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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마음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2월
평점 :
작년에 아쉽게도 만나지 못했던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톤 텔레헨의 두 번째 어른 동화 소설이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은 처음 만나는 작가이다. 전작의 주인공은 소심하고 걱정 가득한 고슴도치였다는데, 이 작품은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를 보여준다. 자꾸만 떨어져 다치고 후회하면서도 매일 다른 나무에 오른다. 주변의 다른 동물들은 그런 코끼리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원서에는 없다는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도 들어 있어 코끼리의 마음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담한 판형에 여유있는 여백은 바쁘게 살아가느라 놓치기 쉬운 편안한 휴식 같은 느낌을 준다. 읽기에 적당한 활자와 파스텔톤의 그림도 사랑스럽다.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는 코끼리의 모습을 보니,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옛 속담이 떠오른다. 이는 얼마나 고정관념에 묶인 말이며 인간의 꿈과 목표에 한계를 긋는 말인가. 예전보다 유연해져서 이 속담을 곧이듣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더러는 ‘그렇지, 내가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어’ 하며 자포자기(自暴自棄)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극명하게 대조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곤충도 나온다. 땅 속에 사는 두더지와 지렁이, 하루살이, 바퀴벌레, 심지어 진딧물 같은 작은 생물까지 나오는데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우리 사람으로 말하면 소외감을 느끼거나 자존감이 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제각각 코끼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바쁘다. 커다란 귀와 코가 달린 자신의 모습이라든가 코끼리의 행위(나무에 오르기)를 상상해본다. 어떤 동물은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동물은 엄청 부러워하기도 한다. 끔찍하고 엄청난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상상의 늪을 헤매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와, 결국은 ‘내가 나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안심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여러 곤충, 동물들의 생각을 엿보는데,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무릎을 치게 된다. 어떤 일을 시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시작은 했는데, 여기저기서 걸림돌을 발견한다. 좀 더 편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고 이걸 꼭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여기 거북이의 머릿속을 보자.
‘내가 코끼리라면, 코와 귀가 가장 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리고 하루 종일 나무에 올라가야 하더라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거야. 그래도 거북이 등딱지 하나 장만해둬야지.’
(중략)
‘만약 나무에서 떨어지면 등은 바닥을, 몸은 하늘을 향한 채 등딱지로 떨어질 거거든. 내 등딱지에는 혹이 생긴 적이 한 번도 없어.’(P103)
아마도 여기서 ‘등딱지’는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닐까. 실패하더라도 덜 다치도록 하는 완충재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코끼리는 되지 않겠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다리 하나는 이쪽에 걸치고 있다가 실패할 경우 돌아올 곳을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생각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리재고 저리재고 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아, 이건 이런 경우구나 하고 내 결점을 들킨 것 같아 괜히 찔리고 웃음이 난다. 작은 곤충, 땅속 동물, 바다, 땅 위에 사는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킨 것은 수없이 다양한 환경과 다른 처지의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코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말리거나 빈정거리던 친구들이 조금씩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기에 이른다. 이걸 보면서 우리는 나를 둘러싼 가족이나 지인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돌아다보게 한다. 힘찬 응원을 보냈는지, 어땠는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살짝 위트 있는 그러나 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걱정은 우선 멈추고 일단 한 번 시도해보라고 격려를 해 준다.
친애하는 코끼리에게
방금 네가 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어.
너는 지금쯤 나무 밑 땅바닥 어딘가에 쓰러져 있겠지.
너는 아플 거고, 어쩌면 여기저기가 죄다 부러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겠지.
매번 나무에 오르고 오를 때마다 떨어지는 너를 우리가
끔찍한 바보로 여긴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 우리는 네가 바로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존경스럽기도 해!
우리는 못 하는 건 절대 안 하지만, 너는 하잖아.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하고 재고 따지는데,
너는 일단 시작하고 보잖아.
우리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 판단할까봐 두려운데,
너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것 같아.
(중략)
그러니까 코끼리야, 우리 말 듣지 말고 계속 나무에 오르길 바라!(P163~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