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도 약속을 못 지키거나 연락없이 늦는 건 확실히 넌센스란 생각이 든다.

 

어제는 성경공부가 없는 날이었다. 전날 성경 공부 리더님이 그렇더라도 예배 끝나고 보자고 하기에, 주일 날 그 시간엔 웬만해선 예배를 위해 교회 가지 않는 내가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갔다. 어제 하루를 겪어 본 이들은 알리라. 얼마나 더웠는지를. 무엇보다 그 시간은 해가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머리카락을 태워버릴 기세였다. 그러니 여름 날 그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간다는 건 여간해서 내겐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약속은 굳이 안 지켜도 되는 약속이기도 했다. 그냥 핑곗거리 하나쯤 대고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기도 했는데, 그룹내에서 제일 막내이기도 했고, 리더로부터 추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다들 나오기로 했나 본데 나만 모임에 나갈 수 없다고 하면 그도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싫은데도 불구하고 굳이 나갔다.

 

아, 그런데 웬걸. 내가 예배 중 어디서 모이기로 했냐고 리더님께 문자를 드렸더니 그제야,

아, 연락을 안 드렸군요. 오늘 안 모이기로 했습니다. 미안해요.  

하는데 어찌나 화가나던지...

그럼 미리 연락 주시지...ㅠ

그랬더니 그렇게 결정 난지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그런 되지도 않을 약속을 만들고, 내가 문자를 하자 그제서야 안 모인다고 말하는 리더의 잘못인가? 그동안 느긋하게 있다 약속시간에 임박해서야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문제인가?

 

그도 그렇지만, 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있다는 게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 사람들은 그런 약속쯤 간단하게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뭐 안 지킬 수도 있다고 치자. 적어도 피해는 안 가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에는 후배와 만나는데도, 자기는 약속 시간에 늦는 것에 대해선 전혀 문제가 없고, 내가 약속 장소를 변경시킨 것에 잘못을 전가시키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또 그전엔  이건 다른 사람인데, 약속 장소에 가고 있는데 기껏 전화로 못 갈 것 같다고 무려 1시간 전에 연락을 받기도 했다. 알겠지만 1시간 전에 연락을 한다는 건 그 시간에 연락을 못 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사람과 만나려면 최소한 1시간 전엔 집을 나서야 한다. 집에서부터 준비한다고 치면 1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전엔 연락을 줘야한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런 여러 일을 겪다보니 약속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늘상 사람 만나는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상대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의식이 없지는 않겠지. 어느 날, 성경공부 때 나의 이런 약속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백한다면 어떤 일이 벌이질까? 그래. 네 말이 맞아. 약속은 잘 지켜야 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기독교인도, 일견 내 말을 잘 들어주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거나 또는 뒤돌아 서서, "쟤는 세상을 너무 안 겪었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와 부조리가 많은데 그런 걸 가지고 문제를 삼고 그래? 바라는 건 아니지만 더 기가막힌 일을 당해봐야 알아. 쯧쯧." 이렇게 말할 사람이 (비기독교인까지 합쳐) 모르긴 해도 열의 아홉은 될 것이다.

 

실제로 난 오래 전, 아는 후배한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나의 생각은 너무 옳아요. 너무 맞지만 세상은 그렇지가 않아요." 그 후배는 나와 무슨 말 다툼 끝에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 후배한테 그런 말을 듣자고 했던 건 아닌데. 그저 미안하다는 진심어린 사과를 들으면 되는 거였다. 결국 남들 다 아는 도덕 가지고 얘기하지 말자는 건데, 그렇다면 걔는 그런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풀기를 바랐을까? 그러니까 자신이 뭔가 부족하고, 남에게 피해를 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되풀이 해왔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나를 깐깐한 도덕주의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관계에서 오는 문제라면 상도덕 가지고 풀일인데(나는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상도덕의 문제만 해결해도 인간의 문제는 90% 이상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멀쩡한 상대를 기어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자신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려 하는 건 그 후배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 비참한 생각도 들었다. (아, 게다가 그 후배는 남자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젠더의 문제까지 들먹이기도 했다. 이쯤되면 '남자는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한다'쯤이 되는 건가? 아무튼 그 후배는 이상한 논리로 자꾸만 비약에 비약을 하기도 해서 질렸다. 물론 나중에 내게 사과는 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거나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또 그런 사람이 상대가 그러고 나오면 못 견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경향이 있는 걸까?) 그렇게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나는 문제가 없는 것이고 오직 상대만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이래가지고는 세상의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투성이라는 것과  같다는 말인데, 이 문제는 언제쯤 풀릴런지 모르겠다. 

 

어쨌든 난 어제 그런 일을 당하면서 리더님한테 평소 받은 고마운 일들을 생각하며 내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긴 했는데, 그래도 뭐 나의 마음이 아주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미안한 것은 미안한 거고,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며,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다. 서로가 그런 생각을 가져줘야 문제 많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해결하며 살 수가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만 가지고는 문제해결은 절대로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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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6-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날씨가 무척 뜨거웠는데, 고생하셨네요.
일요일 하루는 다들 쉬고 싶은데, 어제는 너무 더웠으니까요.
오늘 저녁에도 비가 오려는지 날씨가 눅눅하고 덥습니다.
stella.K님, 편안한 밤 되세요.^^

stella.K 2018-06-05 14:3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가끔 저를 자극하는 날도 있네요.
오늘은 다시 더워졌어요.ㅠ

2018-06-04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6-05 14:39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렇게 하소연이나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cyrus 2018-06-0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바른생활‘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고미안‘이었어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기본적인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stella.K 2018-06-07 11:15   좋아요 0 | URL
헉, 너 때도 그런 게 있었니? 나 초등학교 때도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고미안의 역사가 꽤 오래된 거네.ㅋ
물론 이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문젠 같아.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