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경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생겨났고 경제 활동 속으로들어가면서 이념적인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경제의 일환이고 본질적으로 세속 생활 그 자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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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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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구입하고 저자 소개를 보니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읽어나가면서 기우였음을 알았다. 내가 전에 읽었던 뇌 과학 책에서 본 내용을 만났을 땐 반가웠다. 과학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뇌 과학에 대한 흥미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10년 동안 기업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온 뇌 과학 강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강연 12편을 묶어서 새롭게 덧붙여 구성했다고 한다. 강의형식으로 되어있고 경어와 적당한 추임새도 들어있어서 마치 현장에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궁금해서 아들에게 혹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쓴 이 작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등학생 때 필독서여서 읽었다고 했다. 과연, 출간한 지는 상당히 된 책인데 나는 처음 알았다.


 벌써 서문에서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101번 고속도로의 광고판에 적힌 문장을 해석하면,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라는 의미가 되는데 구글의 직원 채용 방식 중 하나였다니 창의성을 중시하는 기업은 뭔가 달라도 확연히 다르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열 두 발자국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이며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라는 ’, 그 신비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을 접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어도 뇌는 소중한 신체기관이며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부 더 나은 삶을 향한 탐험, 2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일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거의 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2부에서는 근래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첫 강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계획을 세우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공부, 운동을 계획하고, 부자가 되기 위한 재테크 계획, 노후 준비 등 어쩌면 계획만 세우다가 실행에 이르지도 못하고 마는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선택의 과정에서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시멜로 챌린지(marshmallow challenge)’라는 게임 이야기로 이해를 도와준다. MBA학생, 변호사, 유치원생, 건축가, CEO, CEO와 비서 팀에게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을 주고 18분 동안 제일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게임이다. 여기서 유치원생이 쌓은 탑이 훨씬 높게 나오는데 어른들과 다른 점은 계획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저것 재보는 계획보다는 실행력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또 인센티브를 건 실험에서는 조급함과 무모한 도전으로 시야가 좁아져서 올바른 선택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획과 인센티브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한다는 조언과 함께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위해 고민해보는 자세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결정 장애, 요즘 세대를 결정 장애 세대(generation maybe, 메이비 세대)라고 하는데 2012년 독일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적인 산물일 수도 있다. 예전과 달리 풍족한 시대인 만큼 학원이나 과외 등 모든 것을 아이가 원하기 전에 부모가 다 알아서 챙기다보니 결핍을 모른다는 것이다. 결핍이 욕망을 만드는 것인데 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지 못하다보니 스스로 결정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결정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소개한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을 떠올릴 때 두려움 없이 선택을 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할 일을 미루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유한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우리 뇌도 새로 고침을 할 수 있을까, 미신에 빠지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시절엔 아무나와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천진함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비슷한 무리로 구분을 짓고 한계를 긋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세상이다. 무엇을 지향하면서 살아갈지 생각하고, 일과 놀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계획했던 운동이 흐지부지 된다거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습관의 힘이며, 뇌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메카니즘의 한 방편이었다니 흥미롭다. 뇌의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에너지의 25퍼센트를 사용한다고 한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무엇엔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좋지 않은 습관은 싹 소거하는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형인간이 되어보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절박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뇌의 새로 고침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계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저자는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나는 내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주장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며 이 시뮬레이션이야말로 영장류의 특권이라는 것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도 사회에도 미신은 존재한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데스노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것이 얼마나 유행이었는지 모른다. 제목도 섬뜩해서 그런 것 읽지 말라고 채근했었는데 과학자인 저자가 좋아했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금기했던 기억, 운동선수들의 각종 징크스 등의 사례,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것을 금기시하거나 분신사바, 행운의 편지 이야기 등 한번은 겪었음직한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첨단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이제는 과감히 탈피해보자고 말한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웠다. 뇌 공학 분야의 신경과학자들의 실험으로 fMRI 안에 실험참가자들을 눕혀놓고 그들의 뇌를 찍은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전두엽과 후두엽,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전전두엽이 가장 고등한 영역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치 사람들도 혼자보다는 협업을 통해서 큰일을 이루는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왠지 나와는 관계가 먼 딴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을까. 저자가 소개하는 몇 가지 중에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운동과 건강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운동은 건강에도 유익하지만 뇌를 좋게 활성화 시킨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또 수면도 중요하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독서, 여행,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의 지적 대화를 하고 끊임없이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으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부분은 깊은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약간 어렵게 느껴졌지만 유익했다. 인간의 기술로 인공지능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그것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들의 세대는 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렵다고 공부하지 않고 눈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등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앞에 닥친 혁명의 물결은 오래 걸리더라도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 없이는 하루가 암흑세계로 느껴질 만큼 문명의 이기에 푹 빠진 시대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10년이 지난 요즘 실리콘밸리는 차세대는 어떤 미디어 플랫폼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흔히 인터넷 사용이나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기억력이 저하 등 뇌를 적게 사용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한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뇌를 쓰고 있을 뿐 뇌를 적게 써서 바보가 되거나 인지기능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의 기술 혁신으로 편리함과 효율성, 놀라운 생산성을 주었지만 이제는 우리를 지배하는 뇌가 되려고 한단다. 왠지 소름이 돋는다. 아직 잘 와 닿지 않는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는 무척 아름다운 기술이라고 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데 아름답다니...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정교하게 엮어놓았고 사용하게 되면 경제적 혜택이 명확하며 금융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라고 말이다.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차피 혁명의 가운데를 통과하는 과정의 삶을 살아가려면.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는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한데 이것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공생을 말하는 부분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배워야 한다는 조언에 수긍이 갔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잘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바로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문제를 푼다는 데 있고 어이없는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해와 더불어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고등한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과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감정 읽기 능력,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어느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혁명은 시작된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미래의 비전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혁명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저자와 같은 과학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 든든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숲에서 다양한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뇌 과학자의 뇌는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다가올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새로운 혁명의 과도기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주위도 돌아보며 공감하는 삶을 연습해 간다면 제4차 산업혁명이 그렇게 두렵지는 않을 것 같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좋은 책을 읽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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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진 - 일상의 시간에서 세상 밖으로 다시 나아가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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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부터 문사철로 거론되는 인문학의 인기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인문학에 해당하는 과목을 대학에서도 소홀하게 여기면서 강좌를 줄이는 등 그 폐해에 대해서 분분했던 적이 무색할 만큼 인문학의 열풍은 이전보다 더 뜨겁다. 기업의 CEO 등을 비롯한 부유층일수록 고가의 인문학 강좌에 시간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고,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의 통계자료에서도 인문학 분야의 전공자일수록 고소득자의 리스트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을 출간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빡빡한 삶에 지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자기성찰과 치유의 기회도 갖고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갈증의 해소 등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2013년부터 서울경제신문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새로 쓰고 다듬었다고 한다.

 

 강의내용은 1. 문학과 문장 2. 건축과 공간 3. 클래식과 의식 4. 융합과 이상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다시 한 PART당 세 개의 강의가 들어 있고 각 강의의 글쓴이는 다르다. 문학, 건축, 음악, 역사, 미술, 문화, 고전, 과학, 사회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하루에 짧은 호흡으로 소화할 수 있어서 부담이 없다. 느리게 음미하듯이 읽어도 좋겠다. 하지만 각 분야의 강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제법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첫 번째 파트의 문학과 문장에서 다룬 여러 문학작품 이야기와 3강의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가 좋았다. 역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한다. 말과 글이 삶을 바꾼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마음을 다잡는 글쓰기의 기술까지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막히는 글쓰기의 상황에 부딪혔을 때 도망갈 수 없도록 첫 문장을 쓰는 방법을 제시하고 쓴 글은 계속해서 읽고 고치는 것을 반복하라고 한다. 퇴고를 통해서 훌륭한 작가일수록 고치면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믿음을 가지고 반복해서 오래 해나갈 수 있다면 그것이 잘하는 일이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 건축과 공간 이야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앞으로는 어떤 건축물의 공간에 들어가면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유럽의 광장과 도시의 역사는 흥미로웠다.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런던과 파리의 건축양식이 다르듯이 그 곳 특유의 분위기에 맞는 조화로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끔 한다. 그런가하면 19세기 건축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에펠탑은 도시의 흉물이라는 비난에 철거 대상이 될 뻔했지만 지금은 파리의 랜드마크이자 관광객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역할을 하고 있다니 의도치 않은 반전이다. 또 근대건축발전에 이바지한 르코르뷔지에,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거장들의 건축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를 알 수 있었다. 이름난 성당 등 위대한 건축물이나 조형물이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심사숙고한 그들의 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직접 보게 된다면 감동과 경이로움으로 벅찰 것 같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너무 획일화된 주택이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도시공간이 너무 삭막하지 않나 떠올려보게 했다. 건축이란 정형화된 외관만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적 산물로 정신적인 양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17 스캔 사진. 파리 노트르담 교회)

 QR코드를 스캔하면 아름다운 건축물의 실물을 볼 수 있어 이해를 돕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심장인 서울의 건축문화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점도 유용했다. 궁궐 문지기에서 재상의 반열에 오른 박자청의 뛰어난 능력과 장인정신으로 탄생한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쾌거를 이룰 줄은 그 누가 알았을까. 노래로만 듣던 장충단 공원도 역사의 한가운데를 건너온 산물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세 번째의 클래식과 의식에서는 클래식과 문학이 상상력의 만남으로 어우러진 풍성한 문화의 확대를 보여준다. 괴테의 <파우스트>,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이 음악가들의 영감과 상상력으로 오페라로 탄생하여 더욱 폭넓은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음악을 듣고 살아갈까. 경쟁사회에서 감정마저 경화되어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점점 삭막해져가는 이 시대에 의도적으로라도 음악을 듣고 시를 한 편 읽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 여기에도 QR코드로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함께 들으면 좋은 음악의 정보를 알려주고 있어서 음악적 감성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오래되어야 좋은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것은 결국 내면의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적막과 고독, 비움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사유의 결과로 탄생하는 예술을 이야기하는 8강도 좋았다. 소멸하는 것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동아시아적 사고 대순환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유한한 삶을 어떻게 좀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게 한다. 바로 이어지는 9강에서는 시간이 만든 완성품, 와인이나 명품이 탄생하게 된 스토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녹아들어 있다. 인간의 욕망에 파고들어 신비주의 스토리텔링으로 성장한 장인들의 명품 브랜드는 오늘날에는 더욱 상업화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또 잔 다르크의 전설이 얽힌 백년전쟁이 결국은 포도밭을 되찾기 위한 프랑스와 영국의 영토분쟁이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듯 음악, 문학, 식품 등 분야는 달라도 역사와 전통속에서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네 번째 장의 마지막 12강 제4의 물결 편은 영국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대혁명 등 세계의 굵직한 혁명과 우리의 촛불 혁명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조각조각 알고 있거나 잘 몰랐던 혁명사에 관해 짧은 챕터지만 상세하고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문학작품을 읽어내는데도 좋은 배경지식이 될 것이다. 8만여 명이 수강한 인기 강연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인문학적 지식과 사고에 목말랐던 갈증을 채워주는데 훌륭한 강의가 되리라 믿는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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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저녁 - 동양철학 50 철학이 있는 저녁
리샤오둥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래타임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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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이룬 물질문명 덕분에 현대인들의 생활이 옛날보다는 훨씬 편리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에서 경쟁은 필수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글과 책을 찾게 된다. 동양철학자 50인의 이야기를 다룬 <철학이 있는 저녁>은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저녁 햇볕의 그림자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아침에는 세상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자고 하는 듯이.


 공자와 맹자를 비롯하여 50인의 철학자,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잘 몰랐던 인물들이 꽤 많았다. 2,500년 전에 살았던 인물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기적 폭도 상당히 넓다. 그동안 역사소설이나 역사서를 통해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얽힌 이야기로 조금씩 철학을 접해왔다. 이 책에서는 한 인물에 대해 짧은 이야기로 구성하여 속도감 있게 읽히고 재미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읽고 싶은 부분을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잘 알려진 유가 사상, 도가, 법가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괜찮았지만 이학, 심학 등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 한 꼭지의 글 뒤에는 철학적 사색거리가 있어서 오늘날 현재 상황과 견주어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고 내용의 이해를 도와준다. 수천 년이나 된 이야기가 오늘날의 삶에 적용하는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선인들의 삶의 궤적과 사상이 얼마나 심오한지 짐작할 수 있다.


불행은 행운이 기대는 곳이고, 행운은 불행이 숨는 곳이다.”(P18)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며 노자의 변증법 사상을 대표하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고사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이 명제에 대한 좋은 사례의 이야기다. 영원한 불행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좋지 않은 상황을 만났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행운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차분한 마음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깨우쳐준다. 모든 것은 곧 지나가며 변화하기 마련이라는 것, 행운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가까운 것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P63)


장자는 저것은 이것 때문에 생겨나고, 이것은 저것 때문에 생겨난다. 저것과 이것은 상대적으로 생겨난다는 말이다.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다. 가능한 것이 있기에 불가능한 것이 있으며, 불가능한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있다. 옳음이 있으면 그름이 있고, 그름이 있으면 옳음이 있다.”(P63~64)-장자의 장자제물론-


 ‘장자의 나비 꿈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데, 여기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렇게 대립되는 요소는 우리네 삶에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높은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죽음은 삶이 발명한 것 중 최고의 것이라고 했던가. 유한한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잊고 살지 않은지. 평생 살 것처럼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이러한 명제를 마음 깊이 새길 때 오늘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아이가 한 걸음에 이삼 리를 가니, 작은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나는 집이 네다섯 채 있네. 정자가 예닐곱 채 있는데 그 옆엔 여덟, 아홉, , 많은 꽃이 피었구나.”(P182)


 재미난 숫자시다. 시골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을 그대로 눈앞에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시의 주인공은 북송시대의 철학자이자 역학자인 소옹(邵雍)이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놀랍기 만하다. 당시 조정에서 관직을 주려했지만 병을 핑계로 모두 거절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는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철학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천지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선천상수(先天象數)’의 도식으로 보아 선천의 학문은 마음이다.’라고 하면서 성인은 하나의 마음으로 만인의 마음을 관찰하고, 하나의 몸으로 만인의 몸을 관찰하고, 하나의 사물로 만물을 관찰하고, 한 세대를 통해 만세를 관찰 할 수 있다.”(P185)고 말했다. 선천의 학문은 모두 마음의 법이므로, 세상의 일과 사물 그리고 변화는 모두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P282)-고염무의 일지록-


 멋진 구절을 만났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시대에 아주 적합한 말이 아닐까. 견문을 두루 넓히라는 메시지로 다가오지만 고염무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단다. 명말청초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저명한 사상가이자 역사가, 언어학자였다. 망국의 신하로 태어난 고염무는 청나라의 관직을 받지 않은 채 평생 유랑하며 방랑자로 살다가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또한 언급한 책에서 천하를 지키는 것은 비천한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후에 천하의 흥성과 패망은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로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 근대 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혼자인 것 같지만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책임감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인물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시원스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시간을 두고 음미하면서 읽으면 된다. 서양 철학이 인간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에서 세상이치를 묻기 위한 철학으로 비롯되었다면 동양철학은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태도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기 위한 철학이라고 추천사에서 밝히고 있다. 평소에 서양철학을 접근하는 것은 좀 어렵게 생각되었는데 동양철학은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느낌이다. 동양철학에서 다루는 주제에 가까운 것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가 아닐까. 우리에겐 인간과 우주의 호기심 같은 커다란 주제보다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더욱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철학은 먼데 있지 않다.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선택과 마주하는가. 여기서 다룬 50인의 사상과 지혜는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고민하는 우리에게 밝은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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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감각 -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
앤 라모트 지음, 최재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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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작가라는 위치는 각별한 느낌을 주는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좋은 작품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읽는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며 세월을 보내다 보면 쓰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면서 자꾸 미련이 남고 심지어는 괴로운 마음까지 느껴 보지 않았는지. 그렇게 누가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쓰는 일에 목말라 하고 이런저런 글쓰기 책을 기웃거리며 특별한 비법이 있나 궁금해 한다. 그런 비법이 있을 리 없다. 일단 쓰는 것 말고는. 불후의 명작을 쓴 대문호도 처음에는 쓰레기 같은 글을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다시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되어 웅크리고 있던 열정을 일으켜 세우고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쓰기 관련 책을 생각해 볼 때 쓰기의 감각은 많이 다른 느낌이다. 전에 읽었던 책이 구체적인 글쓰기의 방법이나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작가로 서의 삶과 글쓰기 노하우, 나아가 인생 이야기까지 들어있다. 출간한지 25년이나 되었음에도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사랑받는 글쓰기의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역시나 글쓰기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처럼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웃기고 짠하면서 괴팍한 듯 유쾌한 저자의 솔직한 성품도 느껴져,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글쓰기 수업의 내용은 1.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는 방법 2.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3. 계속 써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들 4.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5. 마지막 수업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진행된다.


 글을 잘 쓰려면 매일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처음에는 잘 쓰다가 나중에는 쓸 게 없는 것 같고 이런저런 핑계로 오래가지 못한다. 앤 라모트의 작가 아버지는 그에 대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글쓰기를 피아노의 음계 연습하듯이 해라. 너 스스로 사전 조율을 하고 나서 말이다. 글쓰기를 체면상 갚아야 할 빚(노름빚)처럼 다루어라. 그리고 일들을 어떻게든 끝맺을 수 있도록 헌신해라.”(P25)

 

 과연, 현명한 조언이 아닌가. 스스로에게 의무감을 부여하여 글쓰기를 습관화시킨 부모의 열정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사명감을 심어준 것이 작가로서의 삶을 선물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 작가를 지향한 저자의 노력과 열정도 물론이고.


 쓰고는 싶은데 도대체 무엇을 쓴 단 말인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질문이기도 하단다. 이에 저자는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보라고 말한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작가는 늦게 되어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되살려 살아온 과정을 차근차근 작품으로 형상화 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유년 시절을 견뎌 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글감을 풍부히 지니고 있다(P42)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덧붙이면서, 고통의 기억이라도 잘 표현하기만 한다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일단 쓰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함을 설파한다.


 그 중 짧은 글 한 편쓰는 법을 알려준다. 거창한 것 보다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2.5cm의 사진틀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글로 옮기는 것, 내가 성장한 마을에서 우리가 처음 마주쳤던 순간 그 여자의 모습을 묘사할 수 있는 단 한편의 짧은 글을 써보라고 제안한다. ‘일단 쓰기의 실행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베스트셀러 작가 몇 명과 알고 지내는데, 그중에 글쓰기가 수월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계가 작동하듯이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확신이 발동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우아한 초고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좋다. 솔직히 말해 그들 중 한 명은 그렇다고 말하긴 하지만, 우리는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풍부한 내적 경험이 있다거나 하느님이 그녀를 사랑하거나 그녀를 견뎌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P66)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유명한 작가들은 작품을 쉽게 쓰리라고 생각한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은근히 희망이 생기지 않은가. 하나의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산고(産苦)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글쓰기는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일 게다. 또한 글쓰기에 있어 완벽주의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며 실수와 시행착오를 무릅쓰더라도 계속 써야함을 조언한다. 오히려 뒤죽박죽 무질서 속에서도 연습, 오직 연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종이를 써버리라고 하며, 더 나아가기 위해서 실패는 필수라는 것을.


 열심히 캐릭터들과 호흡하며 시간을 보내고 작품으로 출간하기로 정해졌을 때 기분은 어떨까. 얼마나 기대에 차 있을까.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눈부신 환상이 아니라 커다란 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토로한다. 바로 세간의 악평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다음 작품을 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일단 출판을 했다는 자체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사회적인 지위를 얻은 것이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희귀한 신분에 소속되는, 잔잔한 기쁨(P322)에 대해서도 얘기해 준다.


 그러나 결국 여타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책상 앞에 앉아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바로 예술가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당신은 주고, 주어도 또 주어야 할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글을 쓰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당신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도 꺼내 주어야 하고, 그렇게 주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이며, 주는 행위가 그 자체로 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작품을 출간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P306)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하며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말하면서도 주고 주어야 한다는 말이 의외이지 싶은데 깊은 공감에 이른다. 내면에 들끓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독자는 공감과 감화를, 글쓴이 자신은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반복하는, 주고 또 주는 글쓰기의 행위를 사랑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니 작가의 통찰력이 참으로 놀랍다.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해 힘든 과정을 되풀이하고 견뎌내는 작가들이란 경이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원제는 버드 바이 버드(Bird by bird)’ 새 한 마리씩 한 마리씩이라고 한다. 앤 라모트의 오빠가 새에 대한 리포트를 마감이 다 되도록 쓰지 못해 끙끙 앓고 있을 때 아버지의 조언.


하나씩 하나씩. 새 한 마리 한 마리 차근차근 처리하면 돼.”(P63)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엄청나게 큰일을 마주했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지 않을까. 막연한 글쓰기에 관해 이 말만큼 용기를 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짧은 글 한 편, 조잡한 초고라도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써 나가다보면 누구라도 글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글쓰기와 더불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까지 배울 수 있는 쓰기의 감각은 이제부터 든든한 글쓰기 친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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