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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5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11월
평점 :
제법 유명한 책이었는데, 그동안 이름만 듣다가 이제야 손에 들었다. 미국-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세금(인두세)납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감되기도 하고, 이후 “시민불복종”이라는 책까지 내기도 했다는 소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주 약간 알고 있었고, 그가 월든이라는 호숫가에 직접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쓴 책이 바로 이 작품이라는 것까지가 선지식의 전부였다.
책은 열여덟 개의 에세이 모음집이었다. 하나하나가 단편이기도 하면서, 모두 월든 호숫가에서의 삶을 그리는 다른 시각들을 담고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서로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제목을 보지 않고 읽다보면 같은 얘기가 쭉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두드러지는 면은 강한 자연주의적 태도이다. 책 전반에 걸쳐 매우 상세하게 자연을 묘사하면서(이 부분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길다), 사람들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비판한다. 예컨대 한 에피소드에서는 근처의 땅 위에서 벌어지는 개미들의 싸움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이 때 비판의 중심은 지나친 탐욕과 그로 인한 파괴, 자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모습들인데, 또 그렇다고 모든 종류의 개발을 반대하는 건 아닌 게, 철도와 같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문명이 들어오는 것엔 또 적극 찬성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좀 더 자신을 계발해 가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 또한 작가의 비판 대상이기도 하다.
조금 혼란스러운 기준인데, 결국 작가의 성격에 따른 분류가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을 얕게 만나는 것보다 소수의 친구를 깊게 사귀는 걸 더 좋아하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보다는 조용하게 사색하는 걸 더 즐기고, 한 편으로는 그저 눈앞의 현실에만 집중한 채 안주하는 듯한 삶보다는 인류의 진보에 관한 희망을 품고 있는 그런 성격 말이다.
사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된 건, 작가 자신의 사상도 사상이지만,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19세기 미국의 자연에 관한 세심한 기록 때문인 것 같다.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이니 문화적으로도 독자적인 자산이랄 게 없었고, 이런 책이 꽤나 귀하게 여겨졌을 법하다는 건 충분히 공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고, 시골에서의 한적하고 자급자족적 삶을 기대하는 오늘날에도 오히려 이런 그림은 더 잘 와 닿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사실 자연이라는 게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또 무작정 동조하기는 어렵기도 하다. 아울러 자연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찬탄은 시인에게는 필요한 자질일지 모르나, 합리성을 포기하기 어려운 독자(나를 포함해서)에겐 조금 간지러운 아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용이 심오하고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글의 호흡이 길어서 단숨에 읽어가긴 어려웠다.(며칠이나 걸려서 겨울 읽었다) 물론 다루고 있는 소재에 대한 호불호도 약간 영향을 끼쳤고. 어쩌면 단지 지금 내 상황에는 조금 한가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후에, 원하던 시골의 마당 있는 집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좀 더 와 닿을지도.