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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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설렜던 마음과 달리, 초반부터 참 어지간히도 잘 안 읽히는 책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그렇게 가볍게 술술 읽혀질 수 없겠지. 인간사에 얽히고설킨 문제를 드러내어 더 나은 삶을 구현하는 역할을 하는 문학의 힘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것이었다. 읽기를 다 마치고 작품 해설을 보니 역시나, ‘악명 높은 1장’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60년 ‘일미안보조약’을 체결하려는 정부에 맞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전국적인 반대 투쟁을 벌였던 해이며, 이듬해 정초까지의 기간으로 되어 있다.


나(화자)는 원래 추한 얼굴로 태어났는데, 길을 걷다가 두려움과 분노로 패닉 상태에 빠진 초등학생들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이 사고에 대해 무엇 하나 이해할 수 없고, ‘기대’할 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아내는 위스키를 달고 사는 알콜 중독자이다. 그리고 이 부부의 아이는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난 백치다. 일란성 쌍둥이로 불리던 나의 친구는 엽기적인 모습을 하고 자살을 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온통 고통으로 얼룩진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온통 ‘죽음의 냄새가 나는 것들에 완전히 둘러싸여’(P75)있었다.

 

 미국에서 방랑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동생 다카(다카시)는 형에게 시코쿠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형, 그것들을 떨쳐 버리고 삶의 자리로 올라와야 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의 냄새가 형한테 옮겨갈 거야.”(p75)라고 한다. 이미 겁쟁이였던 예전의 동생이 아니다.


초반부터 작품의 분위기는 두려움과 수치심의 고통으로 사로잡혀 있다. “너는 꼭 쥐새끼 같다!”는 말을 마음속에서 떨칠 수가 없다. 꿈속에서조차 정화조 구덩이를 간절히 그리워 할 만큼 자기혐오와 수치심으로 똘똘 뭉쳐있다. 또 하나는 무기력이라고 할까.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아내를 보고 제지하지도 않는다. 포기하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 밖에는.

 

 시코쿠 고향 골짜기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슈퍼마켓 천황’에게 빚을 지지 않은 이가 없었다. ‘슈퍼마켓 천황’은 골짜기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이 잠재되어 있는 호칭이었다. 20년 전에 강제로 끌려와 벌채 노동을 했던 조선인들이 이제는 거꾸로 경제적 우위에 서게 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설적인 표현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만엔 원년(1860년)의 증조부 동생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S형의 죽음에 맞서 ‘슈퍼마켓 천황’을 축출하려 한다. 광기어린 영웅 심리로 자신을 동일시한다. 풋볼 팀을 구성하여 훈련을 시킨다. 폭동을 일으키기 위한 훈련이다. 군중을 선동하여 물건을 약탈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군중의 ‘고통의 열망’을 이용하여 폭력을 동원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 어디 성공한 적이 있었던가. 이용만 당하고 폭동은 실패로 끝나며 고스란히 고통을 떠맡게 되는 이는 현지 주민들이다. 다시 비굴하게 고개를 숙인다.

 

 증조부의 동생은 우리 집안에서 보면 자신의 집을 부수고 불을 지른 최악의 미치광이였고, 혼자만 처형을 모면했다. S형은 반대로 조선인 부락의 습격 참가자 중 혼자만 살해당하는 역할이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무슨 일인지 알 수도 없고 성과도 없는 일을 해서 재산과 생명을 잃은 아버지는 그 미치광이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S형은 아버지를 통해 증조부의 동생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애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 역할을 다시 다카시가 맡은 것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못된 짓을 할 수도 없을 만큼 힘이 빠져버려서 결국 선량할 수밖에 없는 쇠약자’인 나는 다카의 풋볼 연습이 증조부님 동생이 청년들을 훈련시킨 것이 아니라 오로지 평화적인 목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랐지만, 골짜기 마을은 폭력으로 얼룩진다.

 

 또 하나의 감도는 분위기는 무기력하고 미약한 존재감이다. 이미 자기혐오와 수치심으로 가득한 사람은 주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는듯한 심정이다. 이 골짜기에 뿌리를 내리려 하나 뿌리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동생 다카시는 교활한 연기를 하면서 형의 명의로 된 집과 토지를 팔아치웠고, 풋볼팀을 위한 기부금 명목으로 절반 이상을 빼앗아 갔다. 그것을 알고도 따지지도 못하는 체념과 무기력.

 

 동생의 포악한 생각을 읽은 나는 왜 그것을 저지하지 못하는가.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며 ‘외부 인간’이라고 치부한다. 자기만 깨끗하면 된다? 옳지 못한 일을 하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리지 않고 그저 방관하는 자세야말로 ‘말기적인’일이 아닌가. ‘새 생활’이라는 명분 속에서 동생 다카시는 형수(아내)와 불륜을 저지른다. 미스테리로 남아 있던 누이동생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실토한다. 이 엄청난 일들이 너무도 초연하게 묘사된다.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의심된다.

 

 반사회적인, 육친 형을 배신한 비양심적인 행위를 아무런 미안한 마음 없이 털어놓는 장면은 전율을 느낀다.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에게 최소한의 선이 있는가싶다. 무질서의 극치. 동생의 포악과 폭력을 보고도 비겁하게 얕은 잠 속으로 도망치려 한다. 폭력을 당하고 또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된다. 누이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죽음으로 갚는다. 나는 비로소 다카시의 죽음으로 동생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다시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결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읽어내기 무척 힘들었지만, 읽기를 마친 지금, 뿌듯한 마음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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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뇌 -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한소원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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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만나게 된 뇌과학 이야기다. 국내의 대표적 인지심리학자가 심리학과 뇌과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에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10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베이스기타 교습을 받고 합창단 활동을 하며, 이른바 공부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읽었던 뇌과학 관련 저자와 달리 이런 예술 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

 

 

 

 

 

책 표지 그림이 참 예쁘다. 사람의 얼굴 모양에 들어있는 나무와 나뭇가지가 자라는 형상이 변화하는 뇌를 비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계를 인정하면 행복해진다.

 

 심리학과 뇌과학 이야기 외에도 저자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하는 과정이라든가 개인적인 경험이 곁들여진 이야기라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흔히 암 진단을 받으면 그 자체로 공포심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흔히 있을법한 하필이면 왜 내가? 라는 원망 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현실을 직시하며 인정하기로 한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강의를 계속하였고 합창단 활동이나 악기 연주를 하는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바로 한계를 인정하고 초긍정의 마음으로 목적있는 삶을 살았기에 건강과 행복을 되찾았다고 생각되었다. 자주 회자되고 있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게 했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기에 항상 죽음을 기억하는 자세와 태도로 살아간다면 현재에도 충실할 수 있고 그만큼 행복을 느끼는 횟수는 증가할 것이다.

 

뇌는 불확실함을 먹고 자란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불편한 것보다는 편안한 것, 불확실한 것보다는 확실한 것을 추구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예일대학교 뇌과학자들이 원숭이들을 연구한 사례에서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뇌의 전두엽이 더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불안정한 환경과 안정적인 환경 두 가지 실험 중 불확실한 환경 조건일 때 두뇌의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이것은 뇌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메커니즘이었다니 불확실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긍정의 마음을 갖고 헤쳐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뇌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를 뇌과학을 접하고 알았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 외모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서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병이 심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UCLA에서 심리학과 면역체계를 연구하는 스티브 코울 교수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사회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팀은 쾌락적 행복의미 있는 행복이 각각 면역과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놀랍게도 쾌락적 행복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과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반면, 의미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집단은 면역과 유전자 발현에서 더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는 저자의 경우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과정에서도 강의를 계속하고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노화와 관련된 연구 결과 뇌는 스스로 자신을 보완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최근의 연구들은 좀 더 질적으로 성공적인 노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폴 발테스(Paul Baltes)는 성공적인 노화를 위한 전략으로 선택, 최적화, 보완을 제시했는데 영문의 첫 글자를 따서 SOC이론으로 불린다. 생명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 많은 일 중 최적의 것을 선택하고 뇌는 스스로 알아서 보완을 한다는 내용이다.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운동이 건강에도 좋지만 뇌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험을 통해 인지능력이 향상되었던 유산소운동을 꼽고 있으며 적어도 30분 이상을 해야 한다. 또 육십이 가까운 나이에도 아름답고 정열적인 댄서로 살아가는 지인의 이야기나 머리에 총탄을 맞아 언어 능력을 상실했지만 피나는 재활 훈련과 음악치료를 통해서 단어를 연상하는 능력을 찾아냈다는 사례를 얘기한다. 그의 재활을 담당했던 음악치료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뇌 영역은 뇌 전체에 있기 때문에 실어증 환자도 잃어버린 단어를 찾아 뇌를 다시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뇌의 어떤 부위가 손상되었어도 손상이 되지 않는 다른 부위 주변으로 새로운 경로를 만드는데, 그 능력이 바로 뇌 가소성(neural plasticiy)이라고 한다. 뇌 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가라앉을 때나 틈만 나면 음악을 들으려고 노력한다. 경쾌한 음악이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음악과 춤, 리듬을 뇌가 그토록 좋아한다니 더 자주 듣고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죽기전까지 발전한다.

 

 4부의 내용에서는 사람은 죽기 전까지 발전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흔히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비유한 예를 자주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기능적인 설명을 위한 것일 뿐 뇌와 컴퓨터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 아마도 뇌는 변하지 않는다는 오해가 고정관념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이런 비유가 생긴 건 아닐까. 뇌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뇌의 일부가 손상되어 신경세포들이 죽으면 그 손상된 세포의 기능을 다른 뇌세포가 맡아서 한다는 의미가 뇌 가소성이다. 뇌 가소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뇌의 부위는 학습이나 기억과 관련된 해마다. 이 해마에 관련된 사례는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의 해마가 일반 사람들보다 더 크고 운전 경력이 증가할 때마다 해마의 크기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는 참으로 흥미롭다. 또 절반의 뇌를 갖고 있던 천재 미셀 맥(Michelle Mack)의 사례는 기적이라고 할 만큼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태내에서부터 뇌졸중을 앓다가 좌뇌 없이 태어났는데, 재활 훈련을 통해서 직업도 갖게 되었고 자택 근무를 하면서 정상인처럼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 손상된 좌뇌의 역할을 우뇌가 맡아서 한 결과라니 인간의 뇌가 얼마나 유연한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뇌졸중을 앓게 되면 팔다리가 마비된다. 몸을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기관이 손상되었으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끊임없이 반복해서 몸을 움직이는 훈련을 통해 재활이 이루어지는데 뇌가 다쳐서 팔다리를 못 쓰게 되었지만 반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훈련을 통해서 뇌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뇌의 유연성을 설명하는 좋은 예가 되겠다.

 

  

 과거 어느 때보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했음에도 왜 치매 환자는 더 늘었을까. 우리의 정서로는 남을 너무 의식하거나 참고 살았던 문화적 분위기 탓도 있지 않았을까. 치매는 뇌와 관련이 아주 깊은 부분이니 뇌에 대해서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는 경험을 통해서 계속 변한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만남과 학습, 운동 등 움직임을 통해서 최적화 된다고 했다. 뇌는 우리 몸의 일부이지만 삶의 총체적인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뇌에 대해 제대로 알고 활용한다면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뇌과학에 흥미가 있거나 뇌와 마음의 관계를 알고 삶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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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の王子さま (新書)
A.D. サン=テグジュペリ / 講談社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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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 는 여섯 살 때를 회상한다. 누구도 간적이 없는 깊은 숲속에 그려진 이상한 책 속에 굉장 한 그림을 발견한다. 거대한 뱀이 동물을 삼키려 하고 있는 그림을 보게 된다. 거대한 뱀이 먹이를 씹지 않고 삼키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소화시킬 때까지 반년 간 계속 잠을 잔다는 이야기도.

신기한 는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어른에게 보여준다. “어때요? 무섭지요?” 물었더니 모자? 이런 거 무섭지 않아.” 어른이 이해하도록 모자 속에 있는 코끼리를 그려 보여주지만 어쨌든 상관없다고 한다. 뱀 그림 같은 건 그만두고 지리, 역사, 산수, 국어 등 학교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위대한 화가의 꿈을 접었다. 결국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 그림을 보여주며 친구가 될 수 있는 지 시험도 해 보았다. 그런 그림에 관심을 보일 리 없다. 어른의 마음을 모른 채 끝났다. 마음을 담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따위 한명도 없었다. 6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고장이 난다. 마실 물은 1주일 분 밖에 없고 정비사도 없고 승객도 없다. 자신이 수리하지 않으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두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새벽녘에 부탁이야, 양 그림을 그려줘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서 힘들어하는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어린 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난데없이 양 그림을 그려달라니 놀랄 수밖에 없다. 6살 이후 그림 그리기를 놓아버렸는데 잘 그려질 리 없다. 맨 처음 그려준 것은 병약해 보인다. 두 번째 그림은 이건 수컷인데 나는 암컷 양이 필요하다... 는 불만을 털어놓는다. 다시 그려 주니까 이건 휘청휘청하는 양이라며 젊고 건강한 것을 그려 달란다. 이제 지긋지긋해진 조종사는 네모난 케이스 모양의 그림을 대충 그려주면서 네 양은 이 안에 있다고 하자. 왕자는 대단하다며 좋아하는데 그 말에 더 놀란다. 자신이 원하던 것은 이런 그림이었다고. 단지 풀을 너무 많이 먹을까봐 걱정한다. 자신의 고향은 아주 작은데. 조종사가 아주 작게 그렸으니 괜찮다고 하자 소중한 것을 대하듯이 너무 좋아하고 둘이는 친구가 된다. 어린 왕자에 대해 더 알고 싶지만 물을 때마다 작정이라도 한 듯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양이 케이스 안에 들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한다. 밤에도 춥지도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여기고 마음을 쏟는 상상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순수한 마음이 아니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을까.

 

 어린 왕자는 별을 여행하고 다닌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첫 번째 별에 갔다가 별다르게 배울 게 없다는 걸 알고 지루해져서 떠난다. 두 번째 별에 갔지만 자만한 아저씨가 칭찬해 주기를 반복하며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는 것을 되풀이하자 어른이란 참 이상하다며 실망해서 다시 세 번째 별로 간다. 여기에는 술주정꾼 아저씨가 살고 있다. 빈 병 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기서 뭐하느냐고 물으니 마시고 있다고 한다. 왜 술을 마시느냐고 하자 부끄러운 것을 잊고 싶어서라고 한다. 술주정꾼이라는 게 부끄러워서 그걸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고.

 

 네 번째 별에는 일 때문에 아주 바쁜 아저씨가 있다. 계산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어린왕자가 말을 시키자 방해하지 말라고 한다. 56년째 그 별에서 살고 있는 아저씨는 너무 바빠서 꿈을 꿀 틈도 없다고 한다. 별을 사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한단다어린왕자는 꽃을 갖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 물을 주고 돌봐주고 화산 그을음을 청소하는 것을. 당신은 별을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이 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자 아무런 대답을 못한다. 이에 실망한 어린왕자는 다시 여행을 계속한다.

 

 다섯 번째 별과 여섯 번째 별을 여행하고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 온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라간다. 고향의 화산은 무릎 높이의 화산뿐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무작정 말을 걸고 인사를 하는데 되돌아오는 건 자신의 목소리다. 바로 메아리인데 누군가 자신의 말을 따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수많은 장미 정원에서 꽃들을 만난다. 꽃들은 고향의 꽃과 꼭 닮은 모습이지만 자신들이 세상에 단 하나 있는 꽃인 것처럼 자부한다. 어린 왕자는 그러면서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꽃과 함께 있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 시시한 별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에 풀 위에 엎드려 눈물을 쏟는데 이 때 여우가 나타난다.

 

 어린왕자는 자기가 좀 슬프니까 같이 놀자고 한다. 그랬더니 금세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친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또 인간은 총으로 여우 사냥을 하기 때문에 싫다고 한다. 여우와 만났는데 여우와 잘 통하는 것 같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고향의 별에서도 여우 사냥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안 한다고 한다. 여우가 괜찮다면 어린왕자를 따라가도 좋은지 물어보니 어린 왕자는 좋다고 한다. 둘이는 서로 헤어지면서 여우는 비밀 하나를 가르쳐 준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면서, 마음이 아니면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해 준다. 또 고향의 꽃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

 

비행기가 고장난지 8일째 되는 날 어린 왕자는 다시 만난다. 비행기 수리도 되지 않고 마실 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셔버렸다. 조종사와 어린 왕자는 우물을 찾으러 가는데 도중에 어린 왕자는 너무 지쳐서 주저앉아버린다. 그러다니, 밤하늘의 별을 보고는

 

별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야.”

그렇군.”


조종사도

집에서도 별에서도 사막에서도 정말 아름다운 곳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라고 하니 어린 왕자는 여우와 똑같은 말을 했다며 좋아한다. 조종사는 잠이 든 어린 왕자를 끌어안고 사막을 걸어가는데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떨린다. 어린 왕자가 더욱 더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진다.


 이윽고 어린왕자와 조종사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대.”라고 말하며 밤이 되면 별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한다. 자신의 별은 너무나 작아서 보이지 않겠지만 그 별들 속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고 모든 별들이 너의 친구가 될 거라고. 조종사는 어린 왕자에게 너의 웃음소리가 좋다고 하자, 내 웃음소리는 선물이라고 물과 마찬가지라고.

어린 왕자는 고향의 꽃을 생각하며 둘은 안녕을 고한다. 1때 이후 실로 오랜만에 읽었는데 희미했던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다. 참 예쁜,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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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추억 - 아내 교코가 들려주는 소세키 이야기
나쓰메 교코 구술, 마쓰오카 유즈루 기록,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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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1928년에 아내 교코가 구술하고 소세키의 제자이자 사위인 마쓰오카 유즈루가 기록한 것이다. 첫 만남부터 결혼생활, 임종까지 그들과 함께 교유하며 울고 웃던 모든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조금은 가부장적인 면, 고지식한 면도 있지만,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좋은 옷을 입고 멋을 느끼는 즐거움도 안다. 단 머리병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만. 남의 이목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겉치레하지 않으며 없으면 없는대로의 소탈함을 보여준다. 또한 <우미인초>를 한창 쓰고 있을 때 총리대신의 축하연 초대를 단호히 거절하거나, 문부성의 박사학위 수여를 거부한 점에서 유명세에 우쭐하지 않는 겸손과 강직함을 볼 수 있다.


 이 책이 발표되자 “교코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소세키를 미치광이 취급한 악처”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였다 한다. 그동안 몰랐던 일이 세상에 드러나고 나면 놀라운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삶을 같이한 사람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소설 속에서 많이 드러난 부분이라 그리 놀랍지만은 않았다. 영국에 2년간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신경쇠약과 머리병이 더욱 심해져서 교코에게 심하게 대하고 친정으로 가라, 교코의 부모에게는 딸을 데려가라, 심지어 이혼편지까지 그녀의 부모에게 보내려하는 등의 괴롭힘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싶다. 꿋꿋하게 참고 견디며 곁에 끝까지 있어준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매우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발병했을 때는 어쩔 수 없어. 발병하지 않을 때는 그 사람만큼 좋은 사람도 없으니까”라고 하며. 만약 교코가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그를 떠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묵묵히 견디고 이겨낸 교코의 내조도 소세키가 대문호가 되는데 일조했으리라 생각된다. 한참 힘든 시절 그의 서재 책상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고 한다.


 “내 주위의 사람은 모두 광인이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광인 흉내를 내야 한다. 따라서 주위의 모든 광인이 완쾌되기를 기다려 나도 거짓으로 미친 체하는 것을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p151) 그야말로 소세키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고양이가 집에 들어온 이야기는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느 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가 들어왔는데, 교코는 고양이를 싫어해서 자꾸 쫓아냈다. 그런데도 자꾸만 들어와서 밥통 위에 떡 하고 앉아 있거나 심지어 흙 묻은 발로 밥통에 앉아 있는 것을 소세키가 들어와서 보게 되고. 그러면 그냥 놔두라는 그의 말에 같이 살게 된다. 신문을 보는 소세키의 등에 올라 앉아 시치미 떼는 당돌한 모습은 작품에 나오는 그대로다. 그 즈음에 안마사 할머니의 온 몸과 발톱까지 까만 이런 고양이는 보기 드문 복 고양이라서 반드시 집안이 번창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을 듣고부터는 밥에 가다랑어포를 얹어 주는 등 고양이의 대우가 상당히 달라진다. 그리고 1904년 말 무렵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게 된다. 원래는 분량이 길지 않고 신문에 연재형식으로 시작했는데,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독자의 주문에 의해 2년간 계속 쓰게 되었다. 글을 쓰고 난 후부터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정말 복 고양이의 힘도 있나 싶을 만큼. 이 무렵 <풀베개>, <도련님>이 나왔다. 매월 잡지에 발표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라니 가히 천재적이라 하겠다.


 평화롭게 잘 지내다가도 머리의 상태가 나빠지면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위장병이 다시 생기면 머리병은 자취를 감추고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바뀌었다. 위장병이 머리병의 구원자였다고 말한다. 다시 머리병이 나타난 상태에서 <행인>이 나왔는데, 의심이 많고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면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어려서는 양자로 가게 되어 양부모에게는 살가운 육친의 정을 못 느끼고 친부모는 양자로 준 아이여서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등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 했다. 평생을 위병, 당뇨병, 머리병을 앓고 위장병은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다. 사후(死後)에 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학에 사체를 연구를 위해 맡겼다. 뇌의 중량이 보통 사람보다 무거웠는데 이것은 뇌의 능력이 뛰어남을 증명해준 것이고, 천재는 정신병자의 한 변형이라고 한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없다. 어릴 때의 기구한 운명이 어떤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심리불안을 가중시킨 점도 있을 것이다. 50년의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아내 교코의 깊은 사랑과 존경으로 받으며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은 아니었을까. 천재적인 두뇌와 삶 속에서 영감을 얻어 하이쿠를 비롯한 많은 명작을 남기고 갔으니.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겨 그대로 내 보이는 것이 소설이라 한다. 독자는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본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가 그림자처럼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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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 메이지 이후의 일본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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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겨울 강상중 저자의 가장 내밀한 에세이 만년의 집을 감동 깊게 읽었던 터라 이 신작도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평생 동안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저자라니. 한 눈에 보아도 극명한 대비가 느껴지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빛나는 성장을 위해 희생되어 질곡의 삶을 살아야 했던 국민들의 이야기다. ‘약한 사회 위에 우뚝 솟은 국가주의’(P9) 아래 가려진 채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던 이름 없는 산증인들을 만난다. 역시 나쓰메 소세키의 팬답게 그 후, 풀베개, 태풍, 갱부를 자주 언급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소세키가 빛과 그림자는 앞면과 뒷면 같아서,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는 분명 그늘이 생긴다.”(풀베개)라고 한 것을 잊어버렸다. 지하 몇 백 미터 깊이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광부들의 영혼이 지금도 출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늘 속으로 사라진 것은 세상에 노동자의 종류는 많지만그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아래”(갱부)에 있는 광부들이다.’(P26)



풀베개를 읽었지만 너무 어렵게 읽어서 정치 사회적인 배경이나 민중의 힘든 삶을 빗대어 표현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화가가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빛과 그림자,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당대 지식인으로서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과 통찰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작품에 투영했을까 싶다. 저 문장을 읽었는지 기억에도 없는데. 내가 소세키의 작품을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읽은 건 아닐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개인적인 성향에 치중하여 읽었다는 것도. 강한 국가를 내세우며 오로지 성장만을 위해 내달리는 국가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국민들의 모습이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격동기를 살아왔던 민중의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소설로도 널리 알려진 군함도, 바다 아래 600미터 깊이까지 내려가 오로지 석탄을 캐고 날라야 했던 광부들의 가혹했던 일상을 이야기한다.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이었던 하시마 탄광에서 석탄을 가장 많이 생산하던 1941년에는 1800명이 넘는 노동자 중 한반도와 중국에서 데려온 노동자를 포함하여 1420명에 달했다고 한다. 건물의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뉜 계층의 질서를 공간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그야말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축소판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국가의 꿈을 위해 희생되어야 했던 영혼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이슈가 겹쳐졌다.


 

 어느 나라든 빈곤의 격차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00년 전 일본은 가장 부유한 10퍼센트가 거의 모든 부를 소유한 시대였고 지금도 상위 10퍼센트가 국민 전체 부의 40퍼센트를 가진 격차사회라는 것이다. 나머지 중산층과 하류층은 비슷하게 가난했다고 하는데 가장 조악하고 볼품없는 구조의 주택으로 형상화되어 도쿄 변두리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나쓰메 소세키는 패망의 발전”(그 후)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 1인당 평균 소득이 가장 높다는 미나토구와 가장 낮은 구마모토의 구마무라 두 극단의 지역을 찾아간다. 한때 3대 슬럼가이며 제국 수도의 최하층 빈민들이 살던 일본 제1의 쓰레기장이었다는 미나토구는 풍요로 넘치는 부촌이 되었다. 그나마 20세기에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전쟁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면 격차와 불평등은 확대되는 것인가 묻고 있다. 그렇다고 1인당 소득이 미나토구의 6분의 1수준인 구마무라가 꼭 불행한 지역은 아니었다. 신생아는 줄고 노인은 늘었지만 자연의 혜택과 마을의 전통을 활용하여 새로운 만남과 교류, 네트워크를 넓히며 '모럴 이코노미(moral economy)'로 부흥하기 위해 모색하고 있는데서 희망을 찾는다.


 

일본은 서양에서 돈이라도 빌리지 않는 한 일어설 수도 없는 나라다. 그러면서 일등국인 척한다. 어떻게든 무리해서 일등국 자리에 끼어들려고 한다. 그러니까 모든 방면을 향해 깊이 있게 들어가려 하지 않고 일등국 크기만큼만 열어두었다. 어설프게 애를 쓰니 더 비참하다. 소와 경쟁하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 이제 배가 찢어질 거야. 그 영향이 모두에게 쏟아질 테니. 어디 한번 보시지.’ 이렇게 서양의 압박을 받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나. (중략) 정신적 고달픔과 신체적 쇠약에는 불행이 동반된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패퇴도 함께 올 것이다. 일본 어디를 보아도 반짝이는 곳이 없지 않은가. 사방이 암흑이다.”(P213)(그 후)

 


 백 년 전에 쓴 작품임에도 오늘의 현실이 그대로 재현되어 섬뜩하게 느껴진다. 세계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스카이트리를 예를 들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에 목말라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3조 엔의 재정을 들여 꿈의 철도를 만들기 위해 시속 600킬로미터로 달리 열차를 실험하고 있다는데 지방과 민중을 살리는 일에는 역행하는 처사다. 관심사가 다르면 작품을 읽어내는 해석도 다른 모양이다. 소세키의 작품을 찬찬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이 이야기가 꼭 일본이라는 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빛 뒤에 그림자 같은 국민들의 삶이 어떤지 살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만주국에 뿌리를 둔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를 역사의 귀태(鬼胎: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박근혜와 아베 신조는 귀태의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의 원제는 유신의 그늘(維新)이라고 한다. 아직도 과거였던 메이지 시대를 기념하는 행사를 반복하는 이유는 현재의 어두운 상황을 감추려는 국가 권력자들의 검은 음모일지도 모른다.

 


 일등 국가를 만들기 위한 권력자의 야심에 희생되어야 했던 국민들의 피폐한 삶, 재벌의 야만적인 행위로 핍박받는 민중, 극심한 빈부 차, 흔들리는 교육 현장,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천재지변, 집단 따돌림으로 죽어가는 농업의 현실, 폭력의 한 가운데에 놓인 오키나와, 재벌로 인해 미나마타병에 걸려 멸시와 빈곤에 내몰렸던 민중, 우생사상으로 차별받는 한센병 환자들의 삶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주제를 다루며 이야기한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라는 일본에서 아동 7명 중 1명이 거리에서 밥을 구걸할 만큼 빈곤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도 놀라움이었다. 도쿄 여행을 몇 차례 했어도 늘 화려하고 번쩍거리고 사람들로 가득 찬 활기 있는 거리로 느껴졌기에 그렇게 어린 희생자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반짝이는 야경을 가진 거대한 도시 도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일본 국가주의의 야누스적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할까. 뭐든지 세계 제일을 지향하면서도 국민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권력자들의 내면을 보는 일은 끔찍했다.

 


 이 책은 당시 교도 통신 편집 위원장이던 하시즈메 구니히로(橋詰邦弘)가 교도통신에 연재 기획을 구상하고 그 기획의 여행자로 저자를 선택해 주어서 연재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토대로 엮어진 책이라고 한다. 나가사키 군함도부터 홋카이도의 노쓰케 반도에 이르기까지 메이지 150년을 살아낸 백성의 발자취를 따라간 사색 여행이다. 일본의 근대, 전전, 전후, 현대에 이르는 역사와 분노와 저항에 놓여있던 사람들의 힘겨운 발자취와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 이야기라서 딱딱하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 투영된 문장들을 언급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시즈메 구니히로(橋詰邦弘)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이 아닌 강상중 저자를 선택했다는 것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일본 사회에 있어 영원한 이방인일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닌가. 가장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약간의 계산(?)과 그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일본은 나태(懶惰), 불령(不逞), 시기, 의심, 빈곤, 무지, 몽매, 열등, 범죄, 불결 등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속성을 자이니치 1세에게 덮어씌웠다. 그들을 뿌리로 하면서도 민족의 언어와 문화, 전통, 풍습을 물려받지 못한 자이니치 2세에게 부모는 이율배반적 존재였다.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애증이 자이니치 2세의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정체성을 남겼다.(P199)



 이 문장만 보아도 자이니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삶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삶이란 슬프고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의 후손으로 태어나 일본에서, 그것도 일본 본토에서 산다는 것은 변경을 몸에 두르고 사는 삶을 뜻한다. 동시에 고도성장 시대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내게 삶은 변경에서 이탈하여 볕이 잘 드는 중앙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빛을 구하려 한 결과, 나는 언제부터인가 변경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P204)

 


 어쩌면 영원한 디아스포라라는 자신의 입장이어서 이렇게 따끔한 일침으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나라의 야만성을 고발했다는 자체가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인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땅에서 강상중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스스로 변경인의 삶이라고 했다. 이쪽과 저쪽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뇌하며 민중을 향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사는 곳이 고향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풀베개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중략)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후략)

- 풀베개의 도입부-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 어려우니까,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둠속에서 시름하는 민중들을 위해 권력자들의 야만성을 폭로했는지도 모른다. 국가주의에 가려진 피폐한 삶을 살았던 국민의 이야기지만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엔 희망도 피어나고 있었다. 이 책은 일본 사회의 현실을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이 많이 읽혀서 국가라는 속에 가려진 국민들의 삶을 보듬어 살피는 성숙하고 든든한 사회, 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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