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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평점 :
뭐. 내가 한국 사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또 마스다 미리가 일본 사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가 느낀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 사람의 '정서적'인 측면을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음.. 거창해지는 말투는 뭐지?)
사노 요코 할머니의 '사는게 뭐라고'에 보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부분이 잠시 언급되는데 그때 한국 드라마의 특징은 '정(情)'이라고 했다. 정에 얽매여 벌어지는 각양각색 요소들이 사건을 만들고 결국 정에 호소하여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에 도달한다던 글을 읽으며 그때까지도 일본인들의 정서적인 측면이 우리와 다를 거라는 생각을 크게 해보진 못했다. 그런데 마스다 미리의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읽으며 나는 의아스런 부분을 보게 되었다.
마스다 미리가 처음 작가를 결심하고 집을 떠나 홀로 도쿄로 가기 위해 가족에게 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버지에게 알리던 장면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 아버지 - 너 도쿄 간다며?( 아버지가 절대로 반대하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젊을 때 뭐든 해보는 게 좋지. ('이해심 많은 아버지'로 내게 호감을 사고 싶은 것이 뻔히 보입니다.)
마스다 - 칫. (외로우면서.)
우리나라에선 자식이 멀리 떨어져 생활하게 된다면 일단은 집에서 생활 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곤 한다. 그러다 정 되지 않을때는 열심히 하라 다독이며 용기를 주시곤 한다.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그런 것이라고 느끼고 배운 삶이기 때문에. 그런데 마스다 미리의 아버지는 만류보다는 도리어 용기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런 모습이 뭉클하게 느껴졌는데 도리어 마스다 미리는 호감을 사려는 모습으로 이해하는 부분에서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 대해 후에 이웃님과 이야기 나눌 일이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본심을 숨기며 다독이는 모습을 아마도 마스다 미리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듯 싶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후 만화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마스다 미리의 간결한 만화는 글과 그림이 상호작용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주인공 캐릭터의 표정이 항상 무표정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감정의 곡선, 사건의 복선에 대한 윤곽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느낀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글로 풀어낼 수 없는 감정선을 깨알스러운 디테일(굵은 선, 화려한 표정 변화)로 만나게 되는데 이 만화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에선 적재적소에 나왔을 표정들, 말투, 상상케하는 효과음들이 모두 배제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마스다 미리의 성격을 짐작게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타인의 이야기인 듯 담담하게 담아 감정선을 크게 노출시키지 않고, 그림과 글을 상호작용시킴으로써 과하거나 부족하게 내비치지 않는 스타일. 그게 바로 마스다 미리의 성격이자 일본인들의 한 정서적인 측면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한국인의 정서에 푹 빠져 지내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책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싶다. 그러나 일본 음식인 오니기리처럼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만한 작품이다. 작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책에서 생뚱 맞게 정서적인 이야기를 해버렸지만, 그간 일본 영화나 만화책을 보면서 느꼈던 생소한 감정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는 생각이들고, 마스다 미리가 어린 시절부터 노트에 기록하기를 좋아하고, 기록한 내용을 자주 들춰보며 생각하기를 좋아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꾸준한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느껴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