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체성의 중심은 앵글로 프로테스탄트"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김영사
박해현기자 hhpark@chosun.com
냉전 종식 이후 국제사회에서 이념 대신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던 헌팅턴(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 올해 초에 펴낸 신간이다. 9·11 테러의 가능성을 감지했던 헌팅턴이 이번에는 미국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명의 충돌을 분석했다.
원제가 ‘Who are we?(우리는 누구인가?)’인 이 책은 미국인의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삼고 있다. 21세기 들어 다인종 다민족 국가로 자리잡은 미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건국과 독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의 변천사를 종횡으로 넘나든다.
그런데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미국 사회가 엄청난 다원화와 내부 구성원끼리 문명 충돌을 겪더라도 건국의 주역이었던 WASP(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문화가 여전히 국가 정체성의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단언한다.
17~18세기 미국에서 개척자로 나선 앵글로-개신교도(Anglo Protestant)가 새로운 개인주의 가치관, 강도 높은 노동 윤리,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야 할 인간의 의무 등을 추구하면서 이른바 ‘미국의 신조(American Creed)’를 낳았고, 앞으로도 미국의 정체성은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것.
히스패닉과 흑인·아시아인이라고 할지라도 오늘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WASP가 아니더라도 WASP의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는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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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백인 경관들이 16세 흑인 소년을 구타하는 장면이 방영돼 1992년 벌어진 최악의 인종 폭동이 재현될 우려를 낳았다. 헌팅턴은 WASP 문화가 미 국가정체성의 중심 역할을 계속 담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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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국은 인종적·민족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문화와 종교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인종 간의 교차 결혼 증가로 인해 2050년이면 미국인의 20% 가량이 스스로를 다인종 개인으로 규정할 것이다.
미국은 언어적 측면에서 캐나다·스위스·벨기에처럼 이중 언어 국가가 될 수도 있다. 히스패닉 인구의 증가로 인해 영어 못지않게 스페인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고, 기업들이 히스패닉 고객을 겨냥하면서 영어와 스페인어 동시 사용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고 있는 것.
마이애미 지역에서 스페인어만 사용하는 가구의 평균 소득은 1만8000달러, 영어만 사용하는 가구는 3만2000달러인 데 비해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는 가구는 5만달러 이상을 벌고 있다. 앞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구사하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 미국인들은 저항적 프로테스탄티즘이란 종교관을 최소한의 공동 가치로 유지할 것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미국을 ‘범세계적 사회’ 아니면 ‘제국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지만, 일반 대중은 20세기적 국가주의를 여전히 지지하는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헌팅턴은 이렇게 쓰면서 책을 끝냈다. “미국은 세상이 된다, 세상은 미국이 된다.
미국은 미국으로 남는다. 범세계주의? 제국주의? 국가주의? 미국인들의 선택은 국가로서 자신의 미래와 세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