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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인형 살인사건 ㅣ 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0월
평점 :
이 작품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런던 도서전을 통해 영미 현대문학계에 혜성처럼 등단한 신예 작가 다니엘 콜의 작품이다. 추리스릴러 소설의 대가의 반열에 오른 레이첼 애보트나 M.J.알리지 같은 작가들도 그의 등단을 새로운 천재 작가의 탄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이민자의 유입으로 전통적인 생활 문화의 대립 등으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크게는 테러로 작게는 아무 연고도 없는 개인을 향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타의 문학처럼 추리소설도 오늘의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소설의 도입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올드 베일리 1번 법정의 중대 형사 재판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고인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혼자 살며 택시를 운전하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이름은 나기브 칼리드다. ‘방화 살인범’이라 불리는 그는 런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범에 등극하였는데, 27일 동안 열 너댓 살 먹은 매춘부 스물일곱 명을 죽였다. 피해자 대부분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산 채로 불에 타 죽었고, 증거도 불길 따라 사라졌다 한다. 이 세기의 재판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노숙까지 하면서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DNA 증거가 신빙성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무죄’로 판결이 난다. 그 이전에 피고인 나기브 칼리드를 체포하면서 칼리드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등 비난으로 현재 논란의 중심에 있던 수사관 윌리엄 올리버 레이튼 폭스도 참석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머리글자만 따서 일명 ‘울프WOLF’라고 불렀다. 유죄를 확실시 하고 있던 울프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다. 순식간에 법정에서는 격렬한 몸싸움과 함께 난동이 벌어진다.
이 상황은 앞으로 어떤 사건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이 될지 나름대로 추측을 하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추리소설을 접하다 보면 예전보다 범행의 수법이 날로 잔혹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범행의 대상을 독방에 가두어 놓고 고통을 주면서 유도를 하거나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잔혹한 범행을 하고도 모자라서 봉제인형을 만들었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상황이다. 런던의 허름한 아파트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두 개의 팔다리, 몸통, 머리가 각각 주인이 다르다. 여섯 명을 살해하여 마치 인형을 만들듯이 꿰맸다하여 ‘봉제인형 살인 사건’이라 불린다. 그것도 여자의 몸통에 남자의 팔이나 다리를 붙이기도 하고 얼굴은 남자, 이렇게 죄 섞어 놓았다.
그런데, 봉제인형의 얼굴은, 위에서 언급했던 세기의 연쇄살인범 나기브 칼리브가 아닌가. 교도소에 있어서야 하는 사람이 봉제인형의 얼굴이 되었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더구나 그렇게 여섯 명이나 희생되었는데도 범죄 현장에서는 피 한 방울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수사는 미궁에 빠져있는데, 울프 형사에게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그것은 다른 예비 희생자 여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다. 런던 경시청은 또 다시 긴박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유력한 용의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 시시각각 날짜는 다가온다. 마치 사업계획서처럼 범행의 대상자와 날짜, 요일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서 더욱 공포심을 조장한다. 어떤 원한으로 인하여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으며, 여유만만한 도전장을 보낸 것일까, 점점 궁금해지는데...
사건 하나에 여섯 명의 희생자가 걸려 있으니 더욱 정신이 없다. 오른 팔 주인, 왼팔 주인 등 여섯 명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언제나 사회를 놀라게 하는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세간의 이목은 방송, 언론으로 집중하게 마련이다. 또한 수사계와 마찰 또한 빈번함을 알 수 있다. 방송계는 특종을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고, 수사팀은 하루빨리 범인을 잡기 위해서 분주하다. 둘 다 모두 제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셈이다. 하지만, 조금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직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먼저 성과를 내고 주목받아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뻔히 보인다. 그들의 경쟁은 수사에 방해가 되기도 하거나 범인을 도와주게 되는 결과도 짐작할 수 있어서 양쪽의 긴장감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과연 이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수사팀장 울프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여섯 명의 명단 중 맨 마지막 순번에 울프 형사도 끼어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함정은 아닌지 궁금하다. 용의자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는 가운데 여섯 명의 명단 중 1번인 턴블 시장(市長)을 보호하려고 경시청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조사실에 데려다 놓았는데, 오히려 그 곳에서 죽는다. 시장(市長)은 천식이 있어서 천식 호흡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인화성 물질이 묻은 것을 모르고 담배를 피우다가 어이없게 불에 타 죽는다. 그 다음 순번의 지명자도 어이없는 죽음으로 반전을 거듭한다.
‘파우스트 거래’라는 용어가 나온다. 악마라고 자처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복수를 위한 살인을 의뢰하고, 악마는 의뢰자가 원하는 복수를 대신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진짜 범인과 다른 한 명의 누군가 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말한다. 상상도 못했던 상황을 알아버렸으니...
애드먼즈는 재산범죄수사팀에 있던 경관이다. 별로 존재감 없는 신입이었는데, 원래 신입사원의 열정이 넘치듯이 서서히 성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며칠 씩 집에도 못 들어가고 열성적으로 조사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는데, 애드먼즈의 주장은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기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여념이 없는 모습과 어느 국가, 사회에 만연한 관료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의뢰인을 무죄판결을 받게 하고 성공보수를 챙기기 위해 비양심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들의 현주소는 정의가 바로 서 있는 사회인가 싶다. 섬뜩한 범죄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 사회에 진정한 정의가 작동하고 있는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긴장감을 가지고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면서 몰입할 수 있는 스토리의 구성도 나름의 흥미를 더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