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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취향 - 교유서가 소설
김학찬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집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유머와 위트도 있지만 나름의 노련미 내지는 능청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작가들이 작품집을 내면 표제 작을 쓰지 않나. 나는 당연 '사소한 취향'이란 작품이 이 책 어딘가에 수록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다. 이 제목은 '프러포즈'란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순간 살짝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이건 교란이라면 교란이다. 거기에 넘어가다니. 독자와 두뇌 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싶기도 하다. 독자는 작가가 한없이 친절해 주길 바라고 있는데 말이다.
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좀 애매한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를테면 말했던 작품 초두에 그런 말이 나온다. '소설가가 등장하는 소설은 질색이'라고. 물론 그것은 화자의 취향이다. 하지만 그 말은 화자가 처음은 아니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고.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작가는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왜? 멋있으니까. 이 작품도 봐라. 화자는 그렇게 말하고도 버젓이 등장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화자 자신이 작가다.
그것도 부족해, '모든 소설가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공리다. 그러나 자신을 팔아먹는 작가는 상상력아 고갈된 자다(138p).'라고 쓰고 있다. 사실 그 말은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팔아 작가가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어느 정도 작가로서 노련미를 갖추면 이걸 슬쩍 변형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만 우려먹으려 한다면 말 그대로 상상력이 고갈된 작가가 맞다. 하지만 자신이 경험을 글로 쓰려고 하면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작가도 있지 않은가.
또 봐라. 화자는 출판사를 하는 선배로부터 하루키를 취재해 오라는 지시를 받고 한때 잠시 좋아했던 출판사 직원과 함께 일본으로 취재를 간다. 그럼 독자인 나는 또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언제 작가가 정말 하루키를 취재한 적이 있었나? 아니면 일본을 여행하면서 하루키를 만난다면 어떨까를 상상하며 쓴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냥 작가가 상상하는 제3의 인물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겠는데 하루키라지 않는가. 이만하면 작가는 독자 머리 꼭대기에서 놀겠다는 심산이군 싶다.
원래 소설은 허구고,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지만 뭔가 믿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물론 그만큼 작가가 글을 잘 쓴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글빨 하나는 인정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수록작 중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왠지 다음번에도 이런 식이면 별로 읽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분명 작가는 독자 보다 나아야 하지만 이렇게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작가는 솔직히 별로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시의성도 있고, 형식미도 있어 나쁘진 않았다.
작가는 '고양이를 찾'이란 작품에서 뭔가 유기견 대신 유기묘로 대치하고 그것을 데려다 키우는 과정과 애환을 그리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개를 키워봤어도 고양이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던 나는 고양이에게 이런 면도 있나 새롭기도 하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책 어디쯤 읽게 되면 비둘기를 삶아 죽이는 장면도 있던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그건 솔직히 좀 충격적이기는 하다. 물론 비둘기가 88올림픽 때 요긴하게 쓰였던 것도 알고 있고 이후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보긴 했는데 천적이 없는 걸까 그렇게 해서 개체 수를 줄이려고 하다니. (하긴 백숙도 끓여 먹는데...)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동네 공원의 비둘기가 없지는 않은데 눈에 띄게 줄었다 했는데 그게 그런 이유 때문인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문체가 힘이 있고 톡톡 튀기도 하는데 전반적으로 읽고 나면 묘한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제목은 '개인적 취향'의 다른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뭔가 과유불급의 작가는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