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의도치 않게 1日1讀 하고 있다. 얼떨결에 한 주 그렇게 보냈더니 이젠 계속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빠져 진행 중에 있다. 이럴 때 가장 힘든 책은 두껍고 읽기 어려운 책도 있지만, 사실 그런 책보다 문장마다 오감을 깨우는 책이 내겐 더 어렵고 힘든 책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옷을 빨기 위해 세탁망에 옷을 분리해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세탁기 전원선을 꼽아 버튼을 누르니 1시간 5분이라는 알림창이 떴다. 나는 건조대에 있던 솜이불과 옷가지를 정리하여 안방으로 들여와 후다닥 정리하며 꼬들꼬들하게 말려진 옷감의 감촉에 개운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서둘러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읽던 장면은 ' 귤착즙기' 사건이 한참 진행 중이였다. 내용인즉 예전에 사노요코가 친구에게 선물받은 귤착즙기를 유용하게 잘 사용했는데 작업실에 두고 오는 바람에 집에 없어 아쉬워하던 참이였다. 때마침 이사를 한 사노요코에게 친구가 필요한 물건이 없는지 물었기에 망설임없이 귤착즙기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배송 받던 날, 기분이 좋은 사노요코는 귤착즙기를 놓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똑같은 귤착즙기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사노요코는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며 치매가 아닐까싶은 걱정스런 마음에 울고 싶다 토로하는 장면이였고 나는 깔깔거리며 읽고 있었다. 그때 마침 세탁기에서 촥~하고 물빠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 머리에서는 느닷없이 세제가 떠올랐다.

 

'세제' 갑자기 떠오른 단어에 후다닥 세탁기로 달려갔더니 남은시간 20분. 나는 40분 가량 세제없이 돌렸던 것이다. 내 머리카락도 사노요코 처럼 쭈뼛 쭈뼛 거리기 시작하며 울고 싶었다. 도대체 사노요코와 다른게 뭐냐며 묻고 싶었다. 인상 좋은 사노요코의 사진이 나를 비웃고 있는것만 같았다. 또는 사노요코가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면 내 머리속은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던 '고등어 조림'이 두둥실 떠올라 책 읽기가 어려운 시간도 있었다.

 

' 나는 원래 꽁치 영양밥을 아버지 고향의 조리법대로 만든다. 생물 꽁치와 마늘잎을 넣고 밥을 짓는 게 다인 요리다. 밥은 간장이 들어가 갈색이 감돌고, 갓 지은 후 꽁치 머리를 들면 살과 내장이 깨끗하게 떨어진다. 머리와 꼬리 사이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꽁치 뼈.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꽁치 머리와 꼬리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릴 때마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엄마는 내장을 깜싼 잔뼈를 젓가락으로 발라냈다. 그 시절 이후 나는 마늘잎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엄마가 해준 고등어 조림을 무척 좋아한다. 시장에서 갓 사온 싱싱한 고등어 한 손을 큼지막한 무와 감자를 넣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양파, 간장을 넣은 후 30~40분 조리면 얼큰하면서도 고등어의 기름진 맛이 일품인 고등어 조림이 된다. 

 

친정과 떨어진곳으로 이사를 와서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고등어 조림' 이였다. 엄마가 해준 그 맛은 이렇게 찬 바람이 살랑 살랑 불때 뜨끈한 국물과 기름진 고등어 살을 발라 입안 가득 넣고 오물 거려야 제맛이던 기억이 났다. 거기다 뜨거울때 먹어야 맛있다며 큼지막한 감자를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시던 그 손길과 양념을 한껏 머금은 뜨거운 감자를 젓가락으로 쪼개 후~후 불어가며 입에 넣던 그 맛이 너무 그리워 진다.

 

하지만 고등어를 사다가 집에서 하면 엄마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고등어의 기름진 맛을 느낄 수 없다. 사노요코의 책을 읽으며 집에서 번번히 실패하던때가 떠올랐다. 엄마의 아련한 맛이 떠올랐다. 아니 그리움이 생겨났다고 해야할까. 사노요코의 책은 이렇다. 문장마다 생각들이 떠올라 읽기 어렵게 만든다. 사문난독. 정말 사문난독한 책 읽는 시간이였고 즐거웠다. 작가라고 하면 왠지 나와는 다른 세상과 시선을 갖고 살아가리라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친근하게 살갑게 사셨는지. 마치 옆집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것 처럼 좋았다. 드라마를 좋아하고, 치매가 아닐까 좌불안석한 생활을 하면서 실제 치매가 걸린 엄마를 뭉클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들이 따뜻하게 전달된 시간이였다. 조금 더 빨리 그녀를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가 살아있을때 알았더라면 큰 용기를 내서 팬레터라도 한 장 써보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한국말로! 이 책을 선물 받아서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읽었던거 같다. 이렇게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님은 분명  자자손손 큰 복을 받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정말 행복한 읽기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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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19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잖아요. ^^
정신줄 놓고 우왕좌왕 하는 날이 이제
너무 잦아서 원래 안그랬는데..를 버리기로 합니다.
아무래도 스마트 폰 의영향이지 하면서..이젠 집 나가며
열쇠를 잊곤합니다..이런 덴장. ..ㅎㅎㅎ

해피북 2015-10-19 21:30   좋아요 1 | URL
ㅋㅂㅋ 웃으면 안되는데 ㅎㅎ 요즘들어 자꾸 깜박거리는게 심해진거 같아요. 은근 걱정하고 있었는데 사노요코를 보면서 위안과 즐거움을 느꼈답니다. 그장소님 말씀처럼 멋지기도 했구요 ㅋㅂㅋ

살리미 2015-10-19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급..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졌어요^^ 전 이 책에서 한국 드라마 설명하는 장면이 너무 재밌었어요. ㅋㅋ

해피북 2015-10-19 21:32   좋아요 1 | URL
그쵸 그쵸. 저 오늘 먹었어요 ㅋㅂㅋ 그렇지만 역시 제가 만든건 맛이 없어서 아쉽더라구요 ㅋ 저두 용사마에게 빠지던 사노요코를 큽큭 거리여 봤어요ㅎ 역시 유쾌한 할머니 같았어요 으흐흣^~^

지금행복하자 2015-10-1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풋마늘 엄청 올리고 고등어 조림해도 맛있는데... 고등어 기름맛이 오른 마늘잎이 제법 달큰해요~
얼려두었던 마늘쫑으로 고등어조림해도 맛있어요~~
방금 밥 먹어서 배부른데 또 먹고싶어졌어요~~ ㅎㅎㅎ

[그장소] 2015-10-19 23:01   좋아요 0 | URL
아...해먹어야겠죠? 고등어 조림..안질리는 음식!!!

해피북 2015-10-20 07:18   좋아요 1 | URL
앗! 이런 레시피 너무 좋아요 ㅎㅎ 그동안 무와 감자만 했는데 마늘쫑도 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지금 행복하자님 ㅋㅂㅋ

해피북 2015-10-20 07:19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그쵸 고등어조림은 자꾸 먹어도 크게 질리지 않는거 같아요 특히 이맘때는 더 그리운 맛 같아요 ㅋㅂㅋ

[그장소] 2015-10-20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북 님 꽁치도..묶은지에..고등어도..잘어울려요.ㅎㅎ

해피북 2015-10-20 07:23   좋아요 1 | URL
으흐흣 그쵸. 어제 저녁에 고등어조림 먹었는데 신랑이 묵은지 안넣었다가 투덜거렸어요. 역시 묵은지 고등어조림도 짱 좋죠? 아 배고프네요 ㅋㅂㅋ 아침 식사 맛있게하세요 그장소님^~^

[그장소] 2015-10-20 07:24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도요^^ 좋은 아침!

해피북 2015-10-20 07:25   좋아요 1 | URL
넵^~^ㅋㅋㅋ

보슬비 2015-10-2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고등어 조림하니깐 떠오르는것이 엄마보다 동생이예요. ㅋㅋㅋㅋㅋ
사실 저희 엄마 요리 솜씨가 별로고 동생이 잘하거든요. 엄마도 동생에게 얻어 먹는다는....^^

저도 몇번 생선조림을 했는데, 이상하게 비린맛을 못 잡겠더라구요.
동생은 쉽다고, 막 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냥 생선 조림은 동생에게 얻어먹고 있어요.
대신 저는 고기 요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