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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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모체태아의학을 전공한 산부인과 교수 오수영 저자가 쓴 첫 책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현장을 지키는 의사로서 일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이 듬뿍 느껴져서 관심이 생겼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엄마로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손에 잡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금세 읽어버렸다. 안타가운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세상에! 를 연발하면서 눈물이 핑 돌다가 가끔 웃음도 선사하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바쁜 병원 일정 중에도 20116월부터 틈틈이 적어둔 것이 이제야 책으로 나온 것이며 산부인과 교수로서의 15년을 돌아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부 너의 이름은 기적, 축복, 사랑

2부 가장 사랑하는 사람

3부 아주 작은 확률을 뚫고 찾아와줘서 고마워

4부 첫 숨을 듣기 위해 힘껏 달린 시간

5부 생사를 가로지르는 앎의 무게

부록 의학상식

 

 1부에서 3부까지의 이야기는 위급한 임신부와 태아를 만나 초를 다투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탯줄을 네 번이나 목에 감고도 건강하게 태어난 태아의 이야기는 기적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미력한 생명처럼 보이는 태아지만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위급한 신호를 보내어 알리는 것 같았다. 신장기능이 좋지 않은 임산부가 입원해서 태아를 제거하는 소파수술을 할까봐 마음 졸이는 인간적인 의사가 있었고, 신장 투석을 해가면서 임신을 유지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조언을 따르면서 의료진들을 감동시킨 임산부도 있었다. 그 임산부는 27주에 810g의 아이를 낳아 결국 건강하게 퇴원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습관성 유산으로 6년을 고생하다가 아기를 안게 된 부부의 이야기 등 뭉클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고 모성은 역시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임신 9주 2일 크기의 태아 초음파 사진이란다.

5~6주의 '배아'라고 하지만,  '9~10주' 이후의 '태아'로 부른다.

 

 4부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불철주야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는, 임산부와 태아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사명감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계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임상의학을 공부하면서 산부인과 실습을 하던 중 분만 과정을 지켜보면서 새 생명이 태어나고 대량 출혈이 분출되는 모습을 보고 역동적으로 느껴서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분만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인권침해라 하여 인턴들이 분만 과정을 한 번도 못 보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것은 산부인과를 지원하는 의대생이 줄어드는데 일조하게 되는 것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의사의 조언보다는 역술인의 말을 믿고 좋은 ()’를 선택해 출산하려다 소중한 생명을 잃기도 하는 사례를 말하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생명을 지키는 현장에서 긴장감을 놓치 못하고 일 하는 가운데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이들 덕분에

큰 힘을 얻을 듯하다. 오수영 산부인과 의사의 마음 씀을 충분히 엿볼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다.

 

 임신이라는 자체는 생리적인 현상이면서도 병리적인 현상이라고도 했다. 위험한 상황을 안고 사는 시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의사의 기록이다. 이 이야기를 쓴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의사생활 15년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예전부터 젊을 때 아기를 출산해야 아기도 건강하고 영리하게 나온다고 했고 산모의 건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점점 임산부들의 연령이 고령화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2012년 기준으로 미국보다 우리의 경우가 5~6세나 높다니 놀라운 일이다. 공부나 취업 준비로 늦어지는데다 안정된 기반에서 결혼하겠다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에 고위험 임산부의 증가는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저출산 문제는 이미 세계적으로 대두된 문제이다. 그런데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출산정책을 위해서 국가차원에서 합리적인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읽은 것은 아마도 처음 인 것 같다. 이제 건강한 청년이 된 두 아들을 갖고 출산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입덧으로 약간 불편했지만 큰 고생 없이 두 아이 모두 자연분만을 했으니 행복한 임산부였다. 신생아 때는 교과서대로 하루 스무 시간이 넘도록 잘 자고 무럭무럭 자랐으니 행복한 엄마임에 틀림없었다. 아무 걱정 끼치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두 아들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 가슴 벅찬 생명 탄생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친절하게 풀어주는 의학상식도 싣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토록 힘들게 역경을 뚫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냥 던져진 게 아니었다. 이것만 알아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은 출생 전후 염색체 이상을 진단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태어나 치료받는 아이들의 치료비로 전액 기부된다고 한다.

 

 

 

도서출판 다른 님, 소중한 책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불철주야 애쓰시는 의료진 분들께도 무한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오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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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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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도시는 부서진 장난감 더미와도 같다. 곳곳에 쓸모없는 공간들, 버려진 공간들, 쓰레기 같은 건축물들뿐이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우리가 프랑스어를 배우면 샹송이 들리듯이, 공간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이 도시는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P16)-플롤로그

 

 책 제목이 꽤 낭만적으로 다가왔었다. 유년시절, 청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공간 외에도 보물찾기 같은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많은 도시 공간을 알려준다. 특별함을 주었던 공간, 연인을 위한 도시의 시공간,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늘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흔한 공간임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저 스쳐지나가는 곳과 일생 동안 한 번도 가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장소까지 쉴 새 없이 우리를 안내한다. 건축가라는 저자에게는 공간의 의미가 각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의 글은 내 유년시절 추억 속의 공간들을 불러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뭉클해지기도 했다.

 

 ‘나를 만든 공간들은 유년 시절의 장소와 청년 시절 공부했던 곳과 여행지의 장소들을 보여준다. 유년 시절의 골목길 등 학교 계단, 운동장 등의 공간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다정했던 형과 마당에서 놀던 모습의 사진 등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여유 있고 다복하게 살아가는 서울 사람들의 가정은 이런 분위기였구나 싶었다. 그렇게 행복한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에 큰 자부심이 느껴졌고 부럽기도 했다. 시골에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무엇이든 결핍의 일상이었다. 학용품도, 비오는 날 쓰던 우산도. 초등학교 시절 몹시도 바람 불고 비 오던 등교 길에 파란 비닐우산이 뒤집혀 부끄럽던 기억도 떠올랐다. 집에서 제일 먼저 나서야만 제대로 된 우산을 갖고 갈 수 있었던 시절.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그는 그동안 지내온 좋아하는 공간들을 추억하면서 글을 쓰는 동안에도 무척 행복했을 것 같았다. 역시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지냈던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든 한 사람의 평생 동안에 각인 된 이미지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P156. 한남대교 다리 밑 공간.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다리 밑 공간이 아닌가. 한남대교 아래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1킬로미터 넘게 줄을 서 있는데 저자는 이 모습이 이집트 신전 기둥보다 멋진 모습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사진> 두무개길(P168)옥수동, 금호동 한강변에 있다는 두무개길.

 

건축에서 아치arch‘는 특별하다. 다른 예술과 달리 건축만의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중력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치는 중력을 이기는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곡선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은 이런 이야기로 아치를 설명하기도 했다. “벽돌은 아치가 되고 싶었다. 그러자 건축가가 아치는 비싸서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벽돌은 슬퍼졌다.” 그만큼 아치는 만들기 어려운 건축양식이기도 하다.’(P166)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 양식임에도 비싸고 만들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아치 구조를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서울에 이런 건축물이 존재한다니 정말 신기하고 반가웠다. 반원형의 아치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풍경을 보는 일은 색다른 경험일 것 같다. 저자는 마치 르네상스 시대 빌라에서 아치 창문으로 서울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공사비를 절약한다는 착상으로 건축되었지만, 채광과 통풍은 물론 보기에도 아름다운 아치 구조를 갖게 되었으니 그 아이디어도 대단하다.

 

서초동 경부고속도로 옆. <사진>P287.

 

건축에서 벽이 얼마나 위대한 건축 요소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다. 벽은 이러한 반전의 공간을 만든다. 벽은 단순히 소통을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안 좋은 요소를 차단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P287)

 

 방음벽을 사이에 두고 가장 빠른 경부고속도로와 나무가 울창한 산책로가 펼쳐진 가장 느린 공간이 하나의 장소에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벽이란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았나 싶다. ‘벽창호가 그렇고 살면서 수없이 보이지 않는 에 부딪히기도 하고. 벽은 그렇게 걸림돌을 제거하고 반전의 공간을 만드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 대한 깊이를 더 느끼려면 죽음은 그림자처럼 따라야 한다. 삶이 빛이라면 죽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빛을 느끼게 해준다. 가끔씩 죽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보는 것도 의미있는 삶을 위해 좋을 것이다.’(P340) -현충원

 

 어렸을 적 고모네 집에서 돌아가신 고모부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을 보았고 마을에는 사당이 있었다.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어쩌다 그런 곳에 들어가면 왠지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만 해도 죽은 사람들과 함께 한 공간에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 우리 현실은 많이 달라졌고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가끔은 죽음을 떠올리면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 가꾸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인생은 차선(次善)이 모여서 최선(最先)이 되는 것이다.

원래 최선들이 모여서 최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온갖 멋진 옷과 고가의 액세서리를 다 하고 나면 완전 촌스러워질 수 있다. 모자라는 듯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 그러니 내가 원했던 길이 막힌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라. 때로는 그게 빨간 신호등처럼 조금만 기다려도 파란불로 열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옆길로 가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지금 열린 길이 최선이 아닌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런 길들이 모여 예상치 못한 멋진 곳으로 인도해주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P403)-남산 순환도로

 

 우리는 누구나 인생이 고속도로에 직선도로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삶 아닌가. 길을 가면서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좋은 것을 상상하면서 희망을 거는 일,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구불구불 돌아가지만 경치 좋은 남산순환도를 애용한다는 저자는 지금 우리가 돌아가는 길이 남산순환도로 일지도 모른다면서 일단 길이 열리는 데로 걸음을 떼라고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우린 그 순간들을 이어서 별자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이 모두 대낮처럼 밝을 수 없고 약간의 별빛만 있다면 우리는 그 별빛들로 별자리를 만들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희미하지만 검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을 찾고, 잇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P411)

 

 밝고 찬란한 빛은 아닐지라도 희미한 불빛 같은 희망으로도 우리는 살 수 있다. 그 희미한 별빛을 이어서 우리만의 별자리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을 갖자고 한다. 그것은 지치고 힘든 현실에서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다시 나아가는 삶의 메시지가 될지도 모른다.

 

 소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재래시장의 냄새부터 미술관의 세련된 공간 등 수많은 도시의 시공간들을 눈앞에 소환시켜 닫혀 있던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건축가의 글이 이렇게 감성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마치 건축을 하듯 세밀한 언어를 짓는 듯 소박함과 세련미가 느껴지는 공간에 대한 통찰에 감탄했다. 사진가 양해철이 촬영한 공간들의 멋진 시각적 이미지와 더불어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도 지금 머무는 공간, 앞으로 마주 할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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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의 편지 - 삶을 긍정하는 유연한 어른의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NHK <클로즈업 현대+>·<시루신> 제작부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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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우리 큰 아이와 키키 키린이 나오는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를 보았다. 생활력 없는 남편 때문에 고생하며 아들을 키우는 강인한 엄마, 예전의 우리시대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인상 깊은 장면은 도쿄 타워가 보이는 병실에 누워 아들과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다. 다 나으면 그 타워를 보러가자고 했는데 결국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암 투병으로 고생을 했다는데 아마 그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환자 역할이 자연스러웠나보다.

 

  이 책을 통해서 키키 키린이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지인이 아니라 일반인에게 쓴 편지가 많아서 놀라웠다.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인데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왕따 근절 운동을 하는 사람, 홋카이도 무인 역에 쓴 편지, 영화의 모델이 여성에게 보낸 편지, 강연회 주최측에 보낸 자필 팩스라든가 성인의 날을 맞은 많은 청년들에게 쓴 편지 등이 들어있다. 여기에 실린 편지는 NHK <클로즈업 현대+><시루신> 제작부에서 만든 것을 모아 놓은 것이라 한다.

 

  한센병 환자가 걸어온 인생을 그린 영화 <>의 모델이 된 여성을 찾아간 이야기가 있었다. 자신이 배우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약속도 없이 만나서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보고 온 것이다. 그 주인공 모습을 제대로 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투철한 직업정신 또한 느낄 수 있었다. 한센병으로 13세에 가족과 격리된 우에노의 인생은 우리가 아웅다웅 경쟁하며 살아가는 모습과는 또 달라 보인다.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가면서 없는 사람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건 아닌지. 영화에서 키키 키린은 도쿠에가 되어 그들의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니 특별히 뭐가 되지 않아도, 우리에게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거야.(P51)

 

  무엇이 되기 위해 희망을 갖는 것도 그들에게는 사치다. 그저 보고 듣기 위해서 태어났고 그래서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위로에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왜일까. 갑자기 다녀간 후에 키키 키린은 우에노 마사코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우에노 마사코 씨께

 

1018일 날이 참 좋았죠.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영화 <> 촬영 끝마쳤습니다.

헤이세이 26(2014) 122

-날씨가 좋았어요.

 

  간결하지만 다정함이 느껴진다. 우에노 마사코는 지금도 키키 키린의 편지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으며 손님이 올 때마다 자랑할 수 있도록 손닿는 곳에 둔다고. 사람은 떠났어도 산 사람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에노 마사코가 들려 준 말도 여운이 남았다.

 

남은 인생이 그렇게 길 것 같지 않지만, 올바르게 살고 싶어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믿는 구석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념을 가지고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고맙습니다.”(P52)

 

  키키 키린은 2015년 방송 촬영 중 짬을 내어 나가노 현 우에다 시에 있는 무곤칸이라는 미술관을 들르게 된다. 이곳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미술학도가 남긴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매년 성인식을 열리고 있다고 한다. 성년이 된 이들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자리에 저명인사를 초대하곤 하는데 관장의 초대로 2016년 성인식에 참석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성인식에 참여한 모든 청년에게 초대 손님이 직접 편지를 건네는 이벤트였다. 여기에 청년들에게 쓴 편지가 들어있는데, 청년들의 설문을 참고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 편지를 썼다는 게 놀라웠다. 바쁜 스케줄과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한 뒤였음에도 청년들을 위해서 시간을 냈다는 것은 그녀의 따뜻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 중 쓰야마 준이치에게 쓴 편지가 마음에 와 닿았다.

 

쓰야마 준이치 씨께

 

장래 희망란이 비어 있더군요.

나는 우연히 열여덟에 배우가 되었는데

육십이 넘어서야 겨우, 앞으로 연기자를

목표로 삼기로 정했어요.

난 좀처럼 입을 잘 열지 않는 아이여서

말하는 게 익숙지 않았는데,

그게 오히려 타인의 말을 듣는 귀를 키워줬어요.

단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내 특기죠.

자기 안의 목표가 확실하지 않다면

열정을 발휘하는 누군가가 있는 곳에 한 발 들이는 것도

방법이에요.

……

 

나이 육십에 연기자를 목표로 삼았다는 말은 꿈 없는 청년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였을까.

취재가 끝날 무렵에는 쓰야마가 키키 키린의 인터뷰 발언을 알려주었는데

연기를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서,

생업을 위해서 연기를 통해 여러분과 만나고 있다.”고 했단다

  절대로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을 것 같은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졌다. 연기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치열한 삶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에도 연기를 하고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육십이 넘어서 목표로 삼았다는 것인지, 위트가 느껴졌고 웃음이 났다. 그렇게 연기와 삶을 구분하지 않고 성심을 다해 살았다는 말이겠지. 꿈이 없을 때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찾아가보라고 일러준다. 다른 사람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의욕을 느끼기도 하지 않은가.

 

키키 키린 씨께

 

편지 감사합니다.

……

이전에는 꿈이나 목표는 자주 바꾸면 안 되고 늘

그것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읽으며 꼭 평생을 걸 만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유연한 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표가 작거나 꿈이 좀

엉뚱해도 괜찮다는 걸 알아서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

쓰야마 준이치

 

  쓰야마는 처음엔 편지의 내용을 이해 못했지만 거듭 읽어보면서 참뜻을 깨닫고 마음의 변화를 보면서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들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키키 키린의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느끼고 있었다.

 

가느다란 실 하나로

겨우 이어져 있네요.

말 한마디 안 나와서

힘들고

곤란한

노파입니다.

K.KIKI

 

 

 

 

 

  키키 키린의 마지막 메시지가 된 편지다. 그녀가 세상을 뜨기 한 달 전 골절로 입원하게 되어 발표되었는데 일 관계자들에게 그 상황을 알렸다고 한다. 굵직하고 힘이 넘치던 글씨가 여기서는 정말 가늘어졌다. 병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할 수 있어서 마음이 짠해 왔다. 삶에 있어서 언제나 솔직하고 정중하고 진지하게 살았던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쓴 편지로 알 수 있었다. 상황은 좀 다를지라도 우리는 거의 비슷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았던 키키 키린의 편지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깊은 감동을 준다. 암 투병으로 오랫동안 힘들었다는 키키 키린의 삶을 알게 되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미리 아프기 전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너무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적당히 유연한 삶을 지향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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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 - 젊은 세대와 나누고 싶은 100세 철학자 이야기
김형석 지음 / 열림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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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청춘들에게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기억한다. 백세 철학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보니 나이 얘기는 빠트릴 수 없는 것 같다. “나이 71세는 나도 처음이라서...”라는 배우 윤여정의 말을 접하고는 얼마나 웃겼던지. 유머와 긍정적인 마음이 느껴져서 나도 몰래 미소가 떠올랐다. 여기 김형석 교수의 세 자리로 바뀐 나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도 재치가 묻어난다. 큰 사고 없이 건강관리를 잘 한다면 누구든지 모르는 사이에 백세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100세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이 안 된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노후의 대비는 심각한 상황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 중 경제 분야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지 않아도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100세를 맞이한 산 증인으로서, 앞날의 희망적인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반가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청소년부터 삼포 세대’, 중년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100세를 맞이할 모든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행복한 삶에 대한 메시지다.


 작가는 인간의 조건, 만나고 사랑하는 것, 우리가 가야 할 그곳,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주제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 소속되어 삶을 일구어 나간다. 경쟁을 통해 취직의 기쁨을 누렸지만 어느 덧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되어버리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법. 이럴 때 한 템포 쉬면서 백세 철학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흔히 사람들은 과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 현재 상황이 힘들 때 더 자주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까.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언젠가 행복하기 위하여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행복이 미래에만 있다면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없다고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이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행복이 행복이다. 그런데 현재라는 시간은 하나의 과정이며 흐름이다.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가는 것이 시간이라고 해도 현재는 지나가는 과정이며, 시간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간다고 해도 현재는 지나가는 순간순간이다.’(P17)


 많은 현자들이 현재를 살라고 했다. 과거도 미래도 우리에게 큰 힘을 주지 못한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쉽게 잊어버리고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소홀히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때 우리의 다가오지 않은 미래도 행복한 삶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인격적 성장과 인간적 능력의 향상이다. 경제는 그 일을 뒷받침하는 수단과 방편에 그쳐야 한다. 돈의 가치를 알고 정당한 사회의식을 갖추게 된다면 재물 때문에 오는 개인이나 사회의 불행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P66)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행복은 인격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와는 무관하게 독일의 시인 괴테도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적 삶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부족한 인격에는 참다운 행복이 있을 수 없으며 행복은 인격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P129)


 사랑하는 사람에게 먼저 주어야 하는 것은 인격적 성장과 인간적 능력의 향상이라는 말에 시선이 머문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와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있음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한다. 끊임없이 성취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인격적인 성장을 갖기 위한 노력보다는 겉으로 드러내는 재력이나 위치에 연연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내면적인 성장보다 외면적인 성장을 행복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참다운 행복을 위하여 이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신적 가치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백세가 된 지금, 오늘도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하면 못할 것이 없고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일곱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좋다. 이 시대의 청년이라면 무한의 가능성을 개척해 가는 세대로 거듭나야 한다.’(P145)


 평양 숭실학교 3학년 때 교장선생님의 마지막 훈화 말씀이 하라는 일곱 번의 외침이었다고 한다. 다른 어떤 말보다 단순하고 명쾌한 한 단어가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하다가도 끝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청소년기든 장년기든 나이를 떠나서 무한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세월을 허송하는 우리에게 일침을 주는 말이다.


사회적 성장이 없다면 감사를 모르며 남을 위할 줄 모른다. 예절을 깨닫지 못하며 상대방의 기분이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잃고 있다. 어딘가 사람을 대하는데 거칠고 딱딱하며 정중함이 없다. 항상 이기적이어서 남의 도움만 받으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친절을 베풀지 못함은 물론 예절까지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에서 항상 실패하게 된다.’(P224)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 확 와 닿는 말이 사회적 성장이었다. ‘사회적 성장이라는 말, 생각해보면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난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함께 소통하고 협조하고 기쁨과 고통을 나누는 조화로운 삶에서 사회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이 그대로 사회의 성장(P225)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래 살 욕심만 가졌지, 많이 살아야겠다는 뜻을 가져 보지 못했다. 나의 1년으로 다른 사람의 3년을 살 수도 있으며, 나의 1년으로 다른 사람의 3년을 살 수도 있으며, 나의 3년이 남의 반년도 못 되는 경우가 있다. 예수는 불과 33개월의 공생활로 당신의 뜻을 다 이루셨다.’(P244)


 정말 그렇다. 막연하게 오래 살고 싶은 생각만 했지 많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나의 1년을 다른 사람의 3년만큼 충실하고 알차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은 못해봤을까. 헛되이 낭비하는 시간을 모두 끌어 모아 집중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나도 오래가 아니라 많이살고 싶어졌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하루하루 나를 돌아보며 할 일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요소를 줄여야한다. ‘많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고 노력한다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었다. 성장하는 너와 내가 있어야 사회적으로도 성장한다는 것, 그것이 한 국가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뭔가 답답한 게 있었다. 서구 기계문명과 물질주의에 심취한 나머지 우리 고유의 멋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겉모습을 화려하게 보이기 위해 높이고 쌓고 넓히면서 사라져가는 것에는 안중에 없었다. 학창시절 다도 수업이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우리 고유의 것은 점점 사라지고 현대화 세계화 된 것이 최선인 것처럼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수백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전통적인 축제 장면이라든가 그들만의 것을 지켜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우리 고유의 멋을 잊은 지 오래되지 않았나 씁쓸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조금 빗나간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국민전체가 따를 수 있는 가치관의 공감대가 없으며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하고 함께 건설할 가치 의식과 방향이 없다’(P177)는 말로도 공감할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어도 훌륭한 인격과 좋은 취미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더욱 가치 있는 삶으로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살아가는 내내 달고 살아야하는 고독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 살아있기에 고통도 슬픔도 있는 것이다. 병약하게 태어나 언제나 조절과 주의로 살았기 때문에 백세를 사는 기적을 이루었다는 저자, 그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소중한 행복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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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 장석주의 인물 읽기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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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일 없는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다른 이들의 삶을 기웃거린다. 사실 그렇다. 무언가 근사한 일은 없을까 항상 궁구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이나 아니면 좀 더 자라서 자신만의 꿈과 목표를 갖게 된다. 그것을 향해 어느 정도 노력을 하며 즐겁게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복병을 만나기도 하고 아니면 나태로 인하여 그 노력이 중단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럴 때 세상에 한 획을 긋고 떠난 위인들의 삶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는 바로 그런 책이다. 장석주 시인은 이 책이 청년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용기와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2016월간중앙에 연재한 글들을 다듬은 것이라 한다.


 책과 버드나무를 사랑하는 자칭 문장노동자라는 장석주 시인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재 깊은 곳을 자리하고 있던 열다섯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붓다, 톨스토이, 공자, 아르튀르 랭보, 노자,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프리드리히 니체, 스콧 니어링,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 시몬 드 보부아르, 허먼 멜빌, 스티브 잡스까지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삶이 보장되었지만 거기에서 벗어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한 인물도 있고 힘든 환경에서 자랐지만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인물들도 있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불우한 환경으로 내던진 사람들도 있었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초인적인 긍정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냈던 인물들이다.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끝까지 불우한 삶인 채로 생을 마감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 안쓰러움에 마음이 저며왔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의 성공한 모습을 보면 그 이면의 과정은 덮어두고 겉모습만으로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다. 즉 그 사람은 원래 성공인자가 있었거나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교육이 밑바탕이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닌가, 그런 생각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책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핍이 자양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직 하고자하는 일에 열정을 기울이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던 결과인 것이다.


 안으로는 아버지와 불화했고 밖으로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으며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던 프란츠 카프카. 그는 직장을 다니며 글쓰기에 몰두한 완전히 무명작가였고 사후에, 그것도 40년이 지나서야 작품성을 인정받고 유명해졌다. 성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무언가를 위해서 계속 애를 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직 잠 못 이루는 밤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 사이에서 모든 것을 이리저리 곱씹어봤을 때…… 다시금 의식되었다. 내가 얼마나 약한 혹은 존재하지 않는 기반을 딛고 살고 있는지, 어둠의 세력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나의 말더듬음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나의 삶을 파괴하는 정체 모를 어둠을 딛고 나는 살고 있다.’(P253)


 그렇게 약한 존재감을 갖고 혼신을 다해 쓴 작품인데, 자신의 원고를 모두 없애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친구 브로트가 그대로 이행했다면 카프카의 작품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 번의 약혼과 세 번의 파혼으로 누구와도 어긋난 사랑으로 인해 불행 속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카프카는 그래서 더욱 문학으로 보상 받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문학에의 순수한 열정과 절실함이 없었다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열 가구 정도의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성스럽고 신의가 두터운 사람은 있겠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략) 배우면서 그것을 익히는 것도 기쁘지 않은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는 것도 즐겁지 않은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 역시 군자답지 않은가?(P59)


 공자도 그랬다. 위대한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면서 조금씩 알려지고 하찮은 말단 관리직을 맡게 된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굳건한 신념이 없었다면 수십 년씩 세상을 주유하며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제풀에 꺾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할 부분이다. 25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나는 붕괴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멕시코의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자세히 알게 되고는 그 불행의 양에 대해서는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와 전차 충돌하여 철제 막대가 부러져 튕겨 나오는 반동으로 그것이 프리다의 옆구리를 뚫고 골반을 관통한 뒤 자궁으로 빠져나온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의사의 꿈을 화가로 바꾼다. 또 하나의 사고는 화가 디에고를 만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일이다.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 프리다의 여동생과 디에고의 불륜으로 인해 받는 고통,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 등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프리다의 디에고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다시 재결합으로 새 출발을 하며 불행 덩어리였던 삶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야말로 천 년의 사랑을 하다가 떠났다. 이토록 큰 불행을 극복하고 담담하게 살아내는 이야기 앞에서는 숙연해진다. 만약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우리는 정말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IT산업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티브 잡스는 또 어떤가. 태어난 직후 친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잡스 부부에게 입양된다. 냉담과 잔혹함, 거칠고 반사회적 행동을 보였던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항간에 오르내리지만 그의 천재적인 직관력과 예술가의 감성은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스탠퍼드 대학 졸업의 연설문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제가 17세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면 당신은 당신이 분명히 올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제게는 감동적이었고, 그 뒤로 33년을 살아오는 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중략)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입니다.(P299~301)



 다시 메멘토 모리의 이야기다. 죽음은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인생의 유한함을 알고 소중함을 깨닫는다면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새 출발하는 졸업생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다고 투덜대는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절실함이 자신이 원하고 목표하는 길로 데려다 줄 것이다. 열다섯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불우함 속에서도 찬란한 삶을 꽃피웠다. 누구나 힘들다고 하는 시절이다.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다고 한다. 여기 열다섯 위인들의 이야기는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고 나아가는 삶에 커다란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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