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일본서점대상 수상기념 리커버)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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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레임이 천천히 돌아가는 착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소설 쓰기가 읽기 보다 쉽지 않은데 서점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잘 풀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나의 과거에 두고 온 서점 출입기도 떠올리게 돼서 나름 가슴 따뜻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독서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지만 본격적으로 서점을 출입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그전엔 학교 앞 문구점에 어린 문고를 낱권으로 팔아 굳이 서점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 내가 살던 동네 시장 근처에 서점이 두 곳이 있었다. 서점은 특별한 인테리어나 장식이 거의 없이 책들을 무조건 천장까지 높이 쌓아 놓고 팔았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베스트셀러는 가까이에 두고, 없을 것 같은데 있는 책은 주인이 사다리나 의자를 놓고 올라가 뽑아 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가끔 책과 책 사이에 낀 책을 뽑다가 실수로 책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나 손목 또는 발목을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주인은 안 아픈 건지 아픈데 참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는 표정으로 책을 손님에게 넘겨준다. 그런 걸 보면 난 가끔 무슨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책을 넘기다 손을 베였다는 건 잘 믿기지 않지만 책한테 두들겨 맞는 건 너무 이해가 간다. 요즘은 그런 광경은 헌책방이나 가면 볼 수 있으려나?


학교 시험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난 습관처럼 서점에 들르곤 했으니 결국 서점 두 곳 중 하나가 나의 단골 서점이 되었다. 서점 주인아저씨는 풍채가 좋고 후덕한 인상으로 조카 대하듯 나를 편안히 맞아 주었다. 서고같이 단조롭기는 했지만 매장이 좀 큰 편이었다. 책을 사면 손님이 괜찮다고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책표지를 서점 로고가 찍힌 포장지로 싸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일종의 서비스다. 바로 그 틈을 타 주인아저씨와 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 아저씨는 한비자를 비롯해 동양 고전에 심취해 있었고, 독서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아저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낮에 서점을 가니 아저씨가 자작을 하고 계셨다.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한잔해."했다. 난 당연 거절했고 아저씨 역시 진짜 권할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어서 와의 다른 인사는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게 이물 없이 나를 대해주셨던 서점 아저씨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나의 단골 서점과의 인연은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 같다. 그동안 서점은 한 번의 이사를 해 더 넓은 매장과 그에 걸맞은 인테리어를 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난 그 10년 중 2, 3년은 안 다녔던 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네가 있는 구(區)에 지하철역에까지 큰 서점들이 거의 경쟁적으로 생겼다. (전에 큰 서점은 종로나 광화문에 있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큰 서점에 가면 그만큼 책 구경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니 발길이 멀어진 것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들렀는데 아저씨는 여전히 계셨고 특별히 오랜만에 왔다고 환영해 주는 법도 없었다. 그냥 지난번에 오고 또다시 와준 조카 대하듯 여전히 서글서글하게 대해 주셨다. 난 그게 좋았고, 어쩌면 아저씨는 내가 발길이 뜸해질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단골은 일순간 멀어질 수는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게 단골이란 걸 아저씨는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이 폐업을 했다. 그곳이 서점이었다는 흔적만 아직 남아 있지 그 많던 책들과 주인아저씨와 가끔 보던 주인아줌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나마 그 흔적도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었다. 난 좀 놀랐다. 그럴 것 같으면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실 일이지 갑자기 이게 뭔가, 비록 나이는 어려도 단골인데 내가 그렇게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나 섭섭했다. 하지만 이내 아쉬운 생각을 거두었다. 내가 한동안 안 다닐 때도 말하고 안 다닌 건 아니지 않는가. 이것 역시 평소 아저씨의 스타일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모르긴 해도 그동안 아저씨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힘드셨을 것이다. 그렇게 대형서점들이 잇달아 오픈을 하는데 그런 동네 서점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 책을 좋아하면 책만 읽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책이 좋아 서점을 꿈꾸기도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책을 더 못 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도 한때 막연하게 서점을 꿈꾼 적이 있었는데 그 말 듣고 꿈을 접었다. 그 아저씨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제 해 볼 건 다 해 봤으니 책이나 원 없이 읽어보자며 그만둔 것은 아닐까. 난 그저 아저씨의 무사안일만을 기원했다. 살아오면서 느끼는 거지만 인연이란 언제 맺어져서 언제 헤어지는지 모르게 헤어지는 게 인연인 것 같다. 인연이 있다면


뭐든 크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위용을 자랑했던 대형서점도 권불십년일까. 가히 서점 거리라고 해도 무방할 그 대로변의 큰 서점들이 10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거나 축소 경영을 했다. 책 안 읽는 민족으로 유명한 나라에 그렇게 경쟁적으로 큰 서점을 연다고 해서 책 읽는 민족이 될 리가 없고, 무엇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아무래도 인터넷 서점 앞에 맥을 못 췄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큰 서점들이 온라인으로 전환한 것이 아닐까. 변화에 대처하는 종만이 살아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대형서점들이 온라인 서점의 등장을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확실히 인터넷 서점은 매력적이긴 했다. 그 매력에 대해선 여기에 구구하게 쓰지 않아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책을 구매한다는 것만 아니라 더 정확히는 그와 연계되는 블로그나 SNS는 매력 정도로 얘기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거야말로 가히 혁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전에 누가 감히 책을 권했던가.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물론 아는 지인끼리야 정보 공유와 선물을 하지. 그러나 어디에 대고 감히 이 책 좋으니 한 번 읽어 보라고 권한단 말인가. 그건 소위 셀럽들이나 하는 일이고 당연히 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것을 일반인들도 블로그나 SNS에 익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추천을 할 수 있게 됐다. 또 이를 통해 파워블로거 또는 인플루언서가 양산되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게 너무 잘 알려져서 실감을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혁명이라 부를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책을 읽게 된 건 현실도피의 이유가 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2 학기를 통째로 날려 먹었다. 이후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녔다면 좋았을지 모르겠는데 그 사이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전학은 불가피했다.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계집아이가 현실을 도피한다면 어디로 하겠는가. 이것밖에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도 없겠다 싶었다.


책을 읽으니 새삼 깨달은 건 세상엔 책 읽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 우리 집에서도 책을 읽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고나 할까. 그나마 아버지가 신문과 시사 잡지를 돌아가시기 전까지 읽으셨지만 당시만 해도 잡지나 신문은 독서 행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분위기라 그렇게 따지면 내가 유일했다. 그에 대한 자부심도 작지 않았다. 더구나 학교에서는 독서를 장려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으면 굳이 학교를 다닐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실제로 난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겨우 마쳤다.


블로그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도 그 점을 지적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에 나 역시 쉬 동의하지 못하겠다. 물론 비슷한 취향과 관심을 가진 블로거들만 모인 곳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육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식들 공부에 좋다는 건 뭐든 다 시키는데 설마 독서를 제외했다고 보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초등학교 때 부모로부터 세계 명작 한 질 정도 안 받고 학교 다닌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학교에선 늘 책을 읽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다녔다. 그 후로도 TV를 비롯한 매스컴에서 캠페인성 독서 프로그램을 수시로 방송했었다. (지금은 좀 뜸해진 느낌이긴 하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 1년에 1권 내지는 1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는 어쩌면 정확하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면 독서 편중이 심하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아도 어디선가 '샤이 북맨' 또는 '내숭 독서인'이 적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지만 아주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온라인에 멍석을 깔아줬더니 정말 책 읽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난 그때야 비로소 내가 책을 그리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전까지는 비교가 안 됐는데 이제는 비교가 가능해진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지금까지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게 70권 정돈데 (그나마 그것도 오래전 수치다) 어떤 사람은 그에 2배 3배를 읽는 사람이 있어 놀랐다. 또한 한 분야의 책만 파는 사람이 있고, 전작주의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독서에 대한 열등감 내지는 비교 의식 같은 것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렇듯 온라인 서점이 한 일들은 놀랍다. 적어도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운 나를 (온라인이긴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했던 게 바로 블로그 활동이었다. 작가와 독자의 간격을 좁혀 준 것도 인터넷이 아닐까. 예전에 작가와 독자가 소통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전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어떤 작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코빼기도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리며 소통하게 되었다.


편의와 효율성만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온라인으로만 책을 사야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수가 줄어서 그렇지 거리 서점은 아직도 건재하다. 아니 최근엔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간 늘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건 예전의 일반 서점과는 차별화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것을 '독립 서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왜 거리의 서점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걸까. 온라인 서점이 줄 수 없는 뭔가를 독립 서점에서 찾으려는 걸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예전에 서점은 책을 높이 쌓아놓고 판매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그 공간을 활용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처럼 커피도 팔고, 작가와 독자 간의 가교 역할도 하고, 독서토론은 물론이고 글쓰기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랑방 역할을 한다. 그냥 책만 팔아도 힘들 텐데 무슨 사서 고생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사람들은 책을 통해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순환시킬 때 책이 가장 책 다워진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러기엔 온라인의 한계를 알지 않았을까. 그래서 서점은 사멸되지 않고 독립 서점으로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책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책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면을 다뤘다. 책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얼핏 작가나 편집자, 비평가 등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책이라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이란 작품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소비하고(독자) 판매하는 사람(서점 종사자) 등을 다뤘다. 주인공이자 서점 주인인 영주를 비롯한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트라우마 내지는 인생의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떻게 서점이란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치유와 회복, 희망을 발견해 나가는가를 나름 진지하고 밀도 있게 그렸다.


무엇보다 주인공 영주는 한때 워커 홀릭으로 산 지난날을 후회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이혼을 선택했다. 그녀의 그런 선택을 보면서 결혼이 꼭 불행해서 이혼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다.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도 선택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그 선택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서점을 오픈한다. 적어도 나라면 이혼은 하지 않고 직장만 그만두고 서점을 오픈할 것 같다. 서점을 평생 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요즘같이 경기도 안 좋은데 부업 정도로 생각하지 누가 올인을 할까. 하다가 망하거나 너무 힘들면 그만두기도 용이하고. 하지만 영주는 그런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영주의 이혼은 단순한 이혼이 아니었다. 더구나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이혼을 감행했다. 이기적이란 오해도 받을만하다. 망하는 것은 나중 일이고 오로지 서점 운영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한다.


일은 해 본 사람만이 할 줄 아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인생을 소극적으로 재미없게 산다 싶기도 하고. 한때 서점을 운영해 보는 것이 꿈이라면서 해 보기도 망하면 어쩌나부터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은 실패할수록, 아플수록 단단해지는 법이다. 영주의 그런 단단함과 진지함이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 책을 읽는 사람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건 아니지만 서점을 해야겠다는 생각 하나가 그처럼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엔 책을 읽는다는 것이 개인의 지식 축적에만 머물렀다면 이제는 타인과 함께 나누고 토론하며 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곳 이상의 독서 클럽 내지는 SNS나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서점이란 공간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영주가 서점을 열고 단 하루라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사업하는 사람 대부분이 다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원했던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지구의 한 귀퉁이를 떠 안은 느낌일 것이다. 영주는 책 팔아서 노년까지 돈 걱정 없이 잘 살아 볼 생각으로 서점을 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더더욱 서점 같은 건 꿈꾸면 안 된다. (아직 노년을 생각하기엔 젊어 보인다.) 그녀의 꿈은 소박했다. 그냥 책 냄새 맡아가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부딪혀 보는 것. 그런데 이런 영주의 꿈을 응원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품엔 나오지 않지만 영주를 아는 사람은 개업했다고 축하는 해 주지만 속으로는 낭만주의자라고 냉소하지 않았을까. 책 팔아서 무슨 부귀영화를 두리겠냐며.


사람은 목적 보다 목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목표를 들어보면 거의 십중팔구는 돈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돈 모르면 뭐 할 거냐고 물으면 답은 왠지 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 그런 식으로 사람을 재단하거나 판단하려고 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나라고 세계 경제 10위 안에 드는 나라라면 아무리 소박한 꿈이라도 냉소하거나 훼손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서점을 포함한 우리나라 자영업은 개업도 많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폐업도 많이 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뭐가 좀 잘 된다고 하면 돈 냄새부터 맡으려고 한다. 그것이 천민자본주의를 키우고 누군가의 꿈 꿀 권리를 짓밟는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앞서 얘기한 나의 단골 서점의 주인아저씨가 생각나서다. 모르긴 해도 그 아저씨는 서점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저씨는 그때 40대 초쯤은 되었던 것 같다. 건강이나 신변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 이른 나이에 서점을 폐업할 분이 아니다. 아저씨에게 어떠한 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의 보람을 얻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물론 임대료가 싼 어느 변두리로 터전을 옮겼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밀리고 밀리면 어디까지 밀려날지 알 수 없다.


이제 휴남동 서점 같은 독립 서점은 낯선 곳이 아니다. 그건 독립서점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난 이런 서점이 계속적으로 늘어나길 희망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서점은 영주 같은 사람 혼자만의 의지로는 지켜나갈 수 없다. 이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휴남동 같은 서점이 있다면 그곳을 열심히 가 주어야 한다. 누구는 그랬다. 도서관 하나가 문을 닫는 건 도시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어디 도서관뿐이겠는가.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없어지면 온라인에서 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어찌 보면 그게 더 편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있을까 싶어 서점을 갔는데 없으면 그 허망함과 민망함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하지만 독립 서점은 필요한 책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다. 그냥 한가한 저녁 산책 삼아 마실 삼아 갔다가 보물 찾기하듯 책을 사 가지고 오는 곳이다. 동네에 그런 독립서점 하나 있으면 마음의 등불 하나가 켜지는 느낌 이텐데 내가 사는 동네엔 아직 그런 곳이 없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거리 서점이 사멸되지 않고 진화에 진화를 지켜보고 싶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사라진 서점과 도서관을 설명한다는 건 좀 끔찍할 것 같다. 제2, 제3의 휴남동 서점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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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9-01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의 서점 이야기도 흥미로워요.
저야말로 샤이북맨 혹은 내숭독서인이 아닌가, 잠시 찔끔했어요.

stella.K 2024-09-01 20:14   좋아요 0 | URL
ㅎㅎ 의왼데요? 그러지 마십시오.
긴 글인데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24-09-01 08: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 유명한 책방이 ‘주책공사’에요. 주책공사 책방지기가 제일 싫어하고, 비추천하는 책이 <휴남동 서점>이래요. 그분을 실제로 뵌 적이 없어서 싫어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요. 제 생각인데, 책방을 운영하는 그 분 입장에서는 <휴남동 서점>이 책방 운영을 미화하는 소설로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이 책을 읽고나서 책방을 열고 싶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있었다고 해요. ^^;;

꼬마요정 2024-09-01 12:15   좋아요 1 | URL
저 지난 4월에 주책공사 다녀왔는데 분위기 좋더라구요. 생일책 샀는데 <무뎌진다는 것> 투에고 지음 이 나왔어요. 신선했어요.

stella.K 2024-09-01 20:23   좋아요 1 | URL
주책공사. 이름 참 잘 짓는다. 좋은데? ㅋ
근데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그분 너무 민감한 건 아닌가
싶기도하네. 이 작품은 그냥 소설이야.
소설은 낭만과 이상을 품고 있지. 나쁘게 쓰려면 얼마든지 나쁘게
쓸 수도 있겠지. 그러면 그분 왜 나쁘게 쓰냐고 또 뭐라고 할걸?
난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마음에 들더라. 아직 젊은 사람 같은데
성실하게 잘 썼어. 너도 기회되면 함 읽어 봐.^^

꼬마요정 2024-09-01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현실과는 다르다고 느꼈지만 뭔가 부러웠어요. 물론 영주는 월말이 되면 혹은 고지서 납부일 등이 다가오면 쉽게 잠들지 못할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자기 일을 하면 그 고난도 견딜만하다 느끼기도 하니까요. 근데 책에 둘러싸인 삶이라… 좀 두근두근합니다. ㅎㅎ 스텔라 님의 단골 서점 아저씨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서점이나 도서관이 늘 흥하면 좋겠습니다.ㅜㅜ

stella.K 2024-09-01 20:31   좋아요 1 | URL
힐링 소설이잖아요. 당연히 다를 수 있지요.
영주도 그렇고 그 단골 서점 아저씨도 그렇고 지자체에
도움을 받아가면서 자기 일을 놓지 않고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그 아저씨 많이 늙으셨을 거예요. 가끔씩 생각났었는데
이 책 읽느니까 더 생각나더군요.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겠죠?
맞아요. 한 국가의 저력은 그런데서 나오는 건데 흥해야죠!

페크pek0501 2024-09-03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40대에 주로 동네 서점에서 책을 샀는데 자주 사니까 서점 주인이 대학원생이냐고 갈 적마다 물었던 게 생각납니다. 이젠 인터넷으로 책을 삽니다. 여행지에선 독립 서점이 눈에 띄면 들어가 보고 책 한 권을 구매하는 편이에요. 나는 인터넷이 편해 인터넷 구매를 하지만 서점이 없어지는 건 섭섭해서 눈에 띄면 사 줘야 할 것 같아서요.^^

stella.K 2024-09-03 16:2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동감입니다. 많이 사 줘야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서점이 눈에 잘 안 띄어요. 근데 대학원생으로 오해를 받으셨다니 살짝 부러운데요?^^

물감 2024-09-04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스텔라 님이 쓴 <아무튼 서점> 느낌의 글이네요 ^^
저는 어려서 서점을 안다녀봐서 잘 모르지만, 자주 가던 곳들이 사라진 기분은 알 것 같아요.
나만의 추억들이 진짜 추억 너머로 사라져버린 그 기분이요.
요즘은 식당들이 그렇게 줄폐업을 하는데 참 쓸쓸해요 ㅎㅎㅎ

stella.K 2024-09-05 10:07   좋아요 1 | URL
그럼 제가 잘 쓴 건가요? ㅎㅎ 저도 서점 잘 안 다니긴 하는데 근처 중고샵있으면 한번 나가보세요. 시간 잘 갑니다. 책이 뿜어내는 스멜도 좋고. 그러고 보니 저도 언제고 날잡아 한번 나가봐야겠어요. 😂
그래서 울나라는 백년가게가 별로 없다잖아요. 뭐가 좋다면 우르르 쏠리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길거리만 나가도 저 사람들은 뭐해 먹고 살까 궁금하기도 하더라고요. 에효~
 
퀸스 갬빗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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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테비스의 <허슬러>에 이어 두 번째로 이 책 읽었다. 현재 같은 출판사에서 작가의 작품 5권이 번역되어 나와있다. 일단 이 두 권만 가지고 보자면 <허슬러>는 당구를, 이 책은 체스를 소재로 다뤘다. 둘 다 스포츠 소설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스포츠 전문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이 둘은 좋게 말하면 두뇌 스포츠고 나쁘게 말하면 잡기다. 나야 잡기라면 화투 정도 밖엔 모르고, 그것도 혼자 하거나 100원 내기 또는 딱밤 맞기 정도의 미나토(?)여서 이 잡기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심오한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화투도 어린 시절 외엔 잡아 본 적이 없으니 말 다 했지.

체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츠바이크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거의 기억에 없지만 그 문장의 우아함과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알다시피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 작가고 월터 테비스는 미국 작가다. 뭐 당연한 소리긴 하겠지만 같은 소재라도 어느 나라, 어떤 작가가 쓰느냐에 따라 그 문체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월터 테비스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은 아닐까 싶다. 미국의 가장 세속적인 면을 여지없이 드러내 준다. 난 이미 <허슬러>의 리뷰에서도 그런 언급을 했지만 이어령 교수의 말마따나 미국은 거리의 문학을 표방한다. 이 소설도 8살짜리 소녀 베스 허먼이 사고로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으로 가게 되는 게 첫 시작이다. 가정이 없어진 것이다. 좀 놀라운 건,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는데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거다. 뭐 8살짜리가 죽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그래도 부모가 돌아갔는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다못해 보모를 회상해도 좋고 아름다운 기억보단 불온하고 불만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

더 놀라운 건 베스가 들어간 고아원에선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약을 주는데 그게 일종의 신경안정제다. 하도 아이들이 울고 보채니 약으로 신경을 마비시킨다는 건데 그게 좀 충격적이었다. 문득 60년 대 미국의 고아원은 다 이랬을까? 다 그렇진 않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로 인해 베스는 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고아원 수위 아저씨로부터 우연히 체스를 접하게 되고 베스는 그것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비슷한 구성은 소설 '허슬러'에서도 보인다.) 하지만 고아원 원장은 어린아이에게 체스를 가르치는 걸 금지시켰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처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그로 인해 베스는 체스를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양을 가게 되고 거기서 계속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하지만 완벽한 행운은 없어 베스가 입양되던 날 양아버지란 작자는 집을 나가버리고 결국 양어머니와 둘이 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고 비록 짧은 인연이지만 베스는 체스로 양어머니를 기쁘게 하며 나쁘지 않은 모녀지간으로 지낸다.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건, 체스 선수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줄은 몰랐다. 베스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체스에 관한 책을 사고 공부를 한다. 특히 체스에 관한 잡지를 빼놓지 않고 사던데 문득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도 체스에 관한 책과 잡지가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있는지 잠시 알아봤다. 그랬더니 체스에 관한 책은 나름 꽤 있지만 잡지는 보지 못했다. 뭐 이해 못 할 건 없다. 우리나라는 잡지를 내면 낼수록 적자 구조고, 바둑이나 장기도 특정한 사람들 아니면 즐기지 않는데 이 서양장기는 또 얼마나 알겠다고 잡지까지 사 보겠는가.

책은 평이하게 잘 읽히는 편이다. 물론 체스의 기본 지식을 알고 봤다면 더 재미나게 읽었겠지만 모른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베스가 체스를 어떻게 싸우고 이기며 어떻게 성장해 가는가를 보기보단 그녀의 앞으로의 인생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고, 약물중독에,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지도 못했다. 그나마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양어머니도 일찍 죽었다. 남자 친구도 사귀는 족족 그녀를 떠나간다. 그렇다면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궁금하고 걱정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이런 인물은 불행할 거란 쪽으로 자꾸 상상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작가에게 한방 먹었다. 작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그리 길게 재단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은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채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그 인생이 앞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지 불행한 삶을 살지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 나이에 연애에 두어 번 실패했다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거라고 장담도 할 수 없다. 약물에 중독됐다고 해서 당장 폐인이 되어 거지 꼴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 거라고 할 수도 없겠지. (우린 약물중독에 걸린 인생이 어떤 최후를 맞게 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난 작가의 작품이 나와는 썩 맞는 편은 아니었다. 지난번 <허슬러> 때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미국 특유의 세속적 낙관주의와 허무주의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그래도 작품의 구성이나 심리 묘사는 <허슬러>보단 훨씬 입체적이란 느낌이 든다. 문득 월터 테비스가 미국 문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 인정하는 건 정말 열심히 썼던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 1984년에 50대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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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4-08-1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 재밌게 본 드라마인데ㅎ 소설도 괜찮나 보군요ㅎ

stella.K 2024-08-19 21:03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 드라마는 못 봐서 말씀 드리기는 뭐한데 드라마가 훨 낫지 않을까 싶어요. 책은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요. 어떤 작품은 원작 보다 영화가 나은데 미국 작품들이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ㅋ
 
허슬러 월터 테비스 시리즈
월터 테비스 지음, 나현진 옮김 / 어느날갑자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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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가 되는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다른 모든 것은 작파하고 심지어는 속세를 떠나 살과 뼈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갈아 대가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세상 속에서 즐길 거 다 즐기고 볼 꼴 안 볼 꼴 다 봐 가면서 최고가 되는 것. 이 책은 전자는 아닌 후자에 속하는 이야기는 아닐까 한다.

또 그럴 경우 전자보단 후자가 더 흥미롭지 않나 생각해 본다. 전자의 이야기로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나 율곡과 신사임당 같은 이야기도 좋겠지만 위인 전기를 보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런데 비해 후자는 여러 많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면서 인간 내면을 여지없이 보여줘 이야기가 더 풍성할 수 있다.

이왕 당구 이야기가 나왔으니 전자의 이야기가 되려면 정정당당한 스포츠 대결로 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로 풀려면 도박 이야기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영화 <신의 한 수>가 생각이 난다. 난 바둑이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 바둑은 앉아서 하는 건전한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긴 스포츠와 도박의 경계를 넘나드는 종목이 있긴 하다. 이를테면 경마가 그렇다. 화투는 그렇지 못함에도 농담 삼아 스포츠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구가 언제부터 정식 스포츠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주인공 에디가 살았던 1960년대도 당구가 항상 도박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얼마든지 건전 스포츠로 즐길 수도 있는데 도박의 경지에서만 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디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렇다 할 꿈이나 비전 없이 자란 에디는 당구에 소질 있다. 이런 걸 두고 우리 옛 어르신들은 사람은 자기 먹을 밥통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셨나 보다. 자기가 잘하는 것 가지고 빌어먹고 살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더구나 에디가 사는 곳은 자유가 자유스럽게 보장되는 미쿡이다. 자나 깨나 배곯을까 걱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완 다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 사고방식이 있어 노름으로 밥 빌어먹고 산다면 혀를 끌끌 차던가, 호적을 파던가,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던가 해야 한다. 설사 접시 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바닥의 룰과 살벌한 약육강식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말을 하자면 이 소설은 그런 치열함 같은 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좀 아기자기하면서 재즈스럽다고나 할까. 얼핏 들으니 이 책이 처음으로 쓰인 당구 소설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하나의 전범으로 손색은 없어 보인다.

읽다 보니 주인공 에디가 누구를 만나게 되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에디는 제일 먼저 찰리와 함께 미네소타 뚱보를 만난다. 찰리는 이를테면 에디의 매니저 같은 역할을 잠시 한다. 그래서 당구계의 전하 무적(?) 미네소타 뚱보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에디는 좀 순진한 데가 있었다. 도박이건 게임이건 치고 빠져야 한다. 즉 누가 빨리 승점을 획득하느냐인데 뚱보가 끝이라고 해야 끝나는 거란다. 끝나야 끝난다란 말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다니. 미친 거 아닌가?

결국 우리의 에디는 졸음과 피곤을 꾸역꾸역 참으며 게임을 계속한다. 머리만 잘 쓰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역시 게임은 기술만 좋다고 이기는 건 아니라는 걸 에디도 그쯤에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판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다. 또 그런 만큼 미네소타 뚱보는 뚱뚱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찰리와 헤어진 후 버스 터미널 카페에서 새라를 만나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가까워지고 그녀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에 연애가 빠지면 배신이다. (이건 이야기의 공식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거만 할 뿐 결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삶은 노터치다. 그냥 섹스 파트너 겸 동거인으로서 간섭하지 않는 삶을 살 뿐이다. 나는 이런 유형의 동거를 꽤 오래전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를 봤을 때 보고 좀 놀란 적이 있었다. 난 그때 동거는 결혼식만 안 올렸다 뿐 사는 건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을 부대끼고 사는데 어떻게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이게 오래전부터 가능했었나 보다. 역시 미국은 끕이 다르구나 했다.

하지만 에디는 언제까지나 새라하고 세세세하며 살 수만은 없다. 오는 사람 안 말려 같이 살았으니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를 실천할 때가 돌아왔다. 사실 난 이 책을 읽는 중에 영화도 찾아봤는데 이 부분이 원작과 영화가 달랐다. 영화는 새라가 에디를 붙잡는 바람에 결국 동행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제 와 이런 말 한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그 설정은 뭔가 난센스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새라는 나중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한다. 이것은 미국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별로 맞지 않아 보였다. (여기선 지면상 영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나는 나중에 에디가 새라를 너무 나 몰라라 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디가 양쪽 엄지손가락을 다쳤을 때 새라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기도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에디가 버트를 만난 거 아닐까. 에디가 버트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허슬러의 면모를 갖추게 되니 말이다. 버트는 에디에게 네가 왜 미네소타 뚱보를 만나지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지적해 주기도 한다. 또한 버트는 에디가 진정한 허슬러라는 걸 알아본다. 그리고 도사 같은 말도 한다. 이를테면,

게임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큰돈을 기다리면서 직감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다섯 명의 상대 선수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내기를 할 수 있는 자기만의 개성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사람이야. 그 누구도 실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내기를 대비하지. 그건 운이 아니네. 나는 운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보네. 만에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운에 의존해서는 안 되지. 자네가 할 수 있는 건 확률에 따라 경기하고, 최선을 다해 게임에 임하는 거야. 중요한 내기 게임 앞에선,-돈이 걸린 모든 게임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배를 팽팽하게 조이고 세게 밀어붙여야 하네. 그게 바로 클러치야. 그때 타고난 루저는 죽고 자네는 다시 태어나는 거지." 212p

이런 사람 꼭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도 하고 동시에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에디는 꼴에 처음에 버트를 거절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75를 자기가 갖고 25를 버트가 갖는 줄 알았더니 그 반대란다.

버트 같은 사람은 오히려 돈 싸 들고 나 좀 키워 달라고 부탁해야 할 사람인데 에디가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에디에 대해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 버트는 에디와 안녕을 고하고 자기 갈 길을 간다. 하지만 역시 만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에디는 우여곡절 끝에 수락을 하는데 나중에 버트에게서 75를 자기가 갖는 것 못지않은 축복을 누린다. 한마디로 버트는 에디에겐 은인이다. 어디 나도 버트 같은 사람 좀 안 만날까? 이게 또 인생의 최대 과제 아닌가. 재주가 있다고, 테크닉이 뛰어나다고, 판세를 읽을 줄 안다고 최고의 허슬러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오래전 고 이이령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학을 비교하면서, 미국은 거리의 문학이고 우리나라는 집의 문학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굉장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 하나같이 집에 대한 그리움이나 가족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의 모든 만남은 집이 아닌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헤어지는 것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리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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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8-0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승리와 패배로 정확히 나뉘는 것들, 가령 시합이나 도박에 뛰어들 땐 승리감에 취할 기쁨을 기대하기보다 패배했을 때의 대책을 세워 놓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실력 다음으로 운, 이란 것도 중요한 변수겠죠. 영화로 보면 더 재밌을 듯합니다.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 쓰는 일이 저로선 하기 힘든 일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야 리뷰를 쓸 수 있는 책인지 쓸 수 없는 책인지 판가름이 나거든요. 내가 할 말이 없는 책도 있더라고요.^^

stella.K 2024-08-03 20:2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댓글 달아주셔서. ㅋ
이번에 이 작가의 작품 5권이 새로 나왔더라구요. 전 퀸즈 갬빗이 관심이가서 신청해 본 건데 혹시 그게 안될지도 몰라 이 작품을 같이 신청했는데 두권 다 보내주더라구요. 영화보단 원작이 낫긴한데 제가 미쿡문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냥 나쁘지 않다 정도였어요. ^^

물감 2024-08-07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리뷰가 왜이리 디테일하지? 싶었는데, 출판사 제공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쩐지!
말씀하신 고수의 두 가지 부류를 제 식대로 표현하면 정파와 사파인데요, 저는 언제나 사파의 손을 드는 편입니다. 그쪽이 훨씬 매력적이거든요. 뭔가 팔딱팔딱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그런 글쓰기를 지향하는 편입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서사가 참 미국스럽고 좋네요. 저는 거리문학이 더 맞나봐요!

stella.K 2024-08-07 13:4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니 왜요? 저 평소 리뷰 디테일하게 쓰잖아요. 출판사에선 스포일러 주의하라고 하는데 제가 뭐 스포일틱한가요? 저는 보고 느낀 것만 씁니다요. ㅎㅎㅎ
그렇죠. 정파에서는 뭐 나올게 없죠. 그래서 작가들도 사파에 목숨거는 거겠죠?
이 작품 저는 원작이 훨 낫더군요. 영화는 당대 유명한 폴 뉴먼이 나왔다는 것 외엔 별로 였어요.
저는 지금 협찬으로 퀸즈 갬빗 읽고 있는데 허슬러 보단 재밌는 것 같아요. 나중에 리뷰 쓰면 많은 호응 부탁해요. ㅋㅋ
 
로라미용실 -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박성신 지음 / 북오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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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다. 장르는 범죄 수사물쯤? 이런 쪽의 장르라면 나는 당연히 영화로 봤을 텐데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 대중 소설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는지를 차치하고라도 지금은 대중소설과 순수소설에 대한 관심이 비등해졌거나 오히려 대중소설이 조금 더 앞서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는 아마도 지난 세월 동안 드라마 제작사나 영화사에서 지속적으로 판권을 사들이고 작업해 온 결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한 이 방면의 소설가들이 시나리오를 공부한 결과이기도 하고.

이제 소설 쓰는 작가들은 단순히 내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바라지 않는다. 아예 쓰는 단계에서부터 영화처럼 쓴다. 그것을 난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과연 이렇게 쓰는 작가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으며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영화 제작 편수가 1년이면 몇편이나 되겠는가? 영화처럼 소설을 쓴다고 해서 다 영화화되는 것도 아닐테니 오히려 소설로 둥지를 틀기도 하겠지. 그러고보면 장르 소설은 더욱 팽창할 것이다.)


시나리오는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까 옛날 같으면 (시나리오 작가가 많지도 않았지만) 시나리오 쓰는 게 어려워서 소설을 쓴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지금은 그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창작의 세계에선 더 이상 쉬운 길은 없다.

침대만 과학은 아니다. 시나리오도 과학이다. 이것은 단순히 1+1= 2라는 말이 아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맥거핀(영화의 내용과 상관없는 장면을 슬쩍 끼워 넣는 것)이란 것도 있긴 하지만 이유 없는 결과가 없듯 이유 없는 장면은 없다. 초반에 밑밥을 잘 깔고 그것을 후에 회수하는 것도 시나리오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또 그러기 위해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어야 좋은 작품이 되는데 그 어려운 것을 이제 소설도 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위의 것들을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지면상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고, 대충 풀어보면 여기서의 메인 플롯은 어린 찬서가 미장원 일을 하던 엄마가 교제하던 전탁근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후, 찬서는 엄마와 함께 살던 무산으로 돌아와 복수를 꿈꾼다(이건 복수극의 전형적인 시나리오 방법이다). 전탁근이 25년형을 받고 만기 출소해 무산으로 돌아온다는 첩보(?)를 입수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이게 메인 플롯의 과제다.

그런데 25년 만에 돌아온 무산은 환경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이 변했다. 엄마가 일하던 로라 미용실엔 웬 알지도 못하는 수상한 늙은 여자가 원장이란다. 또한 이젠 동네와 함께 늙어간 여사님들이 이곳을 제집 드나들 듯이 하는데 바로 그들이 마을의 정보원 노릇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탁근의 둘째 아들이 일찌감치 내려와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데 똑똑한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외과의사 면허증이 있으니),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이상한 건 찬서는 그저 전탁근에게 복수하려는 것뿐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미장원 원장과 엮이는 느낌이다. 그러다 마침내는 원장으로부터 탐정이 되라는 권유를 받는다. 물론 처음엔 거절했지만 어느새 미장원 바로 위층에 탐정 사무소를 차리고 사람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개의 일을 해결하는 공도 세웠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몇 개의 일이 다 교제 살인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서브 플롯이 되시겠다. 즉 이 이야기 가는 길은 미스터리한 인물들이 어떤 정체의 사람인가, 교제 살인의 가해자들을 찬서가 어떻게 응징하는가 또한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전탁근을 어떻게 복수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정말 읽고 있으면 영화에서 느끼는 통쾌함과 희열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살짝 갈등도 느낀다. 영화로 볼 걸 굳이 책으로 읽나 하는. 하지만 등장인물은 어떤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 좋을까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아직 영상화될 건지 아닌지는 미지수다 )

그런데 이 소설이 좀 특별했던 건, 이 책에선 약간의 윤색을 했는데, 꼭 60년 전인 1964년, 21세의 젊은 남자가 길에서 마주친 18살 여성에게 키스를 했다 혀가 잘린 사건이 있었다. 그로 인해 한순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게 되었고, 여자는 성추행범이 되어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반면 남자는 먼저 가해를 했음에도 인정되지 않고 풀려난 사건이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당시 판사가 여자에게 남자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결혼하라고까지 판결을 내렸다. 난 그때 뭐 그런 황당한 판결이 있는지 좀 놀라웠다. 우리나라 법이 단순히 무른 줄만 알았는데 미개하기까지 하구나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것도 그렇지만 일개 판사가 나서서 결혼해라 마라 훈수까지 두다니. 궁금했다. 그 판사도 자신의 여동생이나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판결에 복종할 수 있는지.

생각난 김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동안 몇 번의 항고와 최근 2022년 재심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고 기각이 되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그동안 여권의 신장과 여성 법조인이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됐다니. (이 비슷한 사건은 그 후에도 몇 차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자 쪽의 무혐의가 인정됐다는 것. 내가 놀라는 건 이런 사건이 그때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사간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어쩔 것인가.)

아무튼 작가는 바로 그 사건을 상기시키며 '과거에서 온 엄마의 비밀노트'란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재탄생시켰다. 실제로 그 사건의 여자가 판사의 판결에 굴복해 자신을 추행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결코 행복할 리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작가가 그 여성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그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책에 나온 몇 개의 에피소드 역시 작가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덧입혀 썼을 거라 짐작해 본다. 또한 작가가 다룬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도 아닌 빙산에서 녹아내린 물 한 방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간에도 데이트 폭력과 교제 살인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인도나 중동 지역의 여성들은 남편이나 남자 형제로부터 끔찍한 살인이나 폭력을 당하고도 마땅히 말을 곳 조차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라고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10대 청소년이 같은 동급생 여자아이를 흉기로 찔렀다는 보도를 접했다. 모르긴 해도 교제하는 사이거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남사친 여사친 하는 사이에선 그런 일은 생길 수 없다.) 이거 무서워 어디 데이트고 나발이고 맘대로 할 수나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은 이런 소설 한 권 읽었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론 기발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니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이 책의 부제가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다. 얼마나 강렬한 문장인가.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설혹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남성의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나라는 피바다가 될 것이며, 서로에 대한 혐오와 갈등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소설은 나름의 기능과 쓸모가 있을 것이다. (물론 재미가 첫 번째지만) 이를테면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온갖 협박과 가스라이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각성과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바람직한 데이트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이 먼저 아닐까? 이야기는 통쾌하고 재밌기는 한데 이런 것만 보면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울 것인가. 데이트를 해야 결혼도 할 것이고 나아가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도 가져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내가 이런 소설을 기피했던 건 순수 문학만 선호하는 것도 없지 않지만 좀 어둡고 잔인해서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가 그럴듯하다. 막 잔인하다가도 끝에 가선 해피엔딩이다. 옛말에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지 않은가. 역시 화제성 소설답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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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8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제가 굉장히 직관적이네요. ^^ 저도 동의합니다. ^^

stella.K 2024-07-09 13:06   좋아요 1 | URL
그렇죠? 바람돌이님도 기회되면 함 읽어보세요.^^

꼬마요정 2024-07-09 0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속적인 예방과 교육 절실해요!! 여자가 이별을 이야기 했다고 칼로 찌르거나 황산을 붓거나 불을 지르는 건 진짜 나쁜 짓이라는 걸 확실히 해야죠. 읽는데 열불이 터지긴 했어요. 실화 바탕이라는 게 더 화가 났구요. 갑자기 그 사건도 생각나네요. 청바지는 강제로 못 벗기니까 청바지 입은 여자는 강간이 아니라 동의 하에 이루어진 성관계라는 판결요. 진짜 헐이었는데… ‘교제 살인은 반드시 처단되어야 한다’ 맞아요 맞아요!!!!

stella.K 2024-07-09 13:09   좋아요 0 | URL
ㅎㅎ 역시 요정님이 가장 분개를 많이하시네요.
근데 청바지는 정말 충격적이네요.
우리나라 법이 아직도 여성을 차별하네요. 선진국일수록 여성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울나라 선진국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ㅉ

희선 2024-07-09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썼나 봅니다 헤어지는 걸 잘 해야 할 텐데... 헤어졌는데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스토킹을 하잖아요 그러다 죽이기도 하고... 지금은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이라고 아주 없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stella.K 2024-07-09 13: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해요!
그런 것을 가르쳐 줘야하는데 헤어지잔 말에 보복당해야 한다면
누가 이성을 만나겠어요? 분통터질 일이죠.ㅠ

물감 2024-07-09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냥 교제를 금해야 합니다 (매우 극단적) ........
그나저나 오랜만에 쓴 책 리뷰라 반갑습니다 ㅎㅎ

stella.K 2024-07-09 13:15   좋아요 1 | URL
앗, 저의 리뷰를 기다리시다닛!
이거 더 부지런히 읽고 써야겠는데요? ㅎㅎ
노력해 보겠슴다.^^

페크pek0501 2024-07-2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 더 쓰기 어려운 것이 드라마나 시나리오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관찰한 것들을 쭉 써도 되지만, 시나리오와 같은 작품은 인물마다 그 캐릭터에 맞는 대사를 써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런 걸 쓰는 분들이 천재들이라고 생각해요.ㅋㅋ

stella.K 2024-07-24 15:50   좋아요 1 | URL
오, 언니 이젠 소설도 그런 말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그동안 소설을 너무 안 읽었구나 반성하고 있는 중이어요.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 정말 글 잘 쓰더군요.
단편은 그만그만한데 장편이나 장르물은 안 그렇더라구요.
정말 잘 써요. 괜히 K-소설이 아닌 것 같더군요.
저는 장르소설 휘발성 때문에 별 관심 안 가졌는데 그렇다고 그걸 폄하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취향은 존중 받아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앞으로는 가급적 장르소설 읽어 보려구요.
이래뵈도 제가 소설 쓰는 게 꿈이랍니다. ㅋㅋ
참, 언니 이미지 바꾸셨어요. 밝아보여요.^^

2024-08-14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법정 드라마나 영화는 심심찮게 보긴 했지만 소설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난 동명의 작품을 오래전 영화로 봤다. (본 지가 오래돼서 내용이 기억에 거의 없다.) 이번에 소설로 읽으니 작가에게 감탄하며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취재력도 좋고 문장도 좋아서 만족하면서 읽었다. 매 챕터 들어갈 때마다 법에 관련된 명언들 써 놓기도 했는데 역시 돋보였다. 특히 배심원들 앞에서 펼치는 팽팽한 법정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2009년에 있었던 용산 참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가 어디 그 사건만을 기억해도 좋으리만치 한가하고 좋은 나라던가. 그래도 이만큼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그런데 한편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지 않고 지금 읽은 게 오히려 잘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 읽으니 조금은 올드 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문득 그때 내몰렸던 철거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철거민들의 농성도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의 주거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더 이상 강제로 철거하는 일은 없는지는 몰라도 대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었다면 이런 감상적인 내용으로 리뷰를 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책에서 본 건 법의 진화와 발전? 뭐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법에 거의 문외한이다. 작가 역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에 관해서 꽤 자세히 색인까지 써 가면서 꼼꼼하게 썼다. 그걸 보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당시 법이 이 정도였다면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여전히 우리나라의 법은 가진 자, 범법자를 두둔하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 전에도 어느 여자의 집을 무단 침입해 성폭행을 하려다 여자는 물론이고 애인까지 크게 다쳐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해 범인에게 징역 50년을 판결해 달라는 원심을 깨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27년을 구형했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뿐인가? 2년 전 급발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젊은 아버지가 급발진 사고를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넣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외국 같은 경우 급발진 사고가 나면 오히려 회사가 책임 소재를 소명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일명 원식이 법을 발의를 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21대 국회가 임기가 끝나 폐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발 국회는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챙겨라!) 다음 회기 때 또 발의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법이 어디로 가는지, 아직도 무르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에도 법은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느린 속도로나마 변화하고 발전해 간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 법정은 배심원의 의견이 판결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법 감정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도 화자 겸 주인공이 많은 우여곡절 겪고(원래 주인공은 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좀 쓸쓸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희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법이 여전히 가진 자의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얻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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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29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법정 드라마는 우리에게 약간의 사이다를 안겨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열불이 터져요 ㅠㅠ
요즘 더 그런 현상이 많은 것 같아요.
희망을 포기하기 싫은데 희망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stella.K 2024-05-30 09:52   좋아요 2 | URL
그건 그래요. 그래도 그런 사이다 같은 드라마라도 자꾸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자꾸 바른 말하고 쓴소리하면 뭐 하나는 귀에 걸리게 되어있거든요. ^^

물감 2024-05-30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한국의 법이 범법자를 두둔한다는 말이 왜 이리 씁쓸한가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저는 뉴스를 거의 안보고 있습니다. 어차피 주변사람들이 알아서 떠들어주는데, 듣다보면 여전하구나 싶고요. 말씀하신대로 법이 변해가는 건 느껴지는데 글쎄요, 한 20년쯤 지나 윗세대가 싹 물갈이 되어야 확 바뀌려나 싶네요...

stella.K 2024-05-30 11:50   좋아요 1 | URL
아마도 그렇게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의 사람들이 20년이 지나면 똑같이 구세대가 되어 헛짓거리 할게 뻔하거든요. 5:5만 해도 희망은 있을텐데. 아님 6:4나 좋다 7:3이라도. ㅋㅋ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말아야죠.

참, 저도 물감님 조언 듣고 김호연 작가의 매다끝 샀습니다. 빨리 읽어야죠. ㅎㅎ

2024-05-3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1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