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80225050302701

 

 

미투 운동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이 문제가 붉어져 나왔다. 이를테면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할 거냐 말 거냐에 관한 논란이다. 삭제를 찬성하는 쪽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도 같고, 반대하는 입장에선 작품과 그 사람은 따로 봐야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다. 나야 이 갑논을박의 현장에 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있었더라도 뒷목을 몇 번 잡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사람 보기에 좀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작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하나의 제의 또는 제사와도 같은 거 아닐까? 유명 작가의 글쓰기 강좌나 작가의 글 쓰기에 관한 고백이 담긴 책을 보면 하나 같이 자기 글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 앞에 자신의 명예와 인격을 걸 수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작가로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글을 따로 볼 수가 있을까?

 

물론 그런 말은 한다. 그렇게 따로 보아야 그 사람의 문학적으로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존할 수 있다고. 근데 그거 다른 시각에서 보면 사상누각 같은 거 아닌가?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글과 명예를 실추시켰다. 그것을 일반인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고 하면 그게 설득이 된다고 보는가? 예를들어 아무리 좋아했던 연예인도 그가 성범죄거나 도박중독자라면 그때부터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법이다. 문화계 인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는 거다. 

 

무엇보다 이런 논의 자체를 작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그런 논의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때마다 그는 어디선가 숨어서 그래도 자신이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다고 자위하고 있을지, 어떤 식으로든 지신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이 괴로운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토론의 당사자들에게 맡긴다고 체념할지 그 마음을 알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줬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만약에 반대로 그 작가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고 해도 과연 이런 갑론을박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도 여자지만 그것에 쉽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남성주의적 사회인지를 또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과 관련해서 나도 얼마 전 뉴스 인터뷰 영상을 봤는데, 교과서에서 빼자는 쪽은 학부모쪽이었고, 그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니냐고 했던 건 어느 대학 교수였다. 어떤 쪽에 경중을 두게 되는지는 시청자의 판단의 몫이긴 하지만 적어도 학부모를 대표한 쪽은 여자였고, 삭제를 반대하는 쪽은 남자였다. 이걸 반드시 남녀가 사안을 받아들이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남녀의 차이를 떠나 도덕과 양심의 눈, 인간에 관한 예의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미투 운동이 다른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왜 문화계만 벌써부터 면죄부 내지는 예외 조항을 두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같거나 비슷한 분야에서의 성폭력 가해자들도 어부지리로 묻어 가는 건 아닌가? 원래 이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금기를 깨고, 인간의 오욕칠정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쪽은 남자가 아니었나? 그것에 여자를 동조하게 만든 것도 남자고. 그 결과 역학적인 측면에서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쪽은 전혀 모르는 남자가 아닌 잘 알고 지내는 남자에게서 나온다는 증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문제는 누가 해결을 해야 옳은 것인가?

 

미투 운동을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야 말로 혁명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불씨를 쏘아 올린 것에 지나지 않다. 이 혁명이 제대로 성공을 할지 안 할지는 지금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여자는 그런 일을 당해 보지 않아 미투 운동을 마냥 속시원한 마음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여자들은 크던 작던 그런 기억 하나쯤은 묻고 산다. 나도 매일 미투 운동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알게 모르게 당해왔던 언짢은 기억들이 건드려지고 있어서 괴롭다. 물론 건드려진 건 이번 미투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수시로 건드려져 왔고 그때마다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왔을 뿐이다.  

 

글쎄, 이번 고은 사태를 어떻게 봐야할런지 모르겠다. 같은 미투는 아니지만 우린 아직 미당이나 춘원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당대 출중한 지식인이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그들이 일제에 부역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평론가를 제외하고 그들의 문학을 애써 부인한다. 그게 옳은 태도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 사람의 하는 일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다된 죽에 코 빠트린다고 평생 그렇게 훌륭한 글을 쓰고도 사람의 됨됨이 하나가 올바르지 않아 그것을 망치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벌써 2년 정도 된 일이다. 누구라고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내 책이 나오고 한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알라딘 초기 땐 몇 명의 알라디너를 오프에서 만나긴 했지만 이후로는 누구도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알라디더 몇 년을 두고 한 번씩 나에게 만나자고 했었다. 난 그것을 미루고 미루다 내 책을 계기로 만난 것이다. 특별한 기대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책을 냈고, 그 사람은 읽었으니 작가와 독자의 만남. 또는 같은 알라딘 서재를 쓴다는 동료 의식 뭐 그런 거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하지만 너무 기대가 없다면 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 글도 잘 쓰고, 무엇보다 여성을 대변하는 한 인디 잡지에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인지도 모른다는 고백을 하기도 하고 또 그런만큼 가끔씩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도 올려 여성에 대해 뭔가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 첫 만남에서 깨졌다. 

 

나는 술을 잘 마시지 못했고, 그는 술을 잘 마셨다. 아무리 술 기운이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꼭 그럴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여관 가자는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순간 좀 움찔했지만 이 사람은 술이 취한 그야말로 심신미약 상태니 내가 그것에 예민할 필요가 있나 해서 못 들은 척 했다. 하지만 이것도 명백히 성희롱 아닌가?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그 즉시 반응하지 못한다.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모를뿐만 아니라 예민하게 굴어 좋을 건 없으니 거의 대부분은 무시하고 못 들은 척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쌓이고, 두 번 쌓이면 이것은 남자들로 하여금 그래도 되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아무튼 그후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것도 묻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머피의 법칙이었을까? 안 좋은 언쟁들이 몇번인가 겹쳤고, 그러다가도 내가 혹시 오해하고 예민했나 싶어 사과도 하고 가급적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온라인에서나 전처럼 잘 지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도 그 머피의 마법은 풀리지 않았다. 한 번은 댓글로 대판 싸웠는데 비록 온라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몇 년 동안 알아왔던 사람이 맞나 싶은 게 싸우는 태도나 수준이 형편없고 야비하기까지 했다. 또 나중엔 화가 단단히 났는지 잔뜩 독이 올라 반말로 일관했다. 실제로 만나서 싸웠다면 내가 한 대 쳐 맞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상당히 언어가 공격적이었다. 순간 그때 생각이 난 건 그 사람이 그 인디 여성잡지에 썼다는 잠재적 가해자의 고백이었다. 난 그게 그의 참회록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쓴 의미는 뭐였을까? 

 

아무리 화가나도 그렇다. 반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오프에서 처음 만나던 날 그는 나에게 그랬다. 자신은 상대가 어린 고등학생이어도 절대로 말을 내리지 않는다고. 그게 자랑거리 같지는 않지만 뭐 그만큼 자신이 예의 바르고, 사람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처음 만나는 고등학생에게 그 정도는 누구든지 한다. 중요한 건 화가 났을 때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화가나 반말로 일관했다는 건 그게 자신의 싸움의 법칙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상대가 볼 때 헛점을 보여 이미 지는 싸움을 한다는 반증이다. 역시, 그는 전에 자신은 싸움을 하도 많이 해 봐서 어떻게 싸우는지를 안다고 한적이 있다. 자신을 온전히 지키지도 못하면서 누구와 싸워 이기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여태까지 제대로 싸워보기는 한 건가? 다른 말도 많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회피하겠다.

 

요는 사람 마음은 똑같다는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이 자신의 삶과 일치하지 않으면 고은 아니야 고은 할아버지가 글을 써도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나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그의 글은 읽지 않는다. 옛날엔 참 많이 즐겨 읽었는데. 그가 무슨 글을 써도 하나도 진심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간간히 글을 올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솔직히 난 멘탈이 약해서 그런지 작년 내내 이 문제로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은 그나마 어려운 시간이 많이 지났고, 더구나 미투 운동을 보면서 그와의 일들을 좀 더 많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이날까지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고은 사태가 어떻게 귀결이나든 대중의 반응은 싸늘할 것이다.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디라는 말이 있다. 똑같은 말을 하고 싶다. 작가가 되려는 자 글의 무게를 견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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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01 19:04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왔나 싶기도 하고.
마치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전혀 죄책감도 없이 살아왔더는 게 참...ㅠ

syo 2018-0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여기나 저기나.....
알라딘에도 미투 바람이 한 번 몰아쳐야 하는 건 아닐까요.

stella.K 2018-03-01 13:30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점이 좀...
아니면 뭐 저만 그러는 수도 있구요.ㅠ

2018-02-2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1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3-01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의 글이 무게 있게 다가오네요.

저도 요즘 미투 운동에 대한 소식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어요.
고은 시인은 소문으로 들었긴 한데 막상 사실이 밝혀지고 나니 놀랍더군요. 어떻게 글은 훌륭한데 사람은 훌륭하지 않을 수 있는 건지 헷갈리더군요.

stella.K 2018-03-01 18:24   좋아요 0 | URL
사람은 겉으로 모른다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고.
사람 참 어려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