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도에 무성애의 자리는 없다. 킨제이가 무성애자의 존재를 알았는데도,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진행하며 킨제이는자신이 만든 선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킨제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성적 socio-sexual인 접촉이나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데이터를 마주하고도 킨제이는 자신의 선을 더 다차원적인 방향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 사람들을 X라는 별도 범주로표시하고 넘어갔다.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가 주로 두드러지고 X 집단은 대체로 잊혔다. - P37

강제적 이성애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성애자라는 믿음이 아니다. 이성애가 기본값이자 유일한 선택지라는 생각을 떠받치는 (이성 간의 사랑만이 생득적이며 여성에게는 사회·경제적 보호자로 남성이 필요하다는 식의) 가정과 행동의 집합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성애가 이렇게 널리 퍼진 게 오로지 이성애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 

사실 리치가 썼듯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검토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 혹은 인종주의라는 계급 체제가 신체적 폭력과 허위의식을 포함한 각종 힘으로 유지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 P68

섹슈얼리티란 정상인은 모두 성적이고, (사회가 승인한 섹스를 원치 않는 건 부자연스럽고 잘못되었으며, 섹슈얼리티에관심이 없는 사람은 필수불가결한 경험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떠받치는 가정과 행동의 집합이다.

착각하지 말자. 섹스는 정치적이며 그 의미는 항상 변한다. 세계는 거대하고 복잡하며, 강제적 섹슈얼리티의 정도와 표현 양상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성관계는 불온함, 죄악과 결부되며, 성직에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관계를하지 않을 것이 의무로 요구된다. 일반적으로는 배우자 아닌 상대와 하는 섹스보다 이성 배우자와 하는 섹스가 훨씬많이 인정받고, 동성 간 섹스나 킹크 섹스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은 가난한 사람이나 유색인의 섹스를 장려하지 않았다.

일리노이 주립대학 젠더학 연구자 엘라 프리지빌로Ela Przybylo가 인터뷰에서 지적했듯 성 부정 sex negativ-ity은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나란히 존재한다. 동성애 혐오가판을 치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퀴어함을 예찬하듯. - P69

진짜 남자는 섹스를 많이 한다는 가르침은 겉보기에는정반대인 두 집단의 경험을 형성한다. 한 집단은 물론 무성애자 남성이다. 다른 집단은 인셀incel"이다. 자기랑 세스를안 해준다고 여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여성혐오자이자대개 이성애자인 남자들.

*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를 줄인 말로, 섹스를원하면서도 자기 의지와 다르게 성관계를 못 하는 온라인 서브컬처커뮤니티의 젊은 남성들을 일컫는다. - P75

하지만 문제는 사실 섹스가 아니다. 온라인 극단주의 단체를 연구하는 팀 스퀴럴Tim Squirrell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성적 전율의 문제라면 날로 정성스러워지는 자위라는 방안을 인셀이 왜 안 쓰겠습니까?" 문제가 욕구 불만뿐이면 인셀에게는 돈을 내고 섹스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도인셀 다수는 성노동자를 찾는 ‘밑바닥까지 가기‘는 싫다고한다. 스퀴럴의 설명에 의하면 인셀은 금발에 가슴도 큰 스테이시, 여성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젠더 범죄를 저지르는수수한 여자 베키로 여성을 나눈다. 인셀은 베키를 비웃고,
오로지 스테이시로만 점수를 올리려 한다. 오직 스테이시만이 존경을 자아내는 성적 화폐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제는위계다.

인셀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신이 매력 없고 데이트 상대가 못 된다고 느끼면서도 남들이 자기와 섹스를 해줘야만 한다고 믿지 않고 살인이라는 수단을 쓰지도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인셀의 분노가 남성과 섹스를 둘러싼 문화적 기대와 연관된다는 것은, 동일한 이야기가 무성애자 남성의 소외에도 적용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욕망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도 다른 이 집단들은 모두 같은 성 규범의제약을 받는다. 남성 사회에 받아들여질 전제 조건으로 성경험을 덜 중요시하면 두 집단에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 P80

누군가를 거절하려고
"나 파트너 있어요."라고 꼭 말해야 하는 건 사회의 결함이며, 싫다는 말로는 통하지 않아서 원치 않는 섹스를 피하려고 성적 지향을 꼭 대야 하는 것도 사회의 결함이다. - P83

지금 사회의 중심에는 분명 섹슈얼리티가 있다. 오늘날서구에서 섹슈얼리티는 정체성의 필수 요소로 생각된다.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내가 무엇을 하는지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의 일부이자 내 진실의 일부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Foucault가 『성의 역사History of Sexuality』에서 주장하듯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강조되는 건 역사적·정치적 힘이 작동한 결과다. 나는 늘 이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P85

여성은 오래도록 성적 욕구를부인하고 남성의 욕구에 봉사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우리가치는 성에 묶여 있다. 우리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기 전까지 계속 성애화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성적인 모습을 보이면 수치를 당하고 단속 대상이 되며,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며 어떤 욕망이 허락되어 있는지 탐구하지 못하게 저지당한다. 문제의 여자가 이성애자가 아니면 이런 이야기는 두배로 적용된다. - P93

성 정치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페미니즘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활동가 캐서린 매키넌Catha-rine MacKinnon과 앤드리아 드워킨 Andrea Dworkin이 훗날 성 부정 페미니즘으로 알려질 운동을 이끌었다. 매키넌과 드워킨스스로는 성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오르가슴의 해방적 가능성에 주목한 것은분명 아니었다. 『일하는 여성의 성적 괴롭힘 sexual Harassmentof Working Women』, 『여성을 혐오하기Woman Hating』 같은 제목을 단 이들의 저술은 섹스의 쾌락보다는 섹슈얼리티가 위해를 가하는 데 이용되는 방식에 더 주안점을 뒀다.
이성애 섹스는 불균형한 권력 역학 안에서 이루어지며그렇지 않을 때가 없기에 섹스에 대해 진정한 동의를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논지다. 이들의 구조 분석은 가부장제 아래의 섹스란 어쩔 수 없이 손상되며 자유롭지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런 전통에서 등장한 활동 단체는 포르노그래피와 사도마조히즘, 성 노동에 반대했고 이모두를 남성이 여성을 비하하고 상처 입히는 착취의 방식으로 봤다. - P93

섹스는 정치적이다. 쾌락을 즐길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지, 무엇이 관습을 위반한다고 여겨지는지, 그리고 섹스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는 건 정치적이다. 섹스와 페미니즘과 해방의 의미는 빈곤 여성과 유색인 여성, 장애 여성, 신앙이 있는 여성에게 모두 다르다. - P107

어디에나 왕성한 리비도가 있다는 가정 앞에 성적 변주"
의 현실은 외면당한다. 해방해야 할 은밀한 성적 자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생각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모두 똑같다고 믿을 때나 말이 된다. 모두가 같은 걸 원하고, 채찍을맞으면 흥분된다는 걸 우리 중 일부는 아직 모를 뿐이라고.
성적 변주가 존재하기에 해방된 섹슈얼리티의 보편적인 그림은 없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마다 최선은 모두 다를 수 있다.  - P108

섹스는 저카리아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중심이 아니었다. 섹스는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중심도 아니며, 이걸빌미로 내 페미니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을 상대해 줄 시간도 없다. 나는 미치게 흥분되는 성생활을 하는 데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모두가 내 성생활을 질투하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아도 그건 대체로 나 혼자만 좋은 일이다. 쾌락 추구가 환상적일 수도 있지만 미치게 흥분되는 성생활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정치적 낙오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폭력과 경제, 교육을 비롯한 여러 사안에서 해야 할 다른 일이 너무나 많으니까. 어떤 여자가 섹스를 싫어하고 어쩌면 성적으로 억압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포괄적 성교육을 지지하며 동일임금법을 통과시키도록 입법처를 압박한다면 정치적으로 성공한사람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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