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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로 먹고살기 - 국제회의 통번역사로 활약하는 국내파의 경험과 노하우 ㅣ 먹고살기 시리즈
박지영 지음 / 바른번역(왓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의 뛰어난 외국어 능력은 삶에 있어서 많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다양한 외국인 친구와 교제가 가능한 것은 물론 어디든 여행이 자유롭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외국어 능력으로 평생을 할 수 있는 업(業)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박지영은 영어를 무기로 국제회의 통번역사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순수 국내파 통역사이다. 통역사는 직업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은 그동안 있어왔던 굵직굵직한 ASEM 정상회담이나 국제회의 등 각국의 정상들이 초대되어 개최되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았던 적이 있다.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일이 되기까지는 어떤 계기가 필연적으로 있는 것 같다.
저자는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안정된 직장에 근무하던 경력이 있었다. 사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시대엔 치열한 경쟁을 제치고 공기업에 취업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다. 학창시절부터 영어를 좋아 했으며 대학원 시절 각종 영화제의 영어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던 그녀의 직장은 그 좋아하는 영어를 별로 사용하는 환경이 아니었다. 한번은 동남아권 국가에서 한국의 산재 제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오는 방문단의 통역을 위한 사람을 공모하는데, 응모는 하였으나 소속팀 상사의 허락이 없는 바람에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가슴에 품고 있던, 영화제에서 만난 롤모델 이었던 통역사를 떠올리고 그 꿈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어 사직을 결심한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은 부모와 가족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도 될 것이고. 소속된 안정감의 울타리를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가벼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결단을 하고 마음이 시키는 소리에 따르기로 한다. 그녀는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시작하며 꿈을 가시화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 책의 구성은 통역사라는 직업의 세계, 통역사가 되기 위한 준비 이를테면, 글로벌 에티켓이라든가 교육기관 등 각자의 상황에 맞는 준비 방법들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통번역대학원의 피 말리는 수업과정과 각종 통역 스터디 등을 리얼하게 알려준다. 혹독하게 훈련하고 공부하는 과정을 보니 어떤 공부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통역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흔히 ‘통역의 꽃’으로 부르는 동시통역(simultaneous interpretation)이 있고, 이외에도 순차 통역(consecutive interpretation), 위스퍼링 통역(whispering interpretation), 릴레이 통역(relay interpretation), 원격통역(tele- interpretation)d이 있다고 한다. 통역에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다니 놀랍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말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통역의 현장을 보니, 이 분야처럼 그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 또 있을까 싶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부름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니, 완벽한 준비정신과 자기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특히 목소리 관리는 물론이고 비롯한 건강관리는 기본이다.
내로라하는 국제 귀빈들을 바로 곁에서 수행하는 통역사들의 존재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매우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귀빈들이니 그들보다 더 존재감이 돋보여서는 안 된다고 하니 참 쉽고도 어려운 일 같다. 하나의 사례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역이었던 외교통상부 외무관은 뛰어난 미모의 통역관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상황에 외국 정상의 시선이 자꾸만 여성 통역사 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청와대 사진기자단의 불만을 샀다는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통역현장에서 통역사의 역할은 크지만, 그 존재감은 있는 듯 없는 듯한 통역이야말로 최상의 통역이라니 이처럼 아이러니한 말이 또 있을까.
또한 통역사의 기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사람이니까 대통령이든 누구든 회담자리에서 말실수가 있을 수 있다. 방문하는 정상들의 기사 자료나 몇 년 전의 자료까지 철저하게 파악하는 준비작업이 없다면 말실수 부분까지도 그대로 통역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긴장감 도는 현장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눈치와 센스는 기본이고, 순발력 또한 요구되는 직업임을 알 수 있다. 일의 특성상 보통의 직장에서 맛 볼 수 없는 긴장감, 짜릿함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월급에 위안을 삼고 살아간다. 한때는 꿈도 있었고 목표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다. 자신의 안에서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영어가 됐든 그 무엇이건 간에 자신이 좋아했고 그것을 무기로 해서 평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으며 행복한 인생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통역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외국어의 능력은 단기간에 연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뒤늦게 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 같다. 언어의 영역은 다른 분야보다 빨리 시작해야 원하는 시기에 성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 대학생들 아직 사회 초년생이면서 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한다면, 그 능력을 자신의 일로 삼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특정 언어를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 중 이런 직업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공부라고 생각한다. 모든 일과 직업에는 명암(明暗)이 있다고 하듯이 통역사의 일도 분명히 그렇다.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준다.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돌출되지 않게 그림자처럼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긴장감, 안도감 등 여러 감정을 느끼며 재미있게 읽었다.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고 있어서 더욱 실감나고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우뚝 서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원래부터 그랬을 것이라 짐작한다. 저 사람은 말을 잘 하니까, 태어난 배경이 좋으니까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지, 내가 감히 어떻게, 라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한 가지 독자들에게 응원이 되는 팁이 있다면. 저자 또한 학창 시절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고 발표를 시킬까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한다. 그러면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후천적인 부단한 노력이 더 큰 부분임을 알 수 있다. 학창시절 흔한 어학연수나, 유학경험이 없는 저자가 이렇게 해냈다면, 뜻을 품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준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뿌듯한 만족감과 기쁨이 행간에 가득하다. 통역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도 유용하지만, 점점 옅어지는 자신의 열정을 되살리는 동기부여도 충분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A genius cannot win over one who tries, and one who tries cannot win the one who enjoys)-9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