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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 갈등은 끝도 없이 생기더라.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내 안에 또 다른 나로 인해서 매일 고민하고 생각하고 결정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도 이런게 인생일꺼야 자위해버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들이 쌓여 갈수록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거 같은데 왜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까 싶은 생각은, 어제의 하루가 오늘과 같고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을꺼라는 막막한 현실에 체증을 느꼈다. 인생에 딱맞는 정답은 없노라고 각자 살아가는 인생이 정답이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버린 발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데 이 길이 맞다고?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속 시원하게 듣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의 책 <태도에 관하여>를 읽으며 초반까지는 조금 실망했더랬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마치 배가 아파 죽겠는 사람이 약을 먹으려고 병원에 갔더니, 일시적인 복통이라며 참아보라고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더랬다.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묵직해져가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 ' 인생의 전반기가 외부에 대한 적응의 시기라면 인생의 후반기는 내 안의 나와 갈등을 수용하는 시기다'(p299)라는 카를 융의 이야기를 끄집어 줄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나는 현재 인생의 후반기라는 거친 들판에서 내달리고 있는 중이라고.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꿈' 만큼 허황된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일반 사람들에게 도달하기 힘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소비해버리고 그 무력함과 좌절감에 힘들어 하는 거라고. 뿐아니라 그 '꿈'에 어렵사리 도달했더라도 그 꿈이 목적이 되었던 사람들에게는 허무함이라는 씁쓸한 맛이 무기력함을 안겨주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그 뜬구름 같은 꿈을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좋아하는지 즐길 수 있는지 보다도 나에 '꿈'은 무엇일까 하는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혀서 많은 시간을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걸 하기 위해 고민하기 보다는 그 일을 우선 하고 있어야 한다는 진리, 누가 뭐라고 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꾸준한 계획과 자신만의 보폭을 가지고 전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크게 '꿈'이라는 틀에 포함될지도 모르지만 작가는 조금 다른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꿈을 갖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재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꾸준함이 필요할 뿐이라는 말이 콕콕 박힌다. 여느 사람들처럼 '꿈'을 가져라 할 수 있다는 막연하고 달콤한 말보다도 현실을 직시하며 살되 나무의 잎사귀가 되어 흔들리지 말고 나무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 흔들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쟁쟁하게 울린다.
그리고 또 하나 ' 다시 말해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한 경험도 쓸모 없는 것은 없다'던 글귀를 노트에 적고 또 적으며 곱씹어 봤다. 나를 가장 갈등스럽게 만들던 질문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본어 공부가 내 커리어 쌓는 일과는 무관한데 계속해서 무얼하나 싶은 이 불확실성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모양을 바꿔 몇번씩 찾아와 고민스럽게 했다. '지금 이걸 해서 뭘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와 같은 생각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미래의 나를 더욱 단단하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 '어떤 경험도 쓸모 없는 것은 없다'는 확신이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값지게 찾아낸 삶의 혜안이었다.
변화가 생기면 사람은 과거의 자신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꾸려고 애쓰는 것보다 자신이 그간 무의식적으로 쌓아온 ‘좋은것들‘을 소중히 살려내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가져다주는지 모른다.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것들을 새로운 환경에 풀어놓아보면 그것들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들인지가 새삼스레 보인다. 어찌 보면 결코 내 안에서 변하지 않을 단단하게 다져진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현재 어떤 일을 하건 일의 기술적 내용보다 그 일에 접근하는 태도를 배우고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방식의 틀을 견고하게 잘 잡아놓으면 그 안에 어떤 내용물의 일을 적용시켜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저력이 되어준다. 다시 말해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한 경험도 쓸모 없는 것은 없다.(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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