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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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느 때 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과연 누가 될까에 관심이 쏠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한 것에 놀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한 번도 작품으로 만난 적이 없는 작가인데다 부커상 수상, 노벨상 수상, 제목에서 느껴지는 여운까지 이 책을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은 감성적인 향수였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의식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어떤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

 

 달링턴 가()에서 위대한 집사35년을 살아온 스티븐스는 새 주인 패러데이로부터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니 여행을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친절한 제안을 받는다. 뜻밖의 호의에도 별다른 확답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7년 만에 받은 켄턴양의 편지를 받고 여행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오랜 세월 이 저택의 담장 안에서 영국의 진면목을 보는 특권을 누려왔지만, 바깥세상의 구경은 아무래도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다. 일만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면 어쩔 줄 모른다. 수십 년을 몸담고 있던 달링턴 가()의 모습을 먼발치로 바라보는 일은 불안하고도 낯설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분리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고급 양복 차림에, 어르신의 포드를 제공받고, ‘달링턴 홀이라는 주소를 기입할 때는 우쭐함을 즐기기도 한다. 처음의 불안감은 서서히 걷히면서 자연의 풍광에 동요된다. 영국의 풍경을 세상에서 가장 깊은 만족을 주는, ‘위대함이라는 단어로 요약하며 감탄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미국인이면서 영국을 대단히 사랑했다던 헨리 제임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 인생은 거대한 옛 영국 정원이고, 시간은 끝없는 영국의 오후라고 행복하게 믿고 있다.’는 말.

 

 아, 이제 영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풍경에 대한 위대함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업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부상하거나 눈 밖에 나기도 하는 직업인의 비애도 볼 수 있다.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기준인 일류급집사라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품위를 집사의 필수 요건으로 규정지으며 나름대로 직업의 소명의식을 설파하기도 한다. 복종하면서도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저들의 노력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렇게 최고의 경지를 드러낸 영국의 풍경의 위대함위대한 집사를 견주어 설명하는 자부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집사로서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집사라는 직업인의 세계를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감탄할 지경이다. 독자들이 좀 지루해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절도 있는 당당한 모습은 대충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고 일에만 목숨을 거는 상황이다. 안전한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어떤 날은 좀 느슨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 저명한 저택에 소속되어 일하며 특권을 누리는 것을 평생의 명예로 여긴다. 이렇게 지나치게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는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법이다.

 

 솔즈베리를 시작으로 웨이머스까지 6일간의 여행길의 여정이 들어 있다. 오롯이 오감으로 풍광을 느끼는 여행은 아니다. 과거의 추억을 회고하는 여행이라고 할까. 모처럼 새 주인 미국 신사가 베풀어준 여행인데, 일에서 벗어나 마음으로 즐기는 여행이 아닌 자신의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는 여행이라니. 좀 서글프다.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아, 이건 우리 시대의 미생이 아닌가, 라는 느낌이었다. 일에 파묻히고, 완벽주의에 사로잡혀서 오늘의 행복을 자꾸만 뒤로 미룬다. 오늘 조금만 참으면 내일은 좀 더 행복할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참자. 그리고 자기 본연의 기쁨보다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먼저 신경 쓴다. 충성을 넘어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이 된다. 평생을 집사로 살아오면서 모범적으로 일을 수행해왔다. 한 치의 어긋남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것을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스티븐스는 자신의 일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택이 나는 은 식기를 칭찬하면 그것에 무한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스에 대한 켄턴양을 향한 마음이 이 책 소개에서는 안타까운 사랑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내가 읽어 본 바로는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굳이 그에 맞는 상황은 켄턴양 쪽이라고 할까. 오히려 스티븐스는 그녀의 마음에 대해 눈치가 없었거나, 모른 척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와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언제나 사무적이고 늘 일이 우선순위였다. 집사로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과 태도, 거기에 품위까지 연출해야 했으니. 분위기와 그녀의 태도(마음)를 읽어내는 것은 서툴렀다고 할 수밖에. 손님을 핑계대고 급히 서둘러 나가면서 켄턴양에게 매번 등을 보여야 했으니까. 그녀의 못 다한 이야기와 끊이지 않는 한숨은 눈치도 못 챈 것이다.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에 있던 격동기의 영국과 세계정세를 보여준다. 달링턴 홀은 숱한 정치가들이 모여드는 회담의 장이었다. 또한 대영제국은 미국의 현실주의에 밀려 저물어가는 상황이었다. 여행길에서 듣는 달링턴 경의 평가는 스티븐스의 마음을 무척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젊은 카디널 경으로부터 뜻밖의 질책을 들으며 나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마주한다.

 

어르신은 정말 고귀하신 양반이오. 그러나 이 현실에서는 수렁에 빠져 계시오. 그분은 지금 조종당하고 있어요. 나치들이 그분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소, 스티븐스? 바로 이게 적어도 지난 3~4년 사이에 진행되어 온 일의 실상이란 걸 알고 있느냐 그 말이오.”(P276)

 

죄송합니다만 도련님, 제가 볼 때 나리는 지극히 훌륭하고 숭고한 작업을 하고 계실 뿐입니다. 어쨌거나 유럽의 지속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만 도련님, 저는 나리의 훌륭한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P279)

 

 그렇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했다. 맹목적인 충성이 기계적으로 몸에 밴 스티븐스는 자신의 본분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 신사 중의 신사라고 믿으며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인에 대해 그런 말을 하다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입으로는 직업적 권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의 도덕적 진가에 있다고 말했으면서도,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눈과 귀는 아예 닫아버린 것이다. 불편하니까. 그 유명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단지 명령에 복종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두 명의 하녀를 해고시키라는 주인의 명령도 아무런 감정 없이 처리한다.

 

 자신의 직업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살았던 스티븐스도 회한은 있었다. 하염없는 세월을 일속에 파묻혀 지내다가 노구가 된 스티븐스는 이제 자신을 돌아다본다.

 

사실 나는, 달링턴 경께 모든 걸 바쳤습니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 그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P298)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P299)

 

"이봐요, 형씨.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소만, 만약 나한테 묻는다면 이런 태도는 정말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알겠어요? 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P299~300)

 

 켄턴양을 만나서 확인하고 싶었던 일말의 희망도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그나마 그녀는 스티븐스보다는 현실적인 안목이 있어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마저 포기하고 오직 자신의 본분을 충실하게 이행한 것에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고 자부하는데 이것을 어떤 논리로 설명할 것인가. 무엇을 위한 삶이고, 그 충성심으로 무엇을 보상받기 위함인가. 맹목적인 믿음은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어리석음만을 남긴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스티븐스는 자신의 일에 있어서는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임했지만,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광채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옳고 그름을 가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일괄 거래의 한 품목으로 주인에게 양도된 스티븐스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새 주인의 농담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쩔쩔 매던 그는 이제 좀 더 융통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많은 날은 갔지만, 조금 남아 있는 날도 소중하다. 마음을 달뜨게 하는 여행은 아니다. 지난날을 회고하는 그의 여정에 동참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나아갈 길을 수정도 하면서 소중한 무언가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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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살인사건 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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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런던 도서전을 통해 영미 현대문학계에 혜성처럼 등단한 신예 작가 다니엘 콜의 작품이다. 추리스릴러 소설의 대가의 반열에 오른 레이첼 애보트나 M.J.알리지 같은 작가들도 그의 등단을 새로운 천재 작가의 탄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이민자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생활 문화의 대립 등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크게는 테러로 작게는 아무 연고도 없는 개인을 향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타의 문학처럼 추리소설도 오늘의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소설의 도입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올드 베일리 1번 법정의 중대 형사 재판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고인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혼자 살며 택시를 운전하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이름은 나기브 칼리드다. ‘방화 살인범이라 불리는 그는 런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범에 등극하였는데, 27일 동안 열 너댓 살 먹은 매춘부 스물일곱 명을 죽였다. 피해자 대부분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산 채로 불에 타 죽었고, 증거도 불길 따라 사라졌다 한다. 이 세기의 재판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노숙까지 하면서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DNA 증거가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무죄로 판결이 난다. 그 이전에 피고인 나기브 칼리드를 체포하면서 칼리드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등 비난으로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던 수사관 윌리엄 올리버 레이튼 폭스도 참석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머리글자만 따서 일명 울프WOLF’라고 불렀다. 유죄를 확실시 하고 있던 울프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다. 순식간에 법정에서는 격렬한 몸싸움과 함께 난동이 벌어진다.


 이 상황은 앞으로 어떤 사건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이 될지 나름대로 추측을 하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추리소설을 접하다 보면 예전보다 범행의 수법이 날로 잔혹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범행의 대상을 독방에 가두어 놓고 고통을 주면서 유도를 하거나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잔혹한 범행을 하고도 모자라서 봉제인형을 만들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상황이다. 런던의 허름한 아파트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두 개의 팔다리, 몸통, 머리가 각각 주인이 다르다. 여섯 명을 살해하여 마치 인형을 만들듯이 꿰맸다하여 봉제인형 살인 사건이라 불린다. 그것도 여자의 몸통에 남자의 팔이나 다리를 붙이기도 하고 얼굴은 남자, 이렇게 죄 섞어 놓았다.


 그런데, 봉제인형의 얼굴은, 위에서 언급했던 세기의 연쇄살인범 나기브 칼리브가 아닌가. 교도소에 있어서야 하는 사람이 봉제인형의 얼굴이 되었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더구나 그렇게 여섯 명이나 희생되었는데도 범죄 현장에서는 피 한 방울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수사는 미궁에 빠져있는데, 울프 형사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그것은 다른 예비 희생자 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다. 런던 경시청은 또 다시 긴박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유력한 용의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 시시각각 날짜는 다가온다. 마치 사업계획서처럼 범행의 대상자와 날짜, 요일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서 더욱 공포심을 조장한다. 어떤 원한으로 인하여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여유만만한 도전장을 보낸 것일까, 점점 궁금해지는데...


 사건 하나에 여섯 명의 희생자가 걸려 있으니 더욱 정신이 없다. 오른 팔 주인, 왼팔 주인 등 여섯 명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언제나 사회를 놀라게 하는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세간의 이목은 방송, 언론으로 집중하게 마련이다. 또한 수사계와 마찰 또한 빈번함을 알 수 있다. 방송계는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고, 수사팀은 하루빨리 범인을 잡기 위해서 분주하다. 둘 다 모두 제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직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먼저 성과를 내고 주목받아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뻔히 보인다. 그들의 경쟁은 수사에 방해가 되기도 하거나 범인을 도와주게 되는 결과도 짐작할 수 있어서 양쪽의 긴장감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과연 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수사팀장 울프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섯 명의 명단 중 맨 마지막 순번에 울프 형사도 끼어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함정은 아닌지 궁금하다. 용의자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는 가운데 여섯 명의 명단 중 1번인 턴블 시장(市長)을 보호하려고 경시청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조사실에 데려다 놓았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죽는다. 시장(市長)은 천식이 있어서 천식 호흡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인화성 물질이 묻은 것을 모르고 담배를 피우다가 어이없게 불에 타 죽는다. 그 다음 순번의 지명자도 어이없는 죽음으로 반전을 거듭한다.


파우스트 거래라는 용어가 나온다. 악마라고 자처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복수를 위한 살인을 의뢰하고, 악마는 의뢰자가 원하는 복수를 대신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범인과 다른 한 명의 누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한다. 상상도 못했던 상황을 알아버렸으니...

애드먼즈는 재산범죄수사팀에 있던 경관이다. 별로 존재감 없는 신입이었는데, 원래 신입사원의 열정이 넘치듯이 서서히 성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며칠 씩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열성적으로 조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는데, 애드먼즈의 주장은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기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여념이 없는 모습과 어느 국가, 사회에 만연한 관료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의뢰인을 무죄판결을 받게 하고 성공보수를 챙기기 위해 비양심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들의 현주소는 정의가 바로 서 있는 사회인가 싶다. 섬뜩한 범죄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사회에 진정한 정의가 작동하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긴장감을 가지고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의 구성도 나름의 흥미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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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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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 온다 리쿠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호평, 학원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가미된 작품에 걸맞게 모호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거의 항상 여섯 시 반쯤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바로 우리 집 뒤편 샛길로 갔는데, 풀잎에 맺힌 이슬에 운동화가 젖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곧장 넓은 길이 나오는데, 양옆은 소나무가 많은 야산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솔밭의 중간에 길을 낸 것이다. 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소나무가 더욱 울창해지고 살짝 길이 구부러지는데, 바로 보이는 곳에 이름 모를 무덤이 있었다. 여름날 짙고 하얀 안개 속에 그 곳을 걸어갈 때면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는지...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 없이 나 혼자다. 들리는 소리는 내 발자국 소리뿐인데 누가 쫒아오는 것 같아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걷다가 사정없이 뛰었던 기억... 그런 오싹한 공포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트럼프 카드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이 학교의 ‘행사’가 이 게임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며, 3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이루어진다고. 그 주인공은 ‘사요코’라고 불렸단다. 별로 이 게임에 대해서 이해를 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모호한 기분으로, 빨려들 듯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 학기란 얼마나 마음이 들뜨는가. 1년간 한 울타리에서 공부하다가 학년이 바뀌고 반 친구들이 바뀌면 마음들이 수런거린다. 친했던 친구가 같은 반이 되면 더욱 반갑고. 무엇보다도 낯선 전학생에 대한 시선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가 아닐까.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 거리두기의 마음이 공존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 날,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향기를 날리며 사요코가 나타난다. 아이들은 사요코의 전설을 떠올리며 수런거린다. 가볍게 흥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P20)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 묶인 닫힌 공간에 ‘손님’같은 존재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쓰무라 사요코는 고베의 명문 N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이다. 미모뿐 아니라,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수재이기도 하다. 얼마나 예쁜지 불길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같은 여자아이라도 반할 만큼이었으니 마력(魔力)이 있는 모양이다. 사실 ‘사요코’는 하는 일이 없다. 단 한 가지 있다면,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것이 ‘길할 징조’이며 그해의 ‘사요코’가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건 뭐 주술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면 학교라는 공간은 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지루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떠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마치 뭔가를 만들어 내어 그것에 힘입어 지루한 일상을 달래려는 마음 같기도 하다. ‘사요코’라는 소녀가 나오는 연극을 공연한 해는 대학 합격률이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학교를 신성화 시키려는 선생님들의 농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쓰무라 사요코는 타고난 미모와 거침없이 당당한 친숙함으로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마사코, 유키오, 세키네 슈와 금세 단짝이 된다. 메마르기 짝이 없는 고3 시절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부분만 보면 평범한 고교시절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이들 중에 사요코가 둘이나 들어있고... 그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게 되는데...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사요코의 전설은 조금씩 밑바닥을 드러낸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의문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커진다. 그에 대한 두려움도. 하지만 표면으로 떠오르게 되면 별 것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예쁘고 서글서글한 사요코가 남학생 다섯 명을 피투성이로 만들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환타지를 뒤집어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교생이 ‘대본’을 읽는 장면은 일체감 있는 아름다움과 함께 두려움도 느껴진다. 마치 일본인들의 단체행동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어우러진 학원가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성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부터 사계절을 거쳐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도 돌고 도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 아닐까. 온갖 신을 믿는 신사가 발달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나올법한, 그럴 듯한 이야기인 것 같다. 일드를 보아도,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가미된 작품이 꽤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만의 전통적인,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왠지 으스스하고 꿈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 시기, 질투를 넘어 까르르 웃음을 짓던 학생시절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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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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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는 작가 프랜시스 하딩의 이 작품은, ‘해리 포터 열풍을 잇는 단 한 권의 미스터리 판타지 걸작이라는 대단한 호평에 깊은 관심을 갖던 차에 만나게 되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안개가 많은 나라, 특유의 음산한 날씨 때문에 환타지문학이 발달했다고도 한다. ‘거짓말을 소재로 한 이솝우화 늑대와 양치기소년이 생각난다. 장난삼아 했던 거짓말로 인해 신뢰를 잃고 양들을 모두 늑대에게 빼앗기는 이야기.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떤 내용의 거짓말로 인해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무척 궁금해 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 읽은 후에, 요즘 들어 더없이 푸른 하늘 아래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햇빛과 공기와 수분으로 자양분을 얻어 쑥쑥 자라나는 저 나무들이 빛을 받으면 검게 타면서 불꽃이 일어 타버리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감이 없는 바로 이것이 환타지문학 자체가 아닌가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된 등장인물의 이력부터가 특이하다. 자연과학자이면서 목사, 부목사, 의사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상식으로는 원래 과학과 종교적인 현상은 과학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면이 있어 종종 충돌하지 않았던가.


 ‘야반도주’, ‘과학계의 배신등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어떤 피치 못할 갑작스런 사건이 생겼구나, 짐작하게 된다. 그렇게 페이스는 가족과 함께 베인 섬으로 예측하지 못한 이주를 하게 된다. 항상 두렵고 존경을 품고 있던 아버지 에라스무스, 어린 시절엔 숭배했지만, 조금씩 환상이 깨지고 있던 엄마 머틀, 여섯 살 배기 남동생 하워드, 마일스 외삼촌과 함께. 이제 열네 살인 페이스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존경하는 소녀다하지만, 세상에서 요구하는 착한 페이스’, ‘든든한 페이스’, 믿음직스럽고, 따분한 페이스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자연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남자로부터 독기 어린 말을 아버지가 듣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저런 모욕을 당하다니. 갑작스런 이주를 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의문으로 가득 찬 페이스는 골치가 지끈거린다. 호시탐탐 찾고 있던 증거를 아버지의 편지에서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버지가 과학계에 발표한 뉴 펄튼 화석은 두 개의 화석을 교묘하게 붙인 것으로 풀 자국이 남아 있고, 의도적 개조, 최악의 경우에는 완벽한 가짜...당신의 명성을 의심하게 된다는... 갑자기 섬으로 떠나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단 한 번 바다 동굴을 찾아간 후, 나무에 걸쳐있는 아버지의 주검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고는 교회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당시 교단은 자살은 죄로 인정했으며 아버지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 지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페이스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아버지의 일기장, 개인 서류를 탐독하면서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 대한 놀라운 기록도 알게 된다. 덩굴식물처럼 생긴 나무로 감귤류 같은 열매가 맺힌다고 했으며, 어두운 곳이나 빛을 가린 곳에서 잘 자라며 거짓말을 먹일 때만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힌다는...


‘...나무에 대고 거짓말을 속삭이고 나서 그 거짓말을 퍼뜨리면 된다고 했다. 그 거짓말의 중요성이 클수록, 그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을수록, 큰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그 열매를 먹는 사람은 가장 비밀스러운 지식, 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을 알게 된다고 했다.’(P224)


 페이스가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도구로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추위와 위험에 굴하지 않고 혼자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동굴까지 오가면서 나무를 키운다. 그 보답으로 열매를 얻어, 그 열매를 먹고 꿈과 환영 속에서 진실은 하나하나 짜 맞추어진다. 어쩌면 아버지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 미리 거짓으로 연구하고 발표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갖게 된다. 동굴로, 발굴현장으로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다가 살인자의 진범을 찾기에 이른다. 하지만, 거짓말은 또 하나의 거짓말을 낳고 복수는 또 하나의 복수를 부르게 된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지구의 일부이기도 한 우리 사회는 거짓말을 먹고 자라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작품의 내용도 명예, 출세, 돈이 걸려있는 삶이었다. 제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살기 위해서 벌여야 하는 사투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예쁜 드레스에 눈이 가고, 보석과 남자의 관심을 뿌리치지 못한 가진 것이 미모밖에 없는 엄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사고였다는 판결을 받으려 하는 엄마를 페이스는 증오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엄마는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녀들과 돈 걱정 없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육성을 듣고는 증오심이 주춤한다.


여긴 전쟁터야, 페이스! 남자들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우리에게 무기도 주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이대로 죽게 될 거야.”(P434)


 빅토리아 시대만의 생존법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다. 착하다는 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면서 내가 좀 더 수고를 해야 한다. 숨어있던 자연과학자 아가타 람벤트의 반전도 놀라운 충격이었다. 여성이어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발굴 작업을 하고 발표결과는 남편의 명성이 되었다. 반면, 그녀는 남편에게 내조로 헌신함으로써 완벽한 부부인 것처럼 위선으로 살고 있었다. 예의범절이라는 틀에 여성들을 가두어놓고 평가하는 잣대로 보면, 페이스는 분명 이단아였다. 조신하고 착하게 좋은 신랑감을 기다리며 살아야하는 당시 풍습으로 보자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과 도전의 행동은 분명히 용감하고 멋졌다. 미스터리와 환상 그리고 과학, 페미니즘이 어우러져 생각할 거리를 선사해 준다. 뭉클한 감동으로 살짝 눈물로 흐려지기도 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의 남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제한된 여성들, 종교법으로 묶인 제도와 풍습에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삶이란 정확한 잣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너무 억압을 하면 언젠가는 봇물처럼 흘러넘치게 마련이다. 시대는 흘러 많이 나아졌지만, 성차별이나 권위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만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거짓말도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진행된다. 거짓말도 삶의 일부인 것처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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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우 - 한비자와 진시황
양선희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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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에 배운 기억으로 진시황은 분서갱유와 만리장성을 구축한 중국 천하를 최초로 통일한 황제, 한비자(韓非子)는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의 사상을 완성시킨 학자였다. 그 외에 더 깊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접한 적이 없어서 오히려 다른 선입견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저자의 상상력이 보태져서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혼란한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는 무렵에서 천하통일을 하기 전 1년 정도의 기록이라고 되어 있다. 한비자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傳記)소설이 아닌 책략(策略)소설이다. 그러므로 《전국책》과 같은 책략서나 《손자병법》,《울료자》등의 병법서,《노자》와《순자》등의 생각을 많이 빌려 왔다고 한다.

 

 한비의 고분(孤憤) ·오두(五蠹)의 논설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한 영정의 간절한 마음이 닿아서 만남이 이루어지고, 기댈 곳이 없어서 늘 고독했던 영정의 마음속에 한비의 존재는 깊숙이 자리하게 된다.


‘절벽’

 인생이 무엇이냐는 영정의 물음에, 한비의 대답이다. 영정은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낯선 말에 마음이 착 가라앉는다. 곱씹을수록 눈물이 흐른다. 여불위의 단단한 팔에 안겨 있다가 조희에게 떠넘겨진 불안한 기억을 더듬어 찾아낸다. 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평생의 상처로 다가왔을까. ‘내 인생도 늘 절벽이었다. 한비처럼... .’ 또한 이후 한비의 운명을 예견하듯 마음이 싸늘하게 내려앉는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욕망을 멀리하여 마음을 수양하고자 노자(老子)에 심취하였던 한비. 날로 어지러워지는 세상에 대한 근심이 커지면서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타고난 말더듬이 장애와 그의 세상을 읽어내는 그의 혜안도 장애라면 장애였다. 형 세자의 안위를 위해 초나라 볼모로 보냈는데, 오히려 그의 영특함이 세상에 알려졌고 급기야는 영정의 스승이 되어버렸다. 당시 최고의 음양가(陰陽家) 옥화의 예언대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고국 한나라를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직을 돌보지 않고 경솔하게 자만심만 내세우는 왕, 국내의 우수한 인물은 임용하지 않고 사람이 없다고 타박만 하는 왕이 어떻게 강국 진나라와 대적할 수 있겠는가.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정(外政)이 아니라 내정(內政)에 있다는 말은 자연스런 진리다. 국가원수와 조정 관리의 불신,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고, 국민들끼리의 단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분열되고 와해되기 마련이다. 타국에서는 그것을 반기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우리에게 당면한 현실 문제가 자연스럽게 겹친다.


 영정이 천년왕국의 야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에,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하는 이사와 조나라를 먼저 쳐야 한다는 한비와의 대결구도가 분분하다. 한비의 상소에 감탄하는 영정, 조나라 정벌이 유력시되자 이사는 격분한다. 순자(荀子)의 제자로 동문수학했던 벗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앞날을 가로막는 원수일 뿐이다.


 대대로 조나라 한단 최고의 갑부인 여불위는 ‘주군을 세워 나라를 안정시키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이익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자초에게 투자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애첩인 조희와 짝을 지어주는 통 큰 마음속에는 검은 야망이 끓고 있었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고금(古今)의 전통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셀 수 없는 재산을 남기고 자결을 하다니. 그 정도의 재산이라면 왕위를 찬탈할 수도 있었겠다. 영정의 아비였던 것일까, 추측하게 된다. 아들의 나라를 온전하게 유지시키려는 아비의 마음이었던 것일까.


 책략소설답게 계략 대 계략으로 치열한 머리싸움이 진행된다. 조나라로 진군한 전쟁은 승전보를 울리며 함양성은 승리에 도취되어 어디든 잔치가 벌어진다. 강한 왕과 규율이 잡힌 조정, 가장 이상적인 조정의 모습을 적국에서 바라봐야 하는 한비의 마음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흠모했던 상앙의 변법으로 한나라를 부흥시키고자, 피를 토하듯 왕에게 직언을 하며 간언을 했지만, 모두 무시당했다. 망국의 길로 매진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 심경은 얼마나 무너지고 있었을까. 도(道)와 세상을 논하며 문재(文才)를 닦았는데, 그것을 적국의 왕의 권력을 위해 써야 하다니. 이제는 구걸이라도 해서 백성의 목숨만은 지키려고 하는 한비의 처지가 안타깝다.


 고국을 포기했나 싶으면서도 한비의 가슴 깊은 곳에는 어떻게든 구하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아직 벼슬 없이 명색이 ‘사부’라는 위치에 있지만, 의심의 긴장감을 느끼며 아슬아슬하게 지내고 있는 느낌이다. 영정과 한비는 서로 깊이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하고 위로받는 벗이 되었지만, 서로의 갈 길은 다르다. 벗이지만, 적(敵)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아이러니. 사려 깊은 한비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가만히 있어도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는 걸 선택할 수는 없다.’(p266).


 전설적인 조나라의 이목 장군의 전술로 인해 진나라의 2차 원정은 완패. 한편 요가는 이사를 찾아가 함께 살 길을 모색한다. 한비를 향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영정에게 계책을 설토한다. 얼마나 절실한 웅변인지 등을 돌렸던 영정은 다시 요가의 관직을 회복해 놓는다. 한비의 목숨은 이들이 쥐고 있다. 그토록 한비를 총애하던 영정도 이로움의 저울질 앞에서는 헌신짝같이 버린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그래왔다. 벗이라는 이름으로 충실하게 부려먹고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가차 없이 내친다. 적국의 책사(策士)노릇을 하다가 억울한 죽음에 당면한 한비의 말은 마음이 무겁다.


‘내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어. 진나라가 부강해지는 100년 동안 군주가 넋 놓고 앉아 애쓰지 않은 나라를 어찌 하늘이 벌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모두 나의 죄다. 혁신해야만 살 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고 죽간만 희롱한 죄,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한 죄... 내가 죽어 마땅한 죄는 땅과 하늘을 덮고도 남으리라.’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는다는 말은 오래된 진리다. 신하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위해서 일하지, 국가와 군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군주의 총애를 팔아서 제멋대로 권세를 부리는 일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욕망은 언젠가는 그 욕망으로 인해 다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잠깐 살다 가는 인생인데. 어제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역사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단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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