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은 번역 시험을 보듯 원문의 한 문장에 해당하는 우리글한 문장을 옮겨내는 데 집중해서 정확하고 꼼꼼하게 번역했는데, 합격한 번역가들의 결과물은 마치 처음부터 우리말로 쓴 것처럼 원문과는 조금 달랐다는 점이다. 여기서 원문과 달랐다는 말은 어떻게들으면 굉장히 심각한 상황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 P76
한 단어, 한 구문을 모두 꼼꼼하게 옮겨내야만 출판사에서 점수를 매기듯 비교하고 채점해서 역자를 선택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샘플을 볼 때는 원문과 일대일로 비교하며 채점을 하는 게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P77
하루에 여섯 페이지를 번역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실컷 하고 나니까 겨우 한 장이 끝났을 때의 기분이란… 아마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막함에다 계약이라는 약속이 주는 책임감의 무게가 더해졌던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포기할까?‘, ‘여기서 관둔다고 연락할까?‘ 고백하건대, 처음 2주동안 날마다 이런 고민에 빠져서 이도 저도 아닌 시간만 낭비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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