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청소년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3
김종광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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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각색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각색을 통하지 않으면 못 읽을 것 같다. 조선의 고소설을 원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어렵지 않을까. 물론 그것을 현대어로 풀어서 쓸 수도 있겠지만 각색은 그보다 더 나아가 작가의 상상력과 등장인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의 언어 감각을 최대한 살리면서 등장인물을 더 적극적이면서 실존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난 처음에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아무래도 책 제목도 그렇고 나 같이 청소년기를 지나도 한참 지나 온 사람이 과연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 보니 모처럼 무슨 동화 모음집을 읽듯 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 책은 특징이 있었다. 민담이나 설화 전기 등에서 뽑았는데 모두가 화자 내지는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하긴 옛날엔 청소년이 따로 없었다. 대충 15,6세만 해도 혼례가 가능했으니 당시론 젊은이들을 위한 교훈 집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좀 놀라웠던 건, 조선사회라면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해 있을 텐데도 작가가 지나치게 부풀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자를 적극적이고 실존적으로 그렸다. 이쯤되니 내가 조선사회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나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각색이란 것도 원문을 바탕으로 했을 것이니 나 같이 귀가 얇은 사람은 과연 그런가 싶기도 하다. 12편 다 얘기할 할 수는 없고 몇 편만 소개해 보면, 


첫 번째 수록작 '내 남자는 내가 선택한다'는 <<이조 한문 단편집>>의 '정기룡'을 다룬다. 정기룡은 실존했던 인물로 관노비였지만 훗날 훌륭한 육군 장수가 되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란 노래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운명의 시작은 어느 노인에게 무예를 배워 군대에 징집되면 시작이 되는데, 이야기는 또 어느새 전주 관아에 이방의 딸의 이야기로 바뀌어 정기룡을 사모하여 결혼하게 된 과정을 전하고 있다. 조선의 봉건 사회에서 딸은 당연히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혼인해야 하는데 참 당차다 싶다.


두 번째 수록작은 <<동야휘집>>에 '채교거랑 책귀자(한자는 이 책에서 확인할 것)' 즉 신행 온 부인이 행랑에 앉아 귀한 아들을 꾸짖다란 뜻으로, 몰락한 양반의 어린 신부가 자신의 할아비 뻘 되는 양반집에 시집을 가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늙은 신랑은 무슨 이유에선지 장인의 집에서 초야를 치르고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소박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어린 신부는 귀신이 되어도 남편의 집에서 귀신에 되야겠으니 아버지의 힘을 빌려 꽃가마를 타고 늙은 남편의 집으로 간다. 그러고는 남편의 집에서 전처의 두 아들을 다짜고짜로 꾸짖는다. 자신이 비록 그들의 서 모이긴 하지만 그들의 어미가 됐음을 가르치며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다소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한 집안의 안주인의 역할을 잘하고자 하는 당찬 의지가 엿보인다.


'노래가 좋다'는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어우야담>>의 '명창 석개'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다. 석개는 굉장히 못생긴 노비다. 너무 못생겨 친구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접하고 그때부터 실성한 사람처럼 자신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때부터 그녀는 뭔지 모르게 노래만 들으면 넋이 나가 자주 일하던 손 놓을 정도가 되어버린다. 못생긴 외모 덕분에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당하지만 굴하지 않고 특별한 선생을 만나 명창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랑은 공부다'는 <<계서야담>>에 나온 이야기로 계서 이희평이 편찬한 것아라고 한다. 세창은 양반의 자제로 과거 시험을 앞두고 있고, 자란은 기생의 딸로 이들은 어려서 친구처럼 자라다 이성으로 발전한다. 세창은 자란과의 인연을 끊고 과거 공부에 매진하지만 그럴수록 자란에 대한 그리움만 커져간다. 어느 날 자란이 너무 보고 싶어 있던 곳을 탈출하여 자란을 만나러 오지만 그녀의 엄마에게 문전 박대를 당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도 공부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는 내용인데 얼핏 '춘향전'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시대에 여자가 뜻을 펼칠 기회가 얼마나 되겠는가 싶기도 하지만 어떤 모양과 형식으로든 그런 이야기가 보존되어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무엇보다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도 간간이 볼 수가 흥미롭다. 어느 시대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해 보인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마지막 수록작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이것은 연암 박지원의 청소년 시절을 다룬 자서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방경각 외전>>에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고 한다. 연암이 열두어 살 때 쥐젖을 알았다고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쥐젖이란 사마귀 같은 것이 살에 돋아나는 피부병이다. 그는 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한다. 알다시피 조선은 계급 사회이니 상놈은 상놈대로, 평민은 평민대로, 노비는 노비대로 할 얘기가 제각각이고 흥미로웠다. 그는 그것을 조금 조금씩 글로 쓰게 되고 나중엔 아예 대놓고 글을 써 우울증을 극복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사실 글 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사망률에 높은 직업군에 작가가 들어가 있겠는가. 하지만 연암은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다. 그것도 어린 나이에. 이는 작년인가 올 초에 연암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새롭게 안 사실로  역시 연암이다 싶기도 하다. 


요즘 청소년들 어른이 뭐라고만 하면 무조건 꼰대라는 말부터 하던데 이 책 보고 꼰대를 넘어 고리짝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기엔 나는 너무 편하고 즐겁게 읽었다. 안 읽으면 손해란 생각까지란 생각도 든다. 특히 여자 청소년들은 더더욱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조선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은 기회들이 있지만 말이다. 작가가 너무 여성을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 ㅋ 글자도 다른 책에 비해 큰 편이어서 편하다. 머리 식힐 겸 한 편씩 읽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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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10-03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월의 좋은 책 리뷰로 추천합니다.
추석 잘 보내셨죠. 스텔라님^^

stella.K 2023-10-04 10:59   좋아요 1 | URL
네. 니르바나님도 잘 지내셨죠?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4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의 선견지명!

축하드립니다. stella.님^^

stella.K 2023-11-11 18:43   좋아요 1 | URL
얄라님, 고맙습니다. 사실은 니르바나님은 장강명믜 소설가란 이상한 직업인가? 그것 좋다고 하셨는데 저도 이게된 거 보고 좀 의아했어요. ㅎㅎ

yamoo 2023-10-04 0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이 각색에까지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저는 각색의 각자고 몰릅니다요..ㅎㅎ

이런 책도 있었네요. 이야~~

stella.K 2023-10-04 11:01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뭐 어찌어찌 하다보니 관심이 생긴거고 창작이든 각색이든 그 세계는 다 어려운 것 같습니다.ㅠ

페크pek0501 2023-10-06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가 치유의 힘이 있긴 해요. 속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일기를 쓰고 나면 마치 그 일이 해결된 것처럼 속시원해지거든요. 글로 고민을 풀어낸 듯한 느낌이에요.
독서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뭔가에 몰입해서인지 기분이 나아져요.^^

stella.K 2023-10-06 19:13   좋아요 0 | URL
그러니 독서와 글쓰기의 유익성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안타까워요? ㅎㅎ
그런데 이게 또 직업이되면 적잖은 스트레스죠.
뭐든 다 그렇잖아요. 취미로 하면 좋은데 업이되면 부담스러운 거.ㅠ
근데 박지원이 10대 초반에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게 정말 놀랍더라구요.

2023-10-11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2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1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