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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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잘나가던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세계 일주를 떠나 자신의 꿈을 실현한 한비야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푸른숲.2007)이나, 인기 아나운서의 자리를 박차고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정열의 도시 스페인으로 떠나 꿈을 펼친 손미나님 (『스페인, 너는 자유다』웅진지식하우스.2006)이나, 히말라야 트레킹 중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을 보고 도서관과 학교를 짓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꿈을 실현한 존우드님 (『히말라야 도서관』세종서적.2008) 까지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의 꿈을 향해 사표를 던졌고 여행을 떠났고, 꿈을 실현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인거 같다.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져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계획하고 움직이고 삶을 조율하는 일들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때론 질주하던 삶을 멈춰 뒤돌아보게 할 수 있는 힘, 또는 잠들었던 꿈을 계획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이 '여행'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챈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크눌프'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헤르만 헤세일 것이다.

 

 

 

첫사랑을 위해 계획했던 수많은 일들이 좌절되며 생애 첫 실패를 경험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한 생의 계획들은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크눌프가 온전히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방랑의 길에 들어선 이야기는 어찌 보면 헤르만 헤세가 일찍이 느낀 삶의 통찰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보통 삶의 기준을 내가 아닌 가족(외부)을 위해 세우고 예기치 못한 삶의 변수들에 고통이 되는 것은  삶의 기준이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가족들이 각자의 길로 찾아가고 온전히 '자신(내면)'과 마주할 때 겪게 되는 삶의 허무함 내지 우울감은 결국  삶이 온전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누구를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계획할 때 비로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를 통해 들려주는 것이다.

 

 

' 아버지는 그의 자식에게 코와 두 눈과 심지어 이성까지도 물려줄 수 있지만 영혼은 아니야. 영혼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새롭게 존재하는 것이지.p80

 

 

'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지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p79

 

 

헤르만 헤세는 다시 한번 에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온전하지 않을 때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한때 크눌프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나누던 친구인 에밀은 궂은 날씨에 병든 몸을 의탁하러 찾아온 크눌프를 보며 가여움의 시선을 보낸다. 크눌프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익히 알고 있기에 안주(安住)하는 삶을 권하며 에밀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 자네는 지금 다락방의 차가운 견습공 침대에 올라야해. 때로는 더 험한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도 있겠고, 어떤 때는 그조차도 아예 없어서 건초더미에서 자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집과 가게가 있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네. 이보게, 자네도 마음만 먹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장인이 되었을 테고 나보다 훨씬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야'p16

' 주인은 수다스럽게 자신이 가정적인 사람이며, 장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떠벌렸다. 그는 손님을 놀려대고 나서, 끝없는 방랑과 무위 도식을 이제는 그만둘 때라고 다시금 진지하게 충고했다'p22

 

 

무두장이라는 안정된 직업과,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에밀은 삶의 행복이 '직업'과 '아내' 그리고 '가정'에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헤르만 헤세가 느끼기에 이 행복의 가치는 지극히 위험스러웠다. 내면에서 찾지 못한 행복의 가치는 다양한 삶의 변수에 쉽게 무너져 내리고 이내 고통이 되어버린다는 것인데, 이는 아내 리스를 통해 드러났다. 크눌프의 핸섬한 모습과 매너좋고 아름다운 손을 본 순간 거칠고 투박스런 에밀의 손을 떠올리며 그를 멸시하기에 이르고 이내 크눌프를 유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에밀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게 된다면 어떤 '행복'도 완벽하거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 예절 바르고 근사한 크눌프 옆에 있으니 투박해 보이기만 하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그녀는 화가 났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대접함으로써 손님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표시했다'p22

' 그녀는 그의 감긴 두 눈 위로 매력적이고 밝은 이마 위에 그려진 짙은 눈썹과 좁지만 갈색을 띤 뺨, 매력적인 선홍색 입술과 갸름한 목을 바라보았다. 모든 게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p19

 

 

소설에서는 방랑가적 삶과 안주하는 삶이라는 두 가지 소재로 이야기 했지만, 우리의

 

삶은 이보다 다채롭고 다양한 문제들로 변주되며 삶의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생성된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때론 우습꽝스럽거나 비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삶이

 

야말로 온전한 '나를 위한 삶'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야 말로 잠시 반짝이는 빛과도 같은

 

소멸될 인생에서 살아가야 할 길이라는 사실을 헤르만 헤세는 '크눌프'를 통해 들려준

 

것이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샤이블레. 하느님은 아마 날더러 너는 왜 판사가 되지 않았느냐?

 

 하고 묻지는 않으실 거야. 아마도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네가 다시 왔구나, 이

 

 철부지야? ' p127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을 받았고 또 네 안

 

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 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p134

 

 

 

 

헤르만 헤세는 어느 인생이든 의미가 있으며 그 삶은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이야

 

기한다. 세상의 어떤 삶도 보잘것없거나, 하찮을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니 용기내

 

보자고 내면에 속삭이는 삶을 더 살뜰히 들여다보고 가꾸고 나아가보자고 이야기 하고

 

싶다. 더불어 헤르만 헤세의 말을 빌어 '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

 

람이 그의 세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있

 

다'는 말을 우리 사회가 들어주길 바래본다. 우리의 내면에서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삶을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유용한 사회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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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수레바퀴 아래서 읽은 경력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지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해피북 2015-01-13 17:12   좋아요 0 | URL
저는 수레바퀴 아래서 읽어보려고 준비해뒀는데 ㅎㅎ 수레바퀴 아래서 보다 더 얇고 (145페이지) 내용도 깊지 않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더라구요 ㅎㅎ 어떤 분의 말씀에 의하면 헤르만 헤세의 책중에 가장 무난하게 읽힌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저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처음인지라 무튼 좋았습니다^^ 읽게 되시면 소문내주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수이 2015-01-14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눌프? 저 처음 들어봐요. 수레바퀴 아래서_ 읽은 사람 맞나 부끄럽네요;; 저도 슬렁슬렁 세계문학전집 읽기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읽는 책은 언제 다 읽을지 ㅠㅠ

해피북 2015-01-14 16:51   좋아요 0 | URL
ㅎ 저두 책 읽을때마다 고민스러워요 문학전집두 읽구싶고 역사 미술 산문등등 어느걸 먼저 읽어야하나 막 고민스럽구요 ㅎ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아래서를 많은분들이 읽으신거 같아요 데미안 이후의 대표소설인가 봐요 저두 훗딱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