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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블로그에서의 인간관계도 관계인가?
영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블로그가 처음 생겼던 2003년 말(다른 사이트는 모르겠는데 알라딘의 시작은 그랬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각 사이트마다 블로그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블로그 1세대'다. 지금은 워낙에 SNS가 발달이 되어 블로그의 열기가 한물 간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이것의 유용성은 아직도 용이해서 모르긴해도 이것의 진화는 있어도 없어지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이 처음 생겼을 때 '뭐에 쓰는 물건인고?' 어리둥절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의 그 당황스러움이란! 지금 생각하면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타인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벤치마킹을 하며 내 블로그를 구축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좀 놀라고 당황했던 건, 이 블로그에 놀라운 속도로 적응해가며 탁월한 발군의 실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블로거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추천과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게 또 나에겐 얼마나 열등감을 느끼게 했던지. 이들은 그 출발부터가 나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블로그질 잘한다고 상주는 것도 아닌데, 글 잘 쓴다는 이 근거없는 착각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내 블로그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도통 남과 겨루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도 글 쓰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것이다.
알라딘은 블로그를 블로그라 하지 않고 '서재'라고 명한다. 이것에 특허권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인터넷 서점에도 블로그는 있지만 거긴 '서재'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직 알라딘만이 '서재'라고 한다. 난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블로거를 '서재인'이나 '알라디너'로 고쳐 부를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한때는 이게 너무 좋아(물론 지금도 거의 매일 들어오긴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로그인 상태로 두고 수시로 들어와 보기도 했다. 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도 서재질의 중독성은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건 서재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페이퍼 글과 댓글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가끔은 헷갈릴 때도 있다. 과연 눈길 한번 마주친 적이 없고 밥 한번, 차 한잔 나눠 마신 적도 없는데 이런 관계도 인간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물론 그것에 만족 못하고 같은 알라디너란 이름으로 오프라인 번개 모임도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은 온라인에서만 만나게 된다. 그러고도 과연 그게 인간관계냔 말이다. 당시 이것에 대한 의문은 나만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몇만 겹의 순간과 우연이 쌓이면 인연이 되듯이 시간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간관계란 시간과 공을 들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블로그에서의 소통과 관계도 그러하다.
물만두님과의 인연
어쩌면 그리도 눈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으면서 그토록 친하고 다정다감할 수 있을까? 인간은 필요해 의해 기계를 만들었고 그에 따라 관계도 다각도로 변화시키며 나가는가 보다. 서재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확실히 새로운 방식의 관계이긴 하다.
하지만 방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서재질 10년을 헤아리지만, 난 서재질을 처음 했을 때나 지금이나 낮선이에게 다가가는 걸 잘하지 못한다. 먼저 알아주고, 먼저 다가와주면 나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는 일은 좀체로 없다.
서재의 세계도 다르지 않아 모든 인간관계는 거의 유유상종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해 본다. 물만두님과 내가 어디가 닮은꼴이어서 서로 알고 지냈을까? 이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건데, 물만두님은 나보다 더한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이 먼저 알은 체를 하고 다가와 말을 건네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물만두님과 소통하는 동안 그분은 내내 내겐 명랑소녀 였다. 이분은 때로 나를 구박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했다.
사람이 관심 갖는 것이 비슷하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물만두님과 나는 관심이 같지 않다. 알다시피 물만두님은 오로지 추리 소설만 좋아하지만 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죽했으면 물만두님이 나를 위한 추리도서 목록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이나 변함이 없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녀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책에 대한 편견 또한 깊어지는 법. 이 편견의 벽이 여간해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단지 내가 물만두님 서재를 보고 깨달은 건, 책을 읽어도 지조있게 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우물만파니 전문가가 되어서 그처럼 조회수도 많고, 이 분야에서 조언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사 고백하는 거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조회수 많고, 댓글 많은 서재는 잘 가지 않는다. 만일 내가 그런 서재에 자주 간다면 그건 순전히 그 서재 주인장이 나를 먼저 알은 체 해 주고 나와의 소통을 변함없이 지속해 주기 때문이다. 그건 물만두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만두님에 대한 기억
비슷한 시기에 서재질을 하고 서재인 저마다 특성이 있지만 물만두님이 특별했던 건 자신의 병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보였다는 것일 게다. 솔직히 병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크든 작든 사람들 저마다 병은 한 가지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언뜻 서재를 방문할 때마다 이분이 어딘가 아프다는 건 알겠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밝혀 놓을 정도면 서재 어디쯤에 자신이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걸 밝히기도 했을 텐데 물만두님과 나는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알게된 사이라 그 페이퍼를 찾아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서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물어 본적이 있다. 그때 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병에 대해 흔쾌히 알려 주셨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그 무렵 아예 페이퍼를 따로 올리셨던 것으로 안다. "저기요, 저를 처음부터 알지 않고 중간에 아시는 분을 위해 저를 잘 모르실 것 같아 알려 드리는 건데요..."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누가 아프면 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그 사람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아픈 건지, 아픈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꾸 알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아픈 자신을 자꾸 상기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무자비한 관심인가. 그렇지만 꼭 그것을 나쁘게만 받아들일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는지 물만두님 스스로가 자신의 병을 드러낼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고, 그렇게 함으로 처음 사귀는 것에 대한 어색함을 없게 하셨다. 그렇게 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준 물만두님이 고마웠다. 그리고 생각한 건, 거동이 불편하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을 텐데 알라딘은 그녀에게 새로운 창이 되어주는구나 했다. 또한 너무나 솔직하고, 소탈한 그녀의 글에서 오히려 건강함이 느껴져 더 친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픔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거.
아직 덜 아프다는 증거.
2005.12.02 (278p)
그땐 그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간 사람
그때는 몰랐다. 물만두님이 어느 정도 아픈지를. 지금도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병에 걸려보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관조하고 그것을 글로 쓰려고 했는지 새삼 뭉클해진다. 하루 하루 서재에 글을 남기고 댓글로 소통할 때는 잘 모른다. 이것을 하나의 책으로 압축해서 읽으니 그녀가 얼마나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는지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지금도 가끔 그녀 생의 마지막 일주일은 어땠을까를 상상해 본다. 사람은 언제 자신이 죽을지를 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 이렇게 서재에 글을 남기곤 하지만 막상 가까운 친구에게는 내가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고만 할뿐이지 구체적으로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고 놀러오라고 초대한 적이 없다. 웬지 모르는 사람은 그 익명성 때문에 민낯이어도 거리낌이 없는데 알만한 사람이 내 서재에 들어와 보면 쑥스러울 것 같고, 혹시라도 모르는 사이 그 친구 흉이라도 본 글을 보게될까봐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건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물만두님도 처음엔 그러지 않았을까? 남들 다 와서 보라는 자신의 글을 정작 가까운 사람에게는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죽을 텐데 나의 부고 소식을 알라딘에 알리고 죽을 수 있을까? 그러려면 누구에게든 로그인 할 때의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대신 알리도록 해야할 텐데 그 특명을 누구에게 맡길까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도 물만두님도 그러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했던 것이다. 그랬을 때 그 비밀번호를 받아적는 가족의 마음은 또 얼마나 무너졌을까.
작년 말, 물만두님의 1주기 때 만돌님(물만두님의 남동생) 출판사에서 누나의 책을 받았지만 차마 펼쳐 볼 자신이 없어 그냥 방에 두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20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당신이 어디에 돈을 얼마를 썼는지를 꼭 수첩에 기록하곤 하셨다. 오랜 세월 그런 수첩이 몇권이 됐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또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상에서 목소리가 안 나와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곤 했는데, 돌아가시고 차마 그것들을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한낱 별것 아닌 수첩도 펼쳐 보기가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데, 누나의 책을 어찌 쉬 펼쳐 볼 수 있을까. 사람의 글은 아직도 이렇게 살아 속삭이는 것 같은데 정작 그 사람은 없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고 자꾸만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서재질을 하면서 내가 내 글에 솔직하기란 게 이리도 어려운가를 여러 번 맞닥뜨리곤 한다. 확실히 글이란 남에게 들려 줄 말이 있고, 나에게 하는 말이 따로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물만두님은 일기장을 웬지 따로 두지 않았을 것처럼 솔직 담백하게 글을 썼던 것 같고, 그것이 무려 200자 원고지 4,300장에 달한다고 하니 그 아픈 몸으로 참 줄기차게 쓰셨구나 싶다. 그것을 읽었을 때 누구는 '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안네도 벽장 속에 갇혀 지냈지만 그녀의 꿈과 상상력은 크고 원대해서 오늘 날에도 끊임없이 읽혀지는 고전으로 남았다. 안네의 그 참혹한 현실이나, 고쳐지지 않는 병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 갔던 물만두님이나 무엇이 다른가. 그러면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살아갔던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는 물만두님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다. 물만두님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쏟으셨던 변함없는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오늘의 나의 쓰는 글 하나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누구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물만두님은 몸소 보여주셨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의 서재에 쓰는 글 중 과연 추릴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겨자씨 한 알
원래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 가장 작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싹을 틔워 자라 나무가 되면 가장 큰 나무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누구는 그 나무 그늘 아래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어떤이는 거기서 사색을 하며, 누구는 거기서 놀기도 할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원했던 삶이기도 하다. 그것을 이루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많은 학식이나 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하면 그것이 곧 일가를 이루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또한 물만두님은 보여주셨다.
우리 알라디너는 그날(1주기 때) 물만두님의 이름으로 모였다. 평상시 번개 모임이었다면 안 나갔을지 모른다. 물만두님이었기에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알라디너는 그 어느 때 보다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평소 모르는 것 같아도 이렇게 모일 수 있는 거구나. 그때처럼 알라디너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슴이 벅찼다. 물만두님께 고마웠다. 그뿐인가, 알라딘에서는 작년부터 매년 물만두님을 기념해 추리소설 리뷰대회를 열고 있다. 잘된 일이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중에 얼마나 많는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 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쓴 드리면 너무 뻔뻔할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기 위해 누군가 피를 토하며 썼을 글을 읽지 않고 모른 척 외면한 죄.
책을 사랑하며 많이 읽는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나는 오늘 나의 부족함에 아프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 너무 속상한 아침이다.
2005.08.11(321p)
이젠 물만두님 책과 그 책을 낸 작가에게 미안해 하거나 사죄할 필요가 없다. 알라딘이 그녀의 이름으로 추리대회를 계속 열고 있는 한 이 짐을 나눠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세상에서 조금 더 편하게 계셔도 되지 않을까.
다음은 우리 차례
그날 나는 한 가지 꿈을 꿔었다. 보통 어느 누가 죽었던지간에 1주기는 뜻깊게 크게 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냥 조촐하게 가족과 친지끼리만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잊혀지겠지. 이 모임이 계속 이어질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알라딘에서 개최하는 리뷰 대회도 좋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어 보인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문학을 향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물만두님을 기념하여 그날 하루는 추리문학의 날로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문학 토론도 하고, 추리 작가를 섭외해 강연도 듣고, 영화도 보고, 물만두님도 추억하고. 그렇다면 좀 더 알라디너끼리의 만남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이 생각이 터무니 없는 생각일까? 물만두님은 평생 그 작은 어깨로 추리 문학을 읽고 리뷰를 쓰며 그것을 알렸다. 그 작은 일이 큰 일을 이루었는데 겨자씨를 심는 마음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재능기부란 말이 있다. 몇 사람이 되건 자신의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씩만 헌신하면되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우리는 물만두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다음은 우리의 차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