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 감는 새 연대기 3 - 새 잡이 사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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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 중 3권은 580여 쪽이나 되는 분량이다.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져서 기대감으로 읽다 보니 어느새 3권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목매다는 저택의 수수께끼에 대한 기사가 점점 표면으로 떠오르고, 가사하라 메이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는 편지글이 띄엄띄엄 배달된다.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고 고양이가 없어지고 어느 날 갑자기 구미코가 사라지면서 미궁에 빠졌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씩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고양이가 돌아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좋은 징조일까.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는 걸까. 구미코의 오빠 이름과 같은 와타야 노보루다. 가노 마르타와 가노 크레타는 이 무대에서 좀 비켜난 듯하다. 그리고 신주쿠 빌딩가에서 만난 적 있는 익명의 여인을 다시 만나고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오카다는, 무참하게 살해된 남편을 떠나보내고, 여섯 살 때부터 말을 잃은 아들 시나몬과 함께 사는 넛메그라는 여인과 연결이 되었다. 얼굴에 새겨진 푸른 멍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들과 연결된 상황이 구미코를 찾는데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일까. 그리고 맨 처음에 오카다를 잘 안다면서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던 여자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왜 그런 전화를 했을까. 이 전화는 구미코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읽어나갔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연속이었다. ‘얼굴 없는 남자’, 208호실, 잃어버린 야구방망이 등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면서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하나하나 풀리면서 모자이크 조각이 맞추어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여기엔 권력에 대한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려 했던 악마 같은 인간이 있었다. 하지만 악의 종말은 언젠가 끝을 보기 마련이다. 다 읽고 나서 앞서 쓴 리뷰를 읽어보았다. 역시나 인용했던 문장은 예사로 넘길 얘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환기하고자 인용해 본다.

 


아주 먼 어느 곳에 천박한 섬이 있어요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을 붙일 만한 섬이 아니죠 아주 천박하게 생긴 천박한 섬입니다 거기에는 천박한 모양의 야자나무가 있죠 그리고 그 야자나무는 천박한 냄새가 나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는 천박한 원숭이가 살고 있어서 그 천박한 냄새 나는 야자 열매를 즐겨 먹어요 그리고 천박한 똥을 싸죠 그 똥이 땅에 떨어져 토양도 천박해지고 그 토양에서 자라는 야자나무를 더욱 천박하게 하죠 그런 순환입니다 .”-2(P69)

 


오카다는 처음부터 뭔가 알고 있었나 보다. 살짝 예상은 했지만... 

다시 이 문장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면 뭔가를 분명하게 알 때까지 자기 눈으로 보는 훈련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 시간을 들이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돼 무언가에 넉넉히 시간을 들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복수거든 .”-2(P352)

 


 삼촌이 조언해 준 이 말을 흘려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구미코와 이혼하라는 처가 식구들의 종용에도 굴하지 않고, 직접 구미코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지 않고는 응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버텼기에 진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아무런 의심없이 그들의 말을 곧이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진실은 묻히고 말았겠지. 여기에 더불어 작가는 마미야 중위의 입을 빌려 일본인이 만주에서 행한 일을 고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감추고 싶은 부분을 말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란 작가로서의 참다운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엔 하루키의 어떤 작품을 읽을까 벌써 부터 고민이다.

 


당신은 암흑 속에서 내 모습을 놓친 채, 그대로 앞을 지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언제나 그런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내게 큰 힘을 주기도 했어요. 적어도 내게 꿈을 꿀수 있는 힘은 남아 있었던 것이죠. 꿈을 꾸는 것은 오빠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무튼 당신이 전력을 다해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어요. 언젠가는 당신이 나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꼭 껴안아 내 더러움을 떨어내고, 나를 이곳에서 영원히 구해 내 줄지도 모른다고요. 저주를 풀고, 진정한 나를 봉인해 어디에도 가지 못하도록 해 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나는 그 출구 없는 싸늘한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불꽃을 어떻게든 피울 수 있었던 거예요. 또 나 자신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거예요.(P571~572)

 

 1년 반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구미코를 캄캄한 208호실에서 만난 후, 오카다는 구미코의 편지를 받는다. 어쩌면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지도 모른다. 결국 오카다는 구미코의 실종의 의미가 구조 요청이었음을 깨달은 것 같다. 어떻게 이걸 알게 됐을까. 기꺼이 우물 안 밑바닥에서 사유한 덕분이었을까. 아마도 구미코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 후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만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토록 찾던 고양이도 돌아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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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3 0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완독 하셨네요 즐거우셨을꺼 같아요^^ 3권이 좀 두꺼워 보이던데 역시 ㅋ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도 나왔던데 사야되나 고민중입니다ㅎㅎ
(하루키는 보면 언제나 반갑습니다~)

모나리자 2021-03-23 14:37   좋아요 1 | URL
네, 완독 뿌듯하네요.ㅎ
꽤 두꺼웠는데 그래도 재미가 있어서 수월하게 읽었어요.
새로 나온 책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고민 되죠.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scott 2021-03-23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 완독 추카!!

새로 번역된 태엽이 훨씬 좋더군요.
표지도 ^,^

모나리자 2021-03-23 14:36   좋아요 1 | URL
넵! 감사해요!ㅎ

새로 번역된 책이 또 있군요?
점점 좋아져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