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스 암스트롱
 
"얘야, 오늘은 앞으로 남은 네 인생의 첫날이란다."
 
이 말은 나의 어머니의 좌우명이었다.
1996년 나는 각광받는 사이클 선수였고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미 큰 돈을 벌고 있었다.
암이 내 몸을 덮친 건 바로 그 때였다.
나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큰 어려움을 몰랐다.
불행이 뭔지도 몰랐다.
가장 좋아하는 사이클을 다시 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일년반의 치료와 회복
또 다른 종양이 생길지도 모르는 두려움
꼬리에 꼬리를 부는 심각한 후유증과의 싸움 .
그러나 어머니는 내게 한달 전 아니 어제 일에도 연연하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건강한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축복인지 알지 못한다.
요즘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다시 내 눈 앞에 놓여있는 하루에 대한
흥분을 가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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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일본어투 용어 와 일제잔재 용어[펌]

일제에 의한 왜곡 또는 부적절한 용어 사용 예


□ 이씨조선
  ㅇ 일본 교과서의 이씨조선 서술
    - “조선반도에서는 이성계가 14세기 말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씨조선을 건국하였다”라고 서술
  ㅇ 조선총독부 자료에 의한 서술
    - 서울 유래에 관한 서술에서 “이조시대의 경성”이라고 서술(조선총독부 2-5편)
  ㅇ 우리 학자 등의 견해
    - “이씨조선”은 일제가 한국을 격하시키기 위해 사용한 부적절한 용어이므로, “조선왕조”라고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이만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일제가 한국을 격하시키기 위해 우리의 황실가를 왕가로 바꾸어 일본 황실 밑에 소속시킴으로써 그때부터 “조선”이라는 정식 용어가 “이조”로 바뀌었다고 주장(박성래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 “고려가 왕씨고려”가 아니듯이 “조선왕조를 이씨조선”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ㅇ 이렇듯 “이씨조선”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사용되어서는 안되며 공식적으로는 “조선왕조” 또는 “조선시대” 등으로 사용해야 할 것임.

□ 반도(半島)
  ㅇ 일부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한반도”라는 용어가 일제에 의해 왜곡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주장.
  ㅇ ‘반도’라는 용어 자체가 일제가 영어 ‘폐닌슐라’(peninsula)를 번역하여 사용하면서 “일본은 완전한 섬인데 반해 한국은 절반의 섬이라는 격하의 의미”로 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것.
  ㅇ 반도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곶”(내민 곳, 예:장산곶)으로 적절한 용어 사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봄.
□ 이조백자
  ㅇ 이조백자의 ”이조”라는 표현은 일제시대 때 조선을 격하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용어로서 이를 삭제하거나 “조선백자”로 칭해야 한다는 주장
  ㅇ 문화재청은 국보 제107호인 “이조백자철사포도문호”의 명칭을 “백자철사포도문호”로 변경하기 위해 문화재위원회(동산문화재분과)에 심의 상정 중에 있음(8.12. 심의 예정)

□ 남대문․동대문
  ㅇ 우리나라의 전형적 목조건축물을 대표하는 문화재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보․보물 1호인 “숭례문”과 “흥인문”의 명칭을 일제가 우리 문화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순히 방향을 지칭하는 “남대문․동대문”으로 사용토록 하였음
  ㅇ 정부는 지난 ‘96년도 일제지정문화재의 재평가 작업을 거쳐 “남대문․동대문”을 “숭례문․흥인문”으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일반적으로는 “남대문․동대문”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
  ※ 대조적인 사례로, 창경원은 창경궁으로 명칭변경(‘84년)이 이루어진 이후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창경궁으로 부르고 있음.

□ 효창원(孝昌園)
   ㅇ 효창원은 조선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의 묘소자리로 이후 경내에 순조의 후궁 숙의박씨 등을 안장한 곳이었으나 1984년 청일전쟁 발발직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효창원에 군대를 주둔
   ㅇ 일제는 1924년 효창원의 일부를 효창공원으로 하고, 1945년 3월에 문효세자 이하 다른 묘소들을 경기도 서삼릉으로 천장함으로써 효창원은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된 것임.
   ㅇ 조국 광복과 더불어 백범선생과 이봉창․윤봉길․백정기 등 3의사의 유해와 임정의 이동녕․조성환 선생 등의 유해가 안장됨으로써 민족성지로서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아닌 원래의 효창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우리부는 내년부터 5년에 걸친 중장기 사업으로 이를 추진해 나갈 계획으로 있음.

□ 납골당(納骨堂)
   ㅇ 당초 “납골당”이라는 용어는 일본의 묘지매장에관한법(1948년 제정)에서 사용하기 시작
   ㅇ 우리나라는 1961년 제정된 매장및묘지등에관한법률(1961년 제정, 현재는 장사등에관한법률로 변경)에서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납골당”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
   ㅇ “납골당” 용어는 일본식 색채와 함께 주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어 “추모관” 또는 “추모의 집” 등으로 명칭을 변경해 나갈 필요

□ 보부상(褓負商)
  ㅇ 정신문화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는 “부보상(負褓商)”이 바른 표현으로 “보부상(褓負商)”은 일제의 색채가 가미된 표현이라는 지적.
  ㅇ 부보상은 부상(負商:남, 등에 지고 다니는 상인)과 보상(褓商:여, 머리에 이고 다니는 상인)의 합성어로서 태조 이성계가 하사한 명칭으로 부보상으로 불려지다가, 일제가 “남존여비의 관념이 깃들여 있다”라는 명분으로 이를 보부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도 보부상으로 사용되고 있음
  ㅇ 보부상의 명칭도 역사적 고증과 연구를 거쳐 적절한 용어 변경 문제를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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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이 아니며

헤메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오래되었어도 강한 것은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 한다.

타버린 재에서 불길이 일 것이며,

어두운 그림자에서 빛이 솟구칠 것이다.

부러진 칼날은 온전히 될 것이며

왕관을 잃는 자 다시 왕이 되리

                                                                      -J. R. R 톨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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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8-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람이 혹시 반지의 제왕 쓴 사람 맞지요?? 멋진 말을 했군요.

▶◀소굼 2004-08-0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톨킨이 한 말이었군요. all is not gold that glitters. :)

tnr830 2004-08-0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stella.K 2004-08-0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시가 좋더라구요. 그렇치 않아도 <반지의 제왕>에 나온 말이래요.^^
 

"美 정체성의 중심은 앵글로 프로테스탄트"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김영사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에서 이념 대신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던 헌팅턴(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 올해 초에 펴낸 신간이다. 9·11 테러의 가능성을 감지했던 헌팅턴이 이번에는 미국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명의 충돌을 분석했다.

원제가 ‘Who are we?(우리는 누구인가?)’인 이 책은 미국인의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21세기 들어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자리잡은 미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건국과 독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의 변천사를 종횡으로 넘나든다.

그런데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미국 사회가 엄청난 다원화와 내부 구성원끼리 문명 충돌을 겪더라도 건국의 주역이었던 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문화가 여전히 국가 정체성의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단언한다.

17~18세기 미국에서 개척자로 나선 앵글로-개신교도(Anglo Protestant)가 새로운 개인주의 가치관, 강도 높은 노동 윤리,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야 할 인간의 의무 등을 추구하면서 이른바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를 낳았고, 앞으로도 미국의 정체성은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것.

히스패닉과 흑인·아시아인이라고 할지라도 오늘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WASP가 아니더라도 WASP의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는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 2002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경관들이 16세 흑인 소년을 구타하는 장면이 방영돼 1992년 벌어진 최악의 인종 폭동이 재현될 우려를 낳았다. 헌팅턴은 WASP 문화가 미 국가정체성의 중심 역할을 계속 담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미국은 인종적·민족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문화와 종교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인종 간의 교차 결혼 증가로 인해 2050년이면 미국인의 20% 가량이 스스로를 다인종 개인으로 규정할 것이다.

미국은 언어적 측면에서 캐나다·스위스·벨기에처럼 이중 언어 국가가 될 수도 있다.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로 인해 영어 못지않게 스페인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기업들이 히스패닉 고객을 겨냥하면서 영어와 스페인어 동시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고 있는 것.

마이애미 지역에서 스페인어만 사용하는 가구의 평균 소득은 1만8000달러, 영어만 사용하는 가구는 3만2000달러인 데 비해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는 가구는 5만달러 이상을 벌고 있다. 앞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인들은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이란 종교관을 최소한의 공동 가치로 유지할 것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미국을 ‘범세계적 사회’ 아니면 ‘제국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지만, 일반 대중은 20세기적 국가주의를 여전히 지지하는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헌팅턴은 이렇게 쓰면서 책을 끝냈다. “미국은 세상이 된다, 세상은 미국이 된다.

미국은 미국으로 남는다. 범세계주의? 제국주의? 국가주의? 미국인들의 선택은 국가로서 자신의 미래와 세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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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거짓말… 수퍼스타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지음/ 정영목·이순희 옮김/ 물푸레

강효상 산업부장 hskang@chosun.com
 
지난 26일 존 케리 후보를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하는 미국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다시 청중 앞에 섰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클린턴의 연설에 민주당원들은 아홉 차례나 기립박수를 보냈고, 눈물을 흘리는 청중들도 있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뉴 멕시코의 한 대의원은 “클린턴이 다시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직도 수퍼 스타였다. 후보시절에서부터 대통령 재임시절에까지 수시로 터져나온 스캔들에도 불구, 미국인들은 빌 클린턴을 그들의 우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유는 역시 그의 업적과 성과였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1992년 당시 미국의 경제는 붕괴 직전에 직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미국에선 ‘일본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일본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의 대국으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미국 학계에서는 미국의 금발여성들이 일본의 긴자거리로 팔려 간다는 소위 ‘쇠퇴론’이 유행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이런 두려움과 불안감을 완벽하게 극복하도록 이끈 사람은 바로 빌 클린턴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그 힘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우뚝 서 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부인 힐러리 상원의원, 딸 첼시와 함께 자신의 회고록 출간기념 행사가 열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인들은 이런 미국에 대해 한편으론 부러움, 또 한편으론 두려움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 물론 클린턴의 말처럼,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힘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마이 라이프(My Life)’는 그래서 현재 정치를 하고 있거나 앞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다. 사실 나는 클린턴이란 인간을 100% 신뢰하진 않는다. 그는 수많은 실수를 했고, 심지어 대통령 재직시에도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도 그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주지사와 대통령 등 여러 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미국민들과 공익을 위해 바친 헌신과 노력은 부정할 수 없다. 바로 재임 8년 동안의 엄청난 성과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 라이프(My Life)’는 동시대를 사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공직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쳐 주고 있다. 지역 내 많은 공장들이 중국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고민하고 있는 한국의 도지사들은 이 책의 23장을 읽으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주지사 시절 그는 아칸소 지역 내 TV공장을 폐쇄하려는 산요전기의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직접 날아간다. 당시 아칸소 지역의 실업률은 10%를 넘고 있었다. 클린턴은 산요측에 “산요의 TV를 월마트(미국의 대형할인유통매장)에서 판매토록 하면 공장을 계속 가동하겠느냐”고 제의, 결국 승낙을 받아낸다.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산층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달콤한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그는 경제참모들과의 난상토론 끝에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 중산층 감세계획을 포기하고 사회복지 예산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많은 민주당원들은 이런 그를 ‘보수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막대한 재정 적자를 줄이고 금리를 낮춰, 10년이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호황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즉흥적인 ‘포퓰리즘’만으론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교훈이 여기(책 29장)에 있다.

사족(蛇足) 한 가지, 클린턴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그의 스캔들에 관한 부분은 비중을 두지 말기 바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의 과오에 대해선 변명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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