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기술자
토니 파슨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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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품의 도입부 프롤로그는 한 소녀가 학교의 음침한 지하실에서 여러 명의 사내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대마초에 취해 몽롱한 틈을 타서 상처와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탈출한다. 물론 도망가다 걸려서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나고 소녀는 온 힘을 다해 누군가의 눈을 푹 찌른다. 가까스로 도로까지 나가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조금 전 제일 악랄하게 굴었던 뚱보 녀석, 아까 그 놈들이다! 사지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는데 다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이런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면 보통은 언론과 신문에 떠들썩하고 제보를 요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난리가 나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덮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엔 비밀이 없는 법,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다.


 화자인 울프 경장은 딸 스카우트와 애견 스탠과 같이 살고 있다. ‘죽기로 작정한 남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워 신원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스와이어 총경은 철수를 명령한다. 하지만, 울프는 명령에 불복하며 경찰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감()으로 용의자를 잡으면서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강력계의 신참이 된다.


 어느 날 35세의 유능한 투자은행가 휴고 벅의 시신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청소부에 의해 발견된다. 아무도 그의 비명이나 의심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새벽시간에도 사람이 바글거리는 건물인데도. 소리를 치려면 공기가 필요한데 기도(氣道)가 베여서, 비명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칼에 목을 절단하여 머리가 댕강 잘릴 뻔 한 모습... 끔찍하다. 아무 흔적 없이 살인을 하다니 그야말로 살인 기술자가 아닌가. 흔히 있을 법한 지문도 없다. 더구나 장갑지문조차도 발견되지 않아 맬러리 경감을 비롯한 수사팀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아내가 딴 남자에게 가버려서 다섯 살 난 딸과 살고 있는 외로운 형사 울프는 의외로 예리한 데가 있다. 상관인 총경의 명령이라고 해서 무조건 곧이듣지 않는 강단이 있다. 여기서도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살자나 외과의, 군인 일 것이라고 추측하며 범위를 한정한다.


 선혈이 낭자한 휴고 벅의 책상엔 일곱 명의 젊은이가 군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만이 한 장 있다. 보통의 경우와 달리 상당히 의외다. 가족사진도 아니고 일곱 명의 소년티가 나는 남자들이라니. , 그때 그 지하실 사건인가.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한 일이 휴고 벅의 살해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지나 보다, 점점 빠져들면서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빠르게 읽히며 다음 장이 궁금해서 막 넘어간다. 처음엔 휴고의 아내 나타샤가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전날 경찰이 출동하는 폭력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프는 범죄 감식현장에서 나오다가 벽에 쓰여 있는 글씨를 발견한다.


돼지

피가 말라서 거무스름해진 글씨다. 이 글씨는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떤 단서가 될까.


 휴고 벅을 살해한 용의자를 찾기 위해 분분한 가운데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마약에 찌든 노숙자의 시신. 목의 기도가 잘린 모습으로 범행 수법이 똑같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인식하고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두고 수사방향이 확 바뀐다. 그의 이름은 아담 존스. 그의 집에서 휴고 벅스의 책상에서 발견한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발견한다. 탐문 탐색을 통해 좀 더 빠르게 윤곽이 드러난다. 이들은 포터스 필드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죽은 두 사람 외에 쌍둥이 형제 벤 킹, 네드 킹, 가이 필립스, 살만 칸, 제임스 서트클리프 이렇게 일곱 명이 확정된다. ‘포터스 필드는 성경에서 따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라는 뜻이라 하는데 마치 이들의 불행을 예고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이쯤 되면 다음은 차례는 누구일까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범행에 쓰인 무기는 페어번-사익스 군용 나이프로 맞붙어 싸울 때는 이만한 도구가 없을 만큼 확실한 도구란다. 이 중에 제임스 서트클리프는 열여덟 살에 자살한 것으로 나오는데...


 한편 도살자 밥이라는 인물이 익명 서비스와 어니언 라우터라는 보안이 강화된 매체를 이용하여 SNS에 메시지를 퍼뜨리며 분위기를 조장한다. 그중 빠지지 않는 후렴구 같은 내용은 돼지를 모두 죽여라. 어느 사회나 부자들을 향한 증오심은 팽배하다. ‘도살자 밥은 부자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빈자에겐 대리만족의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영웅으로 부각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총경을 비롯한 언론 기자 등은 도살자 밥을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하지만, 울프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나름 열심히 조사하고 다닌다. 블랙 뮤지엄(범죄 도구 박물관)이나 전쟁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실마리를 얻기 위해 바쁘다.


 한 사람씩 죽어가고 모교에서 친구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아담 존스만 빼놓고 나머지는 부유층이다. 은행가, 체육교사, 정치인, 현직 군인 대위, 변호사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있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남아 있는 친구들을 차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단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닌다. 친구들은 하나 같이 섹스중독자인 휴고와 마약 중독자인 아담이 죽어도 싸다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신변에도 위험이 닥칠까 차츰 불안에 사로잡힌다.


 울프와 맬러리 경감은 뚱보 필립스와 면담하려고 포터스 필드에 갔다가,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필립스를 마주하게 되고... 자살한 친구 포함 네 명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쌍둥이 형제, 살만 칸 이렇게 셋이다. 엄청난 반전이 있고 작은 반전들의 연속이다. 법의학자의 명쾌한 감식과 울프와 형사 연수생 에디 렌의 척척 맞는 조합도 재미있다. 놀라운 작가의 필력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토니 파슨즈를 기억해야겠다. 범인은 진짜 생각지 못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음악의 천재였던 아담 존스는 친구들을 잘못 만나 마약에 찌들게 되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변태성욕자인 선생으로부터 정신적, 성적 학대를 받으며 일그러졌다. 면담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는 그들의 어두운 과거는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의 미래여야 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사람이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복수해 준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이다. 허점투성이인 학교, 경찰, 법원 등 지역 사회가 못해 준 일을 누군가 나서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둘렀다. 마지막까지도 숨겨져 있던 반전을 발견하며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자신이 쌓아올린 안위를 지키기 위해 죽은 사람을 욕되게 하는 인간의 파렴치함을 보았다. 선함 속에 숨어 있는 악은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모른 척하고, 누군가가 무서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있다. 이를 두고 생각나는 속담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고 하는 것일까. 하나의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를 낳는다. 모든 국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지역, 국가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커다란 악을 생산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우리사회의 교육, 행정 등 지역사회의 작동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는지 여부에 일침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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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다
이언 맥과이어 지음, 정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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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이언 맥과이어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2016년 맨부커상 후보작, 2018년 더블린 국제 문학상 후보작 등 여러 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다. 배가 출입하는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부두의 풍경이 나오는데, 보통 소설처럼 평범하지 않다. 일꾼들의 고함 소리를 비롯한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한다. 특히 뱃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거칠고 원색적인 욕설이 너무 놀랍고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팍팍함인가 싶어 그 오싹함에 움츠리게 되고 행여 이런 사람들 꿈에라도 만날까 두렵다. 후각, 시각, 청각, 촉각 온 감각이 총동원되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석유가 등장하기 전에 불을 밝히는 연료는 고래 기름을 썼다는데, 말 그대로 고래를 잡아야 했으니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학대하고 살육을 통한 문명의 역사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자본가 백스터의 배 볼런티어호에 승선한 선원 생활 30년 경력의 선장 브라운리, 군의관 출신의 섬너가 주축이 되어 일등 항해사 캐번디시, 작살수 드랙스 등 선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섬너는 퀸즈 부두로 가는 길에 만난 다리 없는 거지에게 길을 묻다가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된다.


브라운리랑 배를 탄다고? 신세 조졌구먼. 빼도 박도 못하지.”

쪽박을 차고 싶거나, 다시는 집 구경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가 그렇게 해줄 거야. 그 모든 걸 다 해낼 능력자니까. 퍼시벌호 얘기는 못 들었나? 그 망할 놈의 퍼시벌호 소문을, 자네가 들었어야만 하는데.”(P42)


 하지만, 광란의 인도 전선에서 푹푹 찌는 더위와 추잡함, 잔혹한 만행, 지독한 악취에서 빠져나온 섬너는 출항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다. 자연의 위대한 경이를 스케치 하려고 그림 도구와 폭넓은 독서를 할 요량으로 호메로스나 일리아드도 챙겼으며, 그 지옥 같은 인도와는 전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얼어붙은 바다 북극과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과연 섬너의 기대는 충족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선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선장 브라운리는 급사한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으며 뜻밖의 횡재를 얻었다는 섬너가 왜 배를 타려고 하는지 의아해 한다. 웬만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하게 간파하지만, 섬너의 속은 도대체 알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댔지만, 섬너의 속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배신, 굴욕, 가난, 불명예, 양친을 모두 티푸스로 잃은 것까지 좋은 기회와 운을 여러 번 날렸고 계획은 금세 엉망이 된다. 어쨌건 악운과 불행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들 했다.


 살아남은 것 자체를 운이라 생각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 포경선을 탄 섬너는 서서히 깨닫는다. 북극곰을 사냥하면서 짜릿한 흥분과 장인의 자부심을 느끼는 드랙스,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덮으려는 분위기에 자신이 포악한 무법자들 틈에 끼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선장 브라운리는 돈만 아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다. 악을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눈감아 주는 사람이다. 다른 두 인물 작살수 드랙스와 섬너의 대결 구도가 단연 돋보인다. 드랙스는 악랄한 성격에 생각 자체는 없고, 바로 행동이 먼저인 흉악한 인물이다.


생각은 무슨?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란 사람은 내키는 바를 따를 뿐이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필요하면 하는 거지생각 같은 것은 별로 안 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생사를 같이 한다니 볼런티어호 사람들이 온전할까 간담이 서늘해진다.


 항해 중에 열세 살의 사환인 조지프 해너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남자아이가 성인 남자에게. 이상하게도 아이는 누가 그랬는지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그러다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브라운리는 매켄드릭을 의심하여 취조하고 투옥시키지만, 의사인 섬너는 특유의 예리한 촉각과 직업적 감각으로 전말을 밝혀낸다.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로 스릴 있고 가독성이 있다.


 결국 포경선 볼런티어호는 난파되고 선원들은 하나하나 죽어가고 마지막에 한 명만 남는다. 작살수이지만 신비주의자인 오토의 예언대로. 억세게 운이 좋은 섬너라고 해야 할까. 결국은 돈이 걸린 문제였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울타리에서 온갖 피비린내와 악취를 풍긴 셈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를 사지로 내몰고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선한 끝은 있지만, 악한 끝은 없다더니 드랙스는 백스터의 계획과 달리 섬너의 손에 죽는다. 그렇다면 섬너는 진정 선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까. 대체로 선한 부류에 속하지만, 선을 끝까지 추구하는 인물은 아니다. 볼런티어호에서 벌어진 진실을 알리려 했던 섬너는 백스터를 만나러 갔다가 돈을 받고 타협한다. 진실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우선이다. 근본적인 진실이 두려워 외면하는 부류가 되어가는 자신이 소름끼치면서도.


 어쩌면 작가는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잔혹하게 살육을 하는 인간들에게 일침을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서 벌인 온갖 악행에 대한 벌을 불협화음, 살인, 조난, 난파의 고통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퍼시벌호에 탄 선원들이 모두 죽거나 미쳐가는 사고를 내고도 브라운리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볼런티어호를 운항한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했듯이 온갖 악은 우리의 삶에서 피해 가지 않을 것이다. 극한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 묘사와 생생한 배경 묘사가 압권이다.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나, 생각지 못한 반전의 연속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한 길 밖에 안 되는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무한하지 않은 인생, 자연을 둘러싼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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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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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책읽기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의 종류와 분량에 따라 다르지만, 사실 책 한 권을 읽어내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지식과 교양의 배양이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힘든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등 많은 이유로 책을 읽지만 가끔은 힘들 때가 있다. 많은 책을 읽는다고 원하는 만큼 지식이 쌓이거나, 획기적으로 삶이 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왜 그 소수의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핑계는 여러 가지가 나올 것이다. 이 만큼만 하는 정도로 만족하거나 소위 변화를 부르는 임계점을 넘어서지 못하는, 끈기와 용기가 부족함 일수도 있다. 책읽기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으로 나온 책 인 것 같다. 이 작품은 대학시절 글쓴이가 책이 과연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란 주제로 토론 수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모두 담았다 한다.


 이 책을 접하면서 책과 고양이라는 소재도 물론이거니와 우선 작가의 이름에서 묘한 호기심이 일었는데, 나의 추측도 맞아떨어졌음을 알게 되어 무척 흥미를 끌었다. 바로 열렬한 나쓰메 소세키의 팬이자 고양이 마니아로 알려진 의사이기도 한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와 가와바타 야스나리, 나쓰메 소세키의풀베개(草枕)의 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적절히 조합하여 따온 이름이 나쓰카와 소스케 라고 하니 그 재치와 기발함에 미소가 절로 난다. 고양이 마니아답게 살짝 냉담하면서 철학이 엿보이는 얼룩고양이를 등장시켜 가벼운 환타지를 가미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다. 소설 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는 다큐 같은 느낌도 든다.


 고등학생인 나쓰키 린타로는 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의 죽음과 마주한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매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살다가 가장 가까웠던 혈육이 갑작스레 떠나자 그 충격 때문인지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서점에만 박혀있다. 다른 사람이 걱정하니까, 학교에 나오라며 친절한 말로 배려를 하는 단골손님인 선배 아키바, 특별히 친하진 않지만 가끔 알림장을 건네주러 반장 유즈키 사요가 들를 뿐이다. 일면식도 없던 린타로의 고모는 할아버지의 장례식 등 여러 도움을 주고는 서점 문을 닫고 고모네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이 공간이 유일한 피난처이며 안식처였던 린타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서점이 문을 닫을 상황임을 알게 된 아키바는 프루스트 전집이며 좋은 장서를 가지고 있는 서점은 여기 말고 없다면서 애석해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딱히 마음의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린타로를 둘러싼 환경에도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갑자기 얼룩고양이가 나타나더니, 어느 장소에 책이 많이 갇혀 있으니 그걸 구하려면 네 힘이 필요하다고 한다.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린타로는 꿈을 꾸는 것인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데 여전히 눈앞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이 기묘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하지만,


중요한 건 항상 이해하기 힘든 법이지. 2. 많은 사람들이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P33)라며 어린 왕자의 구절을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신기해하며 차츰 분위기에 동화되어 간다.


 그래서 얼룩고양이와 함께 기이한 모험을 떠나는데...

어두컴컴한 서점 안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통로를 따라 신비한 모험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흔히 책벌레들의 몇 가지 유형을 만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자신은 책을 아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긴다면서 한 번은 읽지만, 두 번 다시는 읽지 않고 오 만 권이 넘는 책을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하고 있는 대 저택에 사는 남자다. 책을 가둬 두고 있는 셈이다. 남에게 과시하려는 허영심과 보인다. 겉모습은 있는 척 하면서 내면에는 알량한 껍데기만 쌓여있는 빈곤한 상태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아차, 하고 놀라게 되는 장면이 아닐까.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P65) 린타로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떠올리며 남자에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며 당신은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에 처음엔 오만불손했던 사내가 망연한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별안간 갇혀 있던 책들이 수많은 철새들처럼 날아오른다. 사물이 날아드는 환타지의 전형적인 장면. 이리하여 첫 번째 미궁에서 갇힌 책을 구하는 임무 완료다.


 이렇게 얼룩이와 모험은 계속된다. 두 번째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들으면서 독서의 효율화라는 연구를 위해 책을 싹둑싹둑 자르는 학자를 만난다. 자신의 연구가 완성되면 매일 수십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파우스트도 단 2분이면 읽을 수 있다면서. 이미 책은 세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계속해서 나오는 책을 다 읽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빨리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그다지 획기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속독을 하기 위해 줄거리만 요약한 책에서 독자들은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책이 어렵고, 그래서 읽지 않고 사라지는 책을 방지하기 위한 핑계로 압축시켜야 한다는 이 연구자를 이번에는 어떤 재치로 설득시킬 것인가...


 세 번째 모험은 팔아치우는 자바로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다. 꽤 오래전부터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진열되고 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분야든 더 이익을 주는 효자상품이 있기 마련이다. 책도 고전이나 명작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팔리지 않는 책은 서점에 구비하지 않게 되고 실용서, 베스트셀러 위주의 소위 이익을 많이 안겨주는 책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자극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폭력이나 노골적인 성행위를 안겨주면 돼요. 상상력이 없는 독자에게는 실화라고 한마디만 곁들이면, 그것만으로 발행 부수가 수십 퍼센트 올라가고 매출은 순조롭게 성장해서 만만세!”(P186)

참으로 출판계의 현실을 꼬집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자극에 예민하게 환호하는 독자를 끌어들이고, 업계의 이익으로 이어진다. 곧 식상해진 독자에게 또 다른 책을 들이밀게 될 것이다. 모든 책에서 배울 게 있다고는 하지만, 출판계는 양서를 발굴하고 책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험이 진행될수록 만나게 되는 상대는 좀 더 어려워지고 책에 대한 이야기도 심도 깊은 주제가 된다. 책의 힘이란 무엇일까,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주제에 이르게 된다. 마지막 미궁에서 린타로는 이번에는 책이 아니라 끌려간 유즈키를 구해야 한다. 어떤 말을 해서 구해 낼까. 어쩌면 다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얼룩고양이와 함께한 환상적인 구성으로 책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잊고 있던 것에 되새김을 주는 것 같다.


책에는 마음이 있지. 소중히 대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을 가진 책은 주인이 위기에 빠졌을 때 반드시 달려가서 힘이 되는 법이야.”(P228)라는 생각이 린타로의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얼룩고양이와 린타로, 유즈키와 함께 제각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는 기이하고 유쾌한 모험이었다. 린타로가 많이 들었던 할아버지의 애정 어린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얼룩고양이는 갑작스레 떠난 할아버지가 보낸 분신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갑작스레 떠난 할아버지가 없는 쓸쓸한 공간에 놓여 있는 의기소침한 손자가 안쓰러워서, 학교도 나가지 않고 서점에 처박혀 있는 손자에게 앞으로 잘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준 것은 아닐까.

 

 새벽 6시에 일어나 서점을 청소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는 린타로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하다. 예전에 막연하게 서점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했을 생각. 돈을 벌기 위한 서점은 힘들고 복잡해질 것 같다. 돈 이야기 말고 책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 작품이 대리만족으로서 서점주인 린타로와 함께 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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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서부의 부엌들
J. 라이언 스트라돌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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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처럼 음식과 셰프에 관한 이야기가 넘치는 시절이 또 있을까 싶다. 삼 년 전 현재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셰프가 쓴 <예스, 셰프>를 읽은 적이 있다. 글쓴이 마르쿠스는 묘하게도 이 소설에 나오는 셰프 에바 토르발처럼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다행히 스웨덴의 양부모를 만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축구를 엄청 좋아했는데 몸을 다치면서 할머니의 요리를 돕다가 진로를 바꾸고, 혹독한 과정을 거쳐 백악관 초빙 셰프로 우뚝 서게 되는 성장기이며 요리 이야기다. 그가 살아온 삶이 결코 만만치 않은 험난한 여정이었기에 가슴 찡한 감동의 여운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 셰프의 길도 예술가 못지않은 열정과 인내, 정성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 주 덜루스 지역이다. 문장에서 위트와 능청스러움이 묻어나서 꽤 재미있다. 특히 형제의 우애가 좋아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라르스가 지독한 냄새가 나는 루테피스크를 만들게 된 것은 순전히 도러시 세아보리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열 두 살이던 라르스와 그 아래 동생 얄이 떠맡게 되었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루테피스크를 먹게 해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루테피스크는 말린 대구를 삭혀 만든 톡 쏘는 냄새의 노르웨이 전통 요리라고 하는데, 왠지 우리가 먹는 홍어가 떠오른다. 쾨쾨한 냄새와 톡 쏘는 홍어. 이 작품은 읽어가는 동안 오감을 자극한다. 보이진 않지만,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반 친구들도 그를 피했고 10대 시절 내내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열여덟 살이 되자 루테피스크 전통이고 뭐고 인내심도 바닥이 난다. 반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루테피스크를 만드는 솜씨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어느새 주방의 작은 마법사로 성장한다.


 오로지 셰프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향 덜루스를 떠난 라르스는 제빵 기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요리 등을 모두 섭렵하면서 십 년을 보낸다. 헛매커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다가 키가 호리호리한 미모의 신시아를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최고로 잘 고르는 똑똑한 웨이트리스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조합인가. 스물여덟 살까지 총각딱지도 못 떼던 순수한 청년이 사랑에 빠져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의 애정 전선은 바야흐로 핑크빛이다. 딸 에바가 태어나자, 스스로 감격하여 펑펑 울던 라르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아기에게 먹이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기에게 돼지고기 항정살로 만든 음식을 먹이려 하다니. 딸아이를 진료한 의사는 이 십 개월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라르스는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느냐며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냄새라도 맡게 해야 한다면서 요리하는 그들 옆에 아기를 두며 요란을 떤다. 여기까지는 보통 가정의 소소한 행복이 느껴진다.


 불행은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온다더니, 새 업무로 와인 출장을 갔던 신시아는 제러미와 눈이 맞아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만을 달랑 보낸다. 아이를 가진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는 말과 함께 자기를 찾지도 말고 전 재산을 모두 넘기겠다며. 그 후 요리만이 자신의 구원이자 기쁨이었던 라르스는 장보기를 하고 오다가 심장마비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다. 엄청 사랑했던 딸 이제 6개월 된 에바를 남기고. 말도 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에바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급반전된 라르스의 죽음 이후 이제 에바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아기였던 에바를 잘 돌봐주었던 얄과 피오나 부부는 에바의 부모가 된다. 열한 살이 된 에바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그 외로움을, 세상에서 제일 맵다는 칠리 고추 초콜릿 아바네로를 키우는 낙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매운 칠리 고추를 넣은 음식으로 복수를 하며 짜릿한 기쁨을 느낀다. 음식점에서 손님과 매운 음식을 먹는 내기를 벌여 돈을 벌기도 하는 등 괴짜가 되어간다. 이후에는 에바가 이야기의 전반에 걸친 주인공이라는 느낌보다는 조연처럼 비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스쳐가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오나의 언니네 가족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에바는 어떻게 셰프가 되어가는 걸까. 특별히 요리 수업을 받을 기회도 없었는데.

우연히 남자 친구 윌 프레이거와 음식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셰프로부터 미각의 천재라는 칭찬을 듣는다. 음식에 로즈메리가 보이지 않지만, 타고난 후각과 미각으로 그 맛을 알아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척척 맞춘다. 그 인연으로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된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그 신선도를 위해 직접 키우고, 온갖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은 가히 예술가로 태어나는 과정이나 마찬가지다. 요리 대회의 심사위원이 되는 등 점차 유명한 셰프로 알려지기 시작한다. 급기야는 에바의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3~4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고.


 한편 아무런 죄책감 없이 홀가분하게 어린 에바를 두고 떠났던 신시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작품 마지막 장의 더 디너는 에바가 셰프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만찬에 초대되어 에바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얼마나 맛있는지 그 표현을 보면 그 음식이 눈에 선하고 침이 고일 정도다. 오랜 기다림과 우여곡절 끝에 에바와 만나게 된 신시아(신디)는 라르스를 안다고 하면서 에바와 가족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꼭 빼닮은 에바를 보면서 엄마임을 밝히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끝난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담담한 이야기로. 안타깝지만,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각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결핍이 불행을 부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없는 살림을 살면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워 준 삼촌 부부와 친척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기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빛나는 셰프로 성공한 건 아닐까.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인 결과가 아닐까. 아기의 똥냄새가 싫어서 좀 더 나은 사람을 찾아 더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았다. 뭇 남자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마음이 너덜너덜 해져서야 옛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그렇게 뒤늦게 철들며 성숙해지는 걸까. 이는 소설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도 하다. 저자 J. 라이언 스트라돌은 2015년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체와 위트 있는 문장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몰입하게 되는 마력이 있다. 각종 요리 레시피는 물론 삶과 사랑, 일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담담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감동도 들어있다. 아름답고 빛나는 셰프로 성장한 맛있는 인생, 맛있는 요리 이야기 이후의 그의 작품이 너무 궁금하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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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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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메이브 빈치의 이 작품을 티저북으로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점과 제목에서 어떤 운치가 느껴졌기에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었다. 첫 배경은 아일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의 라이언 씨 농장의 풍경으로 시작이 된다. 내겐 아직 미지의 세계인 아일랜드의 풍경을 행간에서 찾아 떠올리게 된다. 스토니브리지는 경치 좋은 전형적인 시골이다. 라이언 씨 농장의 아이들은 각자 맡은 일이 있다. 치키의 언니 메리, 캐슬린, 치키의 남동생 브라이언, 아들 둘은 서부의 큰 도시로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비교적 평화롭게 보이는 농장의 풍경인데, 농사만으로 가족 전체가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쳐 제각각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눈치가 있는 치키는 편물공장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미국인 미남 청년 월터 스타와 만나게 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지구상에서 이 곳 스토니브리지가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말하는 미청년 월터는 치키에게 반해서 같이 여행하자고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치키. 부모님이 우리 인생을 대신 살 수는 없어. 우리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이런 낯설고 황량한 땅에서 돌아다니기를 바랐을 것 같아? 신나게 즐기기나 하면서? 아니, 부모님은 내가 컨트리클럽에서 좋은 집안의 딸들이랑 테니스나 치기를 바라지. 하지만 여기가 내가 있고 싶은 곳이야. 간단해.”(P12)


 이것저것 재고 고민하지 않는 월터의 단순한 성격이 보인다. 그렇게 육 주 동안의 찬란한 시간을 보내고 치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월터를 따라가려고 마음먹는다. 가족들은 노발대발하며 치키를 만류하며 난리가 났다. 결국 아무런 축복도 받지 못한 채 떠난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엄마의 말대로 지나가는 열병이었음을 확인하는데 오래 가지 않았다. 감동과 환희로 가슴 벅찼던 둘의 사랑은 차갑게 식는다. 월터는 그동안 아주 행복했지만, 이제는 끝났다고, 그저 사랑이 피어났다가 사랑이 죽은 것뿐이라고 한다. 비현실적인 현실의 버거움을 동화처럼 꾸며 편지를 보내면서 그 힘으로 버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이 끝나면 많은 이들이 많은 상처를 부여안고 어찌할 줄 모른다. 하지만예상과 달리 치키는 씩씩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치키는 일자리를 얻으려 노력했고 운 좋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캐시디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며 열심히 살아간 세월이 그 짧은 분량 속에 벌써 이십 년이 흐른다.


 동화 같은 달콤한 거짓말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잔잔한 일상에 파고들어 그것을 파헤치게 만든다. 세상엔 비밀이 없다고. 조카 올라와 브리짓이 미국 이모네로 놀러 온다는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오자 고민에 빠진 치키는 캐시디 아줌마에게 털어놓게 되고, 월터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해서 위기를 모면한다. 참 대단한 순발력이다. 어쨌든 이 반전으로 좀 편안해진 치키는 고향에 갔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놀이터였던 스톤하우스의 미스 퀴니를 만나게 되고 호텔로 개조하자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 집을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 오하라 집안에게 넘기지 않으려던 미스 퀴니의 꿈은 치키가 이 집에서 살았으면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 말을 듣고 감동한다. 치키의 친구 눌라가 가정부로 일하던 집이기도 했던 스톤하우스는 많은 사연들이 거쳐 갔다. 사랑에 빠진 치키가 미국으로 달아났듯이 눌라는 임신하게 되어 이 집을 나가고 그 아이가 리거다. 이렇게 스톤하우스가 호텔로 개조되어 오픈하기까지 치키와 리거, 올라는 창업 멤버가 된다.


 친구들과 고깃덩이를 훔치고 온갖 말썽을 부리며 엄마의 속을 썩이던 리거는 치키의 도움으로 스톤하우스에 오게 된다. 이런 낡은 집을 호텔로 개조한다니 미친 짓이라 여기던 리거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며 분위기를 파악하게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서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걱정할 정도가 된다. 열여덟 살의 청춘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다더니, 다시 여자 친구 카멀이 임신했다는 소식으로 깜짝 놀라게 한다. 조카 올라는 컴퓨터를 전공한 유능한 인재로 런던에서 일을 하다가 이모 치키와 합류하게 된다.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1년만 있어 보기로 했던 올라는 이 곳에 정이 들어 더 남아있고 싶어 한다. 첫 사랑에 실패한 치키는 어디에 그런 노련함이 있었던지, 갑작스레 닥친 모든 일을 침착하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마치 기적 같이. 동굴을 탐사하고, 절벽을 오르며 새들의 둥우리를 찾아내며 자연 속에서 놀았던 경험 때문이었을까.


 호텔 오픈을 앞두고 안타깝게도 미스 퀴니는 평온한 표정으로 생을 마감한다. 누구보다도 오픈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는데. 미스 퀴니의 말대로 바다, 평화, 추억이 적당하게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에 완성된 스톤하우스가 보이는 듯하다. 갑자기 닥친 사랑으로 기쁨에 휩싸이고 어이없는 결말을 맞는 것이 경험적인 우리네 삶이다. 그 과정은 자녀에게 좋지 못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하면서 상처를 입힌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크고 작은 일을 안겨줌으로써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실수나 실패를 비난하거나 벌을 준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며 사랑으로 감싸는 정감어린 이야기였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 받았다는 메이브 빈치의 장편 소설로 치키, 리거, 올라 이 세 편만 들어있다. 참으로 따뜻한 소설이다. 꿈과 희망, 사랑의 총합으로 멋진 호텔로 탈바꿈한 스톤하우스에서 그 겨울을 보내는 일주일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찾게 될까, 또 어떤 반전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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