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랑이 자주 신는 신발은 세켤레.
운동화 하나, 구두 하나, 슬립온 하나.
결혼 초엔 운동화 한 켤레로 인생을 즐기는 모습에 소박함을 느껴
쇼핑몰에서 나름 엄선해본 신발을 들이밀며 개중 마음에 드는게 어떤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단박에 '필요 없어'라는 대답이 날아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자신은 운동화 있는데 왜 사야하느냐고.
결혼 초엔 쇼핑을 나갈때 마다 실랑이 벌이는게 일이 되어버렸던 적도 있다.
신랑왈 집에 바지도 있고, 티도 있는데 왜 또 사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말끝마다 붙는 말은 '누가 본다고' 였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하루 삼시 세끼를 먹잖아.
밥상에 놓이는 밥은 똑같을지라도 어떤날은 된장찌개. 어떤날은 김치찌개.
어떤날은 부대찌개를 먹고 싶고 그렇게 먹은날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지?
마찮가지야. 오빠라는 사람은 매일 똑같은 모습이지만,
어떤날은 젠틀하게 어떤날은 유니크하게 스스로 즐기고 행복함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다는데 왜 매일 같은 모습으로만 지낼려고해? '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예전엔 아침에 준비해 놓은 옷을 말없이 입고 출근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 바쁜 출근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옷이 아니면 당장에 옷을 찾는다.
그중에서 특히 난감할 때는 면바지를 찾는 날이다.
세탁 후 다림질을 해 놓아야하는데 덥다는 핑계로
잠시 미뤄둔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찾아대기 때문에...
이걸 좋다고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난감한 지고!!
마다스 미리의 책 <내 누나>를 읽다보니 이런 대목이 있었다.
쇼핑에서 돌아온 누나가 사가지고 온 옷과 어울리는 옷이 집에 없어 투정을 부리자
저렇게 많은 옷을 두고도 옷이 없다고 하는 누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네일아트를 하고
온 날이면 온종일 쇼파에 앉아 예쁜 손톱만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나, 읽지도 않을
책을 사들이고, 스트레칭 책을 따라하는 것은 한 번 뿐이고. 다이어트, 영어 공부, 핀란드 여행은 모두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일관성이 없이 이야기하는 누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동생.
그러나 남동생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는
그런 행동속에 누나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기준'이 있다는 사실이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옷을 가지고 있어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옷은 입을 수 없고,
매일 들여다 보는 손톱이 알록 달록 예쁘게 꾸며져 있을땐 스스로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하지만 난 아직 네일아트를 해보지 않았다는!)
한 번뿐인 스트레칭으로도 건강해진 느낌이들며,
읽지 않을 책을 사고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이나
핀란드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결심 만으로도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행복에 있어 옳고 그른것의 정해진 기준이 무엇이랴.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마음껏 느끼고 살아가면 그뿐이지 않을까.
모두 무계획적이고 공수표일 뿐이고, 남이 알아주는 일이 아닐지라도
자기 '만족'과 자기 '행복'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데?
누나 : 없어, 없었어.
남동생 : 뭐가?
누나 : 아까 사온 티셔츠에 어울리는 바지가 없어.
남동생 : 바지 많잖아.
누나 : 많지만 아무것도 없어.
남동생 : 동화책 제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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