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이었다. 처음 만나는 작가, 온다 리쿠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호평, 학원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가미된 작품에 걸맞게 모호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거의 항상 여섯 시 반쯤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바로 우리 집 뒤편 샛길로 갔는데, 풀잎에 맺힌 이슬에 운동화가 젖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곧장 넓은 길이 나오는데, 양옆은 소나무가 많은 야산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솔밭의 중간에 길을 낸 것이다. 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소나무가 더욱 울창해지고 살짝 길이 구부러지는데, 바로 보이는 곳에 이름 모를 무덤이 있었다. 여름날 짙고 하얀 안개 속에 그 곳을 걸어갈 때면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는지...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 없이 나 혼자다. 들리는 소리는 내 발자국 소리뿐인데 누가 쫒아오는 것 같아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면서 걷다가 사정없이 뛰었던 기억... 그런 오싹한 공포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트럼프 카드 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이 학교의 ‘행사’가 이 게임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며, 3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이루어진다고. 그 주인공은 ‘사요코’라고 불렸단다. 별로 이 게임에 대해서 이해를 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모호한 기분으로, 빨려들 듯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 학기란 얼마나 마음이 들뜨는가. 1년간 한 울타리에서 공부하다가 학년이 바뀌고 반 친구들이 바뀌면 마음들이 수런거린다. 친했던 친구가 같은 반이 되면 더욱 반갑고. 무엇보다도 낯선 전학생에 대한 시선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가 아닐까.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 거리두기의 마음이 공존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 날, 달콤하고 향기로운 꽃향기를 날리며 사요코가 나타난다. 아이들은 사요코의 전설을 떠올리며 수런거린다. 가볍게 흥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P20)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 묶인 닫힌 공간에 ‘손님’같은 존재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쓰무라 사요코는 고베의 명문 N고등학교에서 온 전학생이다. 미모뿐 아니라,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수재이기도 하다. 얼마나 예쁜지 불길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같은 여자아이라도 반할 만큼이었으니 마력(魔力)이 있는 모양이다. 사실 ‘사요코’는 하는 일이 없다. 단 한 가지 있다면,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것이 ‘길할 징조’이며 그해의 ‘사요코’가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건 뭐 주술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면 학교라는 공간은 같은 일이 무한히 반복되는 지루한 곳이기도 하다.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떠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마치 뭔가를 만들어 내어 그것에 힘입어 지루한 일상을 달래려는 마음 같기도 하다. ‘사요코’라는 소녀가 나오는 연극을 공연한 해는 대학 합격률이 아주 좋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학교를 신성화 시키려는 선생님들의 농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쓰무라 사요코는 타고난 미모와 거침없이 당당한 친숙함으로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마사코, 유키오, 세키네 슈와 금세 단짝이 된다. 메마르기 짝이 없는 고3 시절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부분만 보면 평범한 고교시절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이들 중에 사요코가 둘이나 들어있고... 그 묘한 분위기를 눈치 채게 되는데... 입에서 입으로 떠돌던 사요코의 전설은 조금씩 밑바닥을 드러낸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의문이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커진다. 그에 대한 두려움도. 하지만 표면으로 떠오르게 되면 별 것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예쁘고 서글서글한 사요코가 남학생 다섯 명을 피투성이로 만들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환타지를 뒤집어쓰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교생이 ‘대본’을 읽는 장면은 일체감 있는 아름다움과 함께 두려움도 느껴진다. 마치 일본인들의 단체행동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어우러진 학원가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성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부터 사계절을 거쳐 다시 봄으로 돌아온다. 결국 학교라는 공간도 돌고 도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 아닐까. 온갖 신을 믿는 신사가 발달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나올법한, 그럴 듯한 이야기인 것 같다. 일드를 보아도, 미스터리와 환타지가 가미된 작품이 꽤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만의 전통적인,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왠지 으스스하고 꿈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 시기, 질투를 넘어 까르르 웃음을 짓던 학생시절의 사랑스러운 친구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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