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SF... F.. C.
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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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19세기 고딕소설 최고의 걸작이라는 메리 셸리의 대표작이다. 제우스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지식과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피조물을 만든 결과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구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넣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영화로 본 기억으로는 피조물의 흉측한 외모를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만 했는데 책으로 읽으면서 피조물의 내면 심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소설의 모티브를 얻은 계기도 너무 유명한 일화여서 읽고 싶다는 기대감을 더해주었다. 셸리 부부와 바이런 경 부부가 모인 자리에서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쓰자는 제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유전자를 지니지 않고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명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출생을 어느 날 문득 던져진 존재라고 하는데, 이 피조물이야말로 그에 딱 맞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은 높이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지 않고 과학자의 성취에만 모든 것을 걸어도 되는 걸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제1권의 시작은 월턴 선장이 영국의 새빌 부인에게 서신을 전하는 내용이 나오고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제2권의 2장까지 이어진다. 이어 3장부터 8장까지는 피조물인 괴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왔다가 거의 죽기 직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월턴 선장이 구조 해준 인연으로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과학도 프랑켄슈타인은 어머니가 사망 후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이미 17세에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알고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연과학 이론과 실험에 통달하여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경지에 이른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연구하다가 날을 새기도 하면서 2년의 연구 끝에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피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쪼글쪼글한 피부에 검은 입술을 한 흉측하게 생긴 외모에 공포와 혐오감을 갖게 되고 도망치게 된다.

 

 이름도 없는 피조물은 보통 사람보다 키도 크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들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덩치만 큰 피조물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겉모습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에 빠지고 절망하게 된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윌리엄이 살해되었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하녀 유스틴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인 괴물의 짓이라고 단정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호기심과 부당한 일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참담한 심정이 된다. 재판이 진행되지만 거짓 자백을 함으로써 유스틴은 희생양이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만들지 않고, 그 과학적 재능을 다른 일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피조물을 창조한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좀 더 숙고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왕 만들었다면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났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애정을 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후회와 고통에 사로잡힌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은 버림받은 자를 증오하지. 그런데 그 어떤 생물보다 더 비참한 내가 어째서 미움 받아야 하는가! 나를 창조한 당신도 피조물인 나를,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끊어지는 관계로 당신과 묶인 나를, 증오하고 경멸하지.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든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당신의 의무를 내게 다하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게 내 의무를 다하겠다. 당신이 내 조건을 들어준다면, 그들과 당신을 가만히 두겠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로 만족할 때까지, 죽음에 굶주린 위를 채우겠다.”(P139)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과 마주치고 분노하자, 피조물도 지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피조물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라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사악한 악마라고만 치부할 자격이 있는지 묻게 된다. 나약하고 소중한 생명이 잔혹한 학대의 대상이 되어 스러지는 오늘의 현실도 떠오른다.

 

 버림을 받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어느 오두막집에 숨어들어 먹을 것을 훔치고 연명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다양한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점차 보고 듣고 냄새를 느끼고 각각의 감각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사물을 인지하고 감각을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불을 발견하고 온기를 느끼며 좋아했는데 그 속에 손을 넣었다가 뜨거워서 기겁을 한다. 보살펴주고 위험요소를 인지시켜주는 보호자가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익혔을 텐데.

 

 가난한 오두막집의 우리에 숨어서 살면서 그들이 가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땔감을 해다가 쌓아놓으며 도움을 준다. 그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이 경험과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찰하다가 불, 우유, 빵 등 단어를 배우고 쓸 줄 알게 되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다 투명한 웅덩이에 비친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굴욕감에 빠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언어의 기술을 배우려 노력하고 감각을 익히고 사람들의 연민과 사랑을 배우려고 애썼다. 그들이 기쁘면 자신도 기쁘고 그들이 슬프면 자신도 슬퍼한다. 그렇게 공감능력이 생기자 피조물은 자신의 이런 마음을 전하고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젊은이들이 모두 밖에 나간 사이에 앞 못 보는 노인 드 라세를 만나러 방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딸들이 들어오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딸 아가타는 흉측한 외모에 기절을 하고 팰릭스에 의해 거절당하고 내쫓기자 오두막집에 불을 지르고 그곳을 떠난다.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며 인간의 정을 느끼고 싶었던 피조물은 흉측한 자신의 외모 때문에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숲속에서 어린 소녀를 구해주는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인간을 향해 증오심은 더욱 커지고 복수하기로 맹세한다.

 

 글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자 옷 주머니에서 발견한 종이에서 피조물의 끔찍하고 증오스러운 형상이 세세하게 묘사된 내용을 읽으면서 더욱 고통으로 몸서리친다. 이제 남은 것은 악과 복수심 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서 자신과 같이 흉측한 외모를 지닌 여자를 하나 창조해 달라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거라고. 언변이 좋은 피조물에게 설득 당한 프랑켄슈타인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친구 클레르발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곳에서 그 작업을 마치려고 클레르발과 잠깐 헤어진다. 하지만 그 일에 몰두하다가 생각을 바꾸고 만들다 만 피조물을 부숴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피조물은 복수심은 극에 달한다. “네 결혼식 밤에 내가 할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과학적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대가를 특특히 치렀다.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끝까지 쫓아가다가 결국 주검이 된다. 피조물은 죽은 자신의 창조주를 바라본다. 증오심으로 여러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하며 이제 죽음만이 유일한 위로라고 한다. 인간 세계의 정을 나누고 싶었던 피조물은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수많은 아류작을 낳는 모티브가 되었던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욕망과 성취 사이에서 책임감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인간의 선악과 실존에 대한 궁금증 등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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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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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쓴 시마모토 리오는 처음 만나게 된 작가로 나오키상 수상 작가이며 김난주 번역가가 함께한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17세 때 발표한 실루엣이 군조 신인문학상 우수작으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2003리틀 바이 리틀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는 등 수많은 상에 언급되고 있어서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고 해서 짧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했는데 연작소설이어서 더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띄엄띄엄 읽었지만 사이사이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서 좋았다.

 

 첫 번째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길잡이>는 화자인 야마토 요스케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좋아하는 여학생 사쿠라이 마키에게 도쿄에 있는 제1지망 대학에 붙으면 사귀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자신은 야마토를 좋아하지 않으며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신뢰할 수 없다며 거절하는 사쿠라이의 말에 야마토는 정나미가 떨어진다. 도쿄에 있는 대학에 가면 마키보다 귀엽고 세련된 여학생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마음을 달랜다. 야마토는 어머니가 알려준 지인의 먼 친척의 딸이 운영한다는 마와타 장을 찾아가기 위해 고향 홋카이도를 떠나는데 찾아가는 여정부터 헤매느라 진땀을 흘린다. 제목에서 왠지 교훈적인 뉘앙스가 풍겼는데, 새내기 대학생이 주변 인물들에 둘러싸여 좌충우돌 깨지면서 조금씩 성숙해가는 야마토를 보고 위트가 느껴졌다. 가까스로 찾아간 마와타 장에서 여고생 야에코, 쓰바키, 고하루, 주인 치즈루를 만나 서로 소개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화가 세우 씨 이름이 입에 올랐는데 야마토가 몹시 궁금해 하자, 치즈루는 자신의 내연의 남편이라고 말해서 이상한 분위기가 감돈다.

 

 하지만 한 울타리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 아닐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 일도 점차 따스한 시선으로 바뀌어 간다. 순박한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눈치가 없는 야마토, 고야 선배로부터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지만 야마토를 좋아하는 고하루, 그것도 모르는 야마토, 하라다를 잊지 못하는 선배 에마에게 휘둘리는 야마토, 이들의 엇갈린 사랑도 안타깝고 흥미를 자아냈다. 강간을 당한 트라우마로 남자가 넌더리난 쓰바키는 인터넷 취미 카페에서 여고생 야에코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호기심도 잠시 자신을 향해 끈덕지게 달라붙는 듯한 묘한 애정 사이에 혼란스러워진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은 틈에 트러블이 발생해서 집을 뛰쳐나온 야에코는 자신의 답답한 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였을까. 자주 마와타 장을 찾아오고 마냥 쓰바키에게 마음이 향한다.

 

언니는 지금 나랑 같이 있어. 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그 마음이 나를 지켜줘. 하지만 무언가를 정하고 약속하는 순간, 나는 보나 마나 몇 배는 약해질 거야.”

……

미안해

언니는 착한 사람이야. 너무 정직해서 고집불통인 거지.”(P75)

 

 누가 이렇게 긍정해주었던 적이 있었을까 떠올리던 쓰바키는 뭉클해지고 점차 야에코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들의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 고하루는 치즈루의 생각을 물어보지만 더더욱 답답한 마음이 된다. 다른 사람은 누구에게 이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놔두라며 무관심 일색이다. 이어서 치즈루는 내가 세우 씨를 보살피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는 거지.”(P100)라고 말해서 고하루를 놀라게 한다. 어쩌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고하루의 입장에서 보면, 복잡한 연애를 하고 있는 야에코와 쓰바키가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또 방안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릴뿐, 애정 어린 따뜻한 말이 오가거나 그런 분위기를 좀처럼 볼 수 없는 세우 씨와 치즈루 사이엔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궁금증만 커진다.

 

 <청결한 시선>, <시스터>, <바다로 향하는 물고기들>까지는 전형적인 성장스토리처럼 보이지만 <벽장 속 방관자>에 이르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바로 17년 전 검은 손에 의해 무너진 치즈루의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마지막 이야기 <마와타 장의 연인>에서는 치즈루가 자신의 내연의 남편이라는 세우 씨와 얽힌 궁금증을 풀어주게 된다. 세간의 잣대로 보자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이 말에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까.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밥을 먹이고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치즈루를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누구 하나, 나를 지켜주지 않았어. 친엄마조차, 나를 완벽하게 소유해주는 사람. 내가 원한 것은 딱 하나, 그거였어.”(P292)

 

 친가에서 땅을 물려받은 후 밖으로 돌던 엄마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기는커녕, 엄마의 전 애인에게 유괴될 뻔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던 치즈루였다. 언제부터 글을 썼는지 모르지만 치즈루는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 숱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보통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떤 정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질타어린 시선을 보낼 때가 있다. 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바는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걸 세우 씨를 향한 치즈루의 마음에서 알 수 있었다. 누구 하나 지켜주지 않았던 자신을 세우 씨만은 어떤 과실과 책임을 묻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렇게 자기를 완벽하게 소유해 준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얼마나 엄마에 의해 방치되었으면 그런 세우 씨가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일까,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결말에 이르면 세우 씨는 더욱 강력하고 견고한 속박을 만들어가지고 치즈루 앞에 나타난다. 마치 악몽같다 면서도 행복해하는 치즈루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살아온 배경이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 시선에서 조금은 너그러워 질수 있으려나.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다.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과 여러 가지 색깔의 마음이 있다. 그러니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틀렸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남녀 사이만 정상적이고 건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동성이라도 함께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역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짓기는 참 어렵다. 모래알처럼 결코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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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04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마모토 리오 ‘나리타주‘ 읽었었는데 교사와 제자사이에 사랑,,,,
일본에서 60만 독자들이 읽었다고 해서 기대 엄청 했었는데,,,
기대고 싶은 대상을 원했던 여고생에 미세한 감정을 잘그렸어요.
이분 작품은 거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

모나리자 2021-02-04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전 처음 만난 작가인데 이 작품도 재밌더라구요.

스콧님, 아까 스콧님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궁금한 점 댓글 남겼는데 아직 답글을 못 받아서요. 궁금하네요. 못 보신 건가요? 얼른 답변 주세요~ ㅎㅎ

편안한 밤 되시고요~^^
 
수레바퀴 아래서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22
헤르만 헤세 지음, 김세나 옮김 / 별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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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헤세의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읽히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겪어보았을 학창시절을 다룬 이야기이고,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우쭐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어린 소년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또 위험한 일인지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한스 기벤라트는 그 마을에서 이전에도 없던 신비로운 불꽃같은 존재였다. 학교 선생들이나 교장, 이웃 사람들, 목사 등 모두가 한스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하고 특별한 인물이 될 거라고 믿었다. 해마다 주()에서 치르는 시험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가고 튀빙겐 대학에 가서 목사나 선생이 되는 소위 안정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의 유일한 후보였다. 시험이 가까워지자 한스의 불안감은 가중된다. 시험을 치르고도 안절부절 못한다. 다행이 2등으로 합격한 한스는 모든 이의 축하를 받으며 그 보상으로 다른 학생보다 1주일 먼저 방학을 맞이하게 된다.


  낚싯대를 만들어 낚시를 하며 오랜만에 맞는 해방감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전 날 잡은 물고기를 목사에게 주러갔다가 신학교에 가서 여유롭게 보내려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등 공부를 미리 해 두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듣는다. 또 교장선생이 집으로 찾아와서 신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려면 수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한스는 마음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거절하지 못한다. 더구나 왜 그렇게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는 알지 못한 채 얌전하게 따르기만 한다. 오래전부터 기대를 받아왔던 터라 우쭐한 마음 또한 갖고 있다.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앞날의 꿈과 계획을 생각해 보았다면 무작정 어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가엾게도 한스는 어머니가 안 계시고 아들의 앞날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상하고 현명한 아버지도 아니었다.


  신학교에서 들어간 한스는 9명의 동료와 헬라스 방에 배치된다. 슈바벤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한스는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몸도 너무 약하고 마음도 여리다. 금세 어울려 노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수줍은 성격인 한스는 다가가지 못한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기다리는데... 이름난 슈바르츠발트 가문에서 온 헤르만 하일너는 한스에게 바보처럼 공부만 한다고 비난하지만 한스는 그가 싫지 않다. 주관이 뚜렷하고 열정적인 태도와 시인 기질을 보이는 자유분방함까지 지닌 하일너에게 점점 매료된다. 워낙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한 하일너는 루치우스와 싸우다가 교장의 방에 넘어지게 하는 바람에 홀로 감금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


  하일너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하면서도 부끄러움 때문에 용기 있게 나서지 못하다가 배신하게 된다. 그 사이 같은 방 친구 힌딩거가 살얼음이 언 연못에서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하여 아이들은 충격에 빠진다. 친구의 죽음을 본 후 한스는 하일너에 대한 죄의식으로 더 불안한 마음이 되었는데 하일너를 찾아가 진정으로 사과를 하고는 둘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첫사랑에 빠진 연인 같은 사이가 된다. 당연히 성적은 떨어지고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니게 된다. 교장은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묻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충고하며, 하일너와 멀어지기를 권하지만, 비겁하게 친구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교장과 선생들은 한스에게서 관심을 거둔다.


  그런 중에 하일너는 한스와 산책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감금되는데, 도주한 사실이 밝혀져 결국 퇴학 처분을 받는다. 이 무렵 한스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헛것이 보이는 등 건강 상태의 큰 변화가 찾아온다. 이제 공부에도 아무런 희망을 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으로 집에 돌아오게 된다. 너무나 여린 영혼인 한스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삶이었다. 어쩌다 하일너와 친해져서 공부를 망쳤을까. 자신이 갖지 못한 하일너의 강한 성격에 매료된 것일까. 따뜻한 사랑에 굶주렸던 한스는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맹목적으로 공부했던 것이 아닐까. 학교 선생과 아버지, 어른들이 자신의 명예와 욕심을 위해 한스를 혹사시켰고 병들게 한 것이다.


  유년시절에 자주 놀던 곳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은 참 안타까웠다. 마음껏 뛰 놀고 쉬게 했어야 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싹트듯이. 가끔 희망에 차 있다가도 다시는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이야기는 낚시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강에서 한스의 주검이 발견되는 비극으로 마무리 된다. 지난날의 수치심과 자책으로 괴로웠던 마음, 등 뒤에서 수군거리는 온갖 비웃음을 흐르는 강물에 씻어 낼 수 있었을까. ‘착한 아이를 강요받아야 했던 지친 영혼은 삶의 수레바퀴 아래서 고단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저기 가는 저놈들이 한스를 이렇게 만든 원인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죠.”

……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나 저도 아마 이 아이한테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게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P237)


  평소에도 한스를 아끼던 구둣방 아저씨가 던지는 말이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럼에도 한스의 아버지는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선생들을 두둔한다. 자녀는 부모의 꿈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행복하게 살다 갈 권리가 있다. 자녀를 위해서라는 명제 아래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성적과 규칙만을 내세우기보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며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관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하일너의 강한 성격이나 자유분방함이 선생들에겐 눈의 가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개성을 고려하고 건강상태를 신경 쓰거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읽으면서 학생시절의 나와 부모입장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의 시절은 흘러갔지만... 나는 아이들의 개성과 그들의 꿈을 우선시 하였는가? 간혹 세간의 행복론을 들이대며 안정적인 삶이 최고라고 말하며 그것을 따르도록 해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 몰아붙이기보다는 기다리고 지켜보며 믿어주는 태도가 자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다시금 깨달았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을 위하여 제대로 된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헤세는 자신의 사춘기 시절의 경험을 이 작품에 투영하여 일률적이고 규격화된 인물을 길러내는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백년도 넘은 이 작품이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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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으니 꽤 오래 되었다. 섬뜩하고 두려운 이야기지만 우리와는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오랜 시간 지난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루는 중에 다시 읽은 이 작품은 다르게 다가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안전문자,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실천하며 답답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터라 더 실감나고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알제리 해변에 있는 오랑 시는 비둘기, 나무, 정원이 없는 삭막하고 보기 흉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촌 곳곳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점에서 대비를 이룬다. 바이러스는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4월 어느 날 진료실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쥐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어서 장난꾸러기들의 소행이려니 가볍게 여겼는데 어느새 온 동네 사람들이 쥐 이야기를 하게 된다. 며칠 사이에 지하실에서 다락까지, 계단마다 이웃집 쓰레기통에도 온통 쥐들로 가득하자 시민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시청 구서과(驅鼠科)에 전화했지만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명령을 받아야 조치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러던 중 기이한 병으로 수위 미셸이 죽음으로써 공포심은 커지고 심상치 않은 사태를 자각하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해하게 느꼈던 점은 서술자를 설정한 점이었다. 모호한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몰입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임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했다. 처음엔 보건 위생대를 조직하고 리외를 돕는 장 타루인가 했다. 이건 나중에 밝혀지는데 의사 리외였다. 즉 페스트의 최전선에서 일하면서 그의 시선으로 이 연대기를 써 나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리외는 수위의 시신을 격리시키고 서혜부 열병에 대해 물어보는 등 여러 의사들에게 조사해서 얻은 결과, 치명적인 병임을 인식하고 의사협회 회장인 리샤르에게 새로운 환자들의 격리를 요청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도청에서 조치를 취해야 할 거라는 답변만 돌아온다. 사건의 제보가 들어오면 자세히 검토하여 신속하게 대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책임 떠넘기기식의 늑장 대응하는 동안에 상황은 심각해진다. 비슷한 사례로 코로나 바이러스 발원지라는 우한에서 30대 의사가 그 위험성을 알렸다는 이유로 추궁을 받았다는 기사가 생각났다.(나중에 사과했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언제나 큰일이 일어나는 전조는 별일 아니라는 가벼운 마음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만드는 것 같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서야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전개방식에서 특이한 점은 타루의 수첩에 묘사 된 이야기가 이 연대기를 완성하는데 꽤 많은 부분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보기 흉한 도시에 와서 나무가 없는 시내라든가 볼품없는 집 부조리한 도시 구획 등 전차나 거리에서 들었던 대화를 기록하는 등 별 의미는 없어 보이는 것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오랑시와 사람들의 분위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쥐 이야기에 심지어 의사 리외의 자세한 묘사까지... 아마도 오랑 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일까 궁금했다. 그 또한 페스트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고, 어느 날 리외를 찾아와서 이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 보건 위생대를 조직하고 선두에 서겠다고 제안한다.


  ‘페스트라는 갑작스런 재앙을 맞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태도와 반응은 참 다양하다. 우리가 맞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발 빠르게 대처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눈덩이처럼 확산되어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몇 명의 중심인물들의 태도와 반응을 볼 수 있는데 페스트에 맞서는 유형의 사람은 파늘루 신부와 신문기자 랑베르이고 이러한 부조리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인물로는 의사 리외를 비롯하여 타루와 시청 서기 그랑을 들 수 있다. 그는 페스트 환자를 이송하거나 사망자용 차량을 운전하다가 통계 작업까지 하겠다고 나서며 위생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된다. 또 어느 팀에도 끼지 않고 페스트라는 상황을 즐기는 듯한 코타르가 있다. 재앙의 와중에 불의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심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어느 사회에나 있긴 마련인.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가 찾아온 것은 성찰할 때가 왔기 때문이라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의 힘을 강조한다.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이른바, ‘집단적 처벌을 하기 위해서 재앙이 찾아오는 거라고 말했지만 오통 판사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로 고통 받다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본 후에는 심경의 변화가 온다. 결국 신앙의 힘으로는 페스트를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함께 이겨내자고 설교하며 남아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부르짖지만 그는 페스트에 걸려 치료도 거부한 채 죽어간다.

랑베르는 아랍인의 보건 상태를 취재하러 왔다가 오랑시에 갇히게 된다. 파리에 아내를 두고 왔기에 랑베르는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다가 마음의 변화가 오고 리외를 도와 보건 위생대에 합류하게 된다. 사랑과 행복을 우선시하고 이방일 뿐인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리외를 향해 추상운운하던 랑베르가 바뀐 것이다. 페스트의 공포로 뒤덮인 오랑 시민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보고 자각을 한 것이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뒤늦게라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분명 희망적인 일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한 지 벌써 서너 달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평범한 시민으로써 단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건강유지에 힘쓰고 어서 물러가기를 바라면 될 뿐이다. 이런 상황만으로도 정말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다. 하루빨리 마스크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는 희망만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의료의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돌보거나 환자가 되어 격리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무겁다. 여기서 의사라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리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처럼 첨단 장비와 시스템이 있는 병원도 아니고 왕진을 하면서 페스트와 투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4월에 시작된 페스트는 이듬해 1월이 되어서 막을 내리고 오랑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로 환호하는데 정작 리외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자신의 왼팔처럼 도와주던 타루가 페스트에 걸려 죽음을 맞는다. 그것도 페스트가 막을 내린 마당에. 또 아내의 부고를 받았는데 이미 일주일 전의 일이라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환자를 돌보느라 집에도 가지 못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에 대한 기사가 겹치는 부분이다. 진단을 하고 선고를 내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격리 명령을 할 뿐 의사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결국은 승리했지만 안타까운 반쪽의 승리였다.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그것들을 어느 행복한 도시에서 죽으라고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P410)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은 언젠가 페스트가 다시 찾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페스트는 단지 전염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잊을 만하면 한번 씩 터져 경악케 하는 온갖 사회악 등을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몇 달 째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마치 사망자 수를 카운트 하듯이 쏟아내는 뉴스를 보며 놀라는 일상이 되었다. 정말 이게 현실일까 싶을 만큼. 그러면서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는 이런 현상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무뎌지는 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집단의 경우만이 아니라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흉악한 페스트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들렸다.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더구나 초판본으로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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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마르크 로제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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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소재로 쓰인 이야기는 언제나 따뜻함과 희망을 느끼게 한다. 저자 마르크 로제는 지금까지 약 27년 동안 대중 낭독가로서 프랑스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 등을 순회하며 낭독회를 열었으며 직업적인 낭독가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책과 함께하는 프랑스 일주등 여행기를 다수 썼고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도 책을 읽어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낭독가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소외계층에 속할 수 있는 병약한 노인들이 사는 수레국화라는 요양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도. 오랫동안 낭독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책과 사람을 매개로 소통의 장을 열어주는 그레구아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낭독자로서의 그레구아르와 소통하고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흔한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엉뚱 발랄한 사건과 문체를 도입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속 화자는 이제 열여덟 살 청년인 그레구아르다. ‘바칼로레아에 통과하지 못한 그레구아르가 나무를 좋아한다고 하니, 진로상담 선생님은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서 산림청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어처구니가 없어 한다. 엄마의 조언으로 용케 시청 녹지과에 일자리를 얻게 되는데 금세 넌더리가 나서 나오게 된다. 이번에는 시청 사회복지과 부책임자인 테롱 씨를 알고 있는 엄마의 백으로 수레국화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하는 잡역꾼 취급을 하며 스스로도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는 중 주방에 사람이 비어 대신 그 자리를 메우러 갔다가 28호실의 피키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낭독가가 되는데.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였기 때문에,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말에 더욱 공감했고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해 하며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할아버지와 비좁은 방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고 그레구아르는 놀라는 눈치다. 삼천 권의 책으로 빼곡한데도 갖고 오지 못한 이만 칠천 권의 책 때문에 환상통을 느낀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지만, 한 권의 책도 없는 그레구아르가 그의 뼈아픈 통증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레구아르를 할아버지 방으로 가도록 끌어당기는 어떤 힘을 스스로도 느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방으로 천장까지 빼곡한 책만 보아도 배부른 듯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그레구아르는 의식적으로 만지거나 펼쳐보지도 않고 조심에 조심을 한다. 할아버지도 책 얘기는 뻥긋도 하지 않는데, 서로 기 싸움이라도 벌이는 듯 긴장되는 분위기와 뻔한 속셈에 웃음이 났다. ‘바칼로레아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런 눈치도 없는 그레구아르는 아니다.

 

피키에 씨,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 하루는 헛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제가 피키에 씨를 알게 된 이후로 책 읽으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걸요.”

……” (P24)

 

  학창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지만 그레구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책에 매료되어 간다. 하지만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시건방진 목소리로 이렇게 묻자, 할아버지는 한참 만에 이제는 손이 떨리고 눈에 녹내장이 와서 읽을 수 없고 남은 건 음악뿐이라고 한다. 순간 너무 당황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레구아르다. 이틀 후 할아버지에게 사과를 하며 한 시간씩 책을 읽어드리겠다고 제안을 한다. 자기도 주방에서 일을 한 시간 덜 할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 아니냐고. 원장 마송 부인은 가뜩이나 직원도 모자라는 판에 이건 특혜라며 마지못해 허락하는데... 이리하여 그레구아르는 책을 읽어주는 낭독가가 된다. 무엇보다도 주방 일에서 한 시간 동안 해방이 된다는 기쁨이 더 크다.

 

  드디어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 한 날이 되어 할아버지 앞에 앉았는데 중압감이 밀려오고 중학교 수업시간에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할아버지가 내민 책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오랜만에 책을 든 그레구아르는 처음에 버벅거리지만 이내 주인공에게 동화된다. 두려움, 불안, 부끄러움 등을 느끼면서도 결국은 감동을 받고 금세 한 시간이 지났음을 알고 스스로 대견함을 느낀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여름 휴가철이 되면서 갑작스레 세탁장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온갖 냄새나는 옷가지를 수거하고 세탁해서 가져다주는 일이 지옥같이 느껴질 만큼 힘든데, 세탁장 책임자 다니엘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면서도 잘도 참는다. 책을 읽어주는 것을 질투를 하는지 먹물 선생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그렇게 월급을 받는다고 분풀이를 한다. 젊은 그레구아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하면서 뛰쳐나가지 않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잘도 참아 냈다.

 

책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조금씩 풀린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 가하는 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수레국화와 나와 다니 사이에 얽힌 문제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P44~45)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설령 그저 심심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야.”(P53)

 

  다니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를 치유 받은 듯해서 다행이었다. 그레구아르는 세탁장의 악몽을 할아버지에게 모두 털어놓고 할아버지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놀라웠다. 심했던 파킨슨병의 증상이 어느새 눈에 띌 정도로 좋아졌다. 그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레구아르는 이전과 달리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준다는 소문을 듣고 할머니들도 그레구아르에게 부탁을 해 온다. 이제는 오전에는 주방 일을 하고 오후에게 홀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된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 기대감을 갖고 시선을 집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실의 요양원의 풍경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무기력한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라,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고 죽음이 그렇게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할아버지는 그레구아르를 단순한 낭독자로 놔두지 않는다. 마치 운동선수를 가르치는 코치처럼 조언을 한다. 공유하고 싶은 좋은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 장르나 주제 등을 정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절하게 요소를 배합시키도록 코치를 한다. 또 낭독회가 끝나면 청중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철저히 모니터링을 한다. 그레구아르의 낭독 실력은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청중들은 행복해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똑똑한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운동선수처럼 근육을 키워야 한다며 운하에서 수영을 하면서 호흡을 늘리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에 수영이라니.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레구아르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이다. 얼마 남지 않은 셀레스틴 모렐 부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도 본다. 처음 겪는 슬픔과 고통속에서도 책의 마지막 구절까지 다 들려줄 수 있도록 살아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어주는 것 밖에는 없다. 요양원이 아니었다면 그레구아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죽음도 배운다. 그러면서 그레구아르의 정신세계도 조금은 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면 할아버지의 기상천외한 생각으로 화장실 변기를 이용해서 방송을 하여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이 낭독을 듣게 한 것은 정말 엉뚱했다. 불법이라며 길길이 뛰는 마송부인과 대적하면서도 어떻게든 수레국화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할아버지의 노력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며 행복해 한다.

 

나는 얼마 못 가 죽을 거야.”

……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부탁해놨다. 그리고 기왕 하는 거,

내 책들과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달라고 했어.”

…… 나는 어째서 이 감옥 같은 곳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기 전에 내 집에서 생을 끝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웠던 건지. 이제 난 준비가 되어 있어.”(P217~218)

 

  책방 할아버지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려는 것 같다.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던 책을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니... 어쩌면 분신이었으니 더욱 함께 가고 싶었을까, 마음이 숙연해졌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 부탁은 퐁트브로 수도원에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을 찾아가 장 주네의 장미의 기적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25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으로 걸어서 열흘이나 걸리는 곳이다. 그레구아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미션을 완수 할 것인가. 엉뚱한 부탁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기꺼이 이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그레구아르의 마음은 할아버지와 헤어진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다.

……

  기드 모파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와 작품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던 그레구아르가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었지만 나중에는 수레국화 요양원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낭독자가 된다. 할아버지의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마지막 부탁이 처음엔 의아했었다. 조각상에게 책을 읽어주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 주네는 한때 감옥이기도 했던 그 수도원에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빛나는 문장들을 숭배했기 때문에 그 장소를 찾아가고 거기서 보았던 아름다운 조각상과의 조우 등 젊은 날의 감동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애 마지막 여정을 돌아보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비록 직접 가지 못하지만 그레구아르와의 공유를 통해서 교감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레구아르 혼자서 갔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발이 되고 마음속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과 가르침으로 가득 찼으니까. 생소했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것도 좋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장 주네가 궁금해졌다. 책과 사람을 공유하는 이야기는 미지의 또 다른 작가와 닿을 수 있도록 건너가는 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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