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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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맨부커상 수상작과는 달리 좀 안 읽혔다. 초반에는 좀 지루한 느낌이었고, 과거의 기억과 현실을 오가는 때문인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작품의 도입 부분부터 감정을 절제한 자제력 있는 깔끔한 문장과 작가의 감성이 느껴졌다. 오히려 담담한 절제미가 눈물을 자아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형 톰이 전쟁에서 돌아왔는데,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는 장면...)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는 문학을 통해서 간접체험 한다. 직접 체험한 사람의 심정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그 참상을 감정이입하며 공감하게 된다. 전에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삶의 의미 찾기가 주제였다면, 이 작품은 열린 공간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포로였다는 점은 비슷하다. 오히려 더 가혹하다고 할까. 동료들 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모든 수치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의 선악, 상실감으로 인한 무기력 등 복잡한 내면의 심리를 이토록 세밀하게 그릴 수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의 내용을 알기 전에 제목만 봐서는 시적인 느낌이 강했다. 일본의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커다란 장르를 이룬다는 하이쿠가 등장한다. 17세기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의 고전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어판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에번스가 테니슨의 율리시스를 말하는 장면과 하이쿠를 언급하는데, 그 시적 우아함과는 전혀 상반되며 오히려 그 참혹함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타이-미얀마 간 죽음의 철도라인에서 살아남아 현재 잘나가는 의사이자 화려한 전쟁영웅이 된 외과의 도리고 에번스다. 의도하지 않게 언론과 방송의 주목을 받으며 어느새 유명(有名) 인사가 되었지만,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도리고 에번스가 젊은 날 전쟁터로 출정 전 우연히 만난 키스 고모부의 아내 에이미와 나눈 사랑에 대한 기억과, 차후에 철도건설 현장의 일본군 전쟁포로로서 겪는 잔혹하고 비참한 현실이 주된 이야기 배경으로, 자신의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교차하며 괴로워하는 삶의 어둡고도 치열한 현장을 보여준다.



 굶주림과 전염병과 폭력이 난무하는 빗속의 정글에서 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된 포로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참혹함 그 자체이다. 주먹밥 하나로 하루 일정을 마쳐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상황이라 먹을 것과 휴식만이 간절하다. 기계도 없이 정과 망치 하나만으로 정글을 베어내고 바위를 깨서 길을 내야 하는 과정이다. 간혹 오리 알 이나 작은 야자당 한두 개를 구경하게 되면 그들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대하듯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을 대하듯이희망을 가진다. 어디 굶주림뿐인가. 군화도 없이 맨 발로 작업복은커녕 거의 알몸이다시피 한 몸으로 이동하다가 죽기도 한다. 철도 건설이 진척되기도 전에 시체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에 일본군 사령부는 안달이 난다. 완공 시한을 두 달이나 앞당기며 채찍을 가한다.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명령일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도 고타와 나카무라는 잇사와 부손, 바쇼의 하이쿠에 공감하면서 점점 감상에 빠져든다. 철도가 인도 침공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 바쇼의 아름다운 시와 더불어 온 세계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들뜬다. 철도의 완성은 일본 정신이며, 유럽인이 못한 일을 자신들이 해냄으로써 우월한 인종이라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그 정신이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할 거라는. ()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랑에 관한

키스 멀베이니와 에이미의 어긋난 사랑은 도리고와 엘라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도리고의 마음에는 에이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욕망, 끝없는 바람기가 계속된다. 아내와 자식들과의 불협화음을 이룰 수밖에 없다. 그저 자신의 육욕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건 아니다. 절제할 수 없는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배려의 결여, 윤리적인 의식의 결여에 다름 아니다.



 만약, 에번스가 빅터 프랭클 처럼 삶의 의미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원()의 일상으로 돌아온 후반의 삶은 좀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그 자체가 감사함이 아닌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 모든 모임, 가족관계에서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낄 틈이 어디 있겠는가. 외양만 영웅이 아니라 내적으로 성숙한 영웅으로서 희생자 가족이나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한 노력 없이 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핑계를 댈 수는 없다. 그냥 자신의 마음을 따라 충족하려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세상은 얼마나 무질서한 아수라장이 될 것인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렇게 먹칠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악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악을 저지르는 자는 의외로 원래 악한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고타는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사람이지만, 천황의 명령을 따라야 된다는 명제 하에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도 마다하지 않고 배운다. 처음엔 속으로는 죽도록 겁에 질렸지만, 한 번 해냄으로써 죽어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과정을 나카무라한테 얘기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도 달지 말고 철도 완성의 임무를 마쳐야 한다는 말이다. 굶주림, 영양실조, 콜레라, 각기병 등 전염병, 폭력에 시달리다가 인원은 점점 줄어드는, 죽어도 불가능한 상황에 포로 백 명은 스리파고다패스 구간 근청의 캠프로 보내라는 명령이다. 버마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약 15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한다. 기계나 연장도 추가 지급 없이 인력은 부족한 상태로 어쩔 수 없지만다른 길은 없다. 포로를 철도 건설의 원료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집착과 광기를 본다.



동료들의 죽음에 관한 상실감

 전쟁 포로가 되어 생사를 함께 하다보면 미우나 고우나 동료애가 싹트기 마련이다. 전쟁에 관련된 작품을 많이 접했지만, 이토록 처참한 내용은 처음인 것 같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희망을 떠올리며 동전 던지기 게임을 하는 장면은 애잔하다. 덩치가 크고 건장했던 타이니가 일본인이 정한 할당량을 더 빠른 시간에 해내어 죽음을 목전에 둔 동료들의 미움을 받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점점 해골이 되어간다. 거기에 더욱 잔인해지는 경비병들의 매질까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다. 다키 가디너는 그가 싫지만, 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한 명이 죽어나갈 때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것이다.


 다키는 그와 오리 알 한 개와 주먹밥 하나를 나누어 먹는 장면은 눈물 젖게 만든다. 타이니는 마치 성체를 받듯이 두 손으로 받아 둘이서 캄캄하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한 입 두 입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다. 생사를 같이 했던 동료 중 스케치 재주가 있던 토끼 헨드릭스, 괴저로 다리가 썩어 수술을 받던 잭 레인보우 등 하나씩 죽어간다. 활활 타는 동료의 주검을 본다. 그 상황을 에번스도 그 누구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 끔찍한 공포에서 도망칠 길이 없고 인간이 숭배하는 어떤 신보다 폭력이 더 위대한 곳이다. 바지에 똥을 지리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던 다키는 똥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에 절망하고 우리가 되어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관한

일본의 패전으로 포로들의 지옥 같은 악몽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들을 삶과 죽음으로 갈라놓았다.


그들은 죽음의 냄새를 막으려고 담배를 피우고, 죽음이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농담을 주고받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되새기려고 음식을 먹었다. 다키 가디너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을 계산하면서 매번 자신의 운이 좋아진고 있다고 믿었다.’(P50)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온갖 것에 희망을 걸고, 순전히 환상에 대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운명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잔인한 세월을 보낸 뒤 이제 트라우마로 고생한다. 가족과 불협화음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생활도 정상적이지 않다. 마음은 온통 동료들의 시체가 쌓인 정글에 머물러 있다.



 전범을 처벌한다는 신문기사가 나고 재판이 시작되지만, 고타나 나카무라는 그 벌이 미약하거나 피해간다. 그런 악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는데, 처벌은커녕 선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추악한 가식으로 무장한 선() 이다. 인간의 내면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환경에 재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했던가. 천황의 명을 받들며 살기 위해 온갖 악행을 쌓더니, 이제는 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선을 가장한다.



 일본군의 경비병이었던 최상민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겁 많은 선량한 소년이 악의 우두머리의 하수인이 되었다가 사형수 신분이 되었다. 일본인 가정에서 하인으로 숙식과 매달 6엔의 봉급과 매질을 견디다가 매달 50엔을 준다는 말에 경비병이 된다.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을 위해 살았던 그는 내 돈 50엔을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빈곤한 가정, 시대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자신의 삶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로지 돈 만을 쫓은 삶이 이런 결과를 만든 건 아닐까. 학습한 악()은 그대로 전이된다.



 철도 라인의 삶이 선()상의 삶이라면 그 후의 삶은 원()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삶, 죽음이 삶이 되고 삶이 죽음이 되고 그것이 계속된다. 여기서 에번스가 떠올렸던 빛이란 어둠의 그늘에서 간절히 바랐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 억압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갈 자유, 자연속에서 호흡 할 자유 말이다. 전쟁의 한 가운데 포로가 되어 한 배에 탄 동료들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가 죽으면 내가 죽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 없는 하루하루가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가혹한 굶주림과 병약해진 몸으로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견뎌내는 몸부림이 너무 가혹하다. 작가는 큰 틀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그 아래에서는 인간관계의 내면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선과 악, 증오, 부끄러움의 내밀한 마음이 아프도록 절절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비교적 안정을 찾아가는 가운데 모든 것은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조금씩 잊어간다. 선악의 주고받음도. 평온한 일상은 지루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시시포스가 절벽 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비인간적인 전쟁 범죄는 어떻게든 단죄를 받아야하며 그 기억은 잊어서는 안 된다. 연합군 중에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네들의 이기적인 광신을 위해 희생된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상흔의 실상이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 마치 이건 꿈이 아닐까, 저 너머의 세계,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세계를 들여다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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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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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던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톤 텔레헨의 두 번째 어른 동화 소설이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은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전작의 주인공은 소심하고 걱정 가득한 고슴도치였다는데, 이 작품은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를 보여준다. 자꾸만 떨어져 다치고 후회하면서도 매일 다른 나무에 오른다. 주변의 다른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원서에는 없다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도 들어 있어 코끼리의 마음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담한 판형에 여유있는 여백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기 쉬운 편안한 휴식 같은 느낌을 준다. 읽기에 적당한 활자와 파스텔톤의 그림도 사랑스럽다.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는 코끼리의 모습을 보니,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이는 얼마나 고정관념에 묶인 말이며 인간의 꿈과 목표에 한계를 긋는 말인가. 예전보다 유연해져서 이 속담을 곧이듣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더러는 그렇지,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곤충도 나온다. 땅 속에 사는 두더지와 지렁이, 하루살이, 바퀴벌레, 심지어 진딧물 같은 작은 생물까지 나오는데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존감이 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제각각 코끼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바쁘다. 커다란 귀와 코가 달린 자신의 모습이라든가 코끼리의 행위(나무에 오르기)를 상상해본다. 어떤 동물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엄청 부러워하기도 한다.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상상의 늪을 헤매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와, 결국은 내가 나여서 얼마나 다행인지모른다며 안심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여러 곤충, 동물들의 생각을 엿보는데,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시작은 했는데, 여기저기서 걸림돌을 발견한다. 좀 더 편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고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여기 거북이의 머릿속을 보자.

내가 코끼리라면, 코와 귀가 가장 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리고 하루 종일 나무에 올라가야 하더라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거야. 그래도 거북이 등딱지 하나 장만해둬야지.’

(중략)

만약 나무에서 떨어지면 등은 바닥을, 몸은 하늘을 향한 채 등딱지로 떨어질 거거든. 내 등딱지에는 혹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어.’(P103)

 

 아마도 여기서 등딱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덜 다치도록 하는 완충재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코끼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다리 하나는 이쪽에 걸치고 있다가 실패할 경우 돌아올 곳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생각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 이건 이런 경우구나 하고 내 결점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찔리고 웃음이 난다. 작은 곤충, 땅속 동물, 바다, 땅 위에 사는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킨 것은 수없이 다양한 환경과 다른 처지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리거나 빈정거리던 친구들이 조금씩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기에 이른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나를 둘러싼 가족이나 지인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돌아다보게 한다. 힘찬 응원을 보냈는지, 어땠는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살짝 위트 있는 그러나 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걱정은 우선 멈추고 일단 한 번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해 준다.

 

친애하는 코끼리에게

 

방금 네가 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너는 지금쯤 나무 밑 땅바닥 어딘가에 쓰러져 있겠지.

너는 아플 거고, 어쩌면 여기저기가 죄다 부러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

매번 나무에 오르고 오를 때마다 떨어지는 너를 우리가

끔찍한 바보로 여긴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 우리는 네가 바로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존경스럽기도 해!

우리는 못 하는 건 절대 안 하지만, 너는 하잖아.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하고 재고 따지는데,

너는 일단 시작하고 보잖아.

우리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 판단할까봐 두려운데,

너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것 같아.

(중략)

그러니까 코끼리야, 우리 말 듣지 말고 계속 나무에 오르길 바라!(P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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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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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제목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고전적이고 품위가 느껴져서 호기심을 끌어당겼다. 영국이 낳은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로버트 해리스의 종교 스릴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종교에 대한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황이란 위치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사명감 이외에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 직접 만날 일도 별로 없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그 성직자들의 세계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처음엔 몰입이 잘 안 되는데 중반을 넘어갈수록 허리를 곧추세워 앉게 만든다. 사건이 사건이니 만큼 언론과 방송은 교황청에 주목을 하고 있으며 선거의 분위가 상황을 중계하듯이 실감나게 세세하게 묘사된다. 성직자는 속세의 생활과는 매우 다르고 고귀한 인품이며 한없이 넓은 마음을 기대했는데, 읽어 나가다 보니 웬걸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성직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니까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 성직자들의 야망이 속속 드러나고 서로를 질투하며 험담하는 분위기가 분분하다. 중간 중간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복선을 깔아놓고 여지없이 반전으로 폭죽을 터뜨린다. 독자가 생각지 못하고 건너뛸 것 같은 이야기가 반전이 된다.


 전 세계 117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다. 콘클라베, 라틴어로 콘 클라비스(con clavis). ‘열쇠를 지니다는 뜻으로 식사와 잠을 제외하고 교황을 선택하기 이전에는 이곳 시스티나 성당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웬일인지 공식 명단에 없던 한 명의 추기경이 있었으니 의중 결정 추기경으로 이름을 올린 베니테스 추기경이다. 그리하여 118명의 추기경이 되었고, 선거인단 3분의 2, 79표를 얻어야 교황에 선출된다. 원칙에서 벗어난 이 추기경의 숫자는 이야기에 어떤 반전을 예고하는 건 아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추기경 단장 로멜리는 콘클라베 선거 관리 임무를 떠맡게 된다. 국가 출신도 다양한 추기경들이 후보에 오르면서 기득권의 입김이 거세진다. 물론 로마의 교회를 살리기 위해 교황직을 되찾아야 한다며 이탈리아에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본격적인 비밀회의가 시작되자,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판의 선거를 방불케 한다. 후보를 음해하고 방어하는 공작이 난무한다. 만국의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로서 이래도 될까 씁쓸해지기 시작한다. 우선 유망한 후보는 알도 벨리니, 조슈아 아데예미, 조지프 트랑블레,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이다. 전통적인 선거는 다섯 번째에 결론이 나왔다는데, 여섯 번 일곱 번째가 넘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과연 누가 될 것인가. 횟수가 거듭함에 따라 로멜리 자신의 지지도 점점 올라간다. 자신은 자격이 안 된다며 사양하면서도 지지율이 높아지자 내심 우쭐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가 아닌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도덕적으로 고결하고 완전무결한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된다면 그보다 더 금상첨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직자도 사람일진대, 아무런 흠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과오를 파헤치느라 여념이 없다. 총체적비리로 인해 트랑블레는 성하의 마지막에 면담으로 해고를 당했다는데, 모든 것을 숨기고 잡아뗀다. 비밀스런 밀실에서 은밀히 주고받은 대화를 무엇으로 증거를 확인할 것인가. 증인이 있는데도 중상모략이라고 밀어붙인다.


 과연 교황을 선출하고 흰색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막판 뒤집기 묘미를 보며 수년 전 대통령 선거가 생각난다. 밤을 새워 지켜본다며 잠깐 졸던 중 역전승의 환호에 잠이 달아나고 새벽이 밝아오던 기억. 일곱 번의 투표는 연습이었던 것일까? 여덟 번째에 드디어 교황이 탄생한다. 이 콘클라베의 마지막 반전은 참 웃긴다고 할까. 그간의 통념을 완전히 깨며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다. 신보다는 관직에 연연하는 성직자들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전통적이고 경직된 남성 우월의 권위적인 성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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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기술자
토니 파슨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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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도입부 프롤로그는 한 소녀가 학교의 음침한 지하실에서 여러 명의 사내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대마초에 취해 몽롱한 틈을 타서 상처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탈출한다. 물론 도망가다 걸려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고 소녀는 온 힘을 다해 누군가의 눈을 푹 찌른다. 가까스로 도로까지 나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조금 전 제일 악랄하게 굴었던 뚱보 녀석, 아까 그 놈들이다! 사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는데 다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이런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면 보통은 언론과 신문에 떠들썩하고 제보를 요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난리가 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덮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다.


 화자인 울프 경장은 딸 스카우트와 애견 스탠과 같이 살고 있다. ‘죽기로 작정한 남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워 신원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스와이어 총경은 철수를 명령한다. 하지만, 울프는 명령에 불복하며 경찰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감()으로 용의자를 잡으면서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강력계의 신참이 된다.


 어느 날 35세의 유능한 투자은행가 휴고 벅의 시신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청소부에 의해 발견된다. 아무도 그의 비명이나 의심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새벽시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건물인데도. 소리를 치려면 공기가 필요한데 기도(氣道)가 베여서,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칼에 목을 절단하여 머리가 댕강 잘릴 뻔 한 모습... 끔찍하다. 아무 흔적 없이 살인을 하다니 그야말로 살인 기술자가 아닌가. 흔히 있을 법한 지문도 없다. 더구나 장갑지문조차도 발견되지 않아 맬러리 경감을 비롯한 수사팀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아내가 딴 남자에게 가버려서 다섯 살 난 딸과 살고 있는 외로운 형사 울프는 의외로 예리한 데가 있다. 상관인 총경의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곧이듣지 않는 강단이 있다. 여기서도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살자나 외과의, 군인 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범위를 한정한다.


 선혈이 낭자한 휴고 벅의 책상엔 일곱 명의 젊은이가 군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만이 한 장 있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상당히 의외다. 가족사진도 아니고 일곱 명의 소년티가 나는 남자들이라니. , 그때 그 지하실 사건인가.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일이 휴고 벅의 살해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나 보다, 점점 빠져들면서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빠르게 읽히며 다음 장이 궁금해서 막 넘어간다. 처음엔 휴고의 아내 나타샤가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전날 경찰이 출동하는 폭력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프는 범죄 감식현장에서 나오다가 벽에 쓰여 있는 글씨를 발견한다.


돼지

피가 말라서 거무스름해진 글씨다. 이 글씨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떤 단서가 될까.


 휴고 벅을 살해한 용의자를 찾기 위해 분분한 가운데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마약에 찌든 노숙자의 시신. 목의 기도가 잘린 모습으로 범행 수법이 똑같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인식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두고 수사방향이 확 바뀐다. 그의 이름은 아담 존스. 그의 집에서 휴고 벅스의 책상에서 발견한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발견한다. 탐문 탐색을 통해 좀 더 빠르게 윤곽이 드러난다. 이들은 포터스 필드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죽은 두 사람 외에 쌍둥이 형제 벤 킹, 네드 킹, 가이 필립스, 살만 칸, 제임스 서트클리프 이렇게 일곱 명이 확정된다. ‘포터스 필드는 성경에서 따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라는 뜻이라 하는데 마치 이들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이쯤 되면 다음은 차례는 누구일까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범행에 쓰인 무기는 페어번-사익스 군용 나이프로 맞붙어 싸울 때는 이만한 도구가 없을 만큼 확실한 도구란다. 이 중에 제임스 서트클리프는 열여덟 살에 자살한 것으로 나오는데...


 한편 도살자 밥이라는 인물이 익명 서비스와 어니언 라우터라는 보안이 강화된 매체를 이용하여 SNS에 메시지를 퍼뜨리며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중 빠지지 않는 후렴구 같은 내용은 돼지를 모두 죽여라. 어느 사회나 부자들을 향한 증오심은 팽배하다. ‘도살자 밥은 부자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빈자에겐 대리만족의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영웅으로 부각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총경을 비롯한 언론 기자 등은 도살자 밥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지만, 울프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름 열심히 조사하고 다닌다. 블랙 뮤지엄(범죄 도구 박물관)이나 전쟁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실마리를 얻기 위해 바쁘다.


 한 사람씩 죽어가고 모교에서 친구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아담 존스만 빼놓고 나머지는 부유층이다. 은행가, 체육교사, 정치인, 현직 군인 대위, 변호사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있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남아 있는 친구들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단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섹스중독자인 휴고와 마약 중독자인 아담이 죽어도 싸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신변에도 위험이 닥칠까 차츰 불안에 사로잡힌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뚱보 필립스와 면담하려고 포터스 필드에 갔다가,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필립스를 마주하게 되고... 자살한 친구 포함 네 명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쌍둥이 형제, 살만 칸 이렇게 셋이다. 엄청난 반전이 있고 작은 반전들의 연속이다. 법의학자의 명쾌한 감식과 울프와 형사 연수생 에디 렌의 척척 맞는 조합도 재미있다. 놀라운 작가의 필력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니 파슨즈를 기억해야겠다. 범인은 진짜 생각지 못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음악의 천재였던 아담 존스는 친구들을 잘못 만나 마약에 찌들게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변태성욕자인 선생으로부터 정신적, 성적 학대를 받으며 일그러졌다. 면담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그들의 어두운 과거는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의 미래여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사람이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복수해 준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이다. 허점투성이인 학교, 경찰, 법원 등 지역 사회가 못해 준 일을 누군가 나서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둘렀다. 마지막까지도 숨겨져 있던 반전을 발견하며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자신이 쌓아올린 안위를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을 욕되게 하는 인간의 파렴치함을 보았다. 선함 속에 숨어 있는 악은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모른 척하고, 누군가가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있다. 이를 두고 생각나는 속담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하는 것일까. 하나의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 모든 국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지역, 국가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커다란 악을 생산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우리사회의 교육, 행정 등 지역사회의 작동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는지 여부에 일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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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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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이언 맥과이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2016년 맨부커상 후보작, 2018년 더블린 국제 문학상 후보작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배가 출입하는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부두의 풍경이 나오는데, 보통 소설처럼 평범하지 않다. 일꾼들의 고함 소리를 비롯한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한다. 특히 뱃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칠고 원색적인 욕설이 너무 놀랍고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팍팍함인가 싶어 그 오싹함에 움츠리게 되고 행여 이런 사람들 꿈에라도 만날까 두렵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 온 감각이 총동원되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석유가 등장하기 전에 불을 밝히는 연료는 고래 기름을 썼다는데, 말 그대로 고래를 잡아야 했으니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학대하고 살육을 통한 문명의 역사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자본가 백스터의 배 볼런티어호에 승선한 선원 생활 30년 경력의 선장 브라운리, 군의관 출신의 섬너가 주축이 되어 일등 항해사 캐번디시, 작살수 드랙스 등 선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섬너는 퀸즈 부두로 가는 길에 만난 다리 없는 거지에게 길을 묻다가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브라운리랑 배를 탄다고? 신세 조졌구먼. 빼도 박도 못하지.”

쪽박을 차고 싶거나, 다시는 집 구경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해줄 거야. 그 모든 걸 다 해낼 능력자니까. 퍼시벌호 얘기는 못 들었나? 그 망할 놈의 퍼시벌호 소문을, 자네가 들었어야만 하는데.”(P42)


 하지만, 광란의 인도 전선에서 푹푹 찌는 더위와 추잡함, 잔혹한 만행, 지독한 악취에서 빠져나온 섬너는 출항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다. 자연의 위대한 경이를 스케치 하려고 그림 도구와 폭넓은 독서를 할 요량으로 호메로스나 일리아드도 챙겼으며, 그 지옥 같은 인도와는 전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얼어붙은 바다 북극과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과연 섬너의 기대는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선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선장 브라운리는 급사한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으며 뜻밖의 횡재를 얻었다는 섬너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는지 의아해 한다. 웬만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하게 간파하지만, 섬너의 속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댔지만, 섬너의 속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배신, 굴욕, 가난, 불명예, 양친을 모두 티푸스로 잃은 것까지 좋은 기회와 운을 여러 번 날렸고 계획은 금세 엉망이 된다. 어쨌건 악운과 불행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들 했다.


 살아남은 것 자체를 운이라 생각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 포경선을 탄 섬너는 서서히 깨닫는다. 북극곰을 사냥하면서 짜릿한 흥분과 장인의 자부심을 느끼는 드랙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덮으려는 분위기에 자신이 포악한 무법자들 틈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장 브라운리는 돈만 아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악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눈감아 주는 사람이다. 다른 두 인물 작살수 드랙스와 섬너의 대결 구도가 단연 돋보인다. 드랙스는 악랄한 성격에 생각 자체는 없고, 바로 행동이 먼저인 흉악한 인물이다.


생각은 무슨?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란 사람은 내키는 바를 따를 뿐이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필요하면 하는 거지생각 같은 것은 별로 안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생사를 같이 한다니 볼런티어호 사람들이 온전할까 간담이 서늘해진다.


 항해 중에 열세 살의 사환인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남자아이가 성인 남자에게. 이상하게도 아이는 누가 그랬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브라운리는 매켄드릭을 의심하여 취조하고 투옥시키지만, 의사인 섬너는 특유의 예리한 촉각과 직업적 감각으로 전말을 밝혀낸다.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릴 있고 가독성이 있다.


 결국 포경선 볼런티어호는 난파되고 선원들은 하나하나 죽어가고 마지막에 한 명만 남는다. 작살수이지만 신비주의자인 오토의 예언대로. 억세게 운이 좋은 섬너라고 해야 할까. 결국은 돈이 걸린 문제였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울타리에서 온갖 피비린내와 악취를 풍긴 셈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사지로 내몰고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선한 끝은 있지만, 악한 끝은 없다더니 드랙스는 백스터의 계획과 달리 섬너의 손에 죽는다. 그렇다면 섬너는 진정 선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선한 부류에 속하지만, 선을 끝까지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다. 볼런티어호에서 벌어진 진실을 알리려 했던 섬너는 백스터를 만나러 갔다가 돈을 받고 타협한다. 진실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이다. 근본적인 진실이 두려워 외면하는 부류가 되어가는 자신이 소름끼치면서도.


 어쩌면 작가는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살육을 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서 벌인 온갖 악행에 대한 벌을 불협화음, 살인, 조난, 난파의 고통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퍼시벌호에 탄 선원들이 모두 죽거나 미쳐가는 사고를 내고도 브라운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볼런티어호를 운항한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듯이 온갖 악은 우리의 삶에서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극한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 묘사와 생생한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나, 생각지 못한 반전의 연속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길 밖에 안 되는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무한하지 않은 인생, 자연을 둘러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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