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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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이언 맥과이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2016년 맨부커상 후보작, 2018년 더블린 국제 문학상 후보작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배가 출입하는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부두의 풍경이 나오는데, 보통 소설처럼 평범하지 않다. 일꾼들의 고함 소리를 비롯한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한다. 특히 뱃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칠고 원색적인 욕설이 너무 놀랍고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팍팍함인가 싶어 그 오싹함에 움츠리게 되고 행여 이런 사람들 꿈에라도 만날까 두렵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 온 감각이 총동원되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석유가 등장하기 전에 불을 밝히는 연료는 고래 기름을 썼다는데, 말 그대로 고래를 잡아야 했으니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학대하고 살육을 통한 문명의 역사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자본가 백스터의 배 볼런티어호에 승선한 선원 생활 30년 경력의 선장 브라운리, 군의관 출신의 섬너가 주축이 되어 일등 항해사 캐번디시, 작살수 드랙스 등 선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섬너는 퀸즈 부두로 가는 길에 만난 다리 없는 거지에게 길을 묻다가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브라운리랑 배를 탄다고? 신세 조졌구먼. 빼도 박도 못하지.”

쪽박을 차고 싶거나, 다시는 집 구경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해줄 거야. 그 모든 걸 다 해낼 능력자니까. 퍼시벌호 얘기는 못 들었나? 그 망할 놈의 퍼시벌호 소문을, 자네가 들었어야만 하는데.”(P42)


 하지만, 광란의 인도 전선에서 푹푹 찌는 더위와 추잡함, 잔혹한 만행, 지독한 악취에서 빠져나온 섬너는 출항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다. 자연의 위대한 경이를 스케치 하려고 그림 도구와 폭넓은 독서를 할 요량으로 호메로스나 일리아드도 챙겼으며, 그 지옥 같은 인도와는 전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얼어붙은 바다 북극과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과연 섬너의 기대는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선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선장 브라운리는 급사한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으며 뜻밖의 횡재를 얻었다는 섬너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는지 의아해 한다. 웬만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하게 간파하지만, 섬너의 속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댔지만, 섬너의 속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배신, 굴욕, 가난, 불명예, 양친을 모두 티푸스로 잃은 것까지 좋은 기회와 운을 여러 번 날렸고 계획은 금세 엉망이 된다. 어쨌건 악운과 불행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들 했다.


 살아남은 것 자체를 운이라 생각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 포경선을 탄 섬너는 서서히 깨닫는다. 북극곰을 사냥하면서 짜릿한 흥분과 장인의 자부심을 느끼는 드랙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덮으려는 분위기에 자신이 포악한 무법자들 틈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장 브라운리는 돈만 아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악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눈감아 주는 사람이다. 다른 두 인물 작살수 드랙스와 섬너의 대결 구도가 단연 돋보인다. 드랙스는 악랄한 성격에 생각 자체는 없고, 바로 행동이 먼저인 흉악한 인물이다.


생각은 무슨?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란 사람은 내키는 바를 따를 뿐이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필요하면 하는 거지생각 같은 것은 별로 안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생사를 같이 한다니 볼런티어호 사람들이 온전할까 간담이 서늘해진다.


 항해 중에 열세 살의 사환인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남자아이가 성인 남자에게. 이상하게도 아이는 누가 그랬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브라운리는 매켄드릭을 의심하여 취조하고 투옥시키지만, 의사인 섬너는 특유의 예리한 촉각과 직업적 감각으로 전말을 밝혀낸다.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릴 있고 가독성이 있다.


 결국 포경선 볼런티어호는 난파되고 선원들은 하나하나 죽어가고 마지막에 한 명만 남는다. 작살수이지만 신비주의자인 오토의 예언대로. 억세게 운이 좋은 섬너라고 해야 할까. 결국은 돈이 걸린 문제였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울타리에서 온갖 피비린내와 악취를 풍긴 셈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사지로 내몰고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선한 끝은 있지만, 악한 끝은 없다더니 드랙스는 백스터의 계획과 달리 섬너의 손에 죽는다. 그렇다면 섬너는 진정 선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선한 부류에 속하지만, 선을 끝까지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다. 볼런티어호에서 벌어진 진실을 알리려 했던 섬너는 백스터를 만나러 갔다가 돈을 받고 타협한다. 진실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이다. 근본적인 진실이 두려워 외면하는 부류가 되어가는 자신이 소름끼치면서도.


 어쩌면 작가는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살육을 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서 벌인 온갖 악행에 대한 벌을 불협화음, 살인, 조난, 난파의 고통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퍼시벌호에 탄 선원들이 모두 죽거나 미쳐가는 사고를 내고도 브라운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볼런티어호를 운항한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듯이 온갖 악은 우리의 삶에서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극한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 묘사와 생생한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나, 생각지 못한 반전의 연속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길 밖에 안 되는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무한하지 않은 인생, 자연을 둘러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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