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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습니다.

아이들 다 키워 놓고 늦게 상담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맘 때쯤 종강하고 기말고사 체제로 돌입하겠구나 싶어 응원차 문자로 피이팅을 외쳐 주었는데 아까 저녁나절에 전화가 왔습니다.저는 제 문자의 답례 차원에서 전화를 한 줄 알았더니 일주일 전쯤 남편이 심한 화상을 입은 것을 알았습니다.

 

아, 왜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부부에게 죄가 있다면 열심히 아이 키우며 산 죄 밖에 없는데.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밖거나, 누구에게 사기친 적도 없이 정말 선량하게 산 죄 밖에 없는데 왜 그런 일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들어도 두 아이 자라는 것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하나 이루며 사는 것을 위로겸 낙을 삼아 살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지인은 사고가 일어나고 1주일쯤 지나서 그런지 많이 이성을 되찾은 느낌이었는데, 듣는 저는 너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파 어떻게, 어떻게를 연발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습니다.

 

두 내외가 아르바이트도 쓰지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번갈아 가며 3평 남짓한 공간에서 각종 주스 팔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데, 실손 보험은 들어놨다지만 앞으로 치료비며, 고통스러운 치료를 어찌 감당할지? 이제 겨우 공부를 마쳐가는가데 공부는 마칠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또 앞으로 가게 운영은 어떻게 할지.

 

겨우 지인은 이성을 되찾고 나에게 담담히 그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나는 그렇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으니 그도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는데, 끊으면서 생각나면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나의 사랑하는 지인이 그런 고통을 당할 때 결국 부탁할 수 있는게, 또 해 줄 수 있는 게 기도 밖에 없다는 게 서로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시는 위에 계신 분의 뜻이 있으시겠지만 그 안타까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지인이 그렇게 정신없는 한 주일을 보내고 있을 때 저는 뭘 했을까요? 그 지인이 그런 일을 당할 거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도 난 벼르고 별러왔던 책 세 권을 (결국)주문하고 받았으며, 몇자 안 되는 글을 끄적이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져 읽고 있던중이었습니다. 나의 하루는 그렇게 무료하게 지나가고 있었고 이런 삶은 오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제도, 그제도, 그그저께도 하니 일주일 전, 한달 전에도 있어왔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을 때 나의 사랑하는 지인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지인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미안했습니다. 남은 그렇게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데 때 되면 밥을 먹어야 하고, 화장실에 가야하고, 졸립고 피곤하면 잠을 자야하고. 이 모든 게 정말 죄스럽습니다. 결국 인간은 죄속에 태어나 죄 가운데 죽는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 봅니다. 본인의 당한 일도 깜깜하지만 나는 그녀를 어떻게 위로해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백세시대에 이제 겨우 중간에 왔을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도 해 보지만 우리 나이가 중년은 중년입니다. 이제 슬슬 노후를 준비하며 안정된 삶을 살아야할 텐데 이 나이에도 겪어내야할 고난이 있고, 헤쳐나가야 할 모험이 있다는 게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인은 부정맥이 있어 절대 안정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들 내외는 동갑내기로 대학 때 만나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다짐하고 결혼했는데, 이런 일은 그들 생애에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모든 것을 함께 하기로 했으니 그 약속을 변함없이 지키는 것이 되겠죠. 그저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나시면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게해 달라고, 그 어느 순간에도 삶에 대한 의지와 기대를 포기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들 가운데 평안이 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아니 그 어떤 기도를 하셔도 좋습니다.        

 

아아, 오늘은 그 어느 때 보다 아프고, 슬픈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 지인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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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20 15:18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 밖에 없네요.
친구한테만 소곤대는 글이었는데...ㅎ

지금도 마치 내가 당한 일인 양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
뭘해도 신이 안 나고.
마감 전까지 써야하는 리뷰도 있고,
특히 오늘 저녁에 하모니카스트 전제덕이 콘서트 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하고 가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만나봐야 할 것 같은데 만나면 뭐라고 위로를 해 줘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이 이런데 본인은 어떻겠습니까?
이럴 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어쨌든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8-06-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까운 친구가 큰 병이 나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해 줄 게 기도밖에 없더라고요.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평화로워도 내일은 어떤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전쟁터에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뉴스를 통해 피살이니 실종이니 화재니 하는 사건을 접하면 두려움이 느껴져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나 봐요.

stella.K 2018-06-21 09:53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병이 낫다는 말도 듣기에 힘든데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하루아침에 그런 일을 당하면
얼마나 힘들까요?
어젠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더군요.
제가 이런데 본인들은 어떨까요?
지금은 많이 안정됐다고 하는데
처음엔 하나님 왜 이러시냐고 원망이 나오더랍니다.
모쪼록 이 시련을 잘 극복할수있도록 기도해줘야죠.^^

syo 2018-06-2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다정한 친구사이여도 남의 고통에 내 일처럼 괴로워하기는 힘든 법인데, 내 생활의 안온함이 죄스럽게 느껴질만큼 안타까워하시다니, 스텔라님 이런 다정한 사람.....

모쪼록 스텔라님의 기도에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stella.K 2018-06-21 09:52   좋아요 0 | URL
아유, 아닙니다.
저도 아는 사람의 누가 그랬다면 그냥
혀만 끌끌 차고 말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오래 관계를 지속해 왔고
삶을 많이 나누다보니 자매 같고 친척같은 형제애
뭐 그런 게 생긴거죠.
스요님도 친한 친구가 혹시 어려운 일 당하면 저 같이했을 겁니다.
모쪼록 치료가 잘되고 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ㅠ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약속을 못 지키거나 연락없이 늦는 건 확실히 넌센스란 생각이 든다.

 

어제는 성경공부가 없는 날이었다. 전날 성경 공부 리더님이 그렇더라도 예배 끝나고 보자고 하기에, 주일 날 그 시간엔 웬만해선 예배를 위해 교회 가지 않는 내가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갔다. 어제 하루를 겪어 본 이들은 알리라. 얼마나 더웠는지를. 무엇보다 그 시간은 해가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머리카락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러니 여름 날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간다는 건 여간해서 내겐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약속은 굳이 안 지켜도 되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냥 핑곗거리 하나쯤 대고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기도 했는데, 그룹내에서 제일 막내이기도 했고, 리더로부터 추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다들 나오기로 했나 본데 나만 모임에 나갈 수 없다고 하면 그도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싫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나갔다.

 

아, 그런데 웬걸. 내가 예배 중 어디서 모이기로 했냐고 리더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그제야,

아, 연락을 안 드렸군요. 오늘 안 모이기로 했습니다. 미안해요.  

하는데 어찌나 화가나던지...

그럼 미리 연락 주시지...ㅠ

그랬더니 그렇게 결정 난지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 되지도 않을 약속을 만들고, 내가 문자를 하자 그제서야 안 모인다고 말하는 리더의 잘못인가? 그동안 느긋하게 있다 약속시간에 임박해서야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문제인가?

 

그도 그렇지만, 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다는 게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런 약속쯤 간단하게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뭐 안 지킬 수도 있다고 치자. 적어도 피해는 안 가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는 후배와 만나는데도, 자기는 약속 시간에 늦는 것에 대해선 전혀 문제가 없고, 내가 약속 장소를 변경시킨 것에 잘못을 전가시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또 그전엔  이건 다른 사람인데, 약속 장소에 가고 있는데 기껏 전화로 못 갈 것 같다고 무려 1시간 전에 연락을 받기도 했다. 알겠지만 1시간 전에 연락을 한다는 건 그 시간에 연락을 못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사람과 만나려면 최소한 1시간 전엔 집을 나서야 한다. 집에서부터 준비한다고 치면 1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전엔 연락을 줘야한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런 여러 일을 겪다보니 약속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늘상 사람 만나는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상대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식이 없지는 않겠지. 어느 날, 성경공부 때 나의 이런 약속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백한다면 어떤 일이 벌이질까? 그래. 네 말이 맞아. 약속은 잘 지켜야 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기독교인도, 일견 내 말을 잘 들어주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거나 또는 뒤돌아 서서, "쟤는 세상을 너무 안 겪었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은데 그런 걸 가지고 문제를 삼고 그래? 바라는 건 아니지만 더 기가막힌 일을 당해봐야 알아. 쯧쯧." 이렇게 말할 사람이 (비기독교인까지 합쳐) 모르긴 해도 열의 아홉은 될 것이다.

 

실제로 난 오래 전, 아는 후배한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나의 생각은 너무 옳아요. 너무 맞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 후배는 나와 무슨 말 다툼 끝에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후배한테 그런 말을 듣자고 했던 건 아닌데. 그저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사과를 들으면 되는 거였다. 결국 남들 다 아는 도덕 가지고 얘기하지 말자는 건데, 그렇다면 걔는 그런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풀기를 바랐을까? 그러니까 자신이 뭔가 부족하고, 남에게 피해를 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되풀이 해왔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깐깐한 도덕주의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면 상도덕 가지고 풀일인데(나는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상도덕의 문제만 해결해도 인간의 문제는 90% 이상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멀쩡한 상대를 기어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려 하는 건 그 후배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비참한 생각도 들었다. (아, 게다가 그 후배는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젠더의 문제까지 들먹이기도 했다. 이쯤되면 '남자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쯤이 되는 건가? 아무튼 그 후배는 이상한 논리로 자꾸만 비약에 비약을 하기도 해서 질렸다. 물론 나중에 내게 사과는 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거나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또 그런 사람이 상대가 그러고 나오면 못 견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경향이 있는 걸까?) 그렇게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나는 문제가 없는 것이고 오직 상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이래가지고는 세상의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투성이라는 것과  같다는 말인데, 이 문제는 언제쯤 풀릴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난 어제 그런 일을 당하면서 리더님한테 평소 받은 고마운 일들을 생각하며 내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긴 했는데, 그래도 뭐 나의 마음이 아주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미안한 것은 미안한 거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며,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서로가 그런 생각을 가져줘야 문제 많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며 살 수가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만 가지고는 문제해결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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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날씨가 무척 뜨거웠는데, 고생하셨네요.
일요일 하루는 다들 쉬고 싶은데, 어제는 너무 더웠으니까요.
오늘 저녁에도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눅눅하고 덥습니다.
stella.K님,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6-05 14:3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가끔 저를 자극하는 날도 있네요.
오늘은 다시 더워졌어요.ㅠ

2018-06-04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05 14:39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렇게 하소연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cyrus 2018-06-0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바른생활‘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고미안‘이었어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기본적인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stella.K 2018-06-07 11:15   좋아요 0 | URL
헉, 너 때도 그런 게 있었니? 나 초등학교 때도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고미안의 역사가 꽤 오래된 거네.ㅋ
물론 이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문젠 같아.ㅠ
 

 

이책을 읽고 뜻이 있어서(읭?)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미 밝힌 바도 있지만 블로그 활동을 하고 리뷰를 비롯해 이런 저런 낙서 같은 잡글을 많이 쓰다보니 굳이 일기를 따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이책을 읽고부터는 꼬박꼬박 읽기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일기 쓰기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내가 오래동안 일기를 쓰지 않은 이유중 하나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누구더러 내 일기장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하겠는가? 나의 흔적을 가급적 남기지 않거나,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적게 남겨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일기장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볼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진짜 사춘기 때부터 모아 온 일기장이 못해도 내 허리춤 정도까지 올라와 있는데 거의 보지 않고 옷장 바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평생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걸 볼 일이 생겼다. 사실 난 지금 자의반, 타의반해서 뭔가를 쓰고 있는 중인데(이거 정말 지겹게 진도가 안 나간다.ㅠ) 갑자기 어제 글이 막힌 것이다. 온전히 기억에 의지해서 쓰려니 글이 자꾸만 꼬이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몇번의 고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마다 일기를 꺼내 볼까 하다가 그냥 넘기곤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잘못 기억하는 나도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왠지 그러면 안될 것만 같았다. 그 부분은 뭔가 정확한 근거가 필요한듯 해서 결국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보았다. 무려 19년 전. 그러니까 밀레니엄 한 해 전에 썼던 일기장이다.

 

그런데 진짜 낯설다. 내가 정말 이랬었단 말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나는 이 무렵 <발자크 평전>을 읽고 있었나, 본데 나름 꽤 흥미롭게 읽고 있었나 보다. 

 

"츠바이크의 발자크에 대한 애정이 그가 쓴 평전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츠바이크)는 참 섬세한 사람이겠구나란 생각이든다. 그리고 발자크를 읽으면, 작가는 모름지기 이래야하지 않나란 생각과. 누가 과연 사람들로부터 역사로부터 사랑을 받을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이렇게 천천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을 얼마나 좋아하게 됐는지?

벌써 이 책을 손에 쥔지가 3주가 지나간다.

아직 반도 못 읽었는데..."           

                                                     -10월 13일-

 

"...... <발자크 평전>을 너무 오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까지 꼭 한 달이 됐는데, 이제 겨우 반 조금 더 읽었다. 빨리 읽어야겠다.

                                                    -10월 30일-

부지런히 읽으면 이번 주 안에 <발자크 평전>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지만 게으름 때문이라면 재고해 볼 일이다. 너무 오래 읽으면 오히려 그 흐름을 자칫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이 그랬다.

                                                   -11월 10일-

 

푸하하~ 난 과연 내가 내 책에 무슨 짓을했던 걸까? 지금 하나 기억하는 건 난 그때 <츠바이크 평전>을 무지 지루하게 읽었다는 거다. 우연히 그가 쓴 단편소설 <체스>가 좋아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몇 권인가의 책을 읽었고, 그중 하나가 이 책이다. 너무 꼼꼼히 써서 지루했던 책.

 

일기장을 아직 다 읽지는 않았만 그때 나는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서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는 그랬지. 사람과 그림은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것이 좋다고.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교회라고 해서 다니기 시작했데 그 안을 들어가 보니 부조리한 것들 뿐이고, 온통 분노만이 가득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한 목사에 의해 교회 조직에서 퇴출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니까. 분노와 회의로 점철된 일기가 이 한 권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던 것 같다. 분노가 글을 쓰게 할 거라는 나의 사부의 말은 결코 빚나가지 않았다. 물론 난 교회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건 그저 내게 주어진 일 뿐이었고, 내가 교회에서 겪고 보았던 모든 부조리들을 글로 쓰겠다고 간간히 그 착상과 구성을 적어 두기도 했다. 하지만 난 지금 그 작품 중 하나도 글로 쓰지 못했다. 쓰다가 포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배와 성경 공부 외엔 교회에서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 그건 곧 내가 분노할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글쎄... 내가 지금 또 어딘가에 소속이 되서 봉사를 하게 된다면 예전 같은 분노가 되살아날까? 하지만 난 이제 분노로 나 자신을 소모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다. 누구는 분노하라고 했지만 난 할 수만 있으면 분노하고 싶지 않고, 그것을 할 상황이라면 외면하고 피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 시절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하고 싶고,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난 그것을 위해 이 일기장을 펼친 것이기도 하고.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하겠는가.

 

요즘 난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정말 다 읽기가 아까울 정도로 좋은 책이다. 처음엔 무슨 젊은 아빠의 육아 일기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모 방송국 기자의 에세이다. 처음엔 뭐 젊은 사람이 글을 이렇게 잘 써? 시샘이 났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 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만인가? 새삼 헤아려보게도 된다.

 

 

 

읽다보면 거의 말미에 오은 시인의 '분더킴머'란 시를 만날 수 있다. 잠시 소개를 해 보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서 뒤쳐질 때

      (...) 

     눈을 감아도 내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참고로 분더킴머는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이란다. 즉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려고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했는데, 그런 방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오은 시인은 1984년 생으로 지금 한창 치열한 30대를 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녀가 실제로 지금 치열한 삶을 사는 지 난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시가 실린 시집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그것을 뒷바침 해 주는 것도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입니다. 이걸 오은 식으로 읽어볼까요. 분위기를 분(憤) 위기(危機)로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읽어 본다면, 위기를 괴로워하다는 뜻이 되겠죠. 위기를 괴로워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청춘의 특권이기도 합니다. 서른 즈음의 우리는 위기를 괴로워하기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로 읽으면 어떨까요.  (253~254p)

 

그래. 밀레니엄 한 해 전의 나도 분(憤)위기(危機)를 사랑했던 30대였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그때를 참 잘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고, 위의 글이 선물 같이 읽혀지기도 한다.      

 

결국 난 글을 쓰려면 이 일기장을 토대로 내 빈약한 기억력을 더듬어 쓸 수 밖에 없다. 이 일기장엔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의 타계 소식도 씌여있고, 고 신해철에 관한 기사를 읽고 쓴 글도 보인다. 내가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못 되는데 이런 것도 썼나 신기방기 할뿐이다.  

 

이 일기장이 그나마 내 빈약한 기억력에 힘을 불어 넣어 준다.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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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는 앞으로도 일기장에 쓰시는 건가요, 아니면 서재에 쓰셔서 저도 읽어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ㅎㅎㅎㅎㅎ

아참, 그리고 오은 시인은 남자입니다^-^ 웹툰 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님이랑 비슷하게 생기신ㅎㅎㅎ

stella.K 2018-05-09 14:56   좋아요 0 | URL
스요님 100점!
잘 하셨습니다. 이래야 소통하는 맛이나죠.ㅎㅎㅎㅎ

와, 근데 오은이 남자였어요? 전 여잔 줄 알았어요.
안 알려주셨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ㅋ
이 사람이 그렇게 똑똑하다면서요?
이 책 보고 알았습니다.^^

cyrus 2018-05-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뷰도 일기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책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감정을 기록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있거든요. 물론 완전히 기억하진 못해요. ^^;;

stella.K 2018-05-09 14:58   좋아요 0 | URL
그래. 좋아. 그런데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봐봐.
또 다른 너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프레이야 2018-05-0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담아갑니다.
지난 일기장을 읽어보는 기분, 알지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나 봅니다.^^

stella.K 2018-05-09 15:04   좋아요 0 | URL
띠지에 젊은 남자 사진이 있어서
꼭 직장팜의 유아분투기, 뭐 그런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진짜 글 잘 써요. 부럽더라구요.ㅠ

맞아요. 우선 그때의 글씨체와 지금의 글씨체가
변한 게 없어서 놀랐고, 그때 고민하던 걸
지금은 고민하지 않지만 해결이 되서 고민을 안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19년 전 나를 보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이내 익숙하더라구요.
역시 나는 나 같습니다.ㅎㅎ

2018-05-08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5-09 15:06   좋아요 1 | URL
전 가끔 궁금했습니다. 일기는 잘 쓰고 계시는지...?
잘 쓰고 계시죠?ㅎ

그렇게 짜내는데 그렇게 잘 쓰신단 말씀입니까? 췟!ㅋㅋ

hnine 2018-05-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강현 기자는 JTBC 정치부회의라는 뉴스에서 반장을 맡고 있어요. 저는 이분이 팟캐스트 진행할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종료되어서 아쉽지요) 소설도 낸 경력이 있고, 글솜씨가 없을리 없는 경력을 이미 갖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stella.K 2018-05-09 15:09   좋아요 0 | URL
제가 뉴스는 KBS만 보는지라 종편은 잘 몰라요.
그럴 줄 알았으면 정말 볼 걸 그랬습니다.
이 사람 정말 맘에 들어요.
그렇지 않아도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이 책 h님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페크pek0501 2018-05-08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내가 이런 글을 썼네, 하면서 저도 제 일기장을 보고 놀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낯설지요.
흔한 말로,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가 되겠습니다.
스텔라 님은 일기를 많이 보관해 놓으셨군요. 잘하신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5-09 15:16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잘 못 버리는 스타일이라 그래요.
다시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참 빈약하더군요.
그러면서 기억력 좋다고 자랑하면 안 되겠어요.ㅎㅎ
하지만 기억과 추억 또는 회상은 다른 것이고
설혹 다르게 기억하더라도 그것도 나라고 생각해요.
언니도 일기 많이 쓰셨죠?^^

blanca 2018-05-09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기장에 대한 소회가 스텔라님과 같아 안쓴 지 꽤 되었어요. 그런데 좀 아쉽기도 하고... 아직은 일기에 대한 제 마음이 잘 정리가 안 된 것 같아요.

stella.K 2018-05-09 15:19   좋아요 0 | URL
ㅎㅎ 언제고 다시 쓰세요.
일기는 원래 쓰고 있는 동안은 잘 정리 안 되는 거예요.
그냥 어느 날 문득 잊고 있었던 나를 꺼내 보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그런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랄지도 몰라요.ㅎㅎ
 

미투 운동이 불일듯 일어나는 과정에서

한 탤런트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말이 많은 것 같다.
누구는 마녀사냥이라고 했다가 삭제했고,

누구는 미투 운동이 음해 세력이 있다고도 하고.
미투 운동을 오히려 지지할 것 같은 사람들이 그러고 나오니까
좀 실망이다.

또 누구는 죽은 자가 비겁하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비난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섣부른 동정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가장 상처 받았을 사람은 유가족들, 특별히 그의 아내와 딸일 것이다.
그들도 여자다.  

 

앞으로 이 보다 더한 일이 생기더라도 미투 운동은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받던)가 죽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피해를 입고 죽어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처럼 기도가 간절해지는 때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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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12 18:18   좋아요 1 | URL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한참 뒷걸음질 치게 될겁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남성주의 벽이 두텁다는 걸
실감하게 될 것이고.
선진국일수록 여성이 대우 받잖아요.
상처 받은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ㅉ
 

 

http://v.media.daum.net/v/20180225050302701

 

 

미투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이 문제가 붉어져 나왔다. 이를테면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거냐 말 거냐에 관한 논란이다. 삭제를 찬성하는 쪽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작품과 그 사람은 따로 봐야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다. 나야 이 갑논을박의 현장에 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있었더라도 뒷목을 몇 번 잡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 보기에 좀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작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하나의 제의 또는 제사와도 같은 거 아닐까? 유명 작가의 글쓰기 강좌나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고백이 담긴 책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글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 앞에 자신의 명예와 인격을 걸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작가로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글을 따로 볼 수가 있을까?

 

물론 그런 말은 한다. 그렇게 따로 보아야 그 사람의 문학적으로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존할 수 있다고. 근데 그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상누각 같은 거 아닌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글과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것을 일반인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하면 그게 설득이 된다고 보는가? 예를들어 아무리 좋아했던 연예인도 그가 성범죄거나 도박중독자라면 그때부터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법이다. 문화계 인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거다. 

 

무엇보다 이런 논의 자체를 작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그런 논의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그는 어디선가 숨어서 그래도 자신이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을지, 어떤 식으로든 지신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이 괴로운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토론의 당사자들에게 맡긴다고 체념할지 그 마음을 알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줬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만약에 반대로 그 작가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고 해도 과연 이런 갑론을박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도 여자지만 그것에 쉽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주의적 사회인지를 또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과 관련해서 나도 얼마 전 뉴스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교과서에서 빼자는 쪽은 학부모쪽이었고, 그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고 했던 건 어느 대학 교수였다. 어떤 쪽에 경중을 두게 되는지는 시청자의 판단의 몫이긴 하지만 적어도 학부모를 대표한 쪽은 여자였고, 삭제를 반대하는 쪽은 남자였다. 이걸 반드시 남녀가 사안을 받아들이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남녀의 차이를 떠나 도덕과 양심의 눈, 인간에 관한 예의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투 운동이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문화계만 벌써부터 면죄부 내지는 예외 조항을 두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같거나 비슷한 분야에서의 성폭력 가해자들도 어부지리로 묻어 가는 건 아닌가? 원래 이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오욕칠정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쪽은 남자가 아니었나? 그것에 여자를 동조하게 만든 것도 남자고. 그 결과 역학적인 측면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쪽은 전혀 모르는 남자가 아닌 잘 알고 지내는 남자에게서 나온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누가 해결을 해야 옳은 것인가?

 

미투 운동을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야 말로 혁명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불씨를 쏘아 올린 것에 지나지 않다. 이 혁명이 제대로 성공을 할지 안 할지는 지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여자는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아 미투 운동을 마냥 속시원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여자들은 크던 작던 그런 기억 하나쯤은 묻고 산다. 나도 매일 미투 운동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알게 모르게 당해왔던 언짢은 기억들이 건드려지고 있어서 괴롭다. 물론 건드려진 건 이번 미투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수시로 건드려져 왔고 그때마다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왔을 뿐이다.  

 

글쎄, 이번 고은 사태를 어떻게 봐야할런지 모르겠다. 같은 미투는 아니지만 우린 아직 미당이나 춘원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당대 출중한 지식인이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들이 일제에 부역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평론가를 제외하고 그들의 문학을 애써 부인한다. 그게 옳은 태도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사람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다된 죽에 코 빠트린다고 평생 그렇게 훌륭한 글을 쓰고도 사람의 됨됨이 하나가 올바르지 않아 그것을 망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벌써 2년 정도 된 일이다. 누구라고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내 책이 나오고 한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알라딘 초기 땐 몇 명의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나긴 했지만 이후로는 누구도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알라디더 몇 년을 두고 한 번씩 나에게 만나자고 했었다. 난 그것을 미루고 미루다 내 책을 계기로 만난 것이다. 특별한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책을 냈고, 그 사람은 읽었으니 작가와 독자의 만남. 또는 같은 알라딘 서재를 쓴다는 동료 의식 뭐 그런 거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기대가 없다면 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 글도 잘 쓰고, 무엇보다 여성을 대변하는 한 인디 잡지에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또 그런만큼 가끔씩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도 올려 여성에 대해 뭔가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 첫 만남에서 깨졌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그는 술을 잘 마셨다. 아무리 술 기운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꼭 그럴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여관 가자는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순간 좀 움찔했지만 이 사람은 술이 취한 그야말로 심신미약 상태니 내가 그것에 예민할 필요가 있나 해서 못 들은 척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명백히 성희롱 아닌가?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그 즉시 반응하지 못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를뿐만 아니라 예민하게 굴어 좋을 건 없으니 거의 대부분은 무시하고 못 들은 척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쌓이고, 두 번 쌓이면 이것은 남자들로 하여금 그래도 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무튼 그후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것도 묻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이었을까? 안 좋은 언쟁들이 몇번인가 겹쳤고, 그러다가도 내가 혹시 오해하고 예민했나 싶어 사과도 하고 가급적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온라인에서나 전처럼 잘 지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그 머피의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한 번은 댓글로 대판 싸웠는데 비록 온라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몇 년 동안 알아왔던 사람이 맞나 싶은 게 싸우는 태도나 수준이 형편없고 야비하기까지 했다. 또 나중엔 화가 단단히 났는지 잔뜩 독이 올라 반말로 일관했다. 실제로 만나서 싸웠다면 내가 한 대 쳐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언어가 공격적이었다. 순간 그때 생각이 난 건 그 사람이 그 인디 여성잡지에 썼다는 잠재적 가해자의 고백이었다. 난 그게 그의 참회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쓴 의미는 뭐였을까? 

 

아무리 화가나도 그렇다. 반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오프에서 처음 만나던 날 그는 나에게 그랬다. 자신은 상대가 어린 고등학생이어도 절대로 말을 내리지 않는다고. 그게 자랑거리 같지는 않지만 뭐 그만큼 자신이 예의 바르고,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에게 그 정도는 누구든지 한다. 중요한 건 화가 났을 때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화가나 반말로 일관했다는 건 그게 자신의 싸움의 법칙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볼 때 헛점을 보여 이미 지는 싸움을 한다는 반증이다. 역시, 그는 전에 자신은 싸움을 하도 많이 해 봐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안다고 한적이 있다. 자신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면서 누구와 싸워 이기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여태까지 제대로 싸워보기는 한 건가? 다른 말도 많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회피하겠다.

 

요는 사람 마음은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이 자신의 삶과 일치하지 않으면 고은 아니야 고은 할아버지가 글을 써도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나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글은 읽지 않는다. 옛날엔 참 많이 즐겨 읽었는데. 그가 무슨 글을 써도 하나도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간간히 글을 올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난 멘탈이 약해서 그런지 작년 내내 이 문제로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은 그나마 어려운 시간이 많이 지났고, 더구나 미투 운동을 보면서 그와의 일들을 좀 더 많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날까지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고은 사태가 어떻게 귀결이나든 대중의 반응은 싸늘할 것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작가가 되려는 자 글의 무게를 견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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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01 19: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왔나 싶기도 하고.
마치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전혀 죄책감도 없이 살아왔더는 게 참...ㅠ

syo 2018-0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여기나 저기나.....
알라딘에도 미투 바람이 한 번 몰아쳐야 하는 건 아닐까요.

stella.K 2018-03-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이 좀...
아니면 뭐 저만 그러는 수도 있구요.ㅠ

2018-02-2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3-01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이 무게 있게 다가오네요.

저도 요즘 미투 운동에 대한 소식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어요.
고은 시인은 소문으로 들었긴 한데 막상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 놀랍더군요. 어떻게 글은 훌륭한데 사람은 훌륭하지 않을 수 있는 건지 헷갈리더군요.

stella.K 2018-03-01 18:24   좋아요 0 | URL
사람은 겉으로 모른다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고.
사람 참 어려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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