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년 전 겨울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오래전 내가 속해 있던 상록독서회20051월 선정도서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보내야 했는데, 보냈는지 어쨌는지 기록해둔 것도 없고, 어쩌다 보니 독서회와 연락이 끊어지고 늘 아쉬운 마음이었다. 십수 년 넘게 활동했던 내 정신의 의지처였던 독서회였다. 작년 나의 첫 책을 쓰는 과정에서 독서회의 추억이 되살아났고 언젠가 꼭 다시 읽어보리라 했었다. 읽으면서 희미해진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과연 책 제목처럼 화자인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자투리 시간에 읽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감동과 웃음이 내 안으로 밀려왔다.

 



아빠와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섯 살인 작은 나무’(본래의 고향인 테네시 주에 머무른 그룹의 자손에 속한다고 함)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속 오두막에서 살게 된다. 여러 마리의 개들과 산속의 새들과 온갖 동물들, 자연이 소년의 친구다. 체로키 인디언인 조상의 전통을 이어받아 위스키를 제조하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연이 주는 풍족한 혜택을 아낌없이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너무 어려서인지 부모를 잃은 슬픔 같은 건 엿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어른스러움 마저 느껴졌다. 그저 눈뜨면 자연과 접하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삶, 대지의 큰 사랑을 받고 살아서였을까.

 



몇 되지 않는 산속에 사는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개척촌에서 찾아온 정치인이나 기독교인 등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하나의 다른 사회를 배워 간다. 자연의 풍성한 혜택을 누리면서도 자연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동물을 사냥하더라도 모조리 다 잡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 튼튼한 종을 남겨 두어 대를 이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자연과 교감하는 법, 고통을 참는 법 등 인디언의 정신을 할아버지께 배운다. 그리고 이웃 어른들의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이치도 알아간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다. 살아갈 날이 길지 않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서 작은 나무는 어렸지만 어떤 애틋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워낙 영특한 아이였으니.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낯선 여자의 방문은 모두를 슬픔에 빠뜨린다. 교육을 받아야 할 어린이가 자격도 없는 늙은 인디언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누군가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작은 나무는 고아원에 들어갔지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다. 소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받은 고통 따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그후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 수 있었던 기간은 고작 2년이었다. 작가 자신의 자서전 격으로 볼 수 있는 이 책은 백인 미국 사회의 잔혹성과 위선을 보여주고 체로키 인디언 사이에서 전해지는 가르침들,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말해주고 싶은 가르침이 녹아들어 있다. 1977년 초판이 간행된 이후 뉴욕타임즈를 비롯하여 산악지방의 주간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작은 고전으로 불리고 있다. 인디언 소년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가 감수성 넘치는 필체로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언뜻 생각으로는 우리가 산을 짓밟으면서 앞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산이 손을 벌려 온몸으로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자국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휘파람소리와 숨소리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P15)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P25)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P96)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P101)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이렇게 정리해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했어야 했던 온갖 일들과…… 하지 않고 내버려둔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가을은 회상의 시간이며…… 또한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일들을 했기를 바라고…… 하지 못한 말들을 말했기를 바란다……’(P261)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 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할아버지와 나는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면서 산꼭대기에 앉아있다. 햇빛을 받은 얼음이 찬란한 빛을 뿜으며 반짝거리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산이 깨어나고 있어.”

그러면 나는 그 창가에 서서 이렇게 대답한다.

네 할아버지, 산이 깨어나고 있어요.”(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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