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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 내 주머니에 꽂은 빨대처리법
김종삼 지음 / 스틱 / 2019년 4월
평점 :
처음에 책의 제목을 보고 심리학 관련 책인가 했는데 소개를 보니 대한민국 최고 시스템전문가의 생활진단&문제해결을 다룬 이야기였다. 그 아래의 ‘당신은 누군가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는 문장이 비로소 와 닿기 시작했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군에서 시스템 장교로 근무했으며 이 경험으로 사회시스템전문가로서 30여 년간 강의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한다. 냉장고 속 이야기부터 4대강까지 개인적인 생활패턴의 모습은 물론 각종 국가정책의 부조리한 일면을 속속들이 이야기한다. 과연 사회시스템전문가라는 명함에 걸맞게 구석구석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폐해를 읽어내는 직업이구나, 실감했다. 소설도 아닌데 공감을 자아내며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속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내 모습도 보였기 때문이다.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책 미니멀리즘도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이 책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가 좀 더 잘 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되려면 각자의 현명한 판단과 그 총합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너머 사회라는 세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함은 당연할 것이다. 풍족한 물자와 문명의 이기로 더욱 편리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가 힘들다는 세상이다. 우선은 ‘나‘를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진단해 보고 그 시선을 주변으로 확대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발전하는 나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본주의의 한 가운데를 사는 우리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광고에 현혹당하고 세뇌당하며 살고 있다. 갖고 싶어서 꼭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필요이상의 물건을 쌓아두고 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당신을 위한 상품은 없다 2장 끌려다니지 않기
3장 한쪽만 보다가는 많은 것을 잃는다 4장 그들이 만든 세상
기업과 삶, 업자와 기득권에 끌려다니는 우리네 삶의 모습을 하나하나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맨 처음 삶을 힘들게 하는 다섯 가지는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5천만 개의 빨대가 되는 통신비, 안 내도 되는 보험료를 몇 개씩 내고 있으며, 할부, 세금, 기름값 등, 아파트 대출금, 학원비 등 어느 가정에서든 고정지출 항목이 된 지 오래다. 열 가지를 가지면 열 가지 걱정이 있다고 했다. 한번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에 발을 들이게 되면 거기서 헤어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조금씩 줄이고 잘라내는 결단이 지갑을 두둑하게 할 것이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끌어당기기 쉬운 대상>
청소년
노인
전업주부
할 일 없는 사람(P28)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이 있다. 현란한 광고로 유혹하고 보이스피싱으로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냉장고를 구하라.
이건 무척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마트가 멀리 떨어져 냉장고가 꼭 필요한 미국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험의 사례에서 냉장고 안에 쌓여있던 각종 식품들이 40여 일분이나 된다니 놀랍고도 웃음이 난다. 남의 이야기만이 아닌 것 같다. 오래전에 냉장고를 청소하느라 모두 바닥에 꺼내 놓았는데 좀 보태면 1톤 트럭의 양은 되겠다 싶어서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겁이 나서 다 들어내지 않고 부분적으로 정리하고 청소를 한다. 제발 버릴 것 버리고 정리를 해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주어야겠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빵집, 양조장 주인들이 관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과 스스로 삶을 관리하는 주체성을 잃지 않을 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끌려다니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전에 어떤 배우의 여러분~ 부자되세요~ 라는 멘트가 금세 떠오를 정도다. 잘 살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공부해서 취업에 성공하여 직장에 다니지만 모두들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행복할 거야, 로 위안을 삼으며 일상을 기계처럼 반복한다. 어떤 사람이 영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레틀의 말을 인용하여 미래에 얼마나 그 사람이 행복할지 정확하게 아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그것은 ‘지금 그 사람이 행복하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도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 행복해야 나중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많은 책에서 회자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몰입’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행복은 돈(Rich)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삶(Well Being)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던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높고 큰 목표보다는 작은 목표라도 자신의 힘으로 달성하여 소소한 기쁨을 자주 맛볼 때 행복은 배가될 것이다.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골목길이 사라졌다. 넓고 확 트인 도로 신식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는 정말 삭막하기만 하다. 어쩌면 가는 곳마다 그렇게 신도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과 논밭이 파헤쳐져 있는지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이래서는 무엇을 보겠다고 관광객들이 올까 싶다. 고속철이 생기고 새로운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기존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 매몰되는 현상을 보았다. 4대강 사업으로 수천억을 들이고 강은 죽어가고 있다.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방식과 업적주의에 끌려다닌 결과라는 것이다. 정치인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천문학적인 손해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결국은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게 되니 피폐한 삶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철도의 원조국인 영국이 아직도 고속철도가 없다는 것에 놀랐다. 김해시는 경전철을 도입하여 하루 2억 원씩 손해를 보고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가 70%의 비용을 지원하는 지하철에 비해 경전철은 100% 전액을 지방예산으로 건설한단다. 모든 운행 시스템을 새로 갖추어야 하니 부대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전거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창원시의 경우도 이용객이 줄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의 신도시 캔버라를 벤치마킹했다는데 자동차 도시답게 전국에서 유일한 골목이 없는 도시이기도 하단다. 이런 사례가 모두 기득권의 이익과 업자들의 이익을 남겨주었음은 물론이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추억이 서려있는 골목이 없어진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최소한의 골목을 보존하여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풍광에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일본의 경우를 보면 부럽기만 하다. 길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는 정책에서 함께 하는 ‘문화’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편익을 도모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사례 중에서도 다행으로 생각된 것은 람사르가 인정하는 습지 순천만의 경우였다. 환경운동가 출신의 시장이 선출되면서 오염되어 죽어가는, 쓸모없는 이곳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순천만 국가정원이 만들어졌다 한다. 그저 편하고 속도만을 중점으로 하지 않는 함께 살아가고 숨 쉬는 공간, 나중에는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을 대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고심한다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놓고 애물단지가 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개인적으로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순한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업자들, 정치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회의 구석구석의 모습을 매의 눈으로 바라본 저자 덕분에 우리가 사는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착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것이 어디로 사용되는지 관심도 없었던 무관심을 반성하게 되었다.
“도덕적인 가치관이 없고, 물질의 욕망이 가득한 사람들을 다스리기가 가장 쉽다.”(P66)고 했던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정치는 물론이고 물건을 팔기에도 한국처럼 좋은 나라가 없다는데, 더 이상 ‘호갱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사실 큰 기대는 안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의 공간을 단순하고 쾌적하게 정돈하고 싶어졌다. 개인의 생활 진단의 문제해결, 나아가 사회 현상을 읽어내는 시스템전문가의 이야기는 심플한 삶과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조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