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필사 문장 30 ㅣ 좋은 습관 시리즈 34
김선영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3년 11월
평점 :
오랜만에 출판사 대표님이 신간을 보내주셨다. 제목을 대표님이 지으셨나. 제목만 봐도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내 생각만이 아니고 여러 블친이 읽고 싶은 책이라고 했다. 읽어보니 제목만 잘 지은 게 아니었다.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뽑아 올린 주옥같은 문장을 필사하며 보낸 시간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만나면 필사하고 글쓰기에 도움을 받곤 했는데, 글쓰기 코치라는 저자 김선영은 그야말로 ‘필사꾼’이었다. 바인더 노트는 물론이고 필기감을 올려주는 만년필, 날짜를 기록하는 도장에 문진까지!(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5분 동안 필사를 하고 날짜 도장을 찍었을 때 저자가 느끼는 뿌듯함이 내게도 확 전해져 왔다. 아, 그리고 나도 좀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은 세 가지 주제로 되어 있다. 1장 흔들리지 않는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법, 2장 더 다채롭게 표현하는 법, 3장 인간미 넘치는 ‘쓰는 사람’이 되는 법으로 30개의 필사 문장에 작가의 경험과 감상을 담았다. 작가는 서두에서 필사가 어떻게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지, 필사할 책을 고르는 방법, 필사 도구를 갖추고 필사 루틴을 만드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유용한 팁을 알려준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듯이 시작은 미미하나 성공을 향해 한걸음 씩 나아가는 일이다. 필사는 바쁜 일상에서 ‘숨을 고르며 의도적으로 찍는 쉼표’라고 말한다. 필사가 습관이 되면 글쓰기 소재도 마를 날이 없다고. 정말이지 공감한 부분이었다. 몇십 년 전에 노트에 적어둔 문장을 내 책을 쓰면서 활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흔히 책을 속도감 있게 읽고 싶은 이라면 괜한 시간 낭비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는 하루 5분 길어도 10분을 넘기지 않아야 매일의 즐거운 루틴으로 만들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필사 문장을 접하며 내가 읽었던 책이 나와서 반가웠고 아직 접하지 않은 책은 한 권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리뷰는 내게 깊은 공감을 주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쓰려 한다.
어떤 일을 해야지 결심하지만, 매번 관성의 법칙에 휘말려 작심삼일에 그칠 때가 많다. 1장에서는 꾸준히 글쓰기를 하려면 갖추어야 할 것을 알려준다. 자신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등 자기검열에 빠지다 보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치고 만다. 작가는 일단 뻔뻔해지라고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면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일단 써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p34,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p166)
이 문장을 접하고 잠시 생각해본다. 난 뻔뻔한 인간인가? 그렇지 않다. 그저 글쓰기가 좋아서 계속 쓰다 보니 책을 쓸 기회도 생겼다. ‘뻔뻔함’을 들이대고 있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는 말에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든다. 이보다 더 큰 응원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일단 시작하자.
이 밖에도 산책하며 글을 얻는 법, 책에 대해 자주 말하기, 글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는 법,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을 써야 하는 이유 등 공감할 법한 이야기가 많았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어 공부 목적으로 뉴스기사 번역 포스팅을 365일 빠뜨리지 않고 수행한 적이 있다. 그 후 건강 문제가 생겨서 휴식모드를 취하다가 이전의 건강을 회복했지만, 다시 그 열정적인 공부모드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글은 쓰고 있어야 계속 써지듯 공부도 하고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서 공부 얘기든 무엇이든 매일 글쓰기를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작가가 뽑은 필사 문장과 얘기를 읽다 보면 응원과 격려를 얻고 식었던 열정까지 되살아나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어느 정도 꾸준히 쓰는 글쓰기 루틴이 생겼다면 이제 좀 더 큰 욕심을 부려도 된다. 글이 교훈적이기만 하다면 감동은 있겠지만 재미는 좀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다가 “어쩜, 이건 내 얘기 아냐?” 하며 무릎을 치며 공감할 수 있다면 더욱더 독서 효과가 클 것이다. 2장에서는 ‘나의 흑역사 쓰기부터 시작하여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기, 묘사 잘하는 법 등 틀에서 벗어나 쓰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그중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서 필사한 문장은 살아있는 듯 눈앞에 그려졌다. 그건 문장에 ‘동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문장에 동사를 사용하지 않으면 밋밋하고 죽은 문장이 된단다. 저자의 비유처럼 동사를 제거하고 읽어보니 생생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생명처럼 활발하게 느껴지는 역동성 있는 문장을 쓰려면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관찰 또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
글쓰기가 무르익으면 이제는 ‘왜 글을 쓰는가?’ 하는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소설가, 자기계발 등 실용서를 쓰는 작가마다 약간 다른 면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글이든 작가의 경험이나 생각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3장 인간미 넘치는 ‘쓰는 사람’이 되는 법에서는 작가의 위치나 역할에 있어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문장 예를 들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고, 아무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p232, 박웅현, 『여덟 단어』)
언어 유희 같기도 한 이 문장은 관찰과 관심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듯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물에서 시구를 뽑아내는 시인들의 관찰력에 놀라본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서 비로소 ‘꽃’이 되고 의미를 찾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를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p236)이라는 말을 명심하자.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도 볼 수 있고 그것을 글로 옮길 수 있다. 이밖에도 잘 살아야 하고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글은 흘러넘친다는 말도 좋았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충실하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이상 몇 가지만 언급했어도 필사의 장점과 중요성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왠지 읽기만 해도 글쓰기 실력이 쑥쑥 오를 것 같은 희망으로 설레지 않는가. 글쓰기 습관을 갖고 싶지만, 도대체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나 꾸준히 쓰고 싶은데 글감이 없어 막힌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 그냥 쓰고 쓰다 보면 늘게 되어 있는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필사는 글쓰기의 시작이다.
**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