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살고 죽고 - 치열하고도 즐거운 번역 라이프, 개정판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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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뜻이 있어 번역가들이 쓴 책을 읽어나가는 중이다. 번역가라는 직업에 막연한 꿈을 꾸게 된 건 2016년 여름이었고 벌써 몇 해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한 권의 책을 썼고 올해는 4개월 과정의 번역 수업 클래스를 졸업했다. 나이 들어도 정년이 없고 혼자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게 최적의 직업이라는 점 등 번역가의 장점에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부풀곤 했다. 그런데 번역가들이 쓴 책을 읽으면 상상한 것처럼 멋지기만 한 직업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살짝 두려운 마음 까지 생긴다. 일반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하며 휴일도 없이 여행도 거의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삶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우선은 실력을 쌓는 게 먼저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벌써 빠져나가려는 핑계를 앞세우는 것 같다.

 



3년 전에 권남희 님의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이 책도 정말 재미있다. 번역가 인생 20년을 돌아보며 정리하여 2011년에 출간한 것을 다시 엮은 책이다. 좀 더 상세한 작가의 삶을 알게 되었다. 싱글맘이 되어 딸을 키우며 얼마나 치열하게 번역을 하며 살아왔는지. 하지만 자신은 번역을 취미처럼 즐긴다고 했다. 맞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지만 특히 번역일은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힘든 일일 것 같다. 번역 수업에서 강사님은 번역가의 수입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에 절실하게 공감하였다. 첫 번역을 하고 재번역을 하고 교정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외국어 실력도 중요 하지만 국어 실력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설이 길었다.

 



자신의 번역 인생의 8할은 운발에 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무라카미 류가 슬슬 독자들에게 알려지며 젊은 일본 문학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침투하기 시작할 무렵에 번역을 시작했다 한다. 친구의 상사의 지인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출판사를 소개받고 번역 인생이 시작된다. 열심히 번역한 책이 처음엔 다른 역자 이름으로 실리거나 악덕 출판사에 번역료를 떼이는 등의 베테랑 번역가라면 누구나 겪었을 난감했던 에피소드도 들어있다. 9년 만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딸을 키우며 번역일을 해서 집도 사고 베테랑 번역가로 자리매김하는 찡하고도 뭉클한 스토리를 얼마나 담담하고 재미있게 풀어냈는지. 얼마나 번역에 진심인지, 그 치열한 삶의 이야기에 금세 몰입하며 읽었다.

 



권남희 님이 번역한 몇 권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츠바키 문구점, 달팽이 식당등 몇 권 안 되지만 공통점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일본 소설 하면 권남희 님이 떠오를 정도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도움받을 이야기가 가득하다. 처음부터 번역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지만 번역을 하게 되면서는 그 일을 즐겼다. 8할이 운발이라는 얘기가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마치 이 운발이 열정적인 태도가 끌어당긴 시크릿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일이 끊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때도 있었지만 10년이 지나면서는 일감이 꾸준히 들어오고 인지도도 높아지면서 수입이 늘어났다고 한다. 30년 넘도록 번역한 작품에 대한 애정, 편집자와의 관계, 번역 노하우 깨알 팁, 번역료 수입은 얼마인지 등 번역가 지망생들이 궁금해할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베테랑 번역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건 아니었다. 번역하면서 자신이 실수했던 에피소드를 반성하며 들려주는 조언은 번역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꿀팁과 삶의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끈기도 없고 싫증을 잘 내서 무슨 일이든 작심삼일을 되풀이했지만, 번역은 연애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하고 있단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를 즐겼고 소설가를 꿈꿀 만큼 문학을 좋아한 덕분이 아닐까. 번역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삶에 대한 절실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읽는 내내 부러운 마음과 함께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나는 이제 시작이고 언제 이룰지 모르니까. 그럼에도 한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좀 더 즐겨 보기로 했다. 번역가의 꿈을 이룰지 어떨지 모르지만, 시험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도전일 테니. 내게 커다란 격려와 응원이 되었던 말들을 몇 가지 소개하면서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내게 이란 거의 취미생활에 가깝다. 일에 쫓기며 일의 노예처럼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일하는 자체가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다른 짓을 하고 놀다가도 바로 노트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어도 종종 슬럼프는 찾아온다. 사춘기 되돌이 현상인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뭐 하나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인 것이, 그러다가도 새로운 작업이 들어오면 언제 슬럼프였느냐는 듯 밤샘도 불사하는 열정이 팡팡 솟는다.’(P115)

 


번역하기 쉽고 재미있는 책만 선호하다 보면, 달콤한 초콜릿과 사탕만 좋아하다 치과 가는 아이 꼴이 날지도 모른다. 이건 내 힘으로 절대 무리일세, 싶은 작품만 아니라면 다양한 작품을 매끈하게 소화해내는 것이 능력이다.’(P151)

 


몇 번 성의 없이 교정보고 넘겼더니 일 끊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동안 쌓아온 인지도고 경력이고 다 소용없었다. 번역의 세계는 실력, 이름, 학벌, 그중에 제일은 실력인 곳이다.’(P159)

 


일이 없을 때는 무조건 읽고, 쓰고, 공부하기, 아무 생각 없이 읽은 책들, 긁적거린 글들이 쌓여서 분명 다음 번역을 반짝거리게 할 것이다. 안다. 조급함과 초조함에 여유롭게 활자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그렇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드문드문 들어오던 일마저 떨어질지 모른다.’(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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