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 - 게르망트 쪽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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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망트로 이사를 온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져서 공기가 좋은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프랑수아즈와 재봉사 쥐피앵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전에 큰 길가의 집에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의 표시를 받으며 살았는데, 이곳은 너무 조용해서 지나가는 사람이 부르는 노랫소리마저 들리는 집이다. 프랑수아즈가 눈물을 흘리며 슬러하는 것을 비웃던 내가, 이제는 슬픔을 느꼈는데 반대로 프랑수아즈는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프랑수아즈가 이웃집에 대한 호기심은 식지 않고 관찰하면서 전달하기 바쁘다.

 



 이웃에 살고 있는 게르망트 공작 부인에 대한 이야기, 그집의 하인 집사 이야기가 세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낯선 곳에 이사를 오면 정이 들기까지는 호기심이 들기 마련이니까. 게르망트 성이 공작 부인의 소유라는 등. 부엌 창문을 통해 엿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그집 안 식당이나 가구들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게르망트 공작과 부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라 베르마를 처음 본 이후, 다시 보러 가게 된다.

 



 극장에 [페드르]를 보러 간 화자는 게르망트 공작과 게르망트 공작부인 등 극장에 온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묘사해 놓는다. (귀족과 하류층들의 좌석을 칸막이를 쳐서 구분한 것 같다. 그들에게 괴물이라고 부른 걸 보아 멸시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다) 라 베르마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질베르트를 만났을때도 그랬다는 것을 상기한다. 그리고 그녀를 찬미하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연기에 담긴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생각의 폭을 넓히며 애썼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고전극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유명해질 것이라며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을 지켜보면서 사랑에 대한 상념과 추억을 달랜다. 어떻게든 그녀를 쫓아가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 때는 실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렇게 만나게 되는 걸 귀찮아한다는 사실을 프랑수아즈가 눈치를 주는 바람에 알게 된다. 한편, 생루와 함께 어울리는 이야기도 길게 언급되고 있다. 파리에 있을 때와 달리 전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파리에 두곤 온 여러 일들이 떠올라 불안했고, 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걱정하고 슬퍼서 생루에게 의지하고 싶었던 화자는 생루를 보러 자주 병영에 갔다. 병영에서 연대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어린 시절 정원으로 여행을 한다.

 



‘(전략) 가장 깊은 잠의 지하 갱도로 우리를 내려가게 하면서, 몸을 덮고 있는 흙과 응회암을 그토록 완전하게 뒤집어, 근육이 잠기고 그 가지를 비틀고 새로운 삶을 호흡하는 바로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정원을 되찾게 해준다. 이런 정원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여행을 하기보다 우리 마음속으로 깊이 내려가야 한다. 땅을 덮었던 것은 더이상 땅 위가 아니라 땅 아래에 있다. 죽은 도시를 방문하려면 여행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발굴해야 한다. 얼마나 덧없는 우연한 몇몇 인상들이 이런 유기체의 분해보다 더 정교한 정확성으로, 보다 가볍고 비물질적이며 현기증 아는 확실한 비상으로 우리를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145P)

 



 문장이 참 많이 와 닿았다. ‘여행을 하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깊이 내려가야한다는 것. 그리고 여행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발굴해야한다는 것. 점점 어린 시절의 시간은 희미해져 갈테니.

 



 로베르(생루)는 인기가 많았다. 생루의 친구와도 화자의 친구가 된다. 생루가 있는 병영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하는 등 병영 이야기도 길게 묘사된다. 생루의 길고 긴 군사 이론에 대한 연설이 이어지는데, 이 장면은 1917년 추가 집필된 것으로 전쟁에 대한 예감과 실제 일어난 현실을 비교하려고 썼다고 한다. 나폴레옹 전쟁과 관련있는 울름과 로디, 라이프치히 전투 등 많은 역사적 전투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전쟁터로 쓰였던 곳이 한번 만 전쟁터로 쓰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거라는 생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또한 과거에 좋은 전쟁터였다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현실에서도 보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오래전에 전쟁이 일어났던 곳에서 수십 년을 거듭하면서 되풀이고 되고 있으니 말이다.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문장이다. 14일이나 되도록 부인을 못 만난 일을 되새기면서 보고 싶다는 욕구에 휩싸이는데... 질베르트를 사랑했던 마음은 이제 깨끗이 사라진 것일까. 나이어린 화자의 마음을 빼앗았던 게르망트 부인은 어떤 모습일까, 사랑앓이를 하는 화자가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잊고 다른 사람에게서 또 그러한 감정을 느끼다니. 시간이 모든 것을 희미하게 해 준다는 것을 상기시키게 한다. 화자는 파리에서 어떤 소식이 없었는지 생루에게 확인하며 온통 게르망트 부인에게 마음이 향한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생루는 애인과의 불협화음으로 힘들어한다. 이런 중에서도 화자는 어떻게든 게르망트 부인을 만나고 궁리하다가 엘스티르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다는 욕망을 떠올린다.

 



 그런데.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절실한 마음이 와 닿았는지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에서 드디어 만나게 되는데... 상상 속의 사랑은 언제나 현실의 사랑을 이기지 못하는 법인가. 아무래도 그런 건 있겠지. 상상의 나래를 펼 때가 모든 건 아름다운 법이다. 실제로 마주한 게르망트 부인에게 실망을 하고 놀라고 나중엔 무관심하게 되었다. 화자가 품고 있던 환상이 깨진 것이다. , 많이 웃겼다. 그렇게 마음을 졸일 때는 언제고. 살롱에 초대된 유명 인사를 비롯하여 노르푸아 씨 등 친구인 블로크, 생루, 스완 부인까지 이야기는 날 새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작품 전반에 자주 언급되는 드레퓌스 사건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블로크는 노르푸아 씨에게 귀찮을 만큼 질문을 하며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 사건은 화자의 집사와 게르망트네 집사와 말다툼을 벌일 정도였다는 것으로 보아 민중에게까지 확산된 이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병환으로 게르망트에 오게 되었는데 그다지 병 치료에는 도움이 안 되었던 것일까. 편찮으신 할머니에 대한 화자의 걱정, 슬픔이 자주 보였다. 그러다가 아래의 문장을 만났다.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에 묶여 있으며,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496P)

 



 몸에 대한 통찰인가. 연세 드신 엄마를 만나고 와서인지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의 육체를 빌려 마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 문장 바로 뒤에는 이런 얘기도 있었다. ‘할머니의 관심이 늘 우리를 향하고 있었으므로, 할머니 자신은 스스로의 병을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 우리 부모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할머니의 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박사의 말을 듣고 눈물로 기쁨을 나누지만...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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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24 1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우 다시 시작하셨군요! 저도 읽어야 하는데~~ 신기하게 모나리자님 글을 보니 내용이 떠오르네요 😆

모나리자 2021-09-25 18:52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연휴 잘 보내셨죠?
주말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새파랑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