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을 구입해 읽는 행복한 생각만 했더랬다. 도서관에서 없는 책들을 주로 구입하기도 했고,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장르에 따라 구입하곤 했다. 그렇게 쌓여가는 책장을 볼때면 묘한 행복함과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몇달전부터 심각하게 책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듣게 된 팟캐스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책은 소장한 사람만이 그 가치를 알뿐. 주위의 누구도 그 책의 가치를 알 수 없는 노릇이라는 말. 그래서 장서가 가 죽을 경우 책을 좋아하지 않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책을 모두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한편으로 충격적이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동선에 따라 놓여있는 책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권씩 얽힌 추억들이 떠올랐다. 어렵게 발품을 팔아서 구하던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고 좋아서 구입하던 때, 다른 분의 추천을 받아 읽고 흥분하던 때, 뒷이야기가 궁금해 잠자는 것도 잊은 채 파고들던때,, 저마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책들.
' 책은 촉각의 차원에서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물건이다. 세라 넬슨은 회고록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에서 자신은 책 읽은 장소들을 다 기억하며 책을 손에 쥘 때마다 그때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책의 냄새도 기억을 소환한다, 자신이 소유한책, 오랫동안 알아온 책, 잉크 얼룩과 접힌 자국 같은 내부 지형도가 너무나 익숙한 책, 차 한잔과 버터바른 머핀을 먹으며 읽느라 묻힌 얼룩을 손으로 쓸어볼 수 있는 그런 책들이 더 잘 읽힌다"p261
이번에 읽은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에는 헌책방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문의를 하거나, 책을 핑계로 상담을 받거나 자신에게 필요없는 책을 책방에 떠넘기려 하거나, 책은 단 한 권도 사지 않으면서도 커피와 머핀을 먹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건 가족과 이별한 사람들이 책을 정리하기위해 책방에 들러 그 추억과 아픔을 토로하던 장면이었다. 몇달동안 혼자하던 막연한 생각들이 글로 만나니 머리속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을 죽음으로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남겨진 이들이 가져오는 상자는 많은 것을 드러내 보여준다...... 어느 날 아침, 남자 둘이 늙으신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갔다며 어머니의 책 여덟 자루를 지고 와 던져놓고 갔다. " 저희는 책을 거의 안 읽지만, 그렇다고 이걸 동네 쓰레기장에 던져 버릴 수는 없잖아요" 형제 중 하나가 말했다. " 여기 가져오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 여덟 개의 자루는 사랑 넘치고 충만했던 한 삶을 증거하고 있었다. 허브와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 요리책 몇 권, 베이킹 책 컬렉션. 가장자리에 깨알같이 메모를 써넣은, 적은 돈으로 집을 꾸미는 법에 관한 낡은 양장본 한 권, 아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키우는 법에 대한 제임스 돕슨Dames Dobson의 책 한 권. 에로틱 소설- 할리퀸 소설이 아니다,<<패니 힐Fanny Hill>> 수준의 명작이다- 두 권, 아동 교육서인 '리틀 골든 북 시리즈'와 낡아서 다 떨어진 1995년판 ' 차일드크래프트 아동용 북 시리즈 백과사전' 한 질(아들들이 어쩌다 독서를 기피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책이 풍성한 환경을 제공해준 것만은 확실하다!),<<관절염과 민간요법>>,<<관절염 퇴치하기>,<관절염 다스리며 살아가기>, 노화를 소재로 한 유머러스한 크리스천 포케북 몇 권, 거의 손도 안 댄 듯한, 노인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업치료에 관한 책 네 권, 그리고 아직 비닐을 뜯지도 않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페이퍼백 한 권, 어머니의 일생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슴 먹먹한 순간이었다.p170~172
'사람들은 이별의 아픔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달랜다. 이종간의 결혼(애서가와 비非서가의 결혼)의 경우, 남겨진 비서가가 사별한 배우자의 장서 전체를 헌책방에 가져와 기증하는 일이 종종 있다. 슬픔이 너무 깊으면, 장례식과 함께 모든 것을 정리해버리고 싶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수레를 끌고 온 남자는 시선을 땅에 박은 채 고개를 저으며 묵묵히 상자를 책방 바닥에 쌓았다. 야구모자 챙이 그늘을 드리워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내가 죽어서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내의 책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p172
나에겐 각별하고 애뜻한 추억이 있는 책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슬픔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는게 남겨진 가족들과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를 두고 책을 다 읽은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도 작은 헌책방을 열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교환해주거나 저렴하게 판매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북크로싱도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아직까지 희미한 생각들만 가득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거듭되다보면 언젠가 확실한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