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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나가카와 나루키 지음, 문승준 옮김, 신카이 마코토 / 비채 / 2019년 5월
평점 :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았거나 사람에게 실망해서 더 이상 관계 맺는 것이 두려워 반려동물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동물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에게 필요한 온기를 나눠주기 때문인듯하다.
그래서 외국 같은 곳에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이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동물과의 교류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책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에 나오는 사람들도 각자가 나름의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곁으로 온 길고양이들을 돌보면서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과의 대화에 서툴고 그들이 보내는 사인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미유는 자신이 처음 독립한 집의 이곳저곳을 손봐주는 친구 후배의 모습이 듬직하게 느껴져 그와 사귀지만 그는 사귀자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상태다.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을 하고 그것마저도 뜸해질 즈음 친구로부터 힐난을 받고 당황하는 미유
친구는 자신이 그 후배를 오랫동안 좋아했으며 미유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와 사귀었다 생각해 배신감에 분노하지만 미유는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그와 사귀는 것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결국 하나뿐인 친한 친구마저 자신의 눈치 없음에 떠나버린 걸 알고 괴로워하는 그녀는 비 오는 날 우연히 마주친 버려진 아기 고양이 초비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고집이 세고 남과 교류하는 게 서툰 레이나 역시 미미라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조금씩 마음을 주면서 역시 변화되기 시작하지만 무엇보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극적인 변화를 보인 건 아오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친했던 친구 이상의 존재인 마리와 모진 소리를 하고 다투고 헤어진 다음날 마리가 죽어버렸고 이에 큰 충격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 아오이는 더 이상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바깥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미미의 자식인 쿠키가 엄마의 손에 들려 집으로 왔지만 아오이는 쉽게 상처를 극복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쿠키마저 자신처럼 집안에만 머물도록 자유를 박탈해버린다.
이렇게 계절이 흘러 더 이상 변화가 없을 것만 같을 즈음 쿠키가 열린 문을 통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버리고 집 밖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아오이는 그런 쿠키를 위해 마침내 힘겨운 한 걸음을 뗀다.
책 속의 그녀들은 나름대로 사람과의 관계에 조금씩 상처받고 지쳐있을 즈음에 우연히 길고양이들과 인연이 닿아 돌봐주고 있지만 고양이의 시점에서는 입장이 조금 다르다. 이렇게 사람과 고양이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묘사해 놓은 장면 장면들이 장난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게도 느껴진다.
특히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허술하기만 하지만 그 녀석들의 눈에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의 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기에 나름대로 주변을 맴돌면서 신경을 쓰고 그러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늙은 개 존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태곳적부터 모든 걸 기억하고 있다는 존은 참으로 철학적인 말로 대답해준다.
이렇게 각자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가 서로 겹쳐지는 부분이 없어 일면식도 없지만 서로의 고양이를 통해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인연을 맺어가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동물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한 범위의 내용이기는 하지만 따뜻한 시선과 무겁지 않은 필체로 마치 이웃들의 정겨운 모습을 그려내듯 표현하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진부함에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