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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 번역을 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며 사는 날들
이상원 지음 / 황소자리 / 2020년 10월
평점 :
올해 들어 세 번째 읽게 된 번역가의 책이다. 지난 4월에 읽은 권남희 번역가의 에세이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는 30년 동안 일본문학 번역을 하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나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였다. 또 김고명 번역가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는 12년차 영어 번역가로서 버티게 해주었던 일상의 루틴이 된 좋은 습관 이야기다. 그에 비하면 이 책 저자는 20년차 번역가로서 번역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보다 내밀한 번역계의 실상을 알게 된 책이다. 1998년 출판번역을 시작하여 ≪성서 그리고 역사≫,≪홍위병≫,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출판했다.(맨 나중 책은 내가 읽어 본 책이어서 반가웠다. 시간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을 기록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세 권 저자의 공통점은 번역을 무척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는 것. 번역은 연애와 같다는 말에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여기서 담고 있는 이야기는 1부 번역을 하다 2부 번역을 가르치다 3부 번역을 공부하다 이다.
1. 번역을 하다
처음 시작하는 이야기의 제목이다. 번역 일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멋있는 일’과 ‘골 빠지는 일’ 사이의 어딘가
나도 번역에 대한 관심으로 원서 읽기를 하고 있어서 너무나도 공감되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펼치면 항상 새로운 단어가 보여서 주눅이 든다. 그래도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에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곤 한다.
통번역대학원 졸업생 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출판번역을 하고 공부하며 가르치고 있으니 저자 말대로 그런 행운이 없겠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역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편집자와의 관계, 힘들게 번역을 하고도 출판되지 못한 번역들, 번역으로 버는 수입, 초보 번역가 시절에 번역한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되면서 혹독한 평가는 저자가 뒤집어쓰게 된 아픔 등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외에도 번역하면서 자신이 바나나의 속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겉모습은 동양인이지만 머릿속 생각이나 성향은 백인이나 다름없는 이민 2,3세대를 비아냥거리며 바나나라고 부른단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역사나 지리 등 전통을 얼마나 안다고 자부할 수 없는 걸 보면. 그래서 번역을 하다 보면 ‘그럼 우리는?’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눈과 외부로부터의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남을 통해서 즉 번역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은 번역에서 벗어날 그 날을 꿈꾼다고 했다. 매일같이 번역을 하고 번역 걱정을 했다고 한다. 언제나 마감일이 떡 버티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도 끝없이 번역에 매달리는 것은 책 속에서 만나는 여러 세상이 재미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저자나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이고 공감을 위해 만사 제치고 매달리는 것, 상대가 던진 한 마디의 속뜻을 추측하며 고민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애와 다르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2. 번역을 가르치다
번역을 가르치는 이야기는 강의실 풍경을 상상할 수 있어서 실감이 났다. 과제를 내주면 학생들은 서로 그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번역을 배워나간다. 번역을 직접 해 보는 과정에서 학생들마다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접하면서 ‘번역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번역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것, 해석 연습을 넘어서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번역은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번역문이 원문이라는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 나는 평소에 원서 읽기와 뉴스 기사 해석을 하면서 번역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문학작품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본과 대조해 보면 원문과 번역문이 많이 다른 걸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래의 문장을 만나면서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문화와 정서 차이에 따라 대체할 수 있는 언어 차이의 한계도 있지 않나 수긍하게 된다.
이후 수업이 진행되고 직접 번역을 해보거나 동료들의 번역을 읽으면서 차츰 깨달아 간다. 서로 다른 두 언어, 예를 들어 영어에서 한국어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원문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번역문 독자들은 일일이 원문을 찾아 대조하며 읽을 정성이나 능력이 업으면 번역문만으로 소통하기 원한다는 점을.(P101)
3. 번역을 공부하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가 번역 공부의 천국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직역을 옹호하는 분위기에 대한 생각, 채식주의자에 대한 번역 소동, 영상 번역을 시작으로 한 공짜 번역이 나오게 된 배경 등 번역가의 지위, 인공지능이 번역 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짜 번역의 첫 신호탄은 2010년을 전후로 등장한 팬들의 열정 때문이었다. 외화나 외국 드라마를 번역하고 자막을 입혀 수요자들이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번역이 골 빠지는 일이라고 강조하는 저자 입장에서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 없는데 팬심의 열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나 싶어 웃음이 났다.
이 중 내가 전부터 궁금해 하던 인공지능이 인간 번역기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서 흥미로웠다. 기계 번역은 이미 1950년대에 시작되어 역사가 꽤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론은 공식화된 계약서, 보도 기사문, 사용설명서 등은 기계 번역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거라고 했다. 이로써 인공지능이 맡는 번역과 인간이 맡는 번역이 분리 될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전에 과학 관련 책에서도 본 적 있는데 인간의 정서를 교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몰라도 문학작품의 영역은 힘들거라는 생각도 든다. 번역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드물게 번역학을 가르치면서 글쓰기 강좌를 15년째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번역과 글쓰기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도 둘의 공통점을 찾아 상관관계를 말하고 있다.
‘글쓰기와 번역을 하려면 열심히 읽어야 한다. 글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글쓴이가 독자와의 긴장된 상호작용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읽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쓰기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글쓰기와 번역의 두 번째 공통점은 지속적인 쓰기 연습이 요구된다는 것이다.‘(P217)
글쓰기와 번역의 공통점은 둘 다 치열하고 치밀한 글 읽기와 지속적인 쓰기 연습이라고 했다.
현역 번역가로서 공부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이야기를 통해서 한층 더 자세하게 번역 업계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는 나도 번역가가 꼭 되어야지 마음먹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과연 내가 될 수 있을까, 의심도 생기고 겁이 났다.
너무 자세하고 생생한 번역 업계의 고충과 실상을 알아버렸다고 할까. 하지만 원서 읽기는 술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기로 했다.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번역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자 발견했습니다.
P106 맨 위쪽에 있는 번역문 인용 문장
'결찰관의 신발 바닥에 붙은…' →경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