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테러리스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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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는 모든 일본 사람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대사건으로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합심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때 누군가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고 곳곳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경시청은 비상이 내려지지만 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해 일반 사람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드디어 용의자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시마자키 구니오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의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자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올림픽을 방해는 그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경시청은 그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양들의 테러리스트는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품의 평범한 대학원생이 왜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런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게 되었나 하는 그가 이런 범죄행위를 하게 되는 필연의 과정을 담은 과거 시점과 지금 현재 그가 벌이고 있는 폭탄 테러를 막고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그를 검거하고자 노력하는 경찰들의 행동을 담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나눠 진행해 그의 범죄 동기에 대해선 공감하게 하게 그를 잡고자 하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장과 공권력의 입장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구니오가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올림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육체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또 그런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와 영광은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현실은 충분히 부조리하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모든 혜택이 올림픽을 여는 도쿄에 집중되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이런 부의 작은 혜택조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풍요가 넘치는 도쿄에 비해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어떤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난이 대물림되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을 죽은 형을 대신해 일을 하게 된 건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깨달아가는 구니오가 분노와 더불어 점차 허무함을 느끼는 모습은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필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목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이론이었다니...

어쩌면 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는 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쭙잖은 공명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 창 피 끓는 엘리트 젊은이가 가지는 오만한 열정이 아닌 순수한 분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그가 있는 위치도 이런 결정을 하는 데 한몫을 했다.

타고난 머리로 우수한 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그가 원한다면 사회에 나가 어디서든 높은 지위에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그는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여린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서른이 넘도록 일만 하다 죽은 형의 죽음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어 마치 죄를 고해하듯 형을 대신해 평생을 해보지 못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 당하고 겪는 부조리함과 노동착취에 분노하며 분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가 앞으로 행 할 행동에 대한 동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의 동기가 순수했고 그가 분노하는 심정 또한 십분 이해 가능했기에 그가 걷는 행보가 더욱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져 그의 행위와는 별개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게 된다.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모습과 도시의 뒤편에 가려진 어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구니오의 짙은 허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지...

그의 도피에 많은 도움을 준 여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그는 마치 위태롭기 그지없는 고독한 한 마리의 늑대 같다.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고 현시점에서 나의 최고 도달점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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