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요즘처럼 음식과 셰프에 관한 이야기가 넘치는 시절이 또 있을까 싶다. 삼 년 전 현재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셰프가 쓴 <예스, 셰프>를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 마르쿠스는 묘하게도 이 소설에 나오는 셰프 에바 토르발처럼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다행히 스웨덴의 양부모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축구를 엄청 좋아했는데 몸을 다치면서 할머니의 요리를 돕다가 진로를 바꾸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 백악관 초빙 셰프로 우뚝 서게 되는 성장기이며 요리 이야기다. 그가 살아온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은 험난한 여정이었기에 가슴 찡한 감동의 여운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 셰프의 길도 예술가 못지않은 열정과 인내, 정성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 주 덜루스 지역이다. 문장에서 위트와 능청스러움이 묻어나서 꽤 재미있다. 특히 형제의 우애가 좋아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라르스가 지독한 냄새가 나는 루테피스크를 만들게 된 것은 순전히 도러시 세아보리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열 두 살이던 라르스와 그 아래 동생 얄이 떠맡게 되었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루테피스크를 먹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루테피스크는 말린 대구를 삭혀 만든 톡 쏘는 냄새의 노르웨이 전통 요리라고 하는데, 왠지 우리가 먹는 홍어가 떠오른다. 쾨쾨한 냄새와 톡 쏘는 홍어. 이 작품은 읽어가는 동안 오감을 자극한다. 보이진 않지만,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반 친구들도 그를 피했고 10대 시절 내내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열여덟 살이 되자 루테피스크 전통이고 뭐고 인내심도 바닥이 난다. 반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루테피스크를 만드는 솜씨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어느새 주방의 작은 마법사로 성장한다.


 오로지 셰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덜루스를 떠난 라르스는 제빵 기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요리 등을 모두 섭렵하면서 십 년을 보낸다. 헛매커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키가 호리호리한 미모의 신시아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최고로 잘 고르는 똑똑한 웨이트리스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인가. 스물여덟 살까지 총각딱지도 못 떼던 순수한 청년이 사랑에 빠져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의 애정 전선은 바야흐로 핑크빛이다. 딸 에바가 태어나자, 스스로 감격하여 펑펑 울던 라르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아기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에게 돼지고기 항정살로 만든 음식을 먹이려 하다니. 딸아이를 진료한 의사는 이 십 개월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라르스는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느냐며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냄새라도 맡게 해야 한다면서 요리하는 그들 옆에 아기를 두며 요란을 떤다. 여기까지는 보통 가정의 소소한 행복이 느껴진다.


 불행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온다더니, 새 업무로 와인 출장을 갔던 신시아는 제러미와 눈이 맞아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만을 달랑 보낸다. 아이를 가진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말과 함께 자기를 찾지도 말고 전 재산을 모두 넘기겠다며. 그 후 요리만이 자신의 구원이자 기쁨이었던 라르스는 장보기를 하고 오다가 심장마비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엄청 사랑했던 딸 이제 6개월 된 에바를 남기고. 말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에바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급반전된 라르스의 죽음 이후 이제 에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아기였던 에바를 잘 돌봐주었던 얄과 피오나 부부는 에바의 부모가 된다. 열한 살이 된 에바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그 외로움을, 세상에서 제일 맵다는 칠리 고추 초콜릿 아바네로를 키우는 낙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매운 칠리 고추를 넣은 음식으로 복수를 하며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음식점에서 손님과 매운 음식을 먹는 내기를 벌여 돈을 벌기도 하는 등 괴짜가 되어간다. 이후에는 에바가 이야기의 전반에 걸친 주인공이라는 느낌보다는 조연처럼 비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스쳐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오나의 언니네 가족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바는 어떻게 셰프가 되어가는 걸까. 특별히 요리 수업을 받을 기회도 없었는데.

우연히 남자 친구 윌 프레이거와 음식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셰프로부터 미각의 천재라는 칭찬을 듣는다. 음식에 로즈메리가 보이지 않지만, 타고난 후각과 미각으로 그 맛을 알아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척척 맞춘다. 그 인연으로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그 신선도를 위해 직접 키우고, 온갖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은 가히 예술가로 태어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는 등 점차 유명한 셰프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에바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3~4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고.


 한편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홀가분하게 어린 에바를 두고 떠났던 신시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작품 마지막 장의 더 디너는 에바가 셰프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찬에 초대되어 에바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얼마나 맛있는지 그 표현을 보면 그 음식이 눈에 선하고 침이 고일 정도다.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에바와 만나게 된 신시아(신디)는 라르스를 안다고 하면서 에바와 가족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꼭 빼닮은 에바를 보면서 엄마임을 밝히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끝난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담담한 이야기로. 안타깝지만,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각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결핍이 불행을 부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없는 살림을 살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워 준 삼촌 부부와 친척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기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빛나는 셰프로 성공한 건 아닐까.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 결과가 아닐까. 아기의 똥냄새가 싫어서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뭇 남자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마음이 너덜너덜 해져서야 옛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렇게 뒤늦게 철들며 성숙해지는 걸까. 이는 소설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도 하다. 저자 J. 라이언 스트라돌은 2015년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위트 있는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몰입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각종 요리 레시피는 물론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담담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감동도 들어있다. 아름답고 빛나는 셰프로 성장한 맛있는 인생, 맛있는 요리 이야기 이후의 그의 작품이 너무 궁금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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