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 엄마라는 이름의 나의 구원자
사카모토 유지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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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0년 드라마 <마더>65회 더텔레비젼드라마 아카데미상 각본상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는 대본이다. 그동안 읽던 책과는 완전 색다른 느낌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기분?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일드를 접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일본어 듣기 공부를 위해서였는데, 그 시작은 <최고의 이혼>이다. , 이런 파격적인 제목의 드라마도 하는구나, 놀랐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리 만족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세계. 일본의 드라마는 대개 10화나 12화로 짧게 구성되어 있는 점이 신기했다. 두 쌍의 부부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빚어지는 애환을 다루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였다. 어느 가정이나 고민이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 중 하마사키 부부 쪽이 좀 더 비중 있게 나오는데,(내 생각인지는 몰라도) 남자는 영업직 회사원이고 엄청 깔끔하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신발이나, 세수하고 난 뒤의 엉망인 세면대 등을 그냥 못 본다. 자신이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털털한 아내에게 투덜거리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로 말다툼을 하던 어느 날 홧김에 이혼하자는 말이 나와서 그러자고 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을 떠올리며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차일피일하며 시간이 흐른다. 그러던 중 여자가 짐을 싸서 집을 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짐을 정리해 놓고 남편이 귀가해서 먹을 음식을 만들어 놓고, 편지를 쓴다. 편히 잠들었던 침대, 따뜻한 밥을 같이 먹었던 극히 소박한 일 등에 대해 고마웠다고 편지지에 쏟아낸다. 편지를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다가 울컥해져서 결국은 못쓰고... 이 장면이 7화였다고 기억하는데, 아마 일고여덟 번을 봤을 것이다. 그 장면이 배경음악과 함께 애잔한 감동을 주어 결국은 눈물을 떨구면서도 그렇게 좋았다. 보통 이혼을 다룬 드라마라면 막장을 치달리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이 아니던가. , 나라는 달라도 감동의 정서는 비슷하구나. 왜 이렇게 다른 작품을 길게 언급 하느냐 하면, 작가의 프로필을 읽다가 놀랍게도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여운으로 남았기에 <마더>로 다시 만난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무로란 마루야마 초등학교 1학년 임시 교사였던 나오가 학대를 당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제자 미치키 레나를 구하고 지키기 위해 유괴범이 된 이야기다. 선생님들에 의해 레나의 몸에서 멍과 상처투성이를 발견하게 되고 학대를 받는 정황을 아동상담소에 의뢰도 했으나, 명쾌한 대답이 없이 흐지부지 하게 되고 추운 겨울 날 버려진 레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기사로 접했던 유괴 사건이라면 돈을 요구하거나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생명을 빼앗기도 하면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유를 들어볼 것도 없이 흉악한 범죄로 말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유괴 사건의 전면에 가려진 다른 방향의 시선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런 상황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부모가 낳아서 키우는 것만으로 아이에 대한 양육의 의무를 다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아래로는 자녀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위로는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어린 시절에 받은 따뜻한 사랑과 추억이 성장하면서 진정한 인격을 지닌 어른이 되는 밑바탕 일 텐데, 학대를 당하다니. 그것을 견디면서 자라기도 전에 일그러진 자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주로 여성이 나오는 여성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육아라고 하면 부부 공동의 책임으로 이루어져야겠지만, 아무래도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긴 만큼 드라마의 반영도 그럴만하다. 나오를 입양하고 자신의 두 딸과 함께 키운 엄마 도코, 나오를 버린 친엄마 하나, 아이를 잉태한 나오의 동생 메이, 레나를 버린 히토미 이렇게 다섯 명의 여성의 모성을 각기 다른 빛깔로 보여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듯이 여러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하나, 히토미 같은 엄마가 있고, 입양을 해서 친딸보다 더 잘 대해주면서 키우는 도코 같은 엄마도 있다. 히토미는 자신이 일하러 나가 사이에 애인 우라가미가 레나를 학대하는 것을 눈치를 채면서도 당당하게 따지지 못한다.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메이의 태도와 히토미와 겹친다. 아이를 버리고 유괴하는 것 모두 도덕적으로 정당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안에 내재되어 있는 아픔을 알아차리고 나면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나약한 인간의 단면이라고 할까. 그러한 사건이 터지기까지 일조한 남자도 있기 때문이다.


 나오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도 왜 레나를 데리고 도망쳤을까. 레나를 보면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 말고는 그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는 것. 레나는 쓰구미가 되고 도망의 여행길에 하나를 만난다. 낯선 여인에게 자신의 지나온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정신없이 레나를 구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엄마 역할을 해 주고 싶었고, 이제는 진짜 엄마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민들레 홀씨를 불면서 까르르 웃다보니 엄마가 사라졌다는, 헤어지던 날의 기억을 또렷하게 이야기하는데 듣는 이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압권은 단연 레나의 좋아하는 것 노트. 해바라기 씨를 먹는 스즈의 모습, 눈 밟는 소리, 밤하늘의 구름, 크림소다, 회전의자, 구부러진 언덕길, 목욕탕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것, 깨끗하게 깎은 밤, 비에 젖은 길, 자전거의 뒷자리, 엄마가 토닥토닥 해 줄 때... 싫어하는 걸 생각하면 안 되고, 좋아하는 걸 계속해서 생각해야 된단다.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면 즐거워진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사라진다. 얼마나 힘든 고통을 참아내며 그것을 썼을까, 이겨내기 위해 한 단어 한 단어를 떠올리며 적어나갔을 레나가 가여워서 목이 메어온다. 학대를 당한 아이라고 볼 수 없는 명랑함이 느껴져 더욱 짠하다. 아기의 생명을 구해주는 우체통이 있다면서 일곱 살짜리도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 얼마나 절실하면.


 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은 나는 저렇게 안돼야지, 하면서도 그렇게 되기도 한다. 인생을 살면서 힘든 건 거의 사람과의 관계이다. 가족도 사회도 모두 그렇다. 갓난아기였던 레나를 키우던 시절, 방송에서 아동 학대 사망사건을 보도하는데 히토미는 저건 부모도 아니라며 혐오감을 나타낸다. 훗날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모르고. 세상일은 법과 규칙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정황이 다는 아닐 것이다. 사건의 정황은 무시하고 법적인 잣대로만 매도하는 행위는 항상 있어왔다. 나오는 방관하는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일로 생각하며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범죄자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되기를 응원하며 읽었다. 여러 개의 드라마틱한 반전과 감성어린 맛깔난 대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삶에 있어 자녀와 부모,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세상에는 학대하는 사람과 학대당하는 사람이 있고 그 몇 배나 되는 방관자가 있다는 나오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쓰구미: 엄마, 있잖아.....

히토미: ?

쓰구미: 레나는 하늘나라에 갔어.

히토미: (깜짝 놀라며).....

쓰구미: 레나는 이제 없어. 천국에 갔으니까.

 

히토미: 레나, 엄마 좋아하잖아? 왜 엄마는 안 썼어?

쓰구미: 있잖아.....

히토미: 엄마 좋아하잖아? 엄마 싫어?

쓰구미: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이제 엄마가 아니니까.

히토미: (아연샐색하면서)..... (P471)

 

쓰구미: 엄마!

나오: 미안해..... 미안해!

쓰구미: 보고 싶어요!

나오: 미안해!

쓰구미: 엄마..... 한 번만 더, 유괴해 주세요.

나오: !

쓰구미: 한 번만 더 유괴해 주세요.(P583)

 

나오 목소리 혹시 알고 있나요?

                철새가 어떻게 해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새들은 별자리를 이정표로 삼지요.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등,

                새들은 그런 별들에 의지하여 북쪽으로 가는 거예요.

                새들은 어렸을 때 그걸 배워요.

                어렸을 때 본 별의 위치가 새들이 살아가는 이정표가 되는 거죠.(P630~631)

                           -스물 살의 레나에게 나오가 쓴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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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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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시타 나츠는 <양과 강철의 숲>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 작품의 잔잔한 감동과 좋은 기억 덕분에 이 책을 무척 읽고 싶었다. 그 작품은 소설이고 감성적인 느낌이 많았다면 이 작품은 에세이 이며 담담하고 활달한 문체라고 할까. 편리한 도시 생활에 젖어 살던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많이 포기해야 하는 산촌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곳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일단 해 보자는 도전으로 똘똘 뭉쳐 있지 않으면. 가족 단위보다는 혼자가 더 수월하겠지만, 이 작품은 가족끼리 함께 한 1년의 산촌 일기다.


 서점까지 60킬로미터, 마트까지 37킬로미터, 휴대전화는 3개 통신사 모두 불통, 텔레비전은 난시청 지역이다. 홋카이도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남편의 제안과 의외로 쉽게 세 아이들이 찬성하면서 다이세쓰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도무라우시로 이사를 간다. 그 곳에서 경험한 일들을 계절에 따라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되면 어떻게 적응해 나가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산촌유학생용으로 살 수 있는 집이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집이다. 미야시타의 가족이 살게 된 집은 예전에 진료소였다가 장례식장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딸이 갑자기 무서움을 타는 바람에 화장실이나 욕실을 사용할 때는 노래 부르면서 지켜주는데 자신도 악몽을 꾸다가 잠을 깨기도 한다. 좀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그럭저럭 적응해 간다. 아마도 이웃의 관심과 따뜻한 정, 혼자만 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속에 놓인 환경 덕분이겠지 싶다.


 학생들이 있는 가정은 교육에 관한 것이 가장 관심사다. 이곳에서는 보통의 도시의 학교에서의 수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교복도 없고 편안한 츄리닝 차림에 시험도 숙제도 없다.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천국인가. 그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세, 네 시간을 할애하는 미술 시간, 기술이나 가정시간도 요리를 실습한다. 시간에 쫓기며 하는 암기식 공부가 아니다. 직접 만져보고 직접 만들어 본다. 낚시터에 나가 계류낚시를 하고 수영장에서 카누를 배우기도 한다. 여름 방학에는 등산을 하는데, 그 훈련을 위해 하이킹을 하고 캠프, 등산으로 마무리한다. 이러한 일련의 수업과정을 즐기는 모습이다. 성적의 경쟁에 절어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은 전혀 떠올릴 수 없다.


 9월의 가을 축제는 참 이색적이다. 작가는 포장마차를 이런 산속까지 끌고 오느냐고 걱정했는데, 각 가정에서 한 가지씩 맡아서 가게를 여는 거란다. 다코야키, 크레이프 굽기, 금붕어 낚시 등. 이웃이 모두 참여하는 이런 분위기에서 도시 학교의 삭막한 풍경이 무척 대비된다. 또 흥미로운 건 순견학습(巡見學習)이다. 차로 산 속 오지로 들어가, 그 지역을 돌며 지리와 지형을 확인하거나 지층을 조사하는 지역 풍토를 배우는 수업이란다. 이런 수업이야말로 현지에서 사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어디서든 큰 곰을 마주칠 수도 있는 이런 산촌에서 말이다.

 

 어떤 곳에서 일 년을 산다는 것은 현지인에 대한 이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도시에서는 경쟁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면서 경험 할 수 없는 긴밀한 시간을 갖는다. 참관수업, 학예회, 가장행렬, 운동회 등에 모든 이웃들이 참여한다. 함께 소도구를 만들고 연습하는 과정은 평화롭게 느껴진다. 바삐 서두르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홋카이도는 정말 추운 곳으로 기억되며 눈 축제가 있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 정도였다. 가끔 일드로 보았던 눈보라 치는 장면은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읽었다. 6월이 끝날 무렵 기온이 8도 뻐꾸기가 울고, 전국이 찜통더위라고 보도하는 8월의 기온이 17, 휘파람새가 우는 장면을 보면서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겨울 온천에서도 머리를 감으면 그대로 얼어붙는 만큼의 추위이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고 이웃과 관계 맺으면서 그 속에 동요되는 모습이 놀랍다. 의젓하고 활달하게 바뀌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이 되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정든 곳을 떠나는 장면은 짠하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벗어나서 어떻게 살아갈까, 살 수 있을까 울적해 한다. 사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사진 한 컷 없었던 점은 좀 아쉽다. 또 하나는 자연 현상, 문화, 지역의 특색 등 테마 별로 구분하여 썼더라면 좀 더 그 지역에 대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어쨌든 보통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누구나 다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언제나 똑같은 쳇바퀴 같은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겠다. 각박한 도시에서 맛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대자연의 품에서 찾을 수도 있으니까. 서두르지 않는, 느긋한 여유를 온전히 누리는 시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이기도 하다.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는 그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그 풍경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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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트리뷰트와 심벌로 명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히라마쓰 히로시 지음, 이연식 옮김 / 재승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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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라 하면 대부분 그리스 로마 신화나 기독교의 주제를 다룬 그림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명화의 세계는 평소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렵게 느껴진다. 그림 속의 인물과 배경에서 무엇을 말하려 함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겉도는 사람들의 관계처럼 말이다. 문학작품을 접하다 보면 화가와 그의 그림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배경지식을 모르는 상태로 읽어나가는 것은 그 작품에 몰입의 여지를 빼앗기는 느낌이다. 작년 1월에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물론 주석에 설명이 나와 있지만, 상세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금세 머릿속에 새기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 작품의 저자 히라마쓰 히로시는 회화를 읽는 수사학인 어트리뷰트와 심벌을 중심으로 명화를 읽어내는 법을 알려준다. 사실 그림에 거의 문외한이라서 어트리뷰트(Attribute)''심벌(symbol)'을 이용하여 명화의 내용을 해석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꼭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 준다.

 

 

 

  위의 사진처럼 네 가지 아이콘을 정해놓고 있어 그림의 정보와 해설을 매치시키며 읽으면 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 과일, 수목, 동물, , 환상동물, 물건과 신체까지이다. 또한 각 장 사이사이에는 저자 나름의 도상 해석을 제시하는 칼럼이 있어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한층 더 유용하게 느껴진다. 물론 정설은 아니니까 비판적으로 읽어주면 좋겠다는 저자의 조언이다. 어트리뷰트와 심벌은 서양 회화에 등장하며 이는 독일의 미술사가인 파노프스키가 말한 이코노그래피(도상학)의 일부라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한 여러 가지 심벌리즘은 미술 외에도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같은 서브컬처에도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여타의 책이 집합적인 어트리뷰트를 다루지 않는데 비해, 이 책은 ’, ‘과일등 유() 개념을 두어 집합적으로 어트리뷰트를 구성한 것도 유용하게 다가온다.

 

   신기하게 생각된 점은 귀속물을 통해서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방식이다. ‘귀속물어트리뷰트의 의미이며 어떤 인물에게 주어진 속성과 부속물을 의미한다.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 나타내기 위해 관용적으로 그 인물과 결부되어 표현된 동식물과 사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트리뷰트는 항상 그것이 가리키는 인물이 필요하며 심벌은 개체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위의 사진은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인데, 머리 위의 비둘기는 성령을 나타내는 심벌이지 예수의 어트리뷰트는 아니라는 거다. 비둘기는 수태고지성령강림의 장면에도 등장하는데, 이 경우 누군가를 특정하지 않는 심벌이다.

 

 또 한 가지만 살펴보자.

월계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대 그리스의 제전 경기가 한창 성대할 무렵, 우승자의 명예를 나타내기 위해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폴론의 신목(神木)인 월계수의 잎을 엮어서 만든 관을 수여한 데서 유래한다. 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에로스가 아폴론을 놀려주려고 사랑에 빠지는 황금화살을 아폴론에게 쏘고, 거꾸로 사랑을 거부하게 되는 납화살을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 다프네에게 쏘는데, 붙잡히게 되자 아버지에게 자신을 월계수로 바꿔달라고 하자 변신하기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폴론은 시와 노래의 신이기도 하며, 시를 짓는 시합에서 승리한 이에게 월계관이 주어졌고 이런 관습 때문에 일류 시인을 계관 시인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외에도 신화와 어울어진 이야기가 풍부하다.  얕게 알고 있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명화와 그에 얽힌 유래를 상세히  알게 되어 스토리의 세계가 확장됨을 느끼는 것도 큰 수확이며 기쁨이다.

 

 오랜만에 풍성하게 실린 명화를 보면서 처음 접한 어트리뷰트심벌로 설명하는 글을 읽는 동안 조금씩 눈에 익히고 이해하게 되면서 아!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시간이었다. 초반부는 좀 어리둥절했지만, 차츰 가독성이 나아졌다고 할까.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명화를 보는 눈이 명확해지려면 아직 멀었지만, 적어도 첫걸음은 내딛었다고 자부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더욱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껏 명화를 감상하면서 어딘가 미흡했다고 느꼈거나, 궁금한데 그것이 확실히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 건지 혼란했던 적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만나보면 어떨까. 서양 회화에 좀 더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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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김동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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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눈을 감지 않는 생선처럼 살아가면서 모든 순간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지은 생선으로 더 많이 불린다는 김동영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책을 지독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꿈을 꾸거나, 작가를 동경한다. 하지만 여러 책을 통해서 글을 쓰는 작가로 산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다진 사람은 온전히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아 살 수 있지만, 상위 몇 프로 외에는 다른 일까지 겸업을 해야만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안다. 무엇이 된다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부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부모님과 친지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뭔가 되라고 은근히 강요당하고 강요함으로써 우리는 첫 발걸음부터 힘겨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자꾸 내일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여행 작가답게 많은 곳을 여행했다. 미국, 러시아, 아이슬란드, 독일 베를린, 태국, 프랑스 파리와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를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반년이 걸리는 여행을 했다. 이만 하면 매여 있는 직장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만하다. 그의 이력을 봐도 특이하다.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경력처럼 쌓아왔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이 좋아서 주방 보조, 자동차 정비, 음반과 공연 기획, 밴드 매니저 등 다양한 일을 했다는데. 그래서일까, 더욱 글에서 진솔함이 느껴진다. 공황장애도 앓았고 사랑에도 좀 서툰 모습이 느껴진다. 하긴 혼자 산다고 해서 사랑에 서툴고 가정을 이루고 산다고 해서 능하다는 잣대는 없다. 살다보면 자신의 뜻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니까. 어떤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는가와 살아가는 환경의 여건에 따라 자신의 삶의 여정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여행이란 일상의 반복된 생활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 주는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지에서 경험한 일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황홀한 풍경을 만난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여행길에서 몸이 아플 때도 있다. 지독한 외로움을 처절하게 느끼기도 한다. 같은 여행자로 만나서 누구보다도 그 외로움을 잘 알기에 마주치는 순간 이야기꽃을 피우며 따뜻한 동료가 되기도 한다.


 내게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이다.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좋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좀 더 정리되고 풍부해진 기분이 든다.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더 길게 갈수록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도 더 크고 강해진다. 그렇게 돌아와 나의 집 현관문, 그리고 내 방문을 열었을 때 밀려오는 익숙함을 나는 진정 사랑한다. 모든 것이 내가 돌아오길 기다려준 듯한 기분이다. 이런 기분 덕분에 나는 일상의 지루한 반복과 자극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그나마 버텨낼 수 있다. 그리고 내 솔직함을 글로써 내려갈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행 작가다.(P95)


 어떤 삶을 살 것이냐를 나름대로 정하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결단력과 용기일지도 모른다. 보통사람에게 만족할 만큼의 돈과 시간의 여유는 평생토록 염원해도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건이 될 때 까지 기다리다가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문제는 안정적인 직장, 그 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나약함이라고 생각된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월을 보내고 언제나 마음속에 미련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위대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역시 아무나 할 수는 없는 것.


 우리는 계속 떠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 다리가 있고, 두 눈은 앞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여행을 통해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우리 안에 있던 더럽혀진 마음과 필요 없는 생각을 씻어내고, 그곳에 버려두고 오길 바란다. 또 그곳에서 우리에게 결핍된 무엇인가를 슬쩍 주워 품에 담아오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들여 잘 익은 사과 알처럼 탐스럽게 살아간다면 좋겠다.

계속 꿈꾸길 바란다. 그게 하룻밤의 꿈이거나 평생 말로만 떠벌리는 꿈일지라도 우리는 꿈꿔야 한다.(P116)


 어쩌면 여행과 인생은 닮지 않았을까. 살아가고, 떠나고, 돌아온다는 것이. 붙박이 장롱처럼 항상 고정되어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집을 떠나 보아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돌아오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떠난다는 말처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올라갔다 내려오는 수고를 반복한다. 문제는 실행으로 옮기면서 능동적으로 사느냐,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체념하며 사느냐 그것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5년 후에는 낫겠지, 10년 후에는 훨씬 더 상황이 나아지리라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고, 10년 뒤에는 더 대범해지고 더 현명한 어른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김동영 작가의 말을 들어 보아도 변한 건 별로 없단다.


 결국은 어쩌면, 우리는 늘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핍이 있어야 우리 안으로 새로운 것이 들어올 틈이 생기지 않을까?(P209) 충분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이라도 틈이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어쨌든 인간이란 결코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동물, 그래서 계속 뭔가 하려하고, 되려 하고 그런 과정에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리라. 지금 무엇이 되어 있지 않더라도, 내일이 어찌될까 불안하더라도 괜찮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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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이영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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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이웃 블로그에서 주최한 훈훈한 이벤트 덕분이다. 책의 제목을 보고 얼마나 웃겼던지. 어릴 적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무찌르자~ 오랑캐’ 하는 노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이 노래를 언급하는 것이 아닌가. 어, 남자분이 이 노래를 어떻게 기억하지, 신기해하며 정겨움에 흠뻑 젖어들기 시작한다.

 

 몽골,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 드넓은 초원, 칭기스칸, 말을 타고 달리는 유목민들이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몽골 여행기라기보다는 몽골의 문화, 정서, 몽골인의 삶의 태도 등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2000년 여름, 멋모르고 찾아간 몽골 초원에서 안내인이자 유목민인 두게르잡 비지아를 만나게 된다. 몽골은 화장실이 따로 없다 한다. 문명인으로 살아온 여행객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냥 넓은 초원이 모두 화장실이란다. 하지만, 강물은 모두 쓰는 생명수니까 안 되고, 작은 쥐구멍에 오줌을 누니, 왜 저 넓은 땅을 놔두고 하필 쥐가 사는 구멍에다 그러느냐고 타박하더란다.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오랑캐로 알고 있던 그는 나쁜 오랑캐가 아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좌충우돌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 후 그 대지와 사람에 반해 몽골을 공부하고 여행하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다 한다.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알타이산의 마지막 오랑캐 친구 비지아와 함께 했던 초원 이야기이다. 학창시절에 배운 바로는 오랑캐는 아주 나쁜 적으로 통했다. 종류도 다양해서 동이(東夷), 서이(西夷),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불렸는데, 이는 중국과 한통속이 되어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다. 비지아는 알타이산의 주봉 이름을 딴 뭉흐 하이르항 솜(郡) 출신인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오리앙카이 부족민이다.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때부터 청나라와의 독립전쟁까지 활약한 몽골 기마병 중에서도 가장 용맹했다고 한다. 맞붙을 때마다 선봉에서 달려오는 오리앙카이 부족 때문에 무서워서 만리나 되는 장성을 쌓았다고 하니, 그 용맹함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저주와 분노의 뜻이 담겨진 오리앙카이는 ‘오랑캐’가 되었다고.

 

 책 속에 들어있는 사진들은 쉽게 갈 수 없는 몽골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탁 트인 몽골의 초원과 푸른 하늘, 석양을 배경으로 찍은 실루엣 사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의 사진 등... 하루하루 경쟁에 치어 지친 마음을 풀어주기에 더없이 황홀하다. 넓디넓은 초원과 광활한 자연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후련해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생각해보니, 그 풍경 속에 들어앉아 생활하는 유목민들의 삶은 감히 동경하고 흉내 낼 수도 없을 것 같다. 

 

 이동이 주된 삶의 방식인 유목민들에게도 이사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게르를 철거하고 양떼, 말 등 가축까지 모두 끌고 가는, 몇 달씩 걸리는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낮에도 기온이 영하 사십 도로 곤두박질하는 혹한의 겨울을 유목민들은 어떻게 보낼까.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울 만큼 추운데, 풀이 없어 고생하는 가축들, 굶주린 가축들에게서 젖이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도 배고픔의 연속이고... 몽골의 초원 낭만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다. 그 환경에 놓이게 되면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實戰(실전)이다.

 

 우리는 단 하루라도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씻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는 등 불편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비지아는 싸우나, 목욕을 죽기만큼 싫어한다고 한다.(다른 몽골인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욕조에 담긴 목욕물 일 뿐이지만, 들어가면 끝이라는 거다. 소위 ‘근대’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서 영원히 돌아 나올 수 없는 문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습관이 되고 삶이 되고 그것이 문화로 형성된다는 것은 정말 간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문화의 차이가 생기고, 그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몽골의 기후 조건은 연중 비, 눈 모두 합쳐도 이백사십 밀리미터의 강우량이라니... 물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우니, 씻지 않는 습관은 척박한 자연에서 저절로 터득한 지혜이며 삶의 일부분이다. 그러한 기후 토양의 조건을 알지 못하고는 야만이네, 비위생적이네 하고 감히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예전부터 유목민들의 식생활이 궁금했었다. 육식을 위주로 먹고 있는 모습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유목민들에 유명한 문구처럼, “동물은 풀을 먹고 사람은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평생 야채, 과일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젖을 짜서 만든 유제품을 먹기 때문에 고기만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의외로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단다. 가장 큰 이유는 돼지가 반유목적 동물이란 점이다. 돼지는 인간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는데, 이로 인하여 식량 부족 문제로 이어지고, 사회 전체의 분열과 파괴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 유목생활에 대해 언급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어떤 때는 가뭄, 전쟁, 제방의 붕괴와 대홍수, 또 어떤 때는 강물이 불어나 밀려가듯 인구가 너무 불어남으로 해서 잉여 인구가 추방되기도 했다. 하지만 갈 곳이라고는 북부밖에 없었다. 북부는 사막이었다. 안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일단 사막 속으로 들어오면 살아남기 위해 유목민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사막에서 가능한 단 한 가지 생활 수단인 유목생활만큼 가혹한 생활 형태는 달리 없다.’(P162)-게오르규의 『마호메트 평전』中에서

 

 돼지가 살기 위해서는 습지가 있어야 하는데, 몽골은 사막과 반사막 기후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한다. 소, 양, 말들이 먹어야 할 풀이 있는 초원을 짓밟는 돼지를 좋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또한 뚱뚱하고 걸음도 느린 돼지가 잦은 이사에 어떻게 걸어가겠는가. 생각해보니 참으로 애물단지 일 수밖에 없겠다. 가축도 기후와 토양에 맞아야 생육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이밖에도 오랑캐라는 이미지와 달리 몽골은 여자들의 지위가 매우 높다고 하는데, 놀랍고 흥미롭다. 그들의 사랑법은 더욱 더. 영하 사오십 도를 오르내리는 겨울밤 부부는 어떻게 사랑을 나눌까. 금쪽같은 새끼들을 나가 있으라고 할 수 없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사랑을 나눈단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로 무슨 유난을 떠느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오랑캐답다고 해야 할까. 우리에겐 좀, 아니 많이 민망해서 홍당무가 될 지경이다. 그들의 삶은 전통이 되고 문화로 형성된 것이니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만의 문화이니까. 전반적으로는 유쾌 발랄하면서도, 가끔은 찡한 먹먹함과 감동을 준다. 정말 소설만큼, 아니 소설보다 재미있다.

 

 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우리는 ‘비가 온다’라고 하는데, 몽골어는 ‘비가 들어 간다’고 한단다. 이는 문장의 주인공을 ‘하늘과 대지’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우주의 주인이라는 짐을 덜어내고 그만큼 가볍고 그만큼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아, 정말 하늘과 대지 속으로 비가 들어가는구나... 이들의 자연을 경외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은 우리 정착민과는 현저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 정착민들은 보통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정말 그렇게 자부할 만할까 싶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하는 문화가 많이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부자들은 묘지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몽골인들은 아예 묘지가 없다고 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우리로서는 좀 섬뜩했다. 손자의 힘을 빌어서 죽고 제사를 지내는 일도 없다고 한다. 중국의 유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견원지간이라고 한다. 그냥 땅에 묻혀 자연과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삶과 죽음이다.

 

 

 

 

 친구 비지아를 통해서 바라본 몽골인의 삶과 죽음, 문화는 정주민(定住民)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귀한 그들은 외지인이나 여행객들이 오면 얘기를 하고 싶어서 물고 늘어진단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수 십 킬로미터를 말을 타고 달려온다는 그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귀한 줄을 모른다. 경쟁하느라고 점점 지쳐간다. 사람에 치여 혼밥, 혼술, 혼영 등 혼자族(족) 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물건에 치여 산다. 좀 더 가뿐한 삶이 그립다.

 

 수백 번 몽골을 드나들며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배운 이영산 작가는 관광객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재미있고 맛깔 나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야만이란 이름으로 폄훼되어왔던 유목민의 삶을 새롭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매우 유쾌한 시간이었다. 몽골이 궁금한 사람,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총체적인 몽골 이야기이다. 수많은 몽골 관련 책을 참고하여 상세하게 쓴 이야기로 그들을 삶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몽골에 한걸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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