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밑 아이들
창신강 지음, 마위 그림, 백은영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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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중국은 대환장파티 중이었다. 경제에 무지한 국가 지도자(마오쩌둥)가 추진한 멍청한 계획(문화대혁명)은 전국토를 처절하게 파괴했고, 수천 년의 역사를 아우른다는 중국의 학문과 경제, 정치적 기반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지식인들은 당연히 이런 멍청한 체제에 반발했고, 정부는 그런 지식인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극한의 상황에서 죽을 때까지 육체노동을 시켰다. 결과적으로 바보들(위에서 시키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이들)만 남아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 최종적인 결과는 수천 만 명이 굶어죽는 파국이었다.





이 작은 소설은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옥수수(당연히 별명)”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이 된 소년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충 눈치는 채고 있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검은 책”을 썼다는 이유로 먼 강제노동현장으로 끌려가고, 그런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야만 학교 방송반에 받아주겠는 제안을 받는 상황은 어린 아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일은 온통 괴상한 것들뿐이었다. 멀쩡한 말을 데려다 일을 시키기는커녕 집회에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간부의 명령은 결국 말과 그 말을 돌보던 친구의 아버지 모두에게 스트레스였고, 결국 말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소설에는 또 하나의 죽음이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의 목욕탕 물을 데우는 일을 하는, 조금은 순박하고 ‘아저씨’가 굴뚝에 느슨하게 달아놓은 스피커를 고치러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아저씨는 무슨 대단한 대가도 아니라 그저 색시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동네 주임의 말을 믿고 올라갔지만, 웬일인지 그는 죽은 후 열사의 칭호를 받으며 신문에 오르내린다.





결국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서도,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해서도 안 된다는 걸 배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제한되고 상상이 사라질 수 있을까. 결국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위선적인 성격과 강약약강의 비뚤어진 사고만 만들 뿐이고, 그건 장기적으로 한 사회의 발전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오늘날에야 이 문화대혁명을 중국 공산당에서도 공식적으로 실패한 운동으로 평가하기에 이런 책이 나오는 것도 허락되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소위 “중국적 사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이 적지 않다. 어쩌면 이런 것들도 그런 위선적 문화와 권력에 굴종하고 그 반대급부로 갑질이 생활화된 역사에서 나온 건 아닌지...


이야기는 동화의 형식,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 정도의 느낌으로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좀 더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넌지시 건네준다. 읽어볼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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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강박증의 소녀
Grace Kim / 페스트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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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랜만에 전자책으로 읽어봤다.(직전에 봤던 전자책이 1년은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요샌 편하게 전자도서관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해서, 전자책을 구입할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책장을 넘기면서 볼 수 있는 물성을 지닌 책이 좀 더 익숙하다.(물론 언제 전자책 충동구매를 할지 모른다. 아, 선물은 환영이다.)


사실 전자책으로 읽을 만한 책과 종이책이 더 나은 책은 어느 정도 구분이 되는 것 같다. 편하게 훅훅 넘겨도 상관 없는 책은 전자책이라도 크게 문제가 없지만, 한 자 한 자 새겨야 하거나, 작가나 저자의 고민이 깊게 담겨 있거나 한 책은 종이책 쪽이 좀 더 읽기에 적합하다. 아쉽게도 전자책으로만 나온 이 책은 후자 쪽에 속한다.





책은 보통의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는 작가의 에세이다. 학창시절부터 그 증상이 시작되었던 작가는, 졸업 후 영어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증상이 크게 악화되는 경험을 한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에게 그 충격은 몇 배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강박증의 증상과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작가는 자기 내부의 목소리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고 공격하는(책 속에서 작가는 이를 ‘참소’라고 부른다) 부분이 가장 크게 괴로웠던 것 같다. 다행이 그런 작가를 이해해주는 든든한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약물과 상담 치료도 꾸준히 받았던 것 같지만, 작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증상 호전의 원인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었다.


비로소 작가는 자신을 고발하는 목소리의 근원에 죄가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단순하게 서술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 떠올랐을 수천 겹의 자기를 고발하는 목소리의 무게를 이겨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사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우선은 작가가 적고 있는 일들의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좀 더 큰 이유는 책에 담긴 글의 얼개가 생각만큼 탄탄하지 않아서다. 시간적 순서에 따라 자신의 증상의 악화와 호전 경과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처음과 마지막 일부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 중간에는 그냥 의식의 흐름을 따라 주제들을 배열하고 있는데다가 그 내용 또한 반복적이고 비슷비슷(대부분 신앙적 고백이다)하다.(어쩌면 이 또한 강박증의 특징일 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싸움이 아직 다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이런 종류의 질병에 끝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주변에는 지지가 될 만한 가족들이 있고, 무엇보다 조금은 느리지만 더듬더듬 신앙의 빛을 향해 가고 있으니 조금은 좋은 쪽으로 기대를 해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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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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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긴 제목(“상대적이고 절대적인 고양이 백과사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만든 특유의 세계관, 굳이 말하자면 ‘베르베르 유니버스’를 알아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단숨에 유명작가로 만들어준 『개미』 속 등장하는 괴짜 박사인 에드몽 웰즈가 썼다고 설정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나중에 작가는 실제로 같은 이름의 책을 내기도 했다)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된 고양이라는 설정이 더해져서 이 책이 나왔다.


우선 진짜 작가인 베르베르 자신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기도 하고, 최근 작품인 『고양이』에서 그 생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던지라, 그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고양이와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 주요 사건들이 실려 있고, 2부에서는 고양이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생물학적 정보들이 담겨 있다.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신화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던 고대와, 터부시되었던 중세를 거쳐 반려동물로 받아지게 된 르네상스 시기 이후, 그리고 우주선에 타기까지 했던 현대의 이야기를 쭉 훑어가는 1부는 재미있었다. 이 서술이 고양이의 입을 통해 나온다는 설정도 재미를 조금은 더해주고.


다만 2부는 정말 말 그대로 “백과사전”을 넘기면 나올 만한, 평이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간 여러 장의 컬러 도판이 그나마 눈을 즐겁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몇 개의 항목은 그냥 양을 늘리려는 속셈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 같기도 하다.



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은 아니고, 그냥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팬심으로 볼 만한, 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나쁘지 않게 볼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이렇게 출판사는 책을 또 한 권 파는데 성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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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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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이 작가의 책 리뷰에 썼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다. 뭐 아주 훌륭한 작품을 써내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독서 슬럼프나, 조금은 힘든 독서를 연이어 했을 때 가볍게 기분을 바꿔주는 유용한 상비약 같은 존재가 히가시노 게이고다.(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으며 그의 민낯을 살짝 본 후 좀 깨긴 했지만..ㅋ)


이번 작품은 한 밤 중에 일어난 한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벌어진다. 견실한 제조업체의 생산 공장 본부장을 맡고 있던 한 남자가 죽었고, 인근에서 무직의 또 다른 남자가 죽은 남자의 가방과 지갑을 가지고 도망치다가 차에 치어 죽어버렸다. 당연히 경찰이나 언론에서는 후자가 전자를 살해하고 도주하다가 사망했다는 스토리를 그릴 텐데, 여기서 작가는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을 심어둔다. 범인이 사용한 나이프는 어디서 왔으며, 범행의 동기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범행도구와 동기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죽었으니 서둘러 사건을 해결하라는 압박이 심해졌고, 경찰 고위층에서는 애초의 시나리오대로 사건을 몰아간다. 하지만 여기에 조용히 반대하며 의문점을 따라 진실에 접근하는 형사 가가.(이 책에는 ‘가가 시리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단순히 사건의 전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사회의 반응에도 신경을 쓴다. 처음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동정어린 시선이 쏟아지지만, 얼마 후 피의자가 피해자의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했다가 계약연장이 되지 않았고, 그렇게 계약 해지가 이루어지기 얼마 전 일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지만 회사의 요구로 산재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변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부당한 해고를 당한 피의자에게도 동정의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이런 모습이 드물지 않은 것이,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오는 자극적인 인터넷 기사들과 거기에 달린 댓글들, 며칠 후 밝혀진 반대쪽의 사정은 앞서 보도된 사건의 일방적인 방향을 드러내는 게 허다하다. 하지만 어떤 (자칭) 언론들도 애초의 보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저 클릭 수만 늘리면 그만이라는, 반쯤은 사기꾼 정신으로 채워진 이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2차 가해가 수시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애초에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가족들을 향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거나, 아예 작정하고 억측을 바탕으로 한 가짜 뉴스가 만들어 지기도 한다.(이쪽은 앞서의 “기레기”보다 질이 좀 더 떨어지는 “양아치”들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 물론 작가는 여기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단서들을 독자에게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꽤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방식을 지켜간다. 개연성 없는 반칙 플레이를 하지 않으니 또 그대로 읽어가는 맛이 있다.


다만 이야기 전체에 일본의 신사문화 같은 특유의 전통이 깊게 배어 있어서, 나처럼 다른 문화권에 있는 독자들이라면 작중 인물의 설명이 나오기 전까지 그 의미를 바로 캐치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었다는 건 아쉬운 부분. 하지만 역시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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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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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봤을 때 제목이 잘못 인쇄된 줄 알았다.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라니... 보통은 그 반대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던가.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정말로 제목 그대로다. 일상 에세이와 약간의 과장 섞인 판타지가 섞인 이 책의 작가는 소위 헌책방(중고서점)의 주인이고,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서점에서 만난 조금은 신경 쓰이는 사람들을 위트 있게 고발(?)한다.


이 정도 설명만 들으면 이 책의 어디가 특별한 내용이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의 독창성은 작가가 손님들을 분류하는 방식이다. 책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마다 그에 속한 유형의 손님들을 모아서 분류했고, 이 과정에서 마치 분류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각각의 유형을 설명하는 라틴어식 분류명을 붙이고 있다. 예를 들면 “열성(극성)부모” 항목에는 “파렌테스, 글로리아이 쿠피디”라는 분류명이 붙어있다. 직역하면 “명성을 갈망하는 부모”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작은 헌책방에 앉아서, 가끔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잡문들을 쓰다가 책으로 엮었나보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해인 것 같다. 작가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장서만 10만 권 이상이라고 한다)의 사장이라니까. 개인적으론 좀 부럽다.





책 전체에 서양식 유머가 가득하다. 예를 들면 “그다지 조용하지 않은 사람” 항목에는 휘파람 부는 사람, 코를 훌쩍이는 사람, 콧노래 하는 사람, 방귀 뀌는 사람, 쯧쯧 차는 사람이 속해있는데, 이들이 조용한 중고서점에서 들어가서 얼마나 주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지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물론 이런 유머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게 아니라서, 애초에 중고서점 같은 데 가본 적이 없는 사람(또는 그냥 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거의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유머일 것이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를 보며 킥킥 웃을 수 있다면, 책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체적인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웃으면서,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지 않나 잠시 떠올려보며, 다시 헌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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