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아니 흑인혐오가 보편적이었던 그 음침한 시절, 최소한의 타인의 시선조차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었다. 그건 후기에서 이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가 (다행이도) 실화가 아니라는 걸 작가가 밝힌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니클의 감화원이 실재하지는 않았더라도, 우리 곁에는 그와 비슷한 기관들, 경험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가깝게는 우리나라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이라든지, 도가니 사건 등 장애인이나 힘없는 아동, 청소년들을 향한 착취와 폭력이 배어있는 과거사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갑질이라든지, 간호사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태움 같은 악습들, 집단 따돌림 같은 이야기들이 익숙한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
이 작품이 단순히 그런 현실 속 문제를 투영해 고발하는 르포 형식으로만 진행되었다면 감동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는 이 주제를 훌륭한 솜씨로 그려낸다. 니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하나씩 이어지면서 점점 그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마지막 부분에는 반전까지 삽입되어서 조금은 어벙벙한 상태로 결말을 맞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무슨 미국 고전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든다.
이런 끔찍한 일이 무슨 수백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 고작 수십 년 전(태어난 후 살아온 시간보다 더 적은) 일들이라는 걸 자각하게 될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여전히 그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는 게 괴롭고.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흑인 소년들)이 이런 구조적인 억압과 차별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었다.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포기하고 위축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수많은 가능성들이 꺾이고 묻혀버리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꽉 막힌 조직과 분위기는 그 사회를 질식시켜버리고 만다.
미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관통하는 가장 큰 문제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 퓰리쳐상은 이런 작품이 받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