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만나는 작가 프랜시스 하딩의 이 작품은, ‘해리 포터 열풍을 잇는 단 한 권의 미스터리 판타지 걸작이라는 대단한 호평에 깊은 관심을 갖던 차에 만나게 되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안개가 많은 나라, 특유의 음산한 날씨 때문에 환타지문학이 발달했다고도 한다. ‘거짓말을 소재로 한 이솝우화 늑대와 양치기소년이 생각난다. 장난삼아 했던 거짓말로 인해 신뢰를 잃고 양들을 모두 늑대에게 빼앗기는 이야기. 그래서 이 작품은 어떤 내용의 거짓말로 인해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무척 궁금해 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 읽은 후에, 요즘 들어 더없이 푸른 하늘 아래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햇빛과 공기와 수분으로 자양분을 얻어 쑥쑥 자라나는 저 나무들이 빛을 받으면 검게 타면서 불꽃이 일어 타버리는 것을 어떻게 상상하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감이 없는 바로 이것이 환타지문학 자체가 아닌가 싶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된 등장인물의 이력부터가 특이하다. 자연과학자이면서 목사, 부목사, 의사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상식으로는 원래 과학과 종교적인 현상은 과학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면이 있어 종종 충돌하지 않았던가.


 ‘야반도주’, ‘과학계의 배신등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어떤 피치 못할 갑작스런 사건이 생겼구나, 짐작하게 된다. 그렇게 페이스는 가족과 함께 베인 섬으로 예측하지 못한 이주를 하게 된다. 항상 두렵고 존경을 품고 있던 아버지 에라스무스, 어린 시절엔 숭배했지만, 조금씩 환상이 깨지고 있던 엄마 머틀, 여섯 살 배기 남동생 하워드, 마일스 외삼촌과 함께. 이제 열네 살인 페이스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존경하는 소녀다하지만, 세상에서 요구하는 착한 페이스’, ‘든든한 페이스’, 믿음직스럽고, 따분한 페이스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자연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남자로부터 독기 어린 말을 아버지가 듣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저런 모욕을 당하다니. 갑작스런 이주를 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품었던 의문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의문으로 가득 찬 페이스는 골치가 지끈거린다. 호시탐탐 찾고 있던 증거를 아버지의 편지에서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아버지가 과학계에 발표한 뉴 펄튼 화석은 두 개의 화석을 교묘하게 붙인 것으로 풀 자국이 남아 있고, 의도적 개조, 최악의 경우에는 완벽한 가짜...당신의 명성을 의심하게 된다는... 갑자기 섬으로 떠나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단 한 번 바다 동굴을 찾아간 후, 나무에 걸쳐있는 아버지의 주검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장례식을 치르고는 교회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면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당시 교단은 자살은 죄로 인정했으며 아버지의 사인을 자살로 단정 지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페이스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아버지의 일기장, 개인 서류를 탐독하면서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 대한 놀라운 기록도 알게 된다. 덩굴식물처럼 생긴 나무로 감귤류 같은 열매가 맺힌다고 했으며, 어두운 곳이나 빛을 가린 곳에서 잘 자라며 거짓말을 먹일 때만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힌다는...


‘...나무에 대고 거짓말을 속삭이고 나서 그 거짓말을 퍼뜨리면 된다고 했다. 그 거짓말의 중요성이 클수록, 그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을수록, 큰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그 열매를 먹는 사람은 가장 비밀스러운 지식, 그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을 알게 된다고 했다.’(P224)


 페이스가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도구로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추위와 위험에 굴하지 않고 혼자서 보트를 타고 노를 저어 동굴까지 오가면서 나무를 키운다. 그 보답으로 열매를 얻어, 그 열매를 먹고 꿈과 환영 속에서 진실은 하나하나 짜 맞추어진다. 어쩌면 아버지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 미리 거짓으로 연구하고 발표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갖게 된다. 동굴로, 발굴현장으로 동분서주 좌충우돌하다가 살인자의 진범을 찾기에 이른다. 하지만, 거짓말은 또 하나의 거짓말을 낳고 복수는 또 하나의 복수를 부르게 된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지구의 일부이기도 한 우리 사회는 거짓말을 먹고 자라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작품의 내용도 명예, 출세, 돈이 걸려있는 삶이었다. 제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살기 위해서 벌여야 하는 사투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예쁜 드레스에 눈이 가고, 보석과 남자의 관심을 뿌리치지 못한 가진 것이 미모밖에 없는 엄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서, 사고였다는 판결을 받으려 하는 엄마를 페이스는 증오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엄마는 살아야하기 때문에, 자녀들과 돈 걱정 없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육성을 듣고는 증오심이 주춤한다.


여긴 전쟁터야, 페이스! 남자들만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마찬가지야, 세상은 우리에게 무기도 주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고 하지. 우리는 싸우지 않으면 이대로 죽게 될 거야.”(P434)


 빅토리아 시대만의 생존법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기 십상이다. 착하다는 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많은 것을 참아야 하고 양보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 하면서 내가 좀 더 수고를 해야 한다. 숨어있던 자연과학자 아가타 람벤트의 반전도 놀라운 충격이었다. 여성이어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발굴 작업을 하고 발표결과는 남편의 명성이 되었다. 반면, 그녀는 남편에게 내조로 헌신함으로써 완벽한 부부인 것처럼 위선으로 살고 있었다. 예의범절이라는 틀에 여성들을 가두어놓고 평가하는 잣대로 보면, 페이스는 분명 이단아였다. 조신하고 착하게 좋은 신랑감을 기다리며 살아야하는 당시 풍습으로 보자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과 도전의 행동은 분명히 용감하고 멋졌다. 미스터리와 환상 그리고 과학, 페미니즘이 어우러져 생각할 거리를 선사해 준다. 뭉클한 감동으로 살짝 눈물로 흐려지기도 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의 남편,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삶이 제한된 여성들, 종교법으로 묶인 제도와 풍습에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삶이란 정확한 잣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너무 억압을 하면 언젠가는 봇물처럼 흘러넘치게 마련이다. 시대는 흘러 많이 나아졌지만, 성차별이나 권위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만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거짓말도 난무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삶은 진행된다. 거짓말도 삶의 일부인 것처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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