유혹도 깊은 법이다. 내 평생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비록 한 순간의 꿈이어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삶을 잠깐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아니 오히려 바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삶이 아닌가. 

 

나 역시도 그것은 만만치 않은 유혹일 것이고, 당연히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한번도 상류사회의 삶을 살아 본적이 없으니 그것을 욕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욕망하지 않는다'가 과연 정직한 말일까?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너무도 평범한 집안이라 정말 사돈의 팔촌이라도 좀 유명한 사람이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나중에 안 일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왕고모(이건 또 어떻게 계산이 되는 촌수인지 현깃증이 날 지경이다)쯤 되시는 분이 자유당 시절 유명한 작가라는 것도 알았고, 알만한 명망있는 집안의 딸이라는 것도 알았다. 처음엔 이걸 알고 나름 좋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평생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나의 삶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가깝게 지내던 형제도 물건너 살면 이름만 형제고 남이나 나름없는데 촌수도 잘 가늠이 되지 않는 분이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냔 말이다.

그래도 이 욕망은 수시로 나를 자극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얘기하기도 쑥스럽고 싫지만, 난 사춘기 시절 한 때 미국에 계신 나의 막내 작은 아버지가 나를 데려가 공부시켜 주길 집착적으로 바란 적도 있다. 미국에서 그렇게 잘 사신다는데 어려서 나를 그리도 예뻐하셨던 조카의 팔자 좀 고쳐주시면 안 될까? 바란 적도 있었다. 그뿐인가? 우린 흔히 결혼을 신분상승의 도구로 잘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본 소설은 바로 그런 주인공의 욕망을 잘도 건드려주고 있는 것이다.

 

분명 돈이 많으면 잘 살 기회도 많아지고, 사랑에 성공할 확률도 많아지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 안락한 삶을 영위할 확률도 많아진다. 사람이 거지로 살다 부자로 신분이 바뀌어 사는 것은 그 적응이 빠르다. 그러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되어 적응하며 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가난한 자가 추락을 경험하는 것 보다 몇십 배 또는 몇백 배의 강도로 사람을 절망하게 만든다. 더구나 2주 후엔 누더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될까? 물론 잠시 공항상태를 경험하겠지. 하지만 그 잠시가 제 3자가 말하는 '잠시'일뿐 경험하기에 따라선 당사자에겐 억겁의 시간일수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티네는 안타깝게도 다시 누더기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겪어야 하는 심리적 충격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저 생각지 않은 행운을 즐겨보고 싶었을 뿐이다. 또 누가 아는가? 자신이 바로 신데렐라가 될지. 거기엔 그녀의 어머니도 한몫했다. 그러면 더 이상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가난한 삶을 연명하다 부자의 세계에 편입된 우리의 크리스티네는 부자들이 베풀어주는 세례에 정신줄을 놓고 있는 것마는 아니었다. 나름 부자들이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하는지를 인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녀는 부의 안락함을 만끽해 그것을 종종 잊어먹거나 합리화 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바로 주인공 크리스티네와 주변 인물을 통해 계급사회를 교묘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꼬집어 대기도 한다. 어느 사회건 계급을 무시하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공산주의건, 민주주의건 계급은 잊기마련이다. 이것이 없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유토피아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이상향일뿐이다. 형제지간에도 개인차가 있어 판이한 운명을 살기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이 계급을 결정 짓는 것은 또한 학교일 것이다. 학교는 사람을 평준화시켰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학교만큼 사람을 서열화시키고 차별을 시키는 곳도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는 곳에서 이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디를 간들 이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공동체 정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경쟁사회에서는 이것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크리스티네가 자신의 사고와 상류사회를 비교하는 그것에서 또는 그녀의 신분이 들어나는 과정에서 나는 묘하게도 쓰라린 학교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나와 종류가 다른 인간에 대해 사귀는 것을 얼마나 부담스럽고, 경계해 왔는지, 또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사람끼리 똘똘뭉쳐 틈을 내주지 않는 것에서 크리스티네도 그러했을 것이란 감정이입이 어렵지 않았다. 사실 부의 세계가 베풀어주는 세례가 크면 클수록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굴욕도 그만큼 컸다. 

 

그래도 바라기는 크레스티네가 자신의 현실로 돌아왔을 때 얼른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나름의 또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랬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 허탈하다 못해 현실은 몇백 배 참혹한 것으로 느껴졌지만(더구나 어머니도 돌아간 상황이 아닌가) 그래도 사랑할만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동반자살을 모의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그 전에 크게 한탕할 것을 모의하는 것에서 소설은 끝나버렸다. 이것은 확실히 말했지만 작가의 사고관을 그대로 반영한 결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전후 오스트리아의 사회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참혹함, 피폐함, 공허함등을 대변했을 것이다.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여기서 복구하고 좋은 사회가 되어도 계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나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염세적 세계관을 그래도 보여준다.    

 

나라면 감정이입이 너무도 잘되는 이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했을까? 작가는 인간 세계의 밑바닥을 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겠지만 난 아직 바닥을 보지 못했으니 다소 상투적일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은 또 그 나름의 가난한 사랑을 하게되는 것으로 끝을 맺었을지 모를 일이다. 왜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너무 가난해서 그 가난을 반으로 나누려고 결혼하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바로 가난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도 있다. 물론 가난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거야말로 상투적이 아닌가? 소설은 이야기인만큼 인간의 상상을 더 강화시켜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을 존중해 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또 이들을 볼 때 일부러 그것을 강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결말은 아닌듯도 하다. 즉 다시 말하면, 작가는 이 세대에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하는 줄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 불행하지 않게 세상을 바라봤다면 조금 더 나은 결말을 이끌어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스테반 츠바이크가 이 세대에 다시 태어나도 이 세대를 달가와 하지 않을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러니 결말을 종용하지 말자. 차라리 다른 작가를 찾아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내가 만일 크리스티네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가득이나 불행한 처지에 지지리 운도 없는 남자를 만나 동반자살을 모의하고 그전에 한탕 크게 할 것을 동조하기 보다, 자신이 경험한 부자들의 세계를 까발리고 좀 더 부풀려 글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 갔을 것 같다. 그리고 누구도 전쟁을 원했던 사람은 없었다. 윗대가리들이 저질러 놓은 이 말도 안되는 놀음에 국민들만 죽어나가는 현실을 보라고 외쳤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크리스티네는 애인을 잘 만나야 했고, 국민은 지도자를 잘 만나야 했으며, 독자는 작가를 잘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테반 츠바이크는 분명 내가 경외해마지않는 작가임엔 틀림없지만 이 작품은 좀 암울한 작품이라 이런 작가를 좋아하는 나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행을 말하는 소설은 가급적 안 읽는 것이 좋긴한데 문학의 거의 대부분은 허무주의를 담고 있어 행복한 소설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작가의 명성을 생각할 때 이런 판형은 정말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지는 그렇다쳐도 재생지에 페이퍼백이라니. 예의가 없다못해 홀대하는 것 같아 아쉽다 약간 화도 났다. 이왕 책을 만들려거든 좀 더 생각하고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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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3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마도 '욕망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 욕망을 포기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ㅠ.ㅠ


그나저나
작가의 명성을 파악하고 있는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머리를 쓰는 것인지
안쓰는 것인지 도대체...ㅋ

스텔라님 말좀 들어주면 어디 덪이라도 나나??


stella.K 2012-01-31 12:38   좋아요 0 | URL
이것도 저만 불만이잖아요.ㅋㅋ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출판사에서 다음판 찍어낼 때 참고하라는 의미도 있죠.
참 오타도 쫌 보이더군요.
그러니 화 안 나갔어요?ㅋ

cyrus 2012-01-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내용 궁금했었는데, 신데렐라의 또 다른 버젼이라니 누님이 언급한
<체스>랑 이 소설 꼭 읽어봐야겠어요. ^^

stella.K 2012-01-31 12:42   좋아요 0 | URL
작가의 소설은 정말 읽는 맛이 있어.
심리묘사를 정말 잘하고 얼개를 잘 짜놓거든.
근데 크리스티네는 정말 뒤로가면 약간 우울해져.
그거만 조심하면 좋은 것같아.
유럽 문학의 중후한 멋이 난 좋거든.
한번 읽어 봐.^^

차트랑 2012-02-0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증말 화 좀 나갔어요^^

stella.K 2012-02-03 12:54   좋아요 0 | URL
엇, 이책 사셨나요? 그죠? 화 나죠?

푸른기침 2014-06-3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 장정일 때문에 <체스>를 읽었는데 참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뛰어난 전기작가지만 그의 소설이 전 더 좋습니다. 님의 서재 때문에 이런저런 추억에 잠기다 또 후다닥 갑니다.

stella.K 2014-07-01 13:1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작가는 체스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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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언제나 나에게...

 

언젠가 나는 말했을 것이다. 작가에 대해 쓴 책을 좋아한다고. 작가가 좋으면 그 작가의 작품을 읽겠지만 나는 워낙에 책 읽기를 버거워 하는 사람이라 그 작가의 책을 다 읽는다는 건 불가능할 때가 많다. 하물며 하루키랴.

 

사실 하루키는 그 명성과 번역되어 나온 책들에 비하면 난 정말 극히 제한적으로만 읽었을뿐이다(그러고 보니 난 그 유명한 '먼 북소리'도 아직 읽지 못했다). 그래도 하루키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다. 언젠가 난 임경선이 쓴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란 에세이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것은 임경선이란 작가가 써서 읽은 것이 아니라 하루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그래도 책에 대한 인상이 그다지 강렬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냥 하루키가 너무 좋아 경의를 표하기 위해 쓴 책 같다). 이처럼 그의 작품을 읽어내는데는 자신은 없는데, 사람 자체가 관심인 것은 그의 독특한 문체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스럽지 않고, 중간중간 단편적으로 알려진 그의 삶의 이력들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건 아니건 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그의 장편소설은 뭔지 모르게 부담스럽다. 그것이 꼭 분량이 많기 때문만도 아닌 것 같다. 이미 그의 단편의 맛을 본 나로선 이렇게 매력적인 단편을 쓰는 사람이라면 장편에 대한 관심도 가질만도 할 텐데 나는 늘 장편은 버겁다. 그 유명한 <1Q84>도 세 권을 다 구입하고도 읽기를 중단한 상태니까. 그런데 그의 <잡문집>이 나왔다니 그것은 또 관심이 갔다. 웬지 이책은 단편에서 읽었던 그 특유의 문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처음 나올 때부터 관심갔다. 

 

하루키, 소설가에 대해 말하다

 

분류는 에세이에 분류가 됐으면서도 그 스스로는 에세이라 말하지 않고 '잡문'이라고 했다. 진짜 에세이스트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에세이가 잘 쓰면 에세이고 잘못 쓰면 잡문이 되는 판국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글을 두고 처음부터 잡문이라 했다면 기존의 에세이가 격하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 않을까? 자고로 잘난 사람이 겸손하기까지하면 못난 사람은 더 못나 보이는 일종의 '질량 격하의 법칙'을 겪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잡문'이라고 해도 확실히 우리가 생각하는 잡문이 아니고, 그만의 이유있는 잡문인듯 싶다. 무엇보다 그는 그가 여기저기 기고했던 글들을 그러모은 일종의 문집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그가 소설가인만큼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 나름의 정의, 생각등이 여기저기 많이 들어나있다. 

우선 그는 '자기란 무엇인가'란, 자신의 책이 아닌 타인의 책에서 그책의 해설격으로 쓴 글에서 소설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

 

 소설가는 왜 많은 것을 관찰해야만 할까? 많은 것을 올바로 관찰하지 않으면 많은 것을 올바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쪽은 늘 독자이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역할은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가장 매력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독자에게 은근슬쩍(폭력적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건네주는 데 있다.(중략)

소설가가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지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결론을 준비하기 보다는 그저 정성껏 계속해서 가설을 쌓아가는 것이다.(19P) 

난 이런 글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에 대한 정의도 좋지만)'소설가'대한 정의를. 세상엔 객관적으로 봐도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도 많지만 그 직업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작가는 나의 영원한 로망이다. 내가 이런 글을 싫어하는 때가 온다면 그건 두 경우일 텐데, 하나는 내가 작가의 심원한 경지에 올랐을 때나 이 로망을 버렸을 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 예루살렘상을 수상하고 수상소감에서 소설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일반의 그것과 다르고 오히려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고 찬사를 받는다고 했다. 왜 그럴까?

소설가는 뛰어난 거짓말을 함으로써, 현실에 가까운 허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실을 어딘가 다른 곳으로 끌어내고 그곳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89p)

라고 했다. 하루키, 그에게 있어서 소설가의 정의는 이런 것이다.

 

하루키, 문체에 대해 말하다

 

하루키의 문체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좀 엉뚱한 곳에서 시작해서 그것의 타당성을 중층으로 쌓아가는 그래서 위트를 더해가는 문체라고나 해야할까? 이 소설가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굴튀김이 뭐가 필요했을까? 그런데도 그는 굴튀김을 굳이 끄집어 내고 그것으로 '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 꼭지의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대단하기도 하지만 그의 그런 엉뚱한 가설이 재밌기도해 웃음이 비어져 나오기도 한다. 보라.

나는 무엇보다 내가 굴이 아니고 소설가라는 사실이 기쁘다. 기름에 튀겨 양배추 옆에 누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음 생에 굴이 될지도 모른다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33p)

 

내가 그의 문체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건 적어도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을 20년 전 무렵엔 그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그의 문체를 흉내내는 작가들이 생겨났고, 지금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아무튼 그땐 정말 놀랍기도 했다. 내가 놀랬던 건 무엇보다 그는 단편을 일본스럽게 쓰는 것이 아니라, 미국스럽게 쓴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도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자국민으로서 그렇게 쓰는 것을 거부한다고도 말했다. 나는 바로 이점 때문에 하루키를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지만 하루키는 재즈광이다. 재즈가 좋아 젊은 시절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의 문체가 미국스럽다고 단순히 평가했는데 그것은 그의 문체에 완전한 답이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의 어느 책을 뽑아 읽어봐도 곧 문체의 자유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던 그 순간 어떤 작품을 써야지 하고 머리속으로 그리는 바를 써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그날그날 쓰고 싶은대로 쓴다고 했다. 정말 그의 문체는 어떤 사변을 증명하거나 사건을 다루기 위해 앞뒤 문맥을 이해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재즈의 즉흥연주와도 흡사하다. 그렇더라도 리듬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문체를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는 멜로디, 요컨대 적확한 어휘의 배열이 뒤따른다. (중략)-즉흥연주다.

 

이처럼 나는 글쓰기를 거의 음악에서 배웠다. 역설적이지만, 그토록 음악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설가가 된지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소설 창작의 많은 방법론을 뛰어난 음악에서 배우고 있다. (중략)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 깃든 뛰어난 자기 혁신성은 지금도 내가 문학적 규범의 하나로 우러르는 것이다.

텔로니어스 멍크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단신의 연주는 어떻게 그렇게 특별하게 울리나요?"라는 질문에,

"새로운 음note은 어디에도 없어. 건반을 봐, 모든 음은 이미 그 안에 늘어서 있지. 그렇지만 어떤 음에다 자네가 확실하게 의미를 담으면, 그것이 다르게 울려퍼지지. 자네가 해야할 일은 진정으로 의미를 담은 음들을 주워담는 거야"

 

소설을 쓰면서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 어디에도 새로운 말은 없다. 지극히 예사스러운 평번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드넓은 미지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는 비옥한 대지가 개척을 기다리고 있다.(405~407p)  

그제야 난 하루키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내딛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키의 작가들

 

공교롭게도 하루키가 우리나라에서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루키를 닮은 글쓰기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생김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선생님 역시 하루키와 밀란 쿤데라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수업 시간 전 평소 보다 일찍 강의실에 도착한 나에게 시업 시작 전 한담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스텔라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지?"라며 나로선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불쑥 물으신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작가가 된다면 좋아하는 작가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모두 만만히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마 안가서 그것을 후회했다. 분명 나도 그 당시 좋아하는 작가들이 없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에게서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배짱인지 그렇게 말하고만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루키를 닮은 선생님은 내 말에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선생님의 그 질문은 꼭 작업거는 멘트 같았다. 

그 잘난 콧대의 나의 글선생도 좋아하는 작가가 하루키라고(지금은 아마 그것이 바뀌었을 것이다)하는데 나도 좋아하는 작가 한 둘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 그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박범신? 김훈? 아, 그렇게 말해버리기엔 뭔가 꼴린다. 그들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더 근사한 작가는 없을까? 갑자기 이 넓고 넓은 문학의 바다에 나는 새끼 발가락 조차 제대로 담그지 않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확 밀려온다. 

 

하루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다. 

익히 잘 아는대로,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와, 셀린저와 그레이스 페일리(이 사람은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스티븐 킹과 폴 오스터 등. 그리고 하루키는 이 좋아하는 작가를 번역하기도 했다. 갑자기 "젠장!"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젠장'은 욕이 아니다. 그건 열등감 촉발 감탄사다). 이 사람은 자국어로 쓰는 소설이나 잘 쓸 일이지 번역도 해서 사람 기를 죽여 놓는다. 그런 사람이 자랑도 아닌 것이 그냥 담담하게 말하면 더 얄밉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경의에 차서 머릿말처럼 썼던 글들을 보라. 얼마나 우아하던지. 그것은 이책 '번역하는 것, 번역되는 것'에 잘 나와 있다. 더구나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는 각각 두 번씩이나 실렸다.

내가 볼 때 그 챕터는 이책 전체를 통털어 가장 우아한 쳅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앞서도 밝혔지만 나는 작가에 관한 글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 쳅터는 덤으로 얻는 기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우아해서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정도다. 젠장! 나는 평생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이렇게 써 볼 수나 있을까(하긴, 그래도 내가 박범신 작가에 대해선 이렇게 저렇게 쓰고 약간의 재미는 좀 보았다. 그래봐야 새발의 피도 안되지만.ㅋ)?

 

하루키에게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는 '온기를 자아내는 글(455p)'에서, 한때 그는 도쿄 근교의 외풍이 심한 집에서 산적이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춥던지 아침이면 부엌의 얼음이 땡땡하게 얼 정도였는데, 그때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다고 한다. 그것들을 끼어안고 자면 온기가 느껴졌고, 나중에는 네 마리가 되어 아내와 함께 하나 앞에 두 마리씩 끼고 잤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렇게 온기가 느껴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래 전 그의 단편 '치즈케잌의 모양을 한 나의 가난'(확실히 제목이 맞는지 모르겠다)이 떠올랐다. 내용은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데 추위에 따뜻한 온기나, 궁색한 것에서 누려지는 의외의 호사 뭐 이런 상반된 이미지가 상당히 위트있게 그려져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작가에게 있어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말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자기만의 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중략) 상대가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게하는 것, 마치 자기만을 위한 장소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뛰어나면서도 바람직한 이야기의 본디 그대로의 모습일 것입니다.

(중략)

공유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세상사를 서로 나눠가진다는 뜻입니다.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뜻입니다. 내게는 그것이 이야기의 의미이며 소설을 쓰는 의미입니다. 서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그런 생각은 소설을 시작한 이래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444p)

앞서 말한 하루키를 닮은 나의 글선생님은 분노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의 그말이 세상을 살면 살수록 진리 같이 느껴지는데 하루키는 확실히 고상해도 너무 고상하다. 나는 나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이 있으면 그것을 꼭 글로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마치 고자질하듯 내가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고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끌어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것에 아직까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처럼 하루키의 고상한 타당성이든, 나 같이 질 낮은 타당성이든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타당성을 구축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나는 하루키 같은 고상한 타당성으로 이행해 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난 여러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도 이책은 잡스럽긴 하다 

 

자서전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자신이 자신에 대해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책은 여기저기 저자가 쓴 글들을 그러모은 문집이다. 이것을 한권으로 묶을 생각을 했을 때 그는 마치 자신을 퍼즐 맞추기라도 하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부스러기 같은 잡스러운 것들을 모아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옛 원고를 들췄을 때 좀 놀라진 않았을까? 내가 언제 이런 글을 썼지? 생각해 보니 그런 글을 쓰긴 쓴 것 같군. 뒤통수를 많이도 쓰러내렸을지 모를 일이다. 가끔 과거에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는데 누군가 그랬다고 말했주면 그게 과연 나였을까? 잊고 있던 나에 대해 화들짝 놀란다. 그것은 또한 낮선 나를 만나는 스릴이기도 하다. 나는 이책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 같아 나름 즐거웠다.

 

그런데 이책은 진짜 좀 잡스럽기도 하다. 어느 부분은 뭐 이런 것까지 넣었어야 했을까 싶게 잡스럽다. 특히 '회색 쥐와 깜장 토끼'에서 와다와 안자이가 나눴던 대담 같은 건 좀. 뭐 나름 이것을 실은 저자만의 깊은 뜻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별로 나에겐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아, 잊을뻔 했는데, <언더그라운드>의 집필 배경에 대해서도 난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물론 당연 그책은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읽을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봤더니 옴진리교 사건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관심이 갔을까? 하긴, 난 신흥종교에 대해선 관심이 없으니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했어도 그냥 좀 놀라다 넘어갔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독자의 주관적 잡스러운 부분을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이책은 확실히 읽을만 하고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작가의 <1Q84>를 다시 붙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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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0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0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1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1-20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이라는 장르에는 정말 취약한 문외한이나 다름이 없습죠 ㅠ.ㅠ
제게는 소설을 분석하는 일이 꽤나 어렵게 느껴지고
무척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랍니다.

스텔라님의 소설에 대한 분석력은 그저 제게는
감탄스러울 뿐이랍니다 ㅠ.ㅠ

강력 추천드리고 갑니다~

stella.K 2012-01-20 18:20   좋아요 0 | URL
아이고, 왜 이러셔요...쑥스~ㅋ
소설도 자꾸 보면 늘어요.
한때 저는 소설이 하도 같지 않다고 느껴져서 안 읽었던 적도 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나름 열심히 읽으려고 하는데
진짜 읽는 분들에 비하면 정말 새 발의 피죠.
차트랑공님도 슬슬 읽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이진 2012-01-2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나는 아직껍데기만 벗겨놓고서는 펼쳐들지도 못했는데 ㅠㅠ
이제 미셸 투르니에...? 그사람 에세이 읽고있어요.
엄청나게 어렵다고해서 걱정했는데. 이해도 잘 되는거 같구요.
초반이라서 그럴지는 모르겟지만 후후...

나도 강력 추천 콕하고 박고가야징 ㅎㅎ

stella.K 2012-01-21 10:55   좋아요 0 | URL
왜 이렇게 늦어?
마감 지난지 한참 됐는데.
하긴 마감내 리뷰 올리는 사람 별로 없긴 하더라.
나도 이 리뷰는 좀 늦긴 했지.
미셸 투르니에 이해가 가니? 난 영 좀...ㅠ

이진 2012-01-21 21:20   좋아요 0 | URL
웅?! 마감이 지났다구요?
마감 25일까지잖아요!!

stella.K 2012-01-22 13:36   좋아요 0 | URL
헉, 이게 언제 25일로 됐지?
그럼 18일까지라고 본 건 뭐야?
에이, 괜히 억울해지네.
이상하다. 기간 3주 주던데...ㅉ

파란놀 2012-01-2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 님 수필책을 읽어 보면
글을 참 잘 쓰는구나,
당신 삶을 참 잘 되새기면서
사람들이 즐거이 읽도록 이끄는구나
하고 느껴요..

stella.K 2012-01-21 10:56   좋아요 0 | URL
저는 그 사람 에세이나 단편이 좋아요.
장편은 좀...
분명 매력적인 작가죠.
자신만의 확실한 세계가 있는.^^

페크pek0501 2012-01-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신간평가단 책이었군요. 그런데 이게 신간은 아니잖아요. 나온 지 좀 되었는데...ㅋ
그런데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페이퍼라면 몰라도...
저는 리뷰를 잘 쓸 자신이 없어서 주로 페이퍼 쓰는데, 페이퍼 쓸 때에 여백을 많이
넣어 쓰기에 글의 양은 사실 많지 않은데, 이 글은 글의 양이 꽤 많네요.
그래서 읽는 이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시는군요.

우리가 하루키의 잡스러운 문장에 너무 열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쨌든 그는 매력적인 작가이긴 한 것 같아요.

설날 연휴는 잘 보냈나요? 저는 이제야 좀 피로가 풀린 듯해요. 지방에 3일간 가 있었고... 차 타고 왔다갔다 하는 것만 해도 피로했어요. 서울에 와서도 인사 다니느라 바빴고요.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행복하네요.
그래서 스텔라님의 이 긴 글을 즐겁게 읽었다는... 꽉 눌러 주고 갈게요.


stella.K 2012-01-26 13:50   좋아요 0 | URL
헉, 이번에 나온 거 아니었나요?
하루키의 장편을 버거워하는 저로선 제 수준에 딱 맞는 글이란 생각을 했어요.
아마도 그의 단편이 좋아서일 거예요.
제가 또 모든 리뷰를 길게 쓰진 않지요.
이건 좀 공들여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절에 지방 다녀오셨군요. 힘드셨겠어요.
글치 않아도 보고 싶었는데...ㅋ
고맙습니다.^^

아이리시스 2012-01-2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의 욕심. 저는 앞으로 집에서 돌아다니는 주황색 책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ㅋㅋㅋ 하루키라면 거짓말 보태 벌떡 일어나서 읽지만 이건, 이건 정말로 아니예요. 아닌 건 아닌 거지요ㅋㅋㅋ 리뷰 잘 읽었어요, 스텔라님^^

stella.K 2012-01-27 13:23   좋아요 0 | URL
ㅋㅋ 주황색 책표지 의외로 많아요.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이
대표적 예죠. 그책은 괜찮을 것도 같은데.

대체적으로 왜 별론지 이해는 가요.
저도 하루키를 되게 좋아했다면 정말 별로라고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어느 부분은 정말 별로였거든요.
그래도 누구 선물인데 별로라고 하겠습니까?ㅋ
암튼 전 대체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