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
이언 매큐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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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넷>보고서 머리 회선이 꼬인 듯한 기분이 들던데 <검은 개>도 다르지 않았다. 심오하고, 근원적 주제를 건드리면서도 시대의 역사와 정치를 이야기하는 이언 메큐언....이분은 글쓰는 업이 아니라 어떤 업을 택했어도 집요하게 꼭대기에 올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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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인생독법
조용헌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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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 동양학자." 이색적인 이름이다. [인생독법] 책날개에서 작가 조용헌을 소개하는 단어인데, 오직 그에게만 붙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헌은 어렸을 때부터  "~사"는 "~사"인데, "도사"를 꿈꿔왔다 한다. 불교학을 선택했던 이유도 그 꿈에 근접시켜줄 것 같아서였다 하고(그는 불교민속학 박사이다)... 어린 시절 꿈을 따르듯, 그는 "강호江湖," 그것도 한국 땅만으로 부족해서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특별한 공간들을 방문해왔다. 그렇게 반편생을 살아 이제 인생의 가을에 온 그가, [인생독법]에서 잘 사는 법을 들려준다. 



조용헌의 글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읽어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와 작용을 믿고 경험해보았으며, 거기서 배웠다. 나는 넓디넓은 "강호"는 커녕, 시멘트로 지어진 집 밖으로도 잘 안나가면서(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더욱), 조용헌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발냄새, 땀냄새 나는" 그의 글에서 크게 배운다. [인생독법]에서 새롭게 배운 점, 아니 부러워한 점은 그의 소신이다. 


그는 자신을 386세대이며, 한국의 386세대들이 그러하듯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았"다 한다. 그의 시원한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본다. 


"나는 386세대에 해당한다. 이 세대의 특징은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강물이나 호수의 물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적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물은 알고보면 표피만 적신다. 피부만 적실뿐인지 몸속까지 뼛속까지 그 물이 적실 수는 없다. 비록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기는 하였지만, 나의 근육과 뼛속까지 와 닿은 것은 전통 사상인 유, 불 선이었다. " [인생독법] 11쪽 


인생에 대해서, 더군다나 인생을 읽는 법,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조용헌은 시종일관 같은 심지에서 나온 불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뜨겁게 전달력이 있고, 읽는 이는 감화시킨다. 한 마디로 여러 노선 갈아타지 않고 시종일관이 있기에 힘이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현재에는. 많이 부족하다. 


내게 익숙한 언어와 틀거리는 사회과학이지만,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그 세계의 언어로 알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다시 진자는 돌아와, 익숙한 단어들을 버무려 세상을 보려한다. 충분치 않다. 진자가 다시 움직인다. 다른 세계에도 손 뻗어보고 싶다. 하지만 머리만 차가워서 그 언어 또한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 한 심지에서 타는 불이 아니다. 그래서 약하다. 팔레트를 여러개 들었다 해서, 명화가 나오겠는가. 내게 딱 맞는 팔레트를 찾아야지, 색만 섞는다고 그림이 나오겠는가. 왜 그 질문이 중요하고,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뜨거움이 있기나 한건지 고민해야지.


[조용헌의 인생독법]은 한 심지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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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숲 모기만 아니라면, 저도 여름 불볕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숲에서 책 읽을 수 있는데요.

숨 다운 숨 쉬러도 가고, 걸으러도 가고 요새 숲을 많이 찾았습니다.


우연히 "생명의 숲"에서 진행중인 연구, 인터뷰이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1시간 진행될 인터뷰가 비대면일지가 궁금하네요. 뜻 있으신 분들 한 번 살펴보세요^^


https://forest.or.kr/programs/289?utm_source=stibee&utm_medium=email&utm_campaign=news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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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 세계를 경악시킨 체르노빌 재앙의 진실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안혜림 옮김 / 브레인스토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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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읽을 때도 혼자만의 공간에 있었다. 새벽이었는데 슬픔과 공포에 가슴이 뻐근해져서 쉬면서 읽었다. 스티븐 킹의 소설도 아니건만, 척추를 마비시킬 것 처럼 공포스러울 수가. [체르노빌 01:23:40]  역시 공교롭게도 혼자만의 공간에서 읽었다. 생명을 잃어가는 많은 사람들, 숭고하게 희생한 사람들 때문에 마찬가지로 뻐근했다. 단지 글로만 읽어도 이렇게 압도되는데, 직접 사고의 현장을 찾았던 앤드류 레더바로우 Andrew Leatherbarrow는 어땠을까.



작가, 앤드류 레더바로우에 대해서는 [체르노빌 01:23:40]에서 주운 부스러기 단서 밖에는 모른다. 그는 마인크래프트 등 온라인 게임을 짬짬히 하면서 웹 서칭 "덕질" 탑 클래스에 속하는 것 같다. 대학(2005년 입학)졸업 후, 몇 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생활도 했던 것 같다. 평소에도 [I Am Legend](2007)의 한 장면처럼, 인류가 멸망하고 혼자 지구에 남아 자유롭게 활보하는 상상을 많이 해봤다니, 독특한 면도 있다. 그는 (은행 잔고가 없는 무직 청년이었기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체르노빌 존(zone)을 도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물론 여행 떠나기 전에도 체르노빌 재앙을 많이 공부해둔 저자였지만, 여행 중에 크나큰 각성을 했던 것 같다. '여행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이제 내 삶이 달라질 것'이라는 자기 예언을 계속 한다. 실제 그의 행보는 달라졌다. 그는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했던 약속을 지켜, 책을 출간했으니 그 제목이[체르노빌 01:23:40]이다. 또한 그는 HBO TV 드라마 <체르노빌>의 촬영 자문도 맡았다. 실제 이 드라마가 대성공을 거두자 2019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그로이스만 총리가 청산인(Liquidator)로 일했던 사람들의 퇴직 연금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한다. 저자는 체르노빌을 여행하며 품었던 마음의 빚을 작게나마 갚고 있는 것 같았다. 



 [체르노빌 01:23:40]은1986년 4월 46일 체르노빌 핵 발전소 폭발을 둘러싼 전개를 한 축으로, 저자 자신이 2011년 체르노빌 참사 지역 여행에 다녀온 이야기를 또 다른 축으로 교차해가며 전개된다. 저자는 체르노빌 대참사을 공부하며 읽은 자료들이 너무 어렵거나 편파적이어서 직접 쓰기로 했다한다. 하지만, 덕질 취미라고 하기 무색할 수준의 전문성을 보인다. 도대체 저자는 원자로 설계도 등 참고자료들을 어디서 다 구했고, 러시아 어를 모르는 영국인인데 그 많은 문헌과 인터뷰 자료를 어떻게 다 해독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첫째 정부는 "원자로 운전원의 실수나 무책임" 등 개인 차원으로 책임을 돌리려 노력해왔으나,  명백히 구조적- 즉, 원자로 설계 자체- 문제 였다는 점이다. 


둘째, 체르노빌 대참사가 아포칼립스가 되지 않도록 막은 데는 숱한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이 따랐음을 저자는 잠시도 잊지 않는다. 화재 당일 진압에 나섰던 소방관들은 물론, 제대로 분류도 안되고 보상도 못받은 청산인들, 그리고 이후로도 방사선 노출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 독자는 숙연해진다.



내가 이 책에서 감명받은 점은


한 젊은이가 순순히 어떤 이슈가 궁금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파헤쳐 들어갔을 때, 그 어떤 명망 높은 학자나 전문가의 설명보다 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체르노빌을 여행했던 2011년에는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중간중간 일본 정부, 도쿄 전력회사를 비판하는 문구를흘려 놓았다. 앤드류 레더바로우가 현재 집필중인 책이 바로 이 동일본 대지진 관련된 것이라니 차기작도 꼭 읽어보아야 겠다. 


<TENET>에 구소련의 옛 비밀 핵실험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체르노빌 01:23:40]의 1장 "원자력 발전의 역사"파트를 읽다보니, Kyshtym 참사 등 기밀로 유지되던 참사들이 실제 있었고 오랜동안 은폐되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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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염병이 휩쓴 세계사] 덕분에, 역사학 세부 분야 중에서도 의학사, 그 중에서도 질병사가 현재 코로나 사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한 마디로, 좀 더 읽어봐야겠다는 부담감이 확 왔다. 저자 김서형의 박사 논문뿐 아니라 '전염병'을 주제로 한 거의 모든 책에서 "1918년 인플루엔자'가 빠지지 않기에 이왕이면 이 시기를 포함한 자료를 찾았다. 그 제목이 [세균의 복음]인데, 원어는 말 그대로 "The Gospel of Germs"이다. 




저자 낸시 톰스는 "질병세균설 the germ theory"의 대중화가 이뤄진 문화적 맥락과 역사적 특수성에 관심을 둔 역사가이다. 그녀는 젊은 후학들에게 더 나아간 비교연구 작업을 부탁하고 본인은, 계속 주력해온 미국의학사 중에서도 "1870~1930년대"에 집중해 글을 썼다. 질병에 대한 믿음이 미국인들의 의식과 실천을 집합척 차원에서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중심 질문으로 삼아서. 물론 "집합적"의식화의 탐색이지만, 일반화를 경계하고 미국 특유의 이질성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아직 이 두꺼운 책의 1/10 정도 분량인 서문까지만 읽었을 뿐이다.



CC0



사실, 최근 내 독서 계획은 온통 코로나 펜데믹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인데 부끄럽게도 나는 "전염병," "감염병"을 어떤 맥락에서 쓰는지, 교차적으로 쓸 수 있는 용어인지 잘 모른다. 매번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전염병'이라 했어야하나? '감염병?" 이 수준의 고민을 해왔다. 자칫 이 분야 전문가들은 동의하고 쓰고 있는 용어를 제 멋대로 교차해 리뷰 쓰다가 본문의 좋은 내용을 오염시킬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세균의 복음] 서문의 마지막 문단에서 굉장히 반가운 문장을 만났기에 책 읽다 말고 옮겨놓는다.



'감염 infectious'는 그들 사이에 실질적인 접촉 없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병을 뜻한다 반대로 '전염병 contagious'은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 전해진다...그러나 실제로 사용될 때 이러한 용어는 그 구분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나의 연구 대상 시기에 의료 당국은 흔히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데 정확성이 떨어졌다. 특히 감염병과 전염병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1866년 <미국 의사협회 회보>에서 한 의사는 그 점에 불만을 드러냈다. "유행병, 전염, 감염, 이 세가지 명칭은 빈번하게 조사원을 혼동하게 만든다. 그 경계선은 equator보다 더 공상적인 것 같다." 나는 감염과 전염이 엄밀히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적도 무시하기 ignoring equator'를 선택하고 이 책에서는 그 용어를 호환해서 쓰겠다." (낸시 톰스 2019:60)



[세균의 복음] 및 다른 책들을 더 읽어가면서 "감염"  / "전염" 용어에 대한 생각도 정리해가봐야겠다. 일단, 좀 몰라서 두 용어를 교차해 쓰는 데 대한 부끄러움은 낸시 톰스 박사의 서문을 읽고 좀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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