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씁쓸한 연말의 비결은?

계획단계부터 엉성하게, 그러면 덜 가혹해질 연말 평가. 아직 "2023년"이 입에 붙지도 않았는데 2024년 달력이 나왔냐고 자조하는 지인과 함께 웃었다. 나도 2023년 1월 1일이 곧 온다고 착각하니까. 그렇게 뇌를 속여봐야 뭐하니? 2024년이 3주 앞이다.


뚜렷한 발자국 못 남기는 2023년, 12월에라도 분발해야 하는데 자꾸 책에 손이 간다. 그것도 고구마 줄기 캐듯 한번 쥐면 놓기 싫은 주제 독서! '법의학'과 '법의인류학'을 두 주일째 파고 있다. 이 분야는 언제 읽어도 짜릿하다.


피, 뼈, 시신, 부패, 시취......


현실에서는 이런 단어조차 입에 못 올릴 겁많은 내가 활자화된 죽음 이야기엔 용감하게 다가간다. 아마도 죽음 그 자체보다도 인간이 죽은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매혹되는 것 같다. 생명이 꺼진 다른 인간 몸을 내려다보는 인간에게서 원초적 감정은 유예되고 대신 '직업적 훈련'이 조련해낸 전문가적 냉철함이 유지되는 점은 (법의학 모르는 일반인 눈에) 참 신기하다.

궁금하다.

법의학자 리처드 셰퍼드의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나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의 [뼈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죽음에 대한 초연한 태도는 직업적 에토스인지, 영국이라는 맥락과 관련된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또한 두 책에서 언급되는 범죄 사례에 가족간 살해가 많이 등장하는 양상이 영국적인 것인지도 궁금하다.

적어도 리처드 셰퍼드 박사에 따르면 "의도된 죽음"의 양상(사인, 가해-피해자 관계 양상 등)에는 연령대, 즉 삶의 단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는 가정폭력, 젊은 날에는 연인이나 친구, 중년기에는 술 등 중독 행위 혹은 부부갈등 등 가족문제, 노년기에는 사소한 이벤트의 나비효과가 죽음으로 치달는 경우 등....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가 인생 주기를 7단계로 나누어 연령대별 사인을 주요 사례와 함께 소개하는 데 치중한 반면 [뼈의 증언]은 뼈 부위별로 각 뼈의 생김새나 특징, 각 부위 뼈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 중심으로 엮었다. 재미있어서, [서울의 봄] 상영전 15분이나 계속되는 광고 시간에도 극장 좌석에서 [뼈의 증언] 책장을 넘겼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헌신하시는 프로페셔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런데 [서울의 봄]에서도 언급했지만 왜 그렇게 대한민국엔 "똥별"들이 많았나!)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23-12-1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어느새 2023년도 다 가 버리고
이제 20일 정도 남았나요?

새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또 램프의 요정
에서는 고놈의 천원을 자꾸만 줘서 책 사라
는 유혹을... 여튼 어제는 이번에 새로 나온
새 번역의 <율리시즈>를 사서 읽기 시작했
답니다. 과연 다 읽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요. 일단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구요.

얄라알라 2023-12-10 21:51   좋아요 1 | URL
ㅎㅎ 갑자기 레삭매냐님 말씀에

내가 ˝율리시즈˝ 스펠링을 아는가? 궁금해져서 써보려니...허걱.
책도 안 읽어봤지만, 제목 원어로도 모르네요

시작이 반! 매냐님은 읽다 중도하차 별로 안 하시잖아요^^ 저와는 달리, 홧팅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3-12-1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내년 한 해에도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라봅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되세요! ^^:)

얄라알라 2023-12-10 21:52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겨울호랑이님, 책 읽는 가족, 친구...다 드문에 책읽는 이웃이라니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내년에도 책 읽는 분들이 많이 많이
세상에서 책 사랑이 크게 크게 퍼지기를요

행복한 일요일 밤 되세요. 감사드립니다

감은빛 2023-12-12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 모두 흥미롭네요.
죽음이란 주제에 자꾸만 끌리는 이유가 가끔 궁금해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두려운데,
막상 나의 죽음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 순간이 온다면 아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3-12-24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2-1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재밌어 보입니다. 상연 전에도 열독 하시는 얄라님 너무 멋집니다!!!

연말 잘 마무리하세요^^!

얄라알라 2023-12-24 23:25   좋아요 1 | URL
ㅋㅋ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상영관에서 막간을 이용해서도 읽었을까요 ㅎㅎ
그정도로 리처드 셰퍼드 글 솜씨가 좋아요^^

고양이라디오님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달리기, 조심조심 꾸준히 하시기를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