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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줄래요? - 청각을 잃자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 차별의 소리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22년 4월
평점 :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유영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크게 그려있는 표지가 인상적이다. 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확히는 많은 소음들이 발생하긴 하지만, 그걸 우리 귀에까지 전달해줄 매질이 없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완전한 고요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굳이 우주까지 나가지 않아도 이런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도 사실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작가는 갑작스럽게 귀에 생긴 염증으로 결국 청력을 상실해 버렸고, 한동안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다행이 얼마 후에는 인공장치를 통해 어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게는 되었다니 다행.
하지만 작가의 고생은 단지 이것만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혈액암에 걸려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암이 완치된 후 다시 찾아온 청력의 상실, 그 절망적이고 답답한 상황에서 오히려 새로운 게 보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은 그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역시 작가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 귀에 이상이 생기면 단지 듣지만 못하는 게 아니다. 귀에는 몸의 평형을 잡아주는 기관이 있는데, 이 부분까지 망가져버리면 그냥 서있는 것, 짧은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휠체어를 위해 만들어 놓은 야트막한 경사로조차 무지막지한 비탈길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사소한 ARS 인증절차도 청각장애인에게는 큰 벽이다. 할부 렌탈을 하려면 들을 수 있는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속사포 약관 설명은 거의 암호 수준이다. 아마 작가 자신도 알지 못했을 이런 일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배려라는 말을 떠올린다.
장애, 혹은 병을 오래 앓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 건강한 사람에 비해 제한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필연적으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도 처음에는 건강했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도리어 그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 더 많은 것들을 하려고 오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작가가 깨달은 건,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에서 여전히 차별적 조치들을 애써 정당화하는 일베류들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작은 양보와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으니까. 책 제목이기도 한 ‘다시 말해 줄래요’라는 말은 부끄러운 것도,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공감이라는 게 영영 불가능한가 싶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 당장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사람들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었고, 이런 인식의 변화는 분명 상황을 좀 더 낫게 만들 것이다. 이런 책도 그런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