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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ㅣ 창비시선 3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평점 :
비닐하우스 성당
봄이 오면
배추밭 한가운데 있는 비닐하우스 성당에는
사람보다 꽃들이 먼저 찾아와 미사를 드립니다
진달래를 주임신부님으로 모시고
냉이꽃을 수녀님으로 모시고
개나리 민들레 할미꽃 신자들이
일개미와 땅강아지와 배추흰나비와
저 들녘의 물안개와 아지랑이와 보리밭과 함께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흙바닥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을 켜고
저마다 고개 숙여 기도드립니다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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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여왕이자 상당한 미인이었던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만나 사랑에 빠진 푸시킨은 격렬한 구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는데 이를 두고 서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없는 자가 어찌 시인이 될 수 있으랴. 그것은 거두어질수 없는 어리석음인 동시에 순수함의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 '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따라 걸었다' 중에서>
순수함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 시인이라는 표현이 딱 정호승 시인에게 어울리는 거 같았다. 길가에서 쉽게 눈에 띄는 꽃들의 아름다움을 제처두고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것들을 관찰하며 시구를 떠올린 그의 순박함과 어리석음에 그가 꼭 시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참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시집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읽긴 했지만, 여전히 내게 시는 어렵다. 얼마 전 개편된 비밀 독서단에 빨간 책방의 이동진 씨가 나왔다. 소개하는 시집 제목은 잊어버렸지만 그 시집에 담긴 의미를 풀어내는 모습에 참 부러운 시선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얼마나 더 깊이 읽으며 느끼고 생각해야지만이 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무언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암호처럼 던져진 시구들을 만날 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구를 만날 때 절망과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회오리친다.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오겠지...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