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한 남성성 toxic masculinity'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남성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변호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우리 가정에 있는 소년과 남성들을 압박하여 비현실적이고 건강하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관념에 순응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을 설명하는 것이다. 억압적인 성별 고정관념은 남성들이 사는 사회뿐 아니라 각각의 남성들에게도 해롭다. 이 억압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늘날 소년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이 문제에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피해 다닌다면 이 아이들은 우리가 내버려 둔 틈새로 우르르 추락할 것이다.
등산 모임을 찾다가 안티 페미니즘 모임이 꽤 있다는 것을 발견했었다. -소개 문구를 보면 가관이다.-그래서 정작 '페미니즘' 모임을 검색하니 안티 모임만큼 많지도 않았고 가입자도 훨씬 적었다. 최대 포털사이트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가입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그곳에서 오가는 글을 볼 수 있었는데 여성 혐오가 심각했다. 그들의 특징은 여성을 혐오할 구실을 찾으러 서로를 독려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왜 그런 식으로 연대하는지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다만 더 구체적으로 연구 되어야 하는 문제지만 모두가 손을 놓고 있어 그 이상은 오래도록 진전이 없다. 마치 불량한 부자집 막내아들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언급하기 꺼려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서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극우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충분히 성적이지 않거나 올바른 방식으로 성적이지 않은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 된다. '무성애자'이름표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 단지 성적 지향을 나타내는데 그쳐야 한다. 그러나 '무성애자'는 조롱거리이자 부정적인 속성을 의미한다. 정열이 없다, 뻣뻣하다, 지루하다, 로봇같다, 차갑다, 내숭 떤다, 불감증이다, 결핍이 있다...(중략) 섹슈얼리티를 연기하면 성장기에 친구를 사귀고 존중받을 길이 열린다. 이건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더 가깝다. 적절한 종류의 성적 행동이 부족하면 유대 형성에 어려움이 생기므로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말과 행동은 섹스보다는 오히려 친구를 원하는 것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
'식욕은 성욕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왕성한 식욕은 곧잘 왕성한 성욕을 연상시킨다. 미디어는 은연중에 잘 먹고 충분히 섹스하는 것을 건강하고 완전한 삶으로 포장한다. 나이 들면서 두 가지의 욕구가 줄어든 나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왕성한 식욕을 뽐내는 걸 무심하게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배우의 실제 식욕은 어떨까?' 여성 배우들은 그럼에도 날씬한 외모를 유지해야 하니 그런 장면이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잘 못 먹는다면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 있거나 극심한 우울증에 걸렸거나 몸이 아프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이 안된다. 물론 요즘에는 '소식좌'라는게 있긴 하다. 하지만 이들의 식습관은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기 보다는 예외로,웃음거리로,혹은 다이어트 자극으로 소비된다.
10대 시절 7년간 성매매되었던 아일랜드 여성, 레이첼 모랜의 책을 1년 만에 다시 펼쳤다. 가부장제의 '규범적 섹스'는 고질적인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수가 '보지 않기'를 선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방치되고 유지된다. 사람들이 조금씩 불편한 것들을 보기로 선택할 때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고 비가시화되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공부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방식에 균열을 내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워 지는 것.
사람들 각자가 고유한 내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타인에게 수치를 주거나 책망하는 단순한 행위가 복잡해지고, 개개인의 역사를 알아갈수록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리처드 홀러웨이,무신론적 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