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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은유 지음 / 메멘토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달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이어 세 권째 읽는 은유 작가의 책이다. 이 책이 나온 지 꽤 되었는데 독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회자 될 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역시나 읽으면서 은유 작가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책도 정말 많이 읽었구나, 감탄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직업적인 글쓰기를 했다는데 그런 시간이 축적된 것 같았다. ‘최전선’이라는 단어가 왠지 비장하면서도 멋지게 느껴졌는데, 연구공동체의 글쓰기 강좌명을 제목으로 쓴 거였다. 어떤 목적에 갇히지 않고 자기 삶을 자기 시대 안에서 읽어내고 사유하고 시도하는 ‘삶의 방편이자 기예’로서 학인들과 함께 했던 글쓰기 수업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글쓰기 주제는, PART1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PART2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PART3 사유 연마하기 PART4 추상에서 구체로 PART5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부록에는 학인들의 글 세 편이 들어있다. 어떤 주제든 글쓰기 수업에서 다룬 내용이 자세히 들어있어서 글쓰기 수업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구나,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무언가 끄적이는 걸 좋아하다 독학으로 글쓰기를 해온 나로서는 참여자인 학인들과 만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열띤 분위기가 무척 부럽게 느껴졌다.
어느 때 보다 글쓰기의 효용이 중시되고 있다. 책을 좋아하거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편으로써 글쓰기를 하게 되는 등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사람들은 글을 쓰는 것일까. 은유 작가는 스무 살 무렵 명동 성당을 지나다 본 일을 신문에 투고하고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 같다. 은유 작가는 사회문제가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글은 생생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의 일처럼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과정에서 현재 은유 작가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서문에서 ‘중심 잡기’, ‘풀어 내기’, ‘물러 앉기’, ‘지켜 내기’, ‘발명 하기’, ‘감응 하기’, ‘함께 하기’에는 은유 작가의 글쓰는 삶의 여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를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았던 이유는 순전히 ‘감응력’ 덕분이라고 했다.
연애 문제로 마음 졸이는 친구에 감응하고,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에게,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주머니의 거친 손에 감응하고 그때마다 글로 쓰고 나면 신체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희진은 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하고 나면 그 전후가 달라야 한다고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책을 읽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한 희열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은유 작가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마다 가진 관심사를 잘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관심의 분야는 다를지라도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철학과 삶의 태도를 알아가면서 자신의 글쓰기를 성장시키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학인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 이야기를 통해서 공감한 부분이 많았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어가며 읽었다. 글쓰기는 자기를 치유하는 힘은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포용하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 예를 들자면, 글쓰기 과제를 학인들과 함께 합평하는 시간에 여성의 사적인 경험, 어쩌면 시시콜콜한 말들이 누구에게는 수다인지 토론인지 알쏭달쏭할 수 있다는 생각에 20대 남학생 학인에게 물었더니, 엄마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단다. 은유는 이것을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신체 변용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관점 하나 바꾸기가 어려운데 이런 시간을 통해 관성의 사고와 법칙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을 촉구하는 강력한 긴장을 합평 시간에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여럿이 읽기’로 니체의 책읽기를 소개하는 부분도 좋았다. 역시나 어려운 책은 함께 읽기를 통해서 여러 해석을 들을 수 있고 완독의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나 또한 20대 시절에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 접었던 적이 있어서 반가웠다. ‘고통은 해석이다’(p72)라고 했다는 니체의 인용 글이 환하게 해석되는 전율의 기쁨을 느꼈다! 마음공부에서 자주 들었던 얘기와 아주 비슷하게 다가왔다. 마음은 실체가 없는데 자신의 어지러운 관념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해석하면서 고통을 키운다는 말이다. 그동안의 독서 내공이 생긴 덕분일까. 얼마 전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사 두었으니 조만간 들추어봐야겠다.
은유 작가는 이렇게도 시를 열심히 읽었구나, 감탄했다. 학인과 함께 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시집을 읽고 낭송하고 토론하는 얘기도 있어서 반가웠다. 참으로 알찬 글쓰기 수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학인들의 글쓰기 과제를 일일이 읽고 첨삭까지 해서 리뷰했다니. 그렇게 성실하고 사명감을 갖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으니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되었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아서 한 일이었겠다. 좋은 글이 나오려면, 타인에게 비친 나라는 ‘자아의 환영’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감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또 좋은 글은 울림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글이며,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김수영의 시 「애정지둔(愛情遲鈍)」에 나오는 대로 “생활무한(生活無限)”이고 글쓰기도 무한이다.’(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